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예배

하나님의 크심

김병진 목사 / 수 9: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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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수 9:1-15 “하나님의 크심”

가나안은 오직 하나님께 속한 자만이 살길이라는 것을 이스라엘의 행보와 여러 전쟁을 통해서 아는 자의 선택이 필요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가나안 백성들과 절대 섞이지 말라고 하는 것은 하나님의 절대적 배타성이 아니라 이스라엘의 연약함 때문이다. 이스라엘의 연약함이 가나안사람과 연합해서 하나님을 버릴 수 있기 때문이다.

1. 기브온의 (선택). 3-6절
그들은 하나님께 속하는 것만이 살 길이라고 믿었기 때문에 할 수 있는 행동을 한다. 그들에게 선택의 대안은 없다. 연합군처럼 싸우다가 죽을 것이냐 아니면 속여서 라도 하나님 안으로 들어가야 할 것인가의 선택이 필요했다. 죽는냐, 사는냐는 라합도 똑같다. 정탐꾼이 잘 감춰지면 살고 들키면 죽는다. 목숨을 거는 것이다. 그들이 하나님이 얼마나 크신 분인지 알지 못했다면 그런 준비를 했을까? 오늘 성경은 우리에게 도전한다. 목숨을 걸고 살고자 했던 기브온 족속의 생명이 이미 나에게 베풀어주신 은혜 앞에 우리는 지금 어떻게 반응하고 있는지 돌아 보아야 한다.
-우리에게는 어느새 하나님을 믿는 믿음과 하나님을 사랑하는 그 사랑이 생사의 문제가 아니라, 내 삶에 행복과 유익 여부에만 관여 하는 수준에 머물러 있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야한다. 기브온 거민이 그렇게 목숨을 걸고 하나님 안에 들어오기를 갈망했던 그 은혜가 이미 우리에게 깊숙이 들어 와있다는 것을 새삼 깨달으면서 이미 부름 받았다는 사실 앞에 감격과 감사로 다시 일어나는 모두가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2. 속여서 라도 생명을 보존 하고 싶어 하는 기브온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과 반응. 25-27절
하나님만이 생명이라고 찾아 온 기브온에게 하나님은 여호와의 제단을 위하여 나무를 패며 물을 긷는 자들로 삼았다. 이들에게 나무를 패며 물을 긷는 일 보다도 더 큰 축복은 하나님의 집안에 있다는 것 즉, 성전 안에 있다는 것이다. 아무리 작은 일이라도 그 일이 하나님의 제단을 위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진멸 받을 수밖에 없는 존재가 하나님을 위하여 일할 수 있다는 것, 진멸 받은 수밖에 없는 존재가 하나님의 집에서 살 수 있다는 것이 은혜이다. 성전 안에서 하나님이 어떠한 분이신지 보게 되고 알게 되고 배울 수 있게 된 것이 복이다.
진멸의 대상 이었지만 오직 하나님만이 살길이라고 나온 그 백성을 하나님의 크신 사랑으로 받아주시고 가장 가까이서 하나님이 누구신지 알고 배우는 역사는 그 진멸의 대상이었던 기브온에게는 크신 하나님의 은혜다.
-기브온 사람 믈라댜와 메로놋 사람 야돈이 강 서쪽 총독의 관할에 속한 기브온 사람들 및 미스바 사람들과 더불어 중수하였다(느3:7).
-솔로몬이 일천번제를 드렸던 곳이 기브온에 있는 산당이다(왕상3:3-4).
-블레셋에서 언약궤가 이스라엘 진영으로 돌아올 때 기럇여아림에서 20년간 체류하고 섬긴다(삼상6:19-7:2).
*하나님의 크신 은혜를 경험한 기브온의 4개 성읍사람들은 세대를 거쳐서 계속 물을 기르고 나무를 패고 혹, 허드렛일을 한다 할지라도 하나님 옆에 있고 싶어 한다. 하나님의 집에서 하나님의 제단 쌓는 일을 할 수 있다는 것이 아무에게 주어진 것이 아니고 축복이요, 하나님의 크심 때문입니다.
시편 84:10 주의 궁정에서의 한 날이 다른 곳에서의 천 날보다 나은즉 악인의 장막에 사는 것보다 내 하나님의 성전 문지기로 있는 것이 좋사오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