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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이 되었는가 보다 어떤 사람이 되는가가 더 중요하다. 가령 대통령이 되었다는 것은 무엇이 되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정작 중요한 것은 어떤 대통령이 되는가가 더 중요하다. 히틀러는 최고의 권력에 올랐지만, 그가 한 일은 사람을 죽이는 일이었다. 히틀러가 권력자였다는 것으로 그를 존경하는 사람은 없다. 그 사람에 대한 평가는 무엇이 되었는가에 있지 않고 어떤 사람이 되었는가에 있다는 말이다. 어떤 사람이 되었는가가 더 중요한 것은 바로 이런 점 때문이다. 마찬가지 원리로 그리스도인이 되었다는 것보다 어떤 그리스도인으로 사는가가 더 중요하다. 오늘 본문은 마귀가 하는 일과 주님이 하시는 일을 극명하게 밝히고 있다. 마귀가 온 목적은 양을 죽이고 멸망시키기 위해서이며 주님은 양으로 생명을 얻고 더 풍성한 생명을 얻게 하시기 위해서라고 한다. 그런데 그리스도인이면서 마귀의 일을 하는 사람이 있다. 즉 죽이는 일이다. 하나님의 영토에 살면서 마귀의 지령을 받아 행하는 것은 이적행위이다. 마귀의 일은 무엇인가? 흔히 생각없이 내뱉는 부정적이고 불신앙적인 생각과 말이 곧 마귀의 일이다.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해야 한다. 즉 긍정적이며 살리는 말과 생각을 해야 한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고자 하는 삶은 삶의 활기와 기쁨, 놀라운 축복을 경험하는 후사로서의 삶이다. 하나님의 후사로서 살게 하는 것이 주님의 일의 특징이다. 그 풍성한 생명을 사는 법이 무엇인가?
Ⅰ. 약속에 대한 믿음이 있어야 한다
[히11:1]“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니”
하나님을 믿는 믿음을 가진 자는 바라는 것, 즉 기대가 있어야 한다. 어떤 대상에 대한 기대, 어떤 사건, 상황에 대한 설레는 마음이다.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약속이 가슴에 있는가? 또한 믿음은 하나님의 약속을 신뢰하는 것이다.
교육가는 아직 어린 아이를 보면서도 그 아이의 미래를 바라보고 기대하며 교육하는 사람이다. 마찬가지로 신앙인은 하나님의 약속과 그 약속의 결과를 기대하며 흥분할 수 있어야 신앙인이다. 기대는 신뢰가 바탕이다. 하나님은 나의 아버지이며 나를 도우시는 분이라는 신뢰가 있는 사람은 자신을 인도해 가실 하나님의 대한 기대로 설렘을 가질 수밖에 없다. 아브라함에게 하신 하나님의 약속은 허황되어 보인다. 또 바닷가의 모래알, 하늘의 별만큼의 숫자의 자손을 그의 생애동안은 보지 못했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하나님에 대한 신뢰가 있어서 장래에 되어 질 것을 믿음으로 바라보고 기뻐했다고 한다. 이것이 믿음이다. 부모는 자녀가 가정형편을 걱정하느라 학업도 못하며 세월을 보내는 것을 기뻐하지 않는다. 우리 하나님 역시 우리가 고아처럼 자기 짐을 자기가 지는 것을 원치 않으신다. 하나님의 자녀로서 하나님을 의지하고 모든 고민을 하나님께 맡기고 걱정 없이 누리기를 원하신다. 나는 하나님에 대한 믿음과 기대가 있는가?
Ⅱ. 영생을 갈망해야 한다.
생명이라는 단어를 3가지로 분류한다. 첫째, 비오스생명이다. 이것은 육신적인 생명이다. 쉽게 피곤해지고 먹어야 살고 하는 연약한 우리의 육체의 생명이다. 둘째, 프쉬케생명이다. 정신적인 세계를 말한다. 음악, 미술 등의 예술적인 세계가 내면화되어 감동과 감격을 자아내는 생명이다. 사람이 육신의 건강을 잃었다고 하더라도 정신적인 세계의 삶을 잘 사는 사람도 있다. 셋째, 조에생명이다. 이것은 영적인 생명이다. 주님은 우리에게 영생을 보장하셨다. 이것은 오래 사는 것이나 천당을 가는 정도의 생명을 말하지 않는다. 영생은 하나님의 생명을 사는 것이다. 하나님의 자녀의 신분에 걸맞는 삶의 질을 말한다. 이것을 한마디로 말하면 번식과 통치의 삶이다. 하나님의 인간을 향한 관심은 번식과 통치가 이 땅에 이루어져서 하나님의 나라가 완성되는 일에 있다. 번식은 우리 속에 하나님의 형상(성품)이 이루어져 하나님의 자녀다운 성품의 변화가 와야 하고 불신자를 전도하여 하나님의 형상으로 변화하도록 돕는 일이 번식의 축복이다. 그리고 통치는 사단과의 영적전쟁에서 승리하는 일이다. 인간을 죽이고 멸망하게 하는 세력과 기도로 싸우고 말씀으로 싸워서 우리에게 약속하신 축복들을 되찾는 것이다. 또한 정복은 나의 주변의 사람과 지역에 하나님의 축복을 알리는 영향력을 행사하는 일이다. 우리는 하나님이 대행자로서 이 땅을 살아야 한다. 그러므로 내게 붙여주신 많은 사람들과 지역에 이러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도록 훈련해야 한다. 이것이 조에의 생명이다.
[창1:28]“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라”[사60:22]“그 작은 자가 천을 이루겠고 그 약한 자가 강국을 이룰 것이라 때가 되면 나 여호와가 속히 이루리라”
Ⅲ. 생명의 언어를 사용해야 한다.
말에는 예언적 능력이 있다. 말의 크기가 나의 인생의 크기를 결정한다. [시81:10-11]“나는 너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여호와 네 하나님이니 네 입을 넓게 열라 내가 채우리라 하였으나 내 백성이 내 소리를 듣지 아니하며 이스라엘이 나를 원치 아니하였도다” 입을 크게 열아야 받숟가락도 큰 게 들어가듯 믿음의 입도 크게 벌려야 한다. 믿음의 입은 부정적이고 비판적이며 불신앙적인 말을 버리고 하나님을 신뢰하는 믿음의 말을 하는 것을 뜻한다. 잠언18:21절에서도 “죽고 사는 것이 혀의 권세에 달렸나니” 라고 했다. 말이 운명을 바꾼다는 말이다. 실제로 광야에서 운명을 달리 했던 사람들도 그들의 말 때문이었다.
[민14:27-28]나를 원망하는 이 악한 회중을 내가 어느 때까지 참으랴 이스라엘 자손이 나를 향하여 원망하는바 그 원망하는 말을 내가 들었노라 그들에게 이르기를 여호와의 말씀에 나의 삶을 가리켜 맹세하노라 너희 말이 내 귀에 들린대로 내가 너희에게 행하리니
그러므로 우리는 믿음의 말을 하도록 훈련되어져야 한다. 태초에 하나님이 빛이 있으라 하지 않으셨으면 빛은 있지 못했을 것이다. 마찬가지로 우리의 입술에 권세를 주셔서 우리의 말이 우리의 삶을 창조적이도록 하셨다. 죽이는 것은 죽이는 말에서 시작된다. 죽이는 것은 마귀의 일이다. 죽이는 말도 마귀의 일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살리는 일, 살리는 말을 해야 한다. 이것이 하나님의 통치를 대행하는 일이다. 생명의 언어를 늘 있도록 하나님께 부르짖어야 한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 서는 그날까지 결심해야 할 것이 있다. 1)부정적인 말을 하지 않으리라. 2)할 수 없다, 못한다는 말은 내 사전에 없다. 3)불신앙적인 말을 하지 않으리라. 믿음의 언어만 말하리라. 4)비판의 말, 비난의 말, 불평의 말, 원망의 말은 내 입술에 담지 않는다. 5)아름다운 말을 하고 비전을 말하고 이웃과 가족에게 칭찬과 격려를 말하리라. 6)특별히 하나님을 높이는 말을 하리라.
주님 내 입술을 통하여 높임을 받으소서.
Ⅵ. 생명의 사역을 해야 한다.
예수님의 3중 사역은 가르침과 복음전파와 치유였다.
[마4:23]“예수께서 온 갈릴리에 두루 다니사 저희 회당에서 가르치시며 천국 복음을 전파하시며 백성 중에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시니”
우리는 예수님의 제자로서 예수님이 이 땅에 계실 때의 사역을 우리도 이어가야 한다.
첫째, 천국복음을 전파하는 일이다. 천국의 개념 즉 하나님의 통치가 이루어지는 에덴, 예수님의 회복영역, 영원한 복락의 나라를 설명하는 일이다. 그리고 하나님의 통치의 권세에 복종하는 사람이 복이 있음을 가르치는 일, 사람을 하나님의 형상으로 대행자로 세우시는 하나님의 뜻을 가르치는 그 일에 있다.
둘째, 훈련하여 제자로 삼는 일아다. 제자의 삶은 도둑을 만나 잃어버리고 살고, 죽음 가운데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살리는 영이신 예수님을 소개하고 만나게 하고 그분과 더불어 천국의 삶을 살게 하는 데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계속해서 훈련을 받아야 한다. 타고난 우리의 존재는 마귀를 닮은 존재이기 때문에 배우지 않고 훈련하지 않으면 마귀의 역할을 감당하게 되기 때문이다.
셋째, 치유하라. 치유는 영적이며 정신적이며 육체적인 치유를 다 포함한다. 천국은 우리의 삶의 본질이다. 우리는 계속해서 천국이 얼마나 좋은지를 전파하며 살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