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을 많이 태운 유람선이 가다가 바다 한 가운데서 가라앉는 위기를 맞았다고 한다. 구명보트에 사람들이 올라탓지만, 많은 무게를 견디지 못해 보트가 가라앉게 되자 누군가는 몇 사람쯤은 희생을 해야 했다. 그 때 영국사람이 먼저 일어나서 “대영제국만세”를 외치고 바다에 뛰어내렸고 이어 미국사람이 “미국만세”를 외치며 뛰어 내렸다. 그 후에 한국 사람이 벌떡 일어나더니 “대한민국만세”를 삼창한 후에 힘있게 옆에 있던 일본 사람을 밀어넣었다고 하는 우스개소리가 있다. 이 이야기에서 보듯 우리나라 사람들의 특성을 말해준다고 보는 것은 심하지만, 일면의 진실을 보는듯하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어디를 가나 살아남는 강한 면을 지니고 있는 것이 장점이지만, 다른 사람들과 함께 살아가며 배려하는 면은 약하다. 하나님이 우리를 먼저 하나님의 백성으로 불러 주심은 자기만의 행복을 위해서가 아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받은 내가 이 은혜를 다른 사람에게 나눠주는 복을 누리기를 원하신다. 다시 말해 부르심의 본질적 의미는 나눠주는 데 있다. 안식일을 누리는 방법도 아내, 자녀, 남녀 종, 집에 유하는 객, 심지어는 육축까지도 안식의 은혜를 나누라고 하신다.
안식일이 커지면 안식년이다. 안식년에는 모든 채무자에게 일년간 빚을 탕감해 주며, 경작하지 않고 거두지 않으므로서 가난한 사람들과 짐승들을 배려한다. 안식년이 극대화되면 희년이다. 희년에는 ①땅을 원주인에게 돌려주고 ②모든 빚을 탕감해 주며 ③노예는 해방된다. 희년의 기본 정신은 이웃에 대한 배려이다. 희년에 의해 모든 억울한 사람, 가난한 사람, 불행한 사람들이 가진 자의 풍요를 함께 누리도록 하셨다. 그래서 안식일의 정신은 신약시대의 십자가의 은혜의 정신과 같다.
주님은 눅 4:18절에서 은혜의 해 곧 희년을 전파하기 위해서 오셨다고 말씀하신다. 신약시대의 사람들은 희년을 사는 사람들이다. 예수님은 잃어버린 인간의 권리들을 복권시키셨다. 우리는 다 왕으로, 제사장으로 살아가야 한다. 구약에서 성전 중심의 예배의 개념이 신약에서는 예수님을 모신 개개인이 성전이므로 어느 특정 공간, 장소에 제한받지 않는 예배로 예배나 성전의 개념이 달라졌다. 이것을 선교 신학자 호켄다이크는 모이는 교회와 흩어지는 교회로 표현했다. 모이는 이유는 하나님을 경배하고 은혜를 받기 위함이요, 흩어지는 이유는 우리의 받은 바 은혜를 현장에서 이웃들과 나누기 위함이다. 오늘 본문이 말한 3대 절기의 의미를 정리함으로 택하신 곳에서 하나님을 섬기는 방법을 찾도록 하자.
Ⅰ. 무교절(유월절)-죄 없는 떡이신 그리스도를 취하고 누룩없는 삶을 살라(거룩한 삶)
무교절에 이스라엘 백성들은 유월절 어린양의 고기와 누룩이 없는 떡을 먹고 하나님께서 어떻게 무서운 노예의 쇠사슬에서 건져주셨는가를 상기하는 절기이다. 무교절은 안식일부터 안식일까지 일주일 내내 계속되었다. 고전 5:7-8절에서 예수그리스도께서 희생의 제물이 되셨으므로 누룩을 내어버리라고 말씀하신다. 이것은 성도의 거룩한 삶을 가리키는 말이다. 성도의 삶은 맛과 재미를 위한 삶이 아닌 죄를 버리고 거룩하게 살아야 하는 무교절의 삶이 되어야 한다.
Ⅱ. 맥추절(칠칠절, 오순절)=결실을 가지고 와서 하나님께 보여야 한다(열매맺는 삶-성장)
첫열매를 드린 초실절로부터 50일째 되는 날 여름 농사를 마치면서 지키는 절기이다. 구약에서는 말씀(십계명)을 주셨고, 신약에서는 성령이 강림하셨다. [고전 15:20]“그러나 이제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셨도다” [롬 8:23]“이 뿐 아니라 또한 우리 곧 성령의 처음 익은 열매를 받은 우리까지도 속으로 탄식하여 양자될 것 곧 우리 몸의 구속을 기다리느니라”
첫 열매이신 그리스도를 만난 이후 우리도 같이 하나님 앞에 열매로 드려져야 한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열매가 있는지 확인해 봐야한다. 성령의 열매는 성품의 변화이다. 사랑과 희락과 화평...은 우리의 내면의 성질의 변화를 말한다. 우리는 성령님의 도우심으로 변화를 기대하고 변화하도록 힘써야 한다. 내 안에 말씀을 주심에 대한 결실이 있는가? 내 안에 성령님이 오심으로 나는 어떻게 변화되고 있는가? 즉 생활의 변화, 성품의 변화가 있는가를 확인해 보자.
Ⅲ. 수장절(장막절, 초막절) = 교회생활-완성
[신16:14]“절기를 지킬 때에 너와 네 자녀와 노비와 네 성중에 거하는 레위인과 객과 고아와 과부가 함께 연락하여...”
[레23:42]“너희는 칠 일 동안 초막에 거하되 이스라엘에서 난자는 다 초막에 거할지니 이는 내가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던 때에 초막에 거한 줄을 너희 대대로 알게 함이니라”
지금도 유대인들은 초막절이 되면 뒤뜰이나 외부, 광야로 나가 천막을 치고 온 가족이 불편한 7일을 지내면서 옛날 그들의 조상들이 광야에서 살았던 생활을 재현한다. 그 기간 동안 하나님께서 이스라엘백성들을 어떻게 도와주시고 인도하시며, 보호하셨는가? 곧 구속사를 공부하고 그 은혜에 감사하는 절기이다. 신약적 개념으로 말하면 교회생활이다. 함께 살면서 영적인 아비가 자녀에게 하나님의 구속사와 나의 지난 생애 속에 경험했던 나의 삶의 간증들을 나누면서 내가 만난 하나님을 그들도 경험할 수 있도록 돕는다. 영적인 아비가 없거나 영적인 자녀가 없는 사람은 장막절이 없는 사람이다.
내게 죄를 거절하고 살아가는 무교절이 있는가? 주님 만난 이후로 열매가 있는 오순절이 있는가? 함께 생명을 나누는 장막절이 있는가를 점검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