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T 소감문
2진 신명애 지파 맹선경 권사
1. 본문말씀 - 누가복음 10:25 ~ 10:42
2. 단락별 주요 내용
- 25 ~ 37 : 이웃사랑(자비를 베푼 사마리아 사람)
- 38 ~ 42 : 하나님사랑(마르다와 마리아)
3. 중심 요절 - 10:27
- 내 마음을 다하며 목숨을 다하며 힘을 다하며 뜻을 다하여 주 너희 하나님을 사랑하고 또한 네 이웃을 네 자신 같이 사랑하라
4. 소감 및 결단
남편은 우리 부부만큼 사이가 좋고 대화가 잘 되는 부부도 없다고 생각하고 있지만 나는 결코 소통이 안 되는 불통 남편과 살고 있다.
결혼한 지 30년이 되었다. 생일하면 떠오르는 단어. “눈물”이다. 남편과 아들은 내 생일 날짜를 기억 안 하고 있다. 어릴 적 언니, 오빠, 동생 생일이면 할머니도 오시고 생일 선물도 나누며 생일 잔치를 열어 주었는데 내 생일 날은 일부러 김장하는 날로 정한 것 같이 거의 김장을 하였다. 나만 미워하고 나만 안 챙겨주었다. 그래서 울었다.
가게에서 바쁘거나 식사준비가 안 된 날은 시켜 먹기도 하는데 생일이라 말했는데 밥 남은거 있으면 라면이나 먹자고 하였다. 그래서 울었다. 출근하면서 생일이라 말했는데 스파게티 집 새로 생겼다고 점심 사달라는 여직원과 12시도 되기 전에 밥을 먹고 들어왔다. 그래서 또 울었다.
생일이면 울고불고 하니까 드디어 케익과 꽃다발을 사왔다. 그런데 차 트렁크에 놓고 들어왔다. 그래서 또 울었다. 날 사랑해서가 아니라 내가 필요해서 결혼한 것 같았다. 생일 때가 되면 상처와 사연 속에 늘 마음이 상하였다.
달력에 매직으로 별 다섯 축 생일 맹선경이라 써놔도 보고 여자들 일 년에 두 번, 결혼기념일, 생일만 잘 챙겨주면 만사형통이라고 이해도 구해보고, 생일 때면 맘 상해하는 줄 알면서 어쩜 그리 무심하냐고, 1년 12달 똑같은 날 사는데 가끔 외식도 하는데 생일이라 제목 붙여 밥 한 끼 먹어주면 되는데 그것도 못 해주냐 사정도 해보았다.
가을이 들어서면 남편은 긴장을 한다. 봄이 오기 전, 어느 날 중에 들어있을 부인 생일 때문에. 가족 간에 누릴 수 있는 기본적인 행복인데 그런 것 조차 마음을 열 수 없는 남편이 참 안타깝다.
그럼에도 난 행복했다.
하나님 아버지가 계셨고, 교회가 있어서 가족들에게 인정받지 못하여도 난 보배롭고 존귀하고 가치있고 사랑받을 만한 하나님의 자녀이기에 행복할 수 있었다.
믿음이 없는 남편을 통해 벌어들이는 수입이 하나님의 은혜라는 걸 깨닫지 못했다. 남편은 자기가 계획하고 맘먹는 대로 승승장구 하자 세상에 무서울 것이 없었다. 자기의 판단이 절대적이었다. 평생 돈 걱정하고 살 줄 꿈에도 생각 못했다. 상가에서 받는 넉넉한 돈으로 노후가 보장된 편안한 삶을 조금도 의심하지 않았다. 투자한 사업의 실패, 부동산 가격 하락, 팔아서 정리하려고 해도 매매되지 않고 불어나는 이자.
남편을 부르심이라 생각했다. 나의 사랑과 헌신과 꼬시라이제이션으로 아버지학교, 샘파, 인카운트까지 보냈지만 30년 동안 절대 부인 생일 기억 안하는 남편은 제자리를 꿋꿋이 지키고 있다. 변화되지 않는 남편에게 화가 나고 억울했다. 그가 변화되지 않으면 나의 삶은?
내 인생이 이제까지 참고 인내해 온 내 삶이 의미가 없어졌다. 나름 내가 너그러울 수 있었던 건 돈 잘 벌어온 남편과, 때가 되면 믿음이 성장할 것이라는 기대였다.
전면전을 벌였다. 전화 오면 내 할 말만 하고 먼저 끊기. 내가 대답하고 싶은 말만 하고 무시하기. 간다온다 말없이 나가고 들어오기. 생일 안 차려 주기 등등...
내가 이겼다. 그런데 내가 죽어가고 있다. 그도 죽어가고 있다. 승리했는데도 승리의 기쁨이 없었다. 그래서 기도했다. 기도하면서 자기부인 주장했던 것 회개하며 심정정리를 했는데도 얼굴을 딱 보면 회복이 안 되었다. 일상적인 생활은 똑같이 하였지만 갈등 속에서 내가 살기 위해 내 마음에서 남편을 버렸다. 네 팔자대로 살라고, 난 할 만큼 했다고, 더 이상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없다고, 이제까지 의미를 두었던 것이 무의미해졌다.
그래도 기도했다. 어느 순간 기도가 십자가에서 시작해서 십자가로 돌아왔다는 생각이 들었다. 돌아보니 불안, 근심, 걱정이 편안에서 평안으로, 평화를 바라보고 있다. 기도하면서 내가 살아나니 버린 남편이 보였다 강도들이 그 옷을 벗기고 때려 거의 죽인 상태로 버림받은 남편.
난 제사장 레위인이 되어 지나가고 있었다.
어쩜 내가 가야 할 땅 끝은 남편일지 모르는데, 한 사람 뒤에는 나라가 있다는데, 신구약 어떤 약에도 효과가 없는 불치병의 환자를 맡은 나는 명의? 이 땅에서 살 동안만 남편이라는데 전도대상자로 분류해보았다.
죽기로 했다. 깨어있으면 영화가 상영되듯 내 인생의 대하드라마가 펼쳐진다. 그래서 죽어지지가 않고 장면이 바뀔 때마다 묻어놓았던 분노가 튀어나온다. 자연발상적으로 묵상되는 남편과 처해진 환경을 지워내기 위해 출애굽기, 요한계시록, 여호수아, 복음 12강 말씀 암송 무조건 외웠다. 남편의 영화, 현실의 영화는 비극으로 끝나는데 말씀의 영화는 희극으로 끝난다.
이제까지의 사건들이 내 인생에서 일어난 일이 아니라 하나님이 배열하신 일이라면 하나님이 나에게 기대하시는 것이 무엇일까, 어쩜 내 생각까지 내려놓고 성령의 인도 따라 기도하길 원하셨던 건 아닐까.
언젠가 목사님께서 블랙홀을 뚫는 기도자가 필요하다고 하셨다. 단 한사람이라도 가능하다고 하였다. 어떤 책에서 사단이 12시부터 활동을 시작한다고 하였다. 블랙홀을 뚫기 위해 맨 앞자리에서 본부를 지키며 집중해서 큰 소리로 기도하였다. 사단이 우리 교회를 틈타지 못하도록 우리 교회는 내가 지키기로 하였다. 0시 기도를 하였다. 성경적으로 맞는 말인지, 올바른 방법인지는 몰라도 사명으로 생각하고 기도했다. 목사님께서 한 해를 돌아보니 성도들의 기도가 뒷받침되었다 하셨는데, 그 중에 한 사람 나도 있다.
숨쉬기 위해, 살아내기 위해, 어찌할 방법이 없어서 기도했을 뿐인데 나도 모르게 목자를 돕는
드림팀의 일원이 되어져있었다.
목사님의 말씀에 비추어보면 승리의 삶을 살고 있는 것 같은데 정신을 똑바로 차리고 보면 현 실을 도피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의문이 생긴다. 내 삶이란 게 없다. 내 생각조차 없다. 때론 그런 삶이 나답지 않아 스스로 자폭해버리고 넘어지고 깨어지지만 한 발 물러서면 두 발 나아갈 것이다.
몇 가지만 하든지 혹은 한가지만이라도 족하리라. 마리아는 좋은 편을 택하였느니 빼앗기지 아 니하리라. 많은 댓가를 치르고 만들어진 오늘의 나 기도의 자리 빼앗기지 않고 지켜나갈 것이다.
그 작은 자가 천 명을 이루겠고, 그 약한 자가 강국을 이룰 것이라.
때가 되면 나 여호와가 속히 이루리라. 나를 통해서...
12월 6일은 내 생일이었다. 또 울었다. 그런데 드디어 음력 10월 23일이 내 생일인 것을 남 편이 인지하였고, 살아있는 동안 엄마의 생일은 꼭 챙기겠다는 아들의 약속을 받았다. 30년 만에..
5. 기도
- 그럼에도 불구하고 행복한 삶을 살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