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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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수 집사

1. 말씀: 예레미아 22

22:21 네가 평안할 때에 내가 네게 말하였으나 네 말이 나는 듣지 아니하리라 하였나니 네가 어려서부터 내
목소리를 청종하지 아니함이 네 습관이라

22 네 목자들은 다 바람에 삼켜질 것이요 너를 사랑하는 자들은 사로잡혀 가리니 그 때에 네가 반드시 네
모든 악 때문에 수치와 욕을 당하리라

2. 말씀의 뜻 묵상

예레미아는 장절의 구분이 무색하리만큼 하나님의 무서운 경고와 질책이 반족적으로 이어집니다. 시기는 유다왕국의 마지막 때, 여호아김왕에서 시드기야왕까지, 바벨론의 침공으로 유다왕국이 무너지는 무렵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예레미아 선지자를 내시고 이 시기동안 하나님의 애통한 마음을 이스라엘 백성에게 전하고 후세에 기록으로 남기고자 하셨습니다. 이미 이스라엘의 운명은 결정되어 있었고, 하나님은 예레미아를 통한 경고와 질책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이 마지막까지 그 마음을 하나님께로 돌이키지 않을 것을 알고 계셨습니다. 그럼에도, 하나님은 예레미아기에서 보여지듯 무수한 말씀을 통해 반복적으로 이스레엘 백성에게 말씀하십니다. 너희가 무엇을 잘못했고, 당신이 얼마나 기다리셨으며, 얼마나 애통한 마음으로 너희에게 이토록 가혹한 징계를 하셔야 하는지.

22:21 네가 평안할 때에 내가 네게 말하였으나 네 말이 나는 듣지 아니하리라 하였나니 네가 어려서부터 내
목소리를 청종하지 아니함이 네 습관이라

이 말씀 안에 아버지 하나님의 마음이 고스란히 담겨 있는 것 같습니다. 마치 어린 시절부터 크고 작은 탈선을 일삼던 아들에게 더 이상 훈계와 회초리질 하는 것을 단념하고, 마지막으로 아들과의 결별을 결심한 어느 아비의 한탄처럼 들립니다. 그리고 그 말씀이 제 가슴에 박힙니다.

왜 이스라엘 백성은 이리 되었을까요. 구약을 읽을 때면 항상 드는 의문입니다. 출애굽과 여호수아에서 하나님이 폭포수처럼 쏟아내셨던 은혜와 기적을 몸소 겪은 백성이 어떻게 그것을 까맣게 잊고 우상을 섬기며 하나님을 배반할 수 있었을까요? 세상에 이보다 어리석고 패역한 민족이 있을 수 있을까요. 그러나, 이제 조금 이해할 수 있습니다.

구약시대에는 문자기록이 거의 없었고, 하나님의 말씀은 대부분 구전으로 전해졌습니다. 그들은 관습대로 일년에 몇 번 예루살렘에 올라가 제사에 참여하는 것이 여호와 하나님과의 관계를 이루는 거의 전부였고, 일상의 삶은 판에 박힌 율법과 도덕 뿐이었습니다. 주위엔 이민족의 생활종교가 뿌리깊게 박혀 있었고, 그들은 매일 매일 산당에서 온갖 우상을 앞에 두고 기도하고 애원하는 모습을 보여 줍니다. 그들의 삶에도 희로애락과 부와 명예가 있었고, 때때로 그들의 우상이 그들을 도와주는 것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하나님의 백성과 매일 매순간 함께 하는 지성소의 삶이 구약의 백성들에게는 허락되지 않았습니다. 이런 상황이 몇백년 지속되면 구전의 말씀도 끊기고 우상들에게 자기 삶을 허락하는 것이 너무나 자연스런 결과라 생각됩니다. 하나님 아버지께서도 분명하게 그것을 알고 계셨습니다. 그래서 모세를 통해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8:17 그러나 네가 마음에 이르기를 내 능력과 내 손의 힘으로 내가 이 재물을 얻었다 말할 것이라

18 네 하나님 여호와를 기억하라 그가 네게 재물 얻을 능력을 주셨음이라 이같이 하심은 네 조상들에게
맹세하신 언약을 오늘과 같이 이루려 하심이니라

19 네가 만일 네 하나님 여호와를 잊어버리고 다른 신들을 따라 그들을 섬기며 그들에게 절하면 내가
너희에게 증거하노니 너희가 반드시 멸망할 것이라

2. 적용

우리는 신약백성입니다. 우리에게는 저마다 하나님의 구원의 기억이 생생하고 하나님의 말씀이 성경에 명백히 기록되어 눈앞에 있으며 매주일 교회에서 말씀을 나눕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우리에게는 지성소의 삶이 허락되어 있습니다. 언제 어느때 어느곳에서든 우리가 진심으로 뉘우치고 하나님 앞에 나아갈 때 그분의 은혜와 축복과 인도하심이 우리에게 쏟아집니다. 그런데 그런 우리도 어쩌면 이리도 구약백성과 똑같은지 모르겠습니다. 제 모습이 그렇습니다.

아내의 건강이 차츰 회복되고 제 일도 안정되어 삶이 비로소 제자리를 찾아가는 듯 합니다. 모든 것이 순조로운 이 때, 제 마음도 본성을 드러내 제자리를 찾아가려 합니다. 일이 바빠지면서 세상사 속에서 하나하나 스스로 중심을 잡고 헤쳐가는데 마음을 집중하다보니 한편에서는 의욕과 자신감이 차오르고 다른 한쪽에서는 하나님에 대한 무관심이 싹틉니다. 매일 하던 아침기도도 하루이틀 빠지더니 이제는 교회에 나가 기도한 일이 아득히 멀게 느껴집니다. 삶 속에 예전 이방인 시절의 죄악들이 다시금 싹 터 오릅니다.

그렇습니다. 제가 딱 이 모습입니다. “네가 어려서부터 내 목소리를 청종하지 아니함이 네 습관이라제 몸에 베인 습성이 하나님과 멀리 떨어져 저만의 욕망에 충실히 살아가는 것이었습니다. 신약시대의 그 한없는 은혜 속에서 살아가는 저조차 이렇게 허무하게 무너지고 부패해갑니다. 그런제 저는 이 무너짐의 매순간순간을 또 다른 자아로서 바라봐 왔습니다. 그리고 뼈져리게 깨닫습니다. 이 마음이 이렇게 악하구나, 내가 하나님과 맺은 관계가 내 능력으로는 도저히 유지할 수 없는 것이었구나. 하나님과 함께 하지 않고서는 내가 선의 길에서 생을 마감하는 것이 불가능한 일이구나...

이 모습을 보고, 이것들을 깨닫고, 하나님께로 돌이킬 또 다른 계획과 소망을 놓지 않게 하심이 제 안에서 한탄과 간구로 임하시는 성령님의 힘임을 느낍니다.

그래서, 모든 것을 내려놓고 초심으로 돌아가고자 합니다. 그동안 분에 넘치는 직분을 받아 한껏 폼을 내었던 저의 허구를 모두 벗고, 오직 말씀으로, 제 안에 차오르는 온갖 질문들을 하나님과 나누며 살고자 합니다. 이제까지와는 다른 모습으로, 더 이상 스스로 꾸미지 않은 벌거벗은 그대로의 모습을 하나님 앞으로 나아가고자 합니다.

 

[기도]

주님, 감사합니다.

용서해 주심에 감사합니다.

기다려 주심에 감사합니다.

다시금 주의 팔을 넓게 펴시고 저를 부르심에 감사합니다.

그리고 이 QT의 시간을 허락하시고 예레미야를 통해 저의 모습을 정확히 알게 하심에 감사합니다.

오직 주의 은혜만을 의지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