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일 설교요약
「예수님의 제자훈련 」
막3:13-19 박승호 목사
인노센트 4세와 토마스 아퀴나스의 대화이다. 바티칸 시로 보내온 헌금주머니를 보며 교황이 하는 말, “선생 보시오 베드로 사도께서는 은과 금은 내게 없다고 하셨는데 지금 교황청은 은과 금이 넘쳐나고 있습니다” 그 말에 토마스 아퀴나스는 “그러나 로마 교황청은 나사렛 예수 이름으로 일어나 걸으라는 말을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위의 대화에서처럼 오늘의 교회가 매스컴에서 뿐 아니라 사람들의 대화 속에서도 거론되며 지탄을 받고 있다. 표면적인 성장은 있으나 질적 성장이 따라주지 못한 결과라 생각된다. 생육하고 번성하는 교회, 다스리는 교회로의 명령을 받은 교회가 하나님의 DNA(형상)를 심는 일과 하나님의 통치를 대행하며 실행하는 일에 소홀하고 다른 데 마음을 쏟아왔다는 사실을 직시해야 한다. 예수님은 어떤 교회를 이 땅에 심으시기를 원하셨으며, 그 일을 위해 예수님이 무엇을 하셨는지 보도록 하자.
Ⅰ. 제자의 자격을 갖추게 하시려고 자기의 원하는 자를 부르셨다.
13절에 “또 산에 오르사 자기의 원하는 자들을 부르시니 나아온지라”
처음 예수님께 나아온 사람들의 동기는 자기의 유익을 위해서일 수 있다. 그러나 예수님과 사귀면서 예수님의 가치를 알고 예수님의 뜻을 이해하게 될 만큼 성장하게 되면 입장이 바뀌어야 한다. 자신을 위한 예수님에서 예수님을 위한 자신이 되어야 한다. 오늘의 교회는 바로 이 부분에서 성장이 멈추고 있다. 각 사람이 그리스도인으로서 복음의 출발은 있었으나, 복음의 목적을 깨닫지 못한 데 원인이 있다고 할 수 있다.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은 자기의 원하는 자들을 부르셨다고 하신다. 이것이 교회가 교회되는 일의 출발선이다.
예수님 앞에 나온 사람들 중에는 두 부류가 있었다. 무리와 제자들이다. 무리와 제자들은 겉으로는 별 차이가 없다. 예수님을 좆는 열심, 말씀을 듣는 열심, 기적을 목격하고 놀라고 두려워하는 모습도 무리와 제자의 차이는 없다.
결정적 차이는 무리는 처음부터 끝까지 예수님께 무엇인가를 얻으려고만 하는 자들이다. 무리는 더 이상 자기 유익이 없을 때 예수님을 버리는 자들이다. 예수님의 말씀의 진의를 깨닫지 못하며 기억하지 못하는 자들이다. 제자는 예수님의 말씀을 기억하며 그 말씀을 끝까지 증거하는 일로 목숨까지 바치는 사람들이다.
예수님은 교회를 제자들에게 맡기셨다. 그러기 위해서 먼저 제자를 부르셨다. 예수님이 원하는 자를 부르심은 바로 제자훈련을 위해서이다. 교회는 제자들이 세우고 이룬다. 제자는 하나님나라를 위한 군사로서 훈련받은 사람들이다. 교회에 등록하는 것만으로 군사가 되지 않는다. 고도의 교육과 훈련을 받아야 한다. 우리가 제자로서 하나님의 일을 대행하려면 훈련받는 일에 게으르지 말아야 한다. 셀로, G12로 훈련을 받아야 한다. 영혼의 장교가 되어 많은 사람들의 영혼을 책임져야 하는 막중한 임무가 있기 때문이다.
Ⅱ. 12명을 부르심은 하나님의 통치의 숫자가 12이기 때문이다.
열둘은 하나님의 통치 숫자이다. 구약의 이스라엘 지파가 12지파이다. 엘림의 샘물도 열둘이었다. 제단 위의 진설병(거룩한 떡)도 열두덩이었다. 계시록에서 새예루살렘의 주초도 열둘이고 천국의 문도 열두대문이다. 이처럼 열둘은 하나님 나라와 그의 백성을 상징한다. 따라서 예수님이 제자 열둘을 세우셨다는 것은 이제 하나님의 나라를 회복하고 흩어진 그의 백성을 온전케 하실 것이라는 사실을 암시해 준다.
나라의 통치는 정책이 들어있다. 경제정책, 국방정책, 교육정책 등 나라를 발전시키고 부유하게 하기위한 정책을 가진다. 훌륭한 정책이 수립되어 실행되는 나라에 우리가 살고 있다. 그러므로 내 삶의 전부가 하나님의 통치 속에 들어오기를 원하신다.
마6:33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더하시리라”
하나님 나라는 제자가 구해야할 최상의 목표이다. 하나님 나라가 가장 중요한 제자의 관심사여야 한다. 그리고 그 나라를 위하여 사는 사람은 하나님이 그의 필요를 채우신다고 약속하셨다.
제자라는 말은 헬라어로 ‘마테테스’이다. ‘배우는 사람’이라는 뜻이다. 또 라틴어로는 ‘디스키풀루스’라고 하는데 ‘동일한 가지’라는 뜻이다. 예수님과 제자는 같은 가치가 있다는 말이다. 제자를 보면 스승을 알 수 있다. 제자의 모습에서 스승을 비출 수 있었던 것은 먼저 스승의 모든 가르침, 그의 성품, 그의 삶, 모든 것을 배웠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예수님의 제자는 예수님의 모습을 보고 배워서 예수님의 모습을 드러내야 한다.
Ⅲ. 12제자를 부르심은 예수님과 함께 있게 하려고 부르셨다.
14절“이에 열둘을 세우셨으니 이는 자기와 함께 있게 하시고 ...”
배우기 위해서 먼저 함께 있어야 한다. 예수님은 먼저 함께 있으려고 12제자를 부르셨다. 진정한 배움은 함께 살면서 배우는 것이다. 예수님을 만나기 전의 예수님의 12제자들은 별 볼일 없는 사람들이었다. 그러나 예수님과 함께 사는 동안 예수님의 가르치심을 통해 예수님을 닮아 있었다. 예수님으로 인해 그들의 인품과 능력의 크기가 달라졌다. 인격적 교제의 대상으로서 제자들을 부르시고 함께 하셨다. 우리를 부르신 중요한 목적 중에 하나가 함께 있고 싶으셔서 이다.
[고전1:9]“너희를 불러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우리 주로 더불어 교제케 하시는 하나님은 미쁘시도다”
배움에는 모델이 중요하다. 루즈벨트 대통령은 39살에 소아마비를 앓게 되었다. 생의 깊은 절망의 순간에 그는 헬렌켈러를 생각하며 자신의 좌절을 뛰어 넘고 일어서서 미국 역사상 전무후무한 3선 대통령이 되었다.
슈바이쳐는 “자녀의 교육에 무엇이 중요한가” 라는 질문에 그는 “첫째도 본보기, 둘째도 본보기, 셋째도 본보기다” 라고 했다.
예수님은 우리의 참 모델이 되신다. 그래서 우리가 예수님을 목표로 바라봐야 한다고 성경은 말씀하신다. [히12:2]“믿음의 주요 온전케 하시는 예수를 바라보자”
어떻게 예수님과 같이 있을 수 있는가? 어떻게 주님과 교제할 수 있는가? 말씀과 기도를 통해서 주님과 교제하며 주님을 만난다. 성경을 펼칠 때 주님이 내게 음성으로 들려주신다. 나의 마음을 기도로 올려드린다. 이것이 주님과의 교제이다.
누가 주님을 닮을 수 있는가? 주님과 함께 있는 시간이 길었던 사람이다. 말씀과 기도로 주님과의 교제의 시간이 많은 사람이 주님을 닮는다.
Ⅳ. 전도도 하며 귀신을 쫒아내게 하기 위해서 제자를 부르셨다.
14-15절“전도도 하며 귀신을 쫒는 권세도 있게 하려하심이러라”
전도와 귀신을 쫒는 일은 불과분의 관계에 있다. 전도하는 일은 하나님 나라가 확장되는 일이다. 빛이신 하나님이 임하실 때 어둠의 세력이 물러나고 빛의 세계가 임하는 것이다. 전도는 귀신의 세력을 제어하는 일이다. 그러므로 전도는 단순한 이론 전달이 아니라 생명을 건져내는 일이다. 사탄의 세력 하에 있는 죽은 영혼을 살려내는 일이기에 영적인 전쟁을 치루어야 한다.
사도행전에서 바울을 부르신 이유를 이렇게 말씀하시고 계신다.
[행26:17-18]“이스라엘과 이방인들에게서 내가 너를 구원하여 저희에게 보내어 그 눈을 뜨게 하여 우두움에서 빛으로 사단의 권세에서 하나님께로 돌아가게 하고 죄 사함과 나를 믿어 거룩케 된 무리 가운데서 기업을 얻게 하리라 하더이다”
사탄은 사람을 죽이고 멸망시키기 위해서 왔다. 그러나 주님은 우리에게 생명을 주시고 더 풍성히 주시려고 오셨다. 그러므로 성도의 삶은 밝고 풍성해야 한다. 우리는 호구지책의 삶을 위해 있지 않다. 영육 간에 풍성한 삶이 있어야 한다.
많은 영혼들이 악한 영들에게 짓눌려 있다. 성도의 사명은 이러한 귀신에 눌려있는 영혼들을 치유하고 회복하는 일이다. 우리는 그들을 예수님의 능력으로 치유하고 회복시키는 사명을 받았다. 이것이 우리의 제사장으로서의 임무이다. 그래서 만나는 사람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그들의 아픔을 치유하고 그들에게 영적인 해방을 선포하여야 한다.
예수님은 우리를 위해 죽어주심으로 많은 제자들을 세우셨고 하나님나라를 이 땅에 건설하셨다. 마찬가지로 예수님의 뒤를 따르는 많은 제자들이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목숨을 버리는 희생을 감수했다. 우리 역시 이 사명을 감당하려고 할 때 많은 희생이 있다고 말씀하신다. 그러나 우리의 희생에는 반드시 하나님의 보상이 있다.
[마19:29]“또 내 이름을 위하여 집이나 형제나 자매나 부모나 자식이나 전토를 버린 자마다 여러 배를 받고 또 영생을 상속하리라"
그러므로 이 영광스런 길에 부르심을 받은 우리는 제자로서 훈련받는 일에 힘쓰도록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