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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 10:14-19, 23-24, 31-33 “그리스도인의 자유”
1. “우상숭배하는 일을 (피하라)”고 말씀하십니다. 14절
‘형제들아’라는 표현을 넘어 ‘내 사랑하는 자들아’라는 것은 사랑을 가득 담은 하나님의 백성을 향한 표현입니다. 내 사랑하는 자들아 그 자리를 피하라고 말씀하십니다. ‘피하라’(헬/ 퓨케테)는 ‘달아나다’, ‘벗어나다’는 뜻입니다. 우상숭배라는 죄에서 벗어나는 최선의 방법은 그 자리에서 멀리 피하여 벗어나고 달아나는 것입니다. 죄를 짓지 않을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은 그 자리를 피하는 것입니다. 그 자리, 그 공간에 있으면 죄를 짓지 않을 수 없고 죄에 오염되기가 쉬운 것입니다. 너희들은 지각이 있고, 하나님 말씀에 대해서 반응하는 사람들이니 스스로 판단해 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성찬식을 예를 들어 말씀합니다. 우상을 숭배하는 종교의식에 참여하는 것은 그 우상과 연합하는 의미가 있음을 성찬식의 예를 들어 설명합니다. 그리스도의 떡과 포도주를 같이 먹음으로 그리스도와 하나가 되는 예식에 참여하는 것입니다. 축복의 잔을 마심으로 하나님의 은총과 화해와 하나님의 은혜가 부어집니다. 그 자리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하나님의 은총과 화해의 스피릿이 부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상숭배하는 자리도 그 우상이 주는 영향력에 참여하게 되는 것이기에 피하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육신을 따라 난 이스라엘, 즉 혈통적 이스라엘은 화목제와 같은 성찬식에도 참여하고, 우상제단에도 참여하더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진정한 의미의 화목 제사를 드린 영적 이스라엘들은 우상의 제단을 피하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죄에서 벗어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은 그 자리에서 피하는 것임을 강조하는 것입니다(골 3:5).
2. 우상숭배하는 자리를 피하여야 하는 이유는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갖지 못하게 하기 때문입니다. 19-20절
사실 우상은 헛된 존재입니다. 우상은 인간의 운명에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못하는 헛된 존재입니다(행 15:20, 롬 2:22, 고전 8:4). 우상에게 바쳐진 제물도 아무것도 아닙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상숭배하는 것으로 인해 하나님이 아닌 다른 것에 마음을 빼앗기고 허망한 것을 사랑하고 섬기게 된다는 것입니다. 사단은 우상을 통해서 성도들이 하나님을 바라보지 못하게 합니다. 우상숭배하는 자들에게 영향을 받으면 우상을 섬기듯 하나님을 섬기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자기의 소원을 이루기 위해서 제단에 드리지만, 우리는 하나님과 하나님의 백성 삼아 주신 관계 속에서 감사함으로 나아가 예배드리고 예물을 드리는 것입니다.
3. 하나님의 백성의 (자유)에 대해서 말씀합니다. 23절
‘모든 것이 가하다’는 전제는 모든 것이 가능하다는 것인데,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그리스도인의 자유는 모든 것이 가능하지만, 공동체에게 유익이 되지 않거나 해악을 끼치게 된다면 그 자유는 제한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누가 시키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제한해야 하는 것입니다. 자유로운 선택이 자신에게 유익이 되지 않으면,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나 사랑하는 것, 예배하는 것에 방해가 된다면 나의 자유를 제한하라는 것입니다. 멈추라는 것입니다. 즉, 나의 자유가 하나님 사랑, 이웃 사랑에 방해가 된다면 나의 자유를 스스로 제한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백성이 갖는 그리스도인의 자유입니다. 결국 우리는 모든 것을 할 수 있지만 다른 사람의 유익을 먼저 구해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이타적인 삶을 말합니다. 왜냐하면 그리스도인의 자유의 참된 가치는 사랑 안에 있기 때문입니다. 타인의 유익을 구하는 삶은 하나님의 백성으로만 가능합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믿음으로만 가능합니다. 믿음은 안해도 되는 일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하게도 합니다. 그리스도인의 자유의 기준은 하나님의 영광입니다. 타인의 유익을 위해서 나의 권리를 포기한다면 그것은 나의 자유나 권리를 잃어버리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최대한으로 최고의 가치로 나의 자유를 사용하는 것입니다. 내가 사용할 수 있는 자유이지만 내 몸과 같이 사랑해야 하는 이웃의 자유와 권리를 위해서 스스로 내 자유를 제한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복음은 말로만 전해지는 것이 아니라 행함으로 전해지는 것입니다(벧전 4:10-11). 형제의 영합과 공동체의 평안을 위하여 내 자유를 스스로 제한하는 것을 통해서 하나님의 영광이 영원히 드러납니다. 타인을 위해 자유를 제한하는 것은 공동체를 세우기 위해 필요한 원리이고, 그리스도인의 덕을 세우는 방법입니다. 나의 자유가 하나님 사랑, 이웃 사랑에 방해가 되면 나의 자유는 제한 받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의 자유의 기준이 하나님의 영광이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