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49장 QT
창세기 49장은 야곱의 유언과 죽음에 관한 내용이다.
3,4절에 르우벤은 장자였지만 아곱의 첩인 빌하와 동침함으로 하나님과 아버지에게 죄를 지었다. 그로인해 장자로서의 특권을 상실했다. 뿐만 아니라 르우벤 지파에서는 지도자가 배출되지 않았다.
10절에 ‘실로가 오시기까지’라는 말씀이 있는데 실로는 화평을 가져오는 자란 뜻으로 일차적으로는 다윗를, 궁극적으로는 그리스도를 가리킨다. 따라서 이 말은 메시아에 관한 예언으로 보아야하며 메시아에 관한 약속은 창세기 3장 15절에서 소개되었다. 아브라함 때 와서는 구체적으로 장차 태어날 “씨”로 말미암아 땅의 모든 족속이 복을 받게 될 것이라는 하나님의 말씀이 주어지고 있다.
11-12절에는 같은 말이 계속 두 번 반복된다. 나귀를 맨다는 말, 옷을 포도주에 빤다는 말, 그리고 그 포도주로 인해 눈이 볽고 이는 우유로 인해 희게 되었다. 이는 예수님을 나타낸다. 마태복음 21장 2절 “이르시되 너희 맞은편 마을로 가라 곧 매인 나귀와 나귀 새끼가 함께 있는 것을 보리니 풀어 내게로 끌고 오너라” 나귀를 타고 예루살렘으로 입성하신 예수님을 뜻한다. 포도주는 예수님의 피를 의미한다. 옷은 더럽혀진 사람을 의미한다.
17절 말씀에 단과 그의 후손을 뱀으로 묘사한 이면에는 그들이 이스라엘 민족에게 위험한 존재로 나타날 것에 대한 암시가 깔려 있다고도 볼 수 있다.
그들은 사사 시대에 제일 먼저 우상을 숭배했다. 그리고 분열 왕국 시대에은 여로보암이 ‘단’을 금송아지로 숭배의 본거지로 삼았다. 게다가 요한계시록 7:4-8절의 자파 목록에 단 지파가 빠져 있다. 이와 같은 사실들 때문에 일부 교부들은 적그리스도가 단 지파에서 출현할 것이라 믿기도 하였다.
22절 “요셉은 무성한 가지 곧 샘 곁의 무성한 가지라 그 가지가 담을 넘었도다”
요셉에게 두 아들 므낫세와 에브라임은 좀 특별하다. 12지파라 불리면서 요셉지파 안에 또 두 지파가 이 므낫세와 에브라임이다. 번창할 수 있었던 것은 샘 곁에 있었기 때문이다. 요한복음 15장 5절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니 저가 내 안에 내가 저 안에 있으면 이 사람은 과실을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이라” 하나님 곁, 안에 거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할 수 없다.
유다는 하나님앞에 축복을 많이 받았습니다. 베냐민을 위해 목숨을 기꺼이 던졌기에 리더의 모습이다.
정직하게 젊은 시절 잘못을 아버지에게 돌아갔을 때 회개하였고 바르게 살려고 한 모습들... 이러한 것들이 그의 자녀대에도 이어지지 않았을까 생각이 듭니다.
하나님은 전심으로 회개하고 돌아왔을 때 옛 것은 생각지 아니하시고 새로운 삶을 살 때 힘을 주신다.
유다를 축복하신 하나님, 그 외에도 스불론과 단과 갓과 아셀과 납달리 모두 축복하신다. 유다처럼, 주님께로 온저히 돌이키는 삶 그래서 나의 가정에 나의 자녀대에 온전히 그 축복이 임하고 하나님이 함께하시는 그 축복이 흘러가는 부모가 되길 소망합니다.
한 사람 한 사람의 생명을 귀히 보시고 야곱의 모든 아들응 축복하셨듯이 나를 축복하시고 나의 가정에 그리고 우리 교회 교인 한 명, 한 명마다 가진 축복을 성경말씀을 동일하게 나에게 드리는 말씀으로 받으며 용기를 내고 가기 원합니다. 나의 모든 것을 보고 듣고 알고 계시는 하나님, 나의 모든 신음을 듣고 계신 하나님
그 하나님께 더 반능하며, 하나님과 교제하는 삶을 살게 하여 주십옵소서
야곱을 축복하신 하나님이 오늘 나의 삶과 이땅의 하나님의 자녀에게 축복해 주시길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