샘파·아학·어학

2013년6월23일49기샘파소감(서지연성도)

작성자 관리자 날짜2013.06.28 조회수1059

제49기 목요샘파 소감문
서지연 성도

저는 태어나면서 자연스럽게 모태신앙으로 교회를 접하게 되었습니다.
어릴때는 신앙심이 무엇인지 잘 알지도 못한채 꽤나 열심히 다니는 아이였습니다.
고등학교 마칠 무렵 교회를 다니는 횟수가 점점 줄기 시작했습니다.
그로부터 20여년의 시간동안 교회를 잊고살았습니다.
주위에서나 부모님, 언니들이 교회를 다니라고 하면 전 “예”대답뿐이었습니다.
그러던중 저에게 큰 충격이 다가왔습니다.
도미니카공화국에서 살고 계신던 남편의 사촌형이 피랍된 사실입니다..
형님은 그곳을 정리를하고 한국으로 오면서도 힘든 기색 하나없이 평화로운얼굴이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물어보았습니다.
어떻게 아무렇지도 않으시냐고 대답은"하나님이 계시지않느냐“라는 대답이었습니다.
그리고 전 매일매일 생각했습니다. 내가 힘든건 아무것도 아니구나.

문득 작장에서 알게된 “김진옥집사님”이 생각나게 되었습니다.
몇 년만에 만나 엊그제 만난 사람들처럼 잘 대해주셨고 서로 힘든 일들, 즐거운 일들을 공유를 하고 있을 때쯤 집사님께서 “샘파”를 추천해주셨습니다.
첨엔 어떤 프로그램인지 무엇을 하는것인지도 모른채 의무감으로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1회차가 끝나고 그 주말에 엄마가 뇌경색으로 쓰러졌단 전화를 받고 부산으로 향했습니다.
중환자실 면회도 하루에 1번. 엄마는 의식없었습니다... 그리고 병원에서는 맘에 준비를 하라고 하셨습니다.
머릿속에서는 온통 엄마의 생사에 있었습니다
서울로 향한는 발걸음이 무거워지기 시작했습니다.
중보팀에게 기도를 부탁하고 기도 제목도 엄마의 회복이었습니다.
1주일이 지나고 다시 부산으로 향하였을땐 정신도 돌아오시고, 대소변을 받아내시던 분이 휠체어 앉아 있으셨고 일반 병실로 옮기셨습니니다.
그리고 전 엄마에게 “엄마 저 교회나가요”라는 한마디에 엄마는 저의 손을 붙잡고 겉기 시작하셨습니다.
의료진과 식구들은 다들 기적이라고 놀라워하셨습니다.

성령수양회를 마치고 그동안 힘들었던지 감기 몸살에 중위염까지. 이제 제 몸 하나 가늘수 없었습니다. 새벽에 응급실에서 해열제와 항생제를 맞으며 잠깐 잠이 들었습니다.
키가크신 신사분이 제게와서“그리도 힘들더나, 이제 걱정하지 말아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잠에서 깨어 집에오는 내내 간밤에 힘들었던 아픔이 씻은 듯 편안하게 잠을 잘수있었습니다.
그리고 그날 밤 엄마가 주말에 퇴원한다라는 언니의 전화가 있었습니다.
샘파의 백미 인카운터를 가벼운 맘으로 참석 할수있게 되었고 하나님을 영접하였습니다.
방언도 받았습니다.
끝으로 기쁨가득조 리더이신 정가희집사님, 부리더 배미영집사님 그리고 저희 맴배들 이런 경험을 할수 있게 도와주신 “김진옥집사님”정말 감사드립니다.
많은 섬김이분들게 다시한번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