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T

2012년3월28일수요오후설진용안수집사QT

작성자 관리자 날짜2012.03.29 조회수2933




< 엘리사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 (왕하 6장 QT)


설진용 안수집사


1. 본문 주요 내용


(:1-7) 물속에 빠뜨린 쇠도끼를 엘리사가 나뭇가지를 던져 떠오르게 했다.


(:8-13) 아람의 공격이 다 막히자 아람왕이 엘리사 때문임을 알았다.


(:14-17) 아람 군대가 에워쌌으나 불말과 불병거가 엘리사를 두르고 있었다.


(:18-23) 엘리사가 아람군대의 눈을 어둡게 해 사마리아로 이끌어 먹여 보냈다.


(:24-33) 아람이 사마리아를 에워싸 굶주리자 아이를 삶아먹었고, 왕이 엘리사를 찾아 죽이려 사람을 보냈다.


⇒ 엘리사가 물에 빠진 도끼를 나뭇가지로 떠오르게 하고 아람왕이 진 친 것을 이스라엘 왕에게 알려 경계하도록 하는 능력을 행하였다. 아람왕이 엘리사를 잡으려고 군대를 에워쌌으나 엘리사는 그들을 사마리아로 이끌고 가서 음식을 먹여 보내게 했다. 후에 아람왕이 사마리아를 에워싸 먹을 것이 없어서 크게 굶주리자 이스라엘 왕이 엘리사를 죽이려 사람을 보냈다.



2. 본문 묵상


1) 엘리사에게는 엘리야의 영감이 갑절이나 임하였다. 그렇다보니 배우고자 하는 선지자 생도들이 많아졌다. 엘리야 때부터 있던 처소가 비좁았다. 새로운 처소를 세워야 했다. 엘리야를 추종한 엘리사가 스승 엘리야에게 구한 갑절의 영감이 과연 엘리사에게 임한 것(왕하2:9-10)이다.


엘리사의 제자들은 엘리사에게 새로운 처소를 세우자고 하였다. 교회가 부흥하여 예배드릴 공간이 부족하자 성도들이 새로운 성전을 건축하자며 담임목사에게 건의하는 격이다. 엘리사에게 갑절의 영감이 임하는 것을 보며 분위기가 고무되어 제자들이 새로운 영역으로 활동을 넓혀가려는 적극적인 자세를 나타낸 것이다.


이러한 성도들의 모습이 바람직하다. 앞장서서 뭔가 더 열심히 하려 하는 성도들이 많이 일어나고, 교회의 리더는 그 방향을 조정해준다. 그 정도로 활기찬 교회가 좋다. 지시하여 끌고 가는 모습보다 이런 적극적이고 활발한 분위기가 있을 때 뭔가 살아있는 느낌이 난다.


2) 집을 지을 나무를 베다 도끼를 물에 떨어뜨린 사람이 있었다. 빌려온 도끼를 떨어뜨렸다며 발을 구른다. 그렇게 간절히 구하는 모습이 엘리사에게 전해졌다. 이에 엘리사는 나뭇가지를 던져 쇠도끼를 떠오르게 한다.


엘리사는 나뭇가지로 물속을 저어서 도끼가 걸려 올라오게 한 것이 아니다. 도끼가 물에 떠올라 나뭇가지 위로 올라오게 했다. 하나님께서 역사하시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실제적이다. 성경에 기록된 하나님의 놀라운 역사하심이 옛이야기 책에나 나오는 기적이 아니다. 지금도 동일하게 하나님은 역사하신다. 예나 오늘이나 그것을 믿지 못하는 사람이 있을 뿐이다. 또는 관념적으로만 그런가보다 하고 마는 사람들이 있다. 안타까운 일이다.


3) 아람과 이스라엘 사이에 전쟁이 있었다. 아람은 다윗에게 대항했다가 정복되어 조공을 바쳐왔던 나라이다. 이스라엘이 분열되고 약해지자 이제는 계속 이스라엘을 노리고 있다. 믿음의 자녀가 하나님 앞에 바로 서지 못하면 악한 자들의 공격에 시달리게 되어 있다.


아람이 이스라엘을 공격하려고 몰래 진을 쳤다. 하지만 이스라엘 왕의 대비가 있어서 번번이 성공하지 못하였다. 아람 왕은 이스라엘과 내통한 자가 있는 줄 알았다. 실상 하나님의 사람 엘리사가 알려주는 것이었다. 하나님의 영에 충만한 사람은 악한 자들의 공격을 알고 대비하여 피해를 입지 않는다.


4) 이에 아람 왕은 군대를 보내어 엘리사가 있는 도단 성읍을 에워싼다. 엘리사의 사환이 이를 알고 엘리사에게 다급하게 외친다. 엘리사는 두려워말라고 한다. 그들과 함께 한 자가 잡으려고 둘러싼 아람 군대보다 많다고 한다. 엘리사의 기도로 눈이 열리게 된 사환은 놀라운 광경을 본다. 불말과 불병거가 그 산에 가득하여 엘리사를 둘러있는 것이다.


엘리사 뿐 아니다. 믿음이 충만한 하나님의 사람들에게는 늘 하나님의 보호하심의 손길이 있다. 악한 자가 만지지도 못하도록 지켜(요일5:18)주신다. 하나님의 손길이나 능력에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니다. 우리의 믿음이 부족한 것이 문제이다.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한 일이 없다(눅9:23)고 하셨다. 전적으로 믿고 신뢰하는 믿음이 있으면 된다.


5) 아람 사람들이 가까이 오자 엘리사는 군대의 눈이 어둡게 해주시기를 하나님께 기도한다. 그리고 눈이 어두워진 그들을 사마리아로 끌고 간다. 사마리아에 들어가서 그들의 눈이 밝아지기를 기도하자 그들은 자기들이 사마리아 가운데에 있는 것을 알았다.


이런 일이 가능할까? 가능하다. 지금도 일어난다. 우리의 믿음이 겨자씨만큼만 있어도 산이 들려 바다에 던져지라 하여도 된다(마21:21)고 주님은 말씀하셨다. 이러한 믿음으로 무장하면 어떤 문제든 두려울 것이 없다. 해결되지 못할 일이 없다.


6) 사마리아에 있는 아람 군대는 이미 이스라엘 군사들에게 포위된 상태이다. 이스라엘 왕은 엘리사에게 묻는다. “내 아버지여, 내가 치리이까?” 한다. 여호람 왕은 놀라운 방법을 통해 아람 군대를 이스라엘의 포위망 안으로 끌고 들어온 엘리사가 고맙기도 하고 놀랍기도 하여 엘리사를 아버지라 부른다. 그리고 시킨 대로 하겠다는 자세를 보인다.


엘리사는 그들을 칼과 활로 치기보다 떡과 물을 주어 먹고 마시게 한다. 자신을 죽이려고 왔던 군대였다. 그들을 죽인다 한들 잘못될 것이 없다. 처참하게 죽임으로써 아람 왕의 간담을 서늘하게 해주고 싶을 수 있다. 하지만 그렇게 하지 않았다. 오히려 잘 먹여 돌려보내니, 아람왕은 이제 더 이상 이스라엘을 공격하려고 진을 치지 않게 되었다.


엘리사의 넓은 시야를 본다. 작은 일에 흥분하며 목숨 걸 듯 덤비는 뭇 사람들의 모습과 비교된다. 능력을 받아 행하면서도 너그럽지 못한 사역자들이 더러 있다. 대머리라고 놀리는 아이들을 저주할 때와는 다른 성숙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신앙이 성장하고 은사를 받은 사람은 넓은 가슴을 가져야 한다. 인격적으로 성장해가야 한다.


7) 아람 왕 벤하닷은 그 후에 마음이 변했다. 이제 전면전을 펼치고 나왔다. 급기야 사마리아를 에워싸게 되었다. 고립된 사마리아성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굶주렸다. 나귀 머리 하나에 은 팔십 세겔이나 했고, 비둘기 똥 1/4갑에 은 다섯 세겔이나 갔다. 새똥 속에 미처 소화되지 못한 곡식을 가려내 씻어먹기 위해 그것마저 은 5세겔에 거래를 했던 모양이다. 우리나라 사람들도 흉년에 부잣집 개똥에서 보리를 가려내 씻어먹었다고 한다.


먹을 것이 없어서 나귀를 먹기까지 했다. 나귀는 부정한 동물(레11:4)이기 때문에 이스라엘 사람들은 먹지 않았다. 그중에도 머리는 먹을 것이 없다. 1세겔(Shekel)이 일반 노동자의 4일 품삯이라고 한다. 다윗 왕이 아라우나의 타작마당과 소를 은 오십 세겔로 샀던 것(삼하24:24)과 비교해보면 식량부족이 얼마나 심했는지를 알 수 있다.


거기서 그친 것이 아니었다. 굶주림이 심해지자 급기야 아들을 잡아먹는 사람들이 생겨났다. 악한 자들에게 둘러싸인 처참한 사마리아 사람들의 모습이다. 하나님을 떠나 송아지를 만들어 숭배하던 그들이 당하는 처참한 모습이다.


8) 여호람 왕은 옷을 찢고 굵은 베를 입었다. 그리고 기도했으면 좋았겠지만, 오히려 엘리사를 잡아 죽이려 한다. 사마리아 성으로 군대를 끌고 왔을 때 죽이자고 한 자신의 의견대로 했으면 아람 왕이 다시 공격해오지 않았을 것이라며 엘리사에게 이를 갈고 있다. 아울러 그 재앙이 여호와께로부터 나왔으니 여호와를 의지하고 기다릴 것 없이 하나님의 사람인 엘리야를 처단하겠다고 하고 있다.


악한 자들은 그들의 죄로 인해 어려움에 닥치면 오히려 하나님을 원망하고 더 악한 길로 간다. 아람 군대를 사마리아로 끌고 왔을 때는 ‘내 아버지여’ 라고 하며 경의를 표했던 그였다. 그러나 이제는 엘리사를 잡아 죽이려 한다. 어려움을 해결해주지 못하는 데에 대한 원망에 눈이 멀어 있는 어리석은 자의 모습이다. 목회자나 평신도나 사역을 하다보면 이렇게 손바닥을 뒤집듯 배신하는 사람을 만날 수 있다. 그러니 하나님만 바라보고 사역을 해야 하리라.



3. 소감


엘리사는 엘리야에게 임한 성령의 능력이 갑절이나 자기에게 임하기를 구하였다. 그리고 하나님과 스승 엘리야를 붙잡았다. 과연 그대로 엘리사는 엘리야가 행한 그 이상의 기적을 행하였다. 세상을 만드신 하나님은 지금도 동일하게 능력을 베푸신다. 그러나 사람들은 믿지 못한다.


하나님을 믿는 믿음을 관념적인 것으로 국한해버리는 사람들이 있다. 약한 인간이 절대자를 의지하려는 몸부림 정도로 치부해버리는 사람들도 있다. 많은 기독교인들이 신앙을 그저 하나님을 믿고 따르는 것 정도로 여기며 산다. 말씀 중심의 신앙을 얘기하면서 자칫 구원 받은 것에 만족하며 하나님의 능력과 복음의 혜택을 누리지 못하고 살아가는 신앙인들이 많이 있다.


그러나 하나님은 살아계시고 어제나 오늘이나 동일하게 역사하신다. 그렇게 세상을 이끌어 가신다. 나뭇가지로 도끼를 떠오르게 하고 주님을 의지하는 자를 불말과 불병거로 지켜주시는 역사가 엘리야나 엘리사에게만 임하는 것이 아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계실 때와 초대교회에만 일어난 기적인 것이 아니다. 오늘날도 우리 주변에서 얼마든지 일어난다. 주님은 믿음의 사람들을 통해서 그런 놀라운 일을 행하신다.


전적으로 주님을 신뢰하는 믿음을 갖자. ‘믿는 사람 중에는 그런 능력을 행하는 사람이 있겠지.’ 가 아니다. 나를 통해서도 주님은 놀라운 일을 행하신다. 믿음만 있으면 된다. 믿음이 없어서 그런 기도 응답을 받지 못한다. 그러면서 ‘하나님의 뜻이 아니어서’ 라는 핑계를 댄다. 그래서는 안 된다. 이루어지지 않으면 나의 믿음이 부족한 것을 통회하며 부르짖어야 할 일이다.


주님은 나의 기도를 참 많이도 들어주셨다. 쌍치 가마골을 넘어가면서 눈보라를 그치게 해달라는 기도와 선포를 주님은 들어주셨다. 몇 년 전 가을 샘파 때 주말마다 비가 와서 게스트들이 야외에 나가지 않고 샘파에 많이 참석하게 해달라는 기도를 했었다. 함께 있던 사람들에게 그렇게 해보자는 얘기도 했다. 그 기도에도 주님은 응답하셨다. 그때 주말마다 비가 온 것이 뉴스에 나오기도 했다.


주님께서 이렇게 놀랍도록 나의 기도를 들어주시고 응답해주시건만 내 속에 불신앙의 독버섯이 피어날 때가 있다. 불신앙의 싹을 잘라내 버리자. 전적으로 주님을 신뢰하며 믿고 나가자. 그렇게 선포하며 해나가자. 여호람 왕처럼 바람에 밀려가는 안개 같은 신앙인(벧후2:17)이 되지 않아야 한다.


상황이 좋을 때는 믿음이 있는 것 같다가 어려움이 닥치면 넘어지거나 불신앙의 악한 모습이 드러나는 것이 보통 사람들의 모습이다. 뭔가 상황이 좋으면 믿음이 좋은 것 같고 교회에 죽도록 충성할 것 같다가, 문제가 발생하면 배신을 하는 사람들, 그런 비 없는 마른 구름 같은 신앙인(잠25:14)이 되지 않도록 하자. 주님께서는 심지가 견고한 자를 평강하고 평강하도록 지키신다(사26:3)고 하셨다. 신의(信義)가 있어야 한다. 주님께 죽도록 충성(계2:10)하는 신앙의 절개를 지켜야 한다.



4. 적용


라마나욧 성전의 이름에 맞게 더 놀라운 성령의 역사가 일어나야 한다. 암 환자가 다 낫고 휠체어 탄자가 일어나 걷는 역사가 일어나야 한다. 이를 위해 교회에서 계속 기도하고 있다. 교회에서, 목사님을 통해 그런 놀라운 일이 일어나야 한다. 그리고 나를 통해서도 앉은뱅이가 일어나고 눈먼 자가 눈을 뜨고 죽은 자가 살아나는 기적이 일어나야 한다. 믿는 자에게는 능히 하지 못할 일이 없느니라(막9:23)고 하셨기 때문이다.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을 거라며 성경 구절을 그렇게 찾아 붙잡고 있는 사람들도 있다. 그것이 그들의 믿음이다. 어떻게 말씀을 붙잡고 어떤 믿음을 가지고 나아가느냐에 따라 그 삶이 달라진다.


주님께서 나를 통해 놀라운 일을 행하시도록 기도해가고 있다. 더 깊이 기도해가자. 엘리야에게 임한 성령의 능력이 목사님에게 임하고, 엘리사에게 임한 갑절의 영감이 내게 임하기까지 믿음으로 나아가자. 길갈에서 벧엘로, 벧엘에서 여리고로, 요단으로 잠잠히 순종하며 따르자.


주님! 하나님께서 능력을 행하심은 예나 오늘이나 동일하며, 지금도 놀라운 일을 행하시는 것을 믿습니다. 저를 통해 놀라운 일을 행하시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