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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 2:1-11“예수를 발견하고 만나고 고백하고, 예수의 증인이 되자!”
1. (예수)를 발견하고 만나고 고백하려고 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그리스도인으로서 예수를 따라 가려고 하는 것입니다. 신앙 생활의 중심은 우리가 아닙니다. 하나님이 중심이 되어야 하고 하나님의 기쁨과 영광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누가 가장 좋은 본을 보여 주셨어요? 예수님 이십니다. 사람은 사람으로 밖에 인도하지 못합니다. 사람에게는 허물이 있고, 죄가 있고 잘 하다가도 실수하고, 사람을 따라가다 보면 그 사람의 실수 때문에 지금까지 선했던 모든 것을 부인하게 됩니다. 사람은 섬김의 대상이지 믿음이 대상이 아닌 것입니다. 그러나 단 한 분 믿음의 대상이기도 하고 섬김의 대상이기도 한 우리가 따라가야 될 그분은 예수님 이십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부르심으로 예수로 인해 구원을 받고 교회가 되어서 교회로 모였습니다. 그러므로 1) 그리스도안에서 권면 해야 합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서로 하나님의 말씀에 근거해서 권면 해야 하는 것입니다. 2) 사랑으로 위로하라고 합니다.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신 것처럼 그리스도인들도 서로가 사랑으로 연약한 상처를 위로 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교회를 위해서 자기 자신을 다 내어 주는 사랑을 하셨습니다 (히3:1). 3) 성령으로 성령 안에서 교제 하라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누구나 성령에 의해서 교회가 되었고, 교회이 일원이 되었습니다(고전12:3). 성령 안에서 그리스도를 주로 고백했다면 나에게 성령이 있는 것인데 그러면 성령에 반응하고 순종하면서 교제를 나누어야 한다는 것입니다(행2:46, 히10:25). 모이기를 힘쓰라는 성령의 말씀에 순종하고 아름다운 성령 안에서 교제하고 만나면 예수를 발견하고. 만나고, 고백하고, 예수가 증인이 되어가는 것입니다. 먼저 순종해야 역사를 경험할 수 있는 것입니다. 4) 긍휼과 자비가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이 그러셨던 것처럼 그리스도인들은 연약한 자 어려움에 빠진 자에게 관심을 가져야 된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혼자 하는 것이 아니고 교회로 부름 받은 자로서 서로 같이 해야합니다. 우리가 교회로 살려면 마음도 같이하고, 같은 사랑을 가지고 뜻을 합하여 한 마음을 품어야 합니다. 어떻게 이것이 가능하다고요? 한 예수를 발견하고 만나고 고백해야 합니다.
2.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라고 합니다(교회인 서로에게). 3절입니다.
나 보다 남을 낫게 여기라는 것입니다. 낮춘다는 것이 아니라 높게, 좋게 여기라는 것입니다. 일치를 위해서 하나 되기 위해서 입니다. 허영(헬 케노푸시아)은 내용이 없는 영광이나 자랑을 말합니다. 자기 자신을 높이고 헛된 영광을 추구하는 허영 때문에 다툼이 생기고 공동체의 불일치를 가져오고 하나됨을 파괴하게 되는 것입니다. 교회의 각 공동체, 셀 공동체의 일치를 위해서는 적극적으로 겸손해야 합니다. 겸손은 사람 앞에서 겸손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 겸손해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서의 겸손함을 통해서 다른 사람을 나 보다 낫게 여기는 겸손을 이룰 수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신 것으로 겸손의 본을 보여 주셨습니다(5-8절). 예수님은 구원을 주셨음에도 그 권위로 우리를 압박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더 겸손을 보여 주셨습니다. 값진 구원을 은혜로 주시면서도 오히려 겸손 하셨습니다. 높음으로는 하나가 될 수 없습니다. 다툼과 허영으로는 하나가 될 수 없습니다. 예수님은 근본 하나님의 본체십니다. 본체(헬 모르페)의 뜻은 예수님은 본래 하나님으로서의 본질적 속성을 가졌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하지 아니하시고 즉 하나님의 속성을 다 가지고 있지만 부정하고 사람으로 왔다는 것입니다. 시간과 공간에 제약을 받지 않는 하나님이 제한을 받는 인간으로 온 것입니다. 영광을 다 포기한 것입니다. 하나님으로서의 능력을 포기한 것입니다. 그리고 거기서 더 낮아 지셔서 십자가를 지신 것입니다. 타락한 인간을 구원하려고요. 이것이 예수님의 낮아짐 입니다. 이제 우리도 겸손해야 합니다. 구원받으려고 겸손한 것이 아니라 구원 받았기에 예수님을 따라 겸손함으로 하나가 되라는 것입니다.
3. 하나님은 (예수님의 이름)을 지극히 높여 주셨습니다. 9-10절
이름을 지극히 높였다는 것은 하나님이 그리스도를 겸손과 수치스러운 죽음의 자리에서 다시 부활과 승귀로 영광의 자리로 높이셨다는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전 우주를 다스리는 주권을 소유하게 하셨다는 것입니다. 모든 피조물로 하여금 예수그리스도 앞에 복종하고 예수를 주로서 섬기게 하려고요. 이제 모든 만물이 그리스도에게 복종해야 합니다. 우리는 “예수를 발만고” 해야 그리스도인답게 살 수 있습니다. 우리는 예수를 깊이 생각하고 예수의 마음을 품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