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예배

하나님의 공의

김병진 목사 / 수 12:9-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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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수 12:9-24 “하나님의 공의”

가나안 중부, 남부, 북부의 큰 싸움을 마치고 지금까지 진멸하고 정복한 31개의 성읍과 31명의 왕들을 기록한다.

1. 이들은 (누구)인가? 1-2,8절
이들은 노아의 아들 함의 후손들이다(창9:22). 함의 아들 가나안 자손들에 의해서 형성된 민족들이다. 이들은 일찍부터 우상을 숭배하고 가증스런 문화와 풍습으로 살았다. 남색(동성연애)과 근친상간을 하고 짐승과 교접하는 수간을 하고 사술을 행했다(창19:2-5/레18:3,7,8,9/레18:23 /레20:6). 하나님은 죄를 견딜 수 없는 분이다. 이미 족장 시대 이전부터 하나님은 심판을 계획하고 있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 때 한 사람들을 택하여 부르셔서 복의 근원으로 삼겠다고 하시고, 그 한 사람을 그 땅으로 보내신다. 바로 아브라함이다. 아브라함도 죄악 중에 있는 진멸의 대상이었지만, 하나님의 은혜로 부르셔서 그를 가나안 땅에서 하나님을 경험하게 하고 하나님을 만난 자로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고 살게 하신다. 그러면서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를 가나안 사람들에게 알리신다. 하나님은 그들의 4대의 이야기를 통해서 그 진멸의 대상이었던 그 가나안 땅에 쇼파르 복음의 나팔을 불고 있는 것이다.
여호수아의 전쟁까지 하나님은 무려 500년의 시간을 그들에게 주었다. 그리고 요단강을 건너 여리고성 앞에서도 양각 나팔, 평화의 나팔 쇼파르를 불게 하셨다. 하나님은 마음만 먹으면 지진으로도 우박으로도 얼마든지 심판할 수 있었지만, 마지막으로 한 번 기회를 주시기 위해서 가나안 정복 전쟁 7년이라는 세월을 주신다.
이 땅도 심판의 대상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심판하시기 전에 복음이 나팔 평화의 선포로 예수님을 보내셨다. 마치 아브라함을 가나안에 보내시고 그의 씨들을 통해서 그 땅에 하나님을 알린 것처럼, 우리도 예수님의 씨들이 되어 이 땅에 하나님의 복음의 나팔을 불어야 하는 존재다. 이 땅을 책임져야하는 존재들인 것이다. 우리는 이제 우리의 모든 삶으로 이 땅을 책임지는 사람으로 살아야 하는 것이다.

2. 하나님은 이들의 (이름)을 왜 기록 했을까? 9-24절
1차적 이유는 실제로 점령했다는 것을 강조하면서 사실적 근거를 말하는 것이다. 31명의 죽은 왕들의 명단은 대표성을 가지는 것으로 모두 다 심판 받았다는 것을 말하고 있다. 2차적 이유는 우리가 이렇게 죽는 자의 삶을 살 것인가? 아니면 사는 자의 삶을 살 것인가? 그들의 이름을 보라는 것이다(계20:12-15).

3. 우리들은 이 이름들 앞에서 무엇을 (생각)해야 할까? 1절
과거의 이스라엘에게 가나안을 약속하시고 성취하신 것처럼 하나님은 우리에게 약속하신 가나안을 성취하게 하실 것이다. 지금 내가 살고 있는 곳도 가나안이고, 앞으로 가게 될 영원한 도성인 가나안을 하나님은 반드시 성취하게 하실 것이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 땅에 들어가 하나님과 함께 하기 위해 에발산에 가고 고군분투하며 전투의 삶을 살았던 것처럼, 우리 역시 하나님과 동행하기 위해 에발산에 가서 번제와 화목제를 통해 자기의 십자가를 지고 각자 의의 싸움을 싸워야 한다. 오히려 의의 생명을 가진 자라면 더 고민하게 되는 것이다.
*충성은 하나님의 비밀인 생명의 삶을 사는 것이다. 하나님의 공의는 결국 사랑이다. 그래서 하나님이 공의를 위해서 스스로 죽으신 것이다. 이것을 알리기 위해 그 진멸의 대상에게 아브라함을 보내고 그들 4대의 독특한 삶을 통해 복음의 나팔을 불어주신 하나님이 우리를 아브라함 삼으시고 그의 씨로 삼아 책임지라고 말씀하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