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혜나눔

내적치유 소감문 ( 윤순영 )

작성자 내적치유 날짜2006.12.18 조회수2487

난 최근 직업을 갖게 되면서 많은 부분에서 생활 패턴이 변했고, 그 중 가장 고민에 쌓이게 하는것 중의 하나가 아이와의 관계였다. 아이는 오해 6살이 되었으니 이것저것 자신의 요구가 많아지고 그만큼 자신의 생각이 생기기 시작했다. 때로는 자신의 입장에서 부모인 나를 평가하기도 했다. 그것은 아이라고 무시할 수 없을 정도 정확하기도 했다. 이런 아이에게는 부모와의 애착 관계가 중요하다고 하는데 난 도무지 아이와의 시간이 그렇게 쉽지가 않았다 애착 관계는 시간을 미루어서 해결되는 부분이 아닌 것을 알기 때문에 난 항상 일과 아이와의 관계에서 갈등이 생기곤 했다. 그렇지만 대부분은 일중심이었고 아이는 그저 삭막하게 혼자서 TV에 열중하거나 심심둥이가 된 채 엄마만 기다리고 있었다.




한편 나는 나의 성격에 대한 생각을 많이 해보는 시기이기도 했다. 새로운 일을 하게 되면서 도전받는 일이 많아지면서 나는 왜 저 사람처럼 되지 않을까 왜 더 완벽해질 수 없을까등의 의문을 갖게 되면서 마음 한켠엔 옛날의 어린 시절로 돌아가곤 했다. 왜냐하면 엄마의 양육패턴과 연결지어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엄마가 내가 무엇인가 요구를 할 때 잘 들어주었으면 내가 아마 이렇게 소심하진 않았을거야. 내가 하고 싶었던 걸스카웃도 시켜 주고 피아노도 시켜 주었으면 심리적 욕구가 좌절되지 않았을 것이고 또한 새로운 경험으로 인해 자신감이 많이 생겼을 거야 이런 생각에 휩쌓이곤 했다. 부모닝을 원망도 해 보았지만 이것은 그 당시 경제력의 문제였고, 항상 그 상황 안에서 최선을 다하는 부모님이라는 것을 알기에 함부로 그렇게 원망만 늘여 놓을 수만도 없었다.




하지만 내가 느낀 것처럼 내 아이가 나를 원망할 것을 생각하니 이것이 다시 되물림 되는것이 아닌가? 아찔했다. 벌써 아이의 원망의 눈길이 읽혀지는것 같았다. 멋진 유물이나 경제적인 부는 아니더라도 원망의 유산만큼은 되물려 주고 싶지 않았다. 물론 모든 인간이 완벽할 수 없고 아이는 부모 나름의 양육패턴에 적응하며 자신의 살 길을 마련한다고는 하지만 애정이 부족한 아이로 자라게 하고 싶지는 않았다. 아이의 심리적 원동력이 누구도 아닌 엄마이기 때문이다. 며칠 전 아이의 그릇은 오직 유일하게 가정에서만 자라게 할 수 있고 학교에서는 지식을 교회에서는 더러워진 그릇에 새롭고 깨끗한 것들로 가득하게 한다는 성경 말씀이 있다고 들었을 때는 ‘아하,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까지 가정의 소중함을 말씀해 주고 계셨구나’ 하는 생각이 들면서 가슴 깊이 되새겨 보기도 했다. 그만큼 아이들에게 가정은, 부모는 중요한 애정 공급원인 것이다.




늦깍이 교사로 생활하면서 항상 부족함을 느낀다. 이제 2년차를 막 벗어난 이유이기도 하겠지만 학급을 맡고 나면서 내가 책임져야 하는 아이들이 생겼기 때문이다. 아이들과의 만남은 그렇게 쉽지 만은 않았다. 아이들의 입장에서 생각해 주고 말하는 것은 내가 갑자기 10살로 돌아가야 하는데 , 되짚어 10살로 거슬러 생각해 보더라도 요즘 아이들과 우리 아이들과는 같지 않기 때문이다. 이런 어려운 점을 해소시켜 준 부분은 나를 3,4학년의 아이들을 키우고 계신 분들과 함께 이야기 나누게 하신 점이다. 그것도 내가 맡고 있는 학년을 ................. 사실 처음에는 내적 치유 멥버들의 나이대가 고르지 않다는 것이 많이 부담스럽기도 했고 얼만큼의 공감을 할 수 있을까 의문이 가기도 했다. 하지만 결코 그런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일을 하면서 잘 보지 못하는 상황을 같이 이야기를 나누는 멤버들로 인해 알게 하신 것이다. 이럴 때 하나님께서는 내가 부족하다고 느끼는 부분을 정해놓고 기다리고 계셨다고................. 그것을 다 아시고 준비해 주셨다.




어느덧 내적 치유 프로그램도 종강에 이르렀다. 가끔은 이런 저런 이유로 빠지기도 했지만 이야기를 나누고 돌아간 날에는 육아에 대한 이야기도 많이 나누게 되었고 나의 둥글지 못한 부분이 어디인지 알게 되기도 했다. 아이는 내가 낳은 것 뿐이지 나는 하나님의 대행자로서의 역할을 하고 있다는 메시지를 들었을 때는 아이에게 그저 소홀할 수만도 없었다. 그래서 직장에서의 일을 집에까지 가지고 와서 아이와 실랑이 벌이며 하던 것을 조금씩 조금씩 조윻하고 있다. 아이가 원할 때 기꺼이 옆에 있어줘야 하는 사람은 바로 엄마이기 때문이고 하나님의 대해자로서의 역할에 충실한 사람이 되기 위함이다. 또한 교사로서의 역할에 대한 소명감을 한번 더 생각하기도 했다. 부족하기 그지 없는 사람을 교사로 세우신 이유를 하나님 앞에서 다시 한번 묻기도 한다. 또한 아이들과의 주고 받는 언어적 여향력을 크게 설파하시는 목사님을 만나게 하심이 교사로서의 소명감을 드높이는 또 하나의 하나님의 방편임을 믿으며 학교 식사 시간 전에 항상 이렇게 기도한다.


‘나의 얘기를 하기 전에 아이들의 이야기를 먼저 듣게 하시고, 생명의 부양자로서 아이들에게 영향력을 끼칠 수 있는 사람으로 설수 있도록 성령님께서 임재하옵소서.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