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예배

하늘 보좌를 보라

박승호 목사 / 계4: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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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미국이 국제적인 재판의 headquarter가 되어 가고 있다는 기사가 신문에 실렸었다. 세계의 많은 나라가 자국의 문제나 국제적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미국의 사법부에 사건을 의뢰하기 때문이다. 그야말로 전 세계를 미국이 주도하고 있다는 실제적 증거이다. 그래서 미국대통령을 세계대통령이라는 말까지 나오고 있다. 사실상 Pax Americana, 즉 세계평화를 미국이 주도하고 있다고 해야 할 것이다.
로마가 세계를 지배하고 있던 시절, 로마제국이 처음에는 기독교의 선교에 관대했지만, 점점 부패와 타락으로 민심이 악화된 백성들의 관심을 돌리기 위해 기독교인들을 희생제물로 삼았다. 특히 변태적인 폭군 네로황제는 로마의 대화재로 민심이 악화되자 “기독교인들이 불을 질렀다” 고 헛소문을 퍼뜨려 기독교인을 학살하기 시작했다. 심지어 기독교들을 붙잡아 굶주린 사자들에게 던져 죽게 하고 십자가에 묶어 불에 태워 죽이기도 했다. 이에 기독교인들은 너무나 큰 고통과 좌절을 겪어야 했다.
사도요한이 살았던 AD 1세기, 당시의 유럽은 로마의 손안에 들어와 있었고 당시의 유럽은 팍스 로마나(Pax Romana) 였다. 계시록에 나타난 일곱교회는 다 로마의 지배하에 있었고 로마의 힘과 문화와 죄악상에 젖어 가고 있었다. 많은 교회들이 로마적 안일과 게으름에 빠져 들기도 했다. 그야말로 팍스 로마나교회들이었다. 명분은 그리스도의 교회이지만, 그들을 주도하고 지배하는 실제적인 힘은 로마가 가지고 있었다. 바로 이런 때에 요한은 로마의 지배 아래 있던 아시아 7교회에게 편지를 쓴다.
계시록이 주어진 이유는 여기에 있다. “너희들의 그 ‘팍스 로마나’의 사고를 이제 어린양이 다스리시는 참 왕국의 실체 ‘Pax Heaven`으로 전환시키라. 로마의 지배에 고정된 시각을 하늘에 고정해라. 너희가 당하는 고난이 로마의 힘 때문에 그렇다고 다 판단하지 말라. 하나님이 더 큰 힘으로 너희를 내려다 보고 계신다. 로마의 권력에 아부하지 말고 하늘의 통치에 너희를 맞추어라. 너희들은 하나님나라의 후사들이다. 하늘 왕국의 계승자들이다. 는 메시지를 전하기 위해서이다. 오늘 본문의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 나라가 어떻게 진행되며, 하나님 나라의 본질과 경륜을 알아보도록 하자.

Ⅰ. 눈을 들어 하늘 보좌를 보라.
[계4:1] “이 일 후에 내가 보니 하늘에 열린 문이 있는데 내가 들은 바 처음에 내게 말하던 나팔 소리 같은 그 음성이 가로되 이리로 올라오라 이 후에 마땅히 될 일을 내가 네게 보이리라 하시더라”
지금 사람들과 교회는 세상을 보고 있다. 사람들은 예수님이 하늘에 계시며 자신들의 고난의 현실과 무관하게 계시는 것처럼 생각하고 있었다. 그들을 지배하는 것은 로마의 압제와 로마의 정치적인 힘뿐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나 주님은 요한을 불러서 하늘 보좌를 보이신다. 세상의 통치, 역사의 헤드쿼터는 로마가 아니라 하나님의 보좌다라고 말씀하신다. 분명히 가슴에 금띠를 띠고 교회를 돌보며 간검하고 계시는 주님을 보게 하셨다. 칭찬할만한 교회는 칭찬하고 책망할 교회는 책망하시는 주님이 하늘 보좌에 계셨다. 분명 교회의 주인은 주님이심을 보게 하신 것이다. 통치의 중심이 로마가 아니라 하늘에 있음을 보여주신 사건이다. 미래에 되어질 일을 보여주시며 교회가 땅이 아닌 하늘을 보아야 함을 일깨워주신다.
우리도 마찬가지이다. 우리도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 자신들과 우리의 교회들도 다 마찬가지이다. 사람, 정부, 환경, 사건이 우리를 지배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우리가 열린 문으로 하늘 보좌로 올라가야 한다. 우리의 눈을 현재의 상황과 환경의 열악함, 나의 나약함에서 하늘로 돌려야 한다.
철학적 신론-자연신론(Deism)이라는 철학은 창조주 하나님이 있다는 것을 인정한다. 그러나 그 우주는 스스로 완벽해서 조물주가 없이도 잘 돌아간다. 조물주는 만들어진 우주 속에서는 아무 기능을 발휘 못하는 죽은 존재라고 생각하는 철학이다. 그런데 Deist들은 교회 안에도 많이 있다. 하나님이 계신다고는 믿지만, 하나님이 인간의 역사 속에 직접 개입하셔서 다스리시고 섭리하시는 분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다. 그래서 기도하지 않고 말씀을 신뢰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자신의 삶에서 아무런 영향력을 미칠 수 없다.
요한 사도가 겪고 있는 교회의 아픔이 이런 것들이었다. 교회에 주님의 말씀이 힘을 쓰지 못하고, 마치 주님은 죽은 것 같아 보인다. 바로 이러한 상황에서 주님은 사도 요한을 하늘 왕국으로 올려서 보좌를 보게 하셨다. 주의력을 살아계신 하나님에게 집중시키라는 뜻이다. 우리가 왜 세상에서 견딜 수 없는 고난과 위기를 겪어야 하는가? 세상을 주관하시는 대제사장이신 주님과 함께 다스리기 위해서 우리도 주님의 고난에 도참하기 위해서이다.
[계1:9]나 요한은 너희 형제요 예수의 환난과 나라와 참음에 동참하는 자라 하나님의 말씀과 예수의 증거를 인하여 밧모라 하는 섬에 있었더니

Ⅱ. 역사의 주인은 하나님이시다.
[계4:8] “네 생물이 각각 여섯 날개가 있고 그 안과 주위에 눈이 가득하더라 그들이 밤낮 쉬지 않고 이르기를 거룩하다 거룩하다 거룩하다 주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여 전에도 계셨고 이제도 계시고 장차 오실 자라 하고”
하나님은 내 삶의 주인이시다. 그리고 보좌를 둘러 싸고 있는 네생물들과 천사들의 찬양을 듣게 하셨다 전에는 계셨지만, 지금은 안계시다고 생각하는 그 때에 전에도 계시고 이제도 계시고 장차 오실 자라고 밝히 말씀하고 있다.
[계4:10-11]“이십사 장로들이 보좌에 앉으신 이 앞에 엎드려 세세토록 사시는 이에게 경배하고 자기의 면류관을 보좌 앞에 던지며 가로되 우리 주 하나님이여 영광과 존귀와 능력을 받으시는 것이 합당하오니 주께서 만물을 지으신지라 만물이 주의 뜻대로 있었고 또 지으심을 받았나이다 하더라”
하나님은 만물 한번 만들고 무관하게 놔두시는 게 아니라 지금도 역사하고 계심을 말씀하신다.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시면 이를 수가 없다고 생각하고, 버림받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만물이 주의 뜻대로 있었고 주님의 뜻대로 진행되고 있다. 고 말씀하신다.
[빌3:20]“오직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는지라 거기로서 구원하는 자 곧 주 예수 그리스도를 기다리노니”
나라의 힘은 외국에서도 영향력을 미친다. 하나님의 통치의 힘은 오늘 우리 삶 속에서 그 주권이 미쳐져야 한다. 우리는 이 땅에 살아도 천국시민으로서 산다. 그래서 우리가 어떤 행동을 하더라도 사람 앞에서 하는 것으로 생각하지 않고 오직 주를 대하듯하라고 말씀하신다(골3:22-23)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의 주권 앞에 살아야 한다. 왜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쓰셨으며 다윗을 쓰셨는가? 하나님을 높이며 하나님을 경외했기 때문이다. 사랑하면 그 사람이 내 마음을 지배한다. 주님을 사랑하면 주님이 내 마음을 움직이신다. 그런데 실제로 우리의 삶이 다른 것에 의해서 조종될 때가 많다.
[시139:19]“여호와께서 그 보좌를 하늘에 세우시고 그 정권으로 만유를 통치하시도다”
세상을 다스리는 분은 분명 하나님이시다. 예수님은 하나님이 다스리시는 천국을 주시기 위해서 오셨고 우리는 이 천국복음을 전파하는 사람들이다. 천국은 환경에서부터가 아니라 내 안에서부터 이루어진다. 누가 주님의 제자인가? 주님을 왕으로 인정하고 사람들이 그 하나님의 주권 앞에 복종하도록 훈련하고 돕는 사람들이다. 내가 돕는 사람이 얼마나 주께 헌신하고 있는가?

Ⅲ. 밤 낮으로 찬양함.
[계4:8] “네 생물이 각각 여섯 날개가 있고 그 안과 주위에 눈이 가득하더라 그들이 밤낮 쉬지 않고 이르기를 거룩하다 거룩하다 거룩하다 주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여 전에도 계셨고 이제도 계시고 장차 오실 자라 하고”
이것이 하늘의 모습이다. 네 생물과 이십사 장로들이 하나님을 밤낮으로 찬양하는 나라이다. 24장로들은 창조주이신 예수님을 4생물은 통치주이신 예수님을 찬양하고 있다. 천국에서 주된 사역은 항상 쉬지 않고 하나님을 찬양하는 일이다. 하나님이 인생을 부르신 목적도 하나님을 찬양하는 일에 있다.
[사43:21]“이 백성은 내가 나를 위하여 지었나니 나의 찬송을 부르게 하려 함이니라”
[사43:7] “무릇 내 이름으로 일컫는 자 곧 내가 내 영광을 위하여 창조한 자를 오게 하라 그들을 내가 지었고 만들었느니라”
하나님을 밤낮 찬양하는 이것이 어떻게 가능한가? 내가 어떤 일이 주어졌다면 맡겨진 그 일을 가장 잘 하기 위해서 밤낮 연구하고 최선을 다하는 태도가 하나님을 높이는 일이며 하나님을 찬양하는 삶이 된다. 구원의 목적은 하나님을 높이기 위해서이다. 그러므로 우리 입술에서 부정적인 이야기나 험담, 비판은 사라져야 한다. 그것은 사탄을 선전하는 일이 되기 때문이다. 성도는 이 땅에 살아도 하늘의 시민권을 가진 천국백성이다.
[시34:1]“내가 여호와를 항상 송촉함이여 그를 송축함이 내 입에 계속하리로다”
다윗이 한 이 찬송은 사울왕에게 쫒겨 어쩔 수 없이 적국인 블레셋으로 피신하였다가 거기서도 쫒겨나 오고갈 데 없을 때 부른 찬송이다. 보통사람들 같으면 원망할만한 처지였지만, 다윗은 그런 형편에서도 찬양할 수 있는 사람이었기에 그에게 축복하셨다. 예배의 감격을 회복해야 한다. 하나님을 노래하고 높이고 찬양하는 일에 시간을 바쳐야 한다. 하나님 나라는 우리를 통해 온다. G12는 이 땅에 하나님의 통치를 실현하는 교두보이다. 고난을 활용하는 지혜를 가져야 한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는다고 환경이 갑자기 바뀌거나 사탄의 세력이 우리를 피해가는 것도 아니다. 그러나 그곳에 있어야 할 분명한 이유가 있고 약속을 가진 자라는 사실을 인정하게 되면 그곳이 하나님의 임재를 경하는 현장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