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예배

하나님의 긍휼

김병진 목사 / 고후 4:1-3, 7-9,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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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고후 4:1-3, 7-9, 15 “하나님의 긍휼

1. 이 생명의 (은혜와 영광의) 직분을 하나님의 긍휼하심으로 받았으니 낙심하지 말라 하십니다. 1

특별한 긍휼하심을 입은 은혜의 직분을 맡았기에 낙심할 만한 일이 있겠지만 낙심하지 말아야할 이유를 말하고 싶은 것입니다. 복음으로 인한 직분, 전도의 직분, 말씀을 가르치는 직분, 지파장으로서의 직분, 셀장으로서의 직분, 셀원으로서의 직분들을 말하는 것입니다. 율법을 전달하는 정죄의 직분, 죄를 알려주는 정죄의 직분이 아니라 그리스도로 말미암은 복음을 전하는 의의 직분입니다. 우리가 이 직분을 하나님의 긍휼하심 때문에 받았습니다. 바울은 예수님을 만나기 전에는 그리스도를 핍박 하는 일에 누구보다 열심이었습니다. 그렇게 특심으로 율법을 연구했지만 한 일이라곤 기껏해야 예수를 핍박한 일 밖에 없었습니다. 자기 능력으로 자기 힘으로 했던 것은 기껏 해야 예수를 핍박한 것 밖에 없었는데, 그런데 그런 죄인에게 하나님이 긍휼을 베푸셔서 예수를 발견하게 하시고, 만나게 하시고, 고백하게 하셨으며 또 은혜로 복음을 증거하는 직분을 맡기셨 다는 것입니다. 예수를 적대하고 핍박한 것밖에 없었는데 찾아오셔서 하나님의 영으로 예수 생명의 새 언약을 새겨 주시고 영광스런 의의 직분을 주신 것이 너무 크고 감사한 일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바울은 적대적으로 비난하거나 시련이 있어도 낙심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앞으로도 낙심하지 않겠다는 것입니다(고후3:9). 아무런 자격 없는 자에게 오셔서 새 생명을 주시고, 더 영광스러운 의의 직분을 주신 것이 너무 고맙고 감사해서 이 직분을 감당할 때 낙심할 이유가 없었다는 것입니다. 바울은 복음의 가치를 알았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우리 안에 바울처럼 이런 복음의 가치를 경험하고 누리고 있을까요? 정말 우리는 바울처럼 복음의 직분을 이토록 영광스럽게 여기는 것일까요? 여러분 우리도 정말 바울이 소유하고 있는 믿음과 가치가 같아야 되는 줄 믿습니다(20:24). 복음만 전할 수 있다면 바울은 그 복음의 가치를 아는 자이기 때문에 자기는 고난을 당해도 괜찮다고 여긴 것 입니다(1:5-6).

 

2. 그러므로 하나님의 말씀을 혼잡하게 하지 않고 오직 (진리)만 나타나야 한다고 합니다. 2

율법을 지켜야 구원을 받는다고 말하는 사람들은 다른 사람이 율법을 지키지 않을 때 비난을 하더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나중에 보니까 그들도 은밀한 곳에서는 율법을 지키지 않더라는 것입니다. 율법을 지켜야 구원을 받는다고 전해 놓고 정작 자기들도 은밀한 곳에서는 율법을 지키지 않더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바울은 예수를 믿으라고 전하면서 자기가 안 믿는 그런 속임을 행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예수로 인한 믿음으로 구원을 받는 다는 믿음과 확신 속에서 예수를 믿으라고 전했다는 것입니다. 내가 믿고 확신에 거하니까 내가 믿는 예수를 전했다는 것입니다.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내가 예수를 믿었기 때문에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것이 하나가 되게 믿었다는 것입니다. 믿는 대로 행했다는 것입니다 믿음 따로 삶 따로 아니라 말과 행동이 같았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믿음은 믿는 대로 사는 것이 믿음입니다(4:13). 바울은 복음과 하나님 말씀을 혼잡하게 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혼잡하게 한다는 것은 마치 약에 이 물질을 섞어서 약의 질을 떨어뜨리는 행위를 말합니다. 복음에 필요 없는 것을 첨가시키므로 복음의 본질을 왜곡시키는 행위를 할 수 없었다는 것입니다. 구원은 성육신 십자가 부활 승천만으로 충분하고 그리고 구원을 믿는 자로서 하나님이 영으로 예수의 생명을 심비에 새겨 주었기 때문에 그리스도를 따르는 삶을 살았다는 것입니다(4:1-3). 오직 복음만, 오직 하나님 말씀만 전했더니 양심이 스스로 추천하더라는 것입니다. 복음에 반응하는 준비된 양심을 만나게 하셨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씨가 각 사람의 마음에 있을 것인데 오직 진리를 나타내었더니 진리 때문에 씨가 있는 각 사람의 양심이 복음이 만나도록 스스로 추천하더라는 것입니다(10:27-30). 우리가 실력으로 믿는 것도 아니고 지식으로 믿는 것도 아니고 믿어져서 믿는 것입니다. 그런데 믿어졌다는 것이 놀라움입니다. 또 그 복음을 전하는 것도 놀라움입니다. 우리는 긍휼을 입어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영광의 직분을 받았기 때문에 절대로 주의 일을 하면서 낙심하는 일이 없으시기를 축복합니다. 새 언약의 일꾼의 가치가 현재의 고난을 견디게 하는 것입니다.

3. 질그릇인 우리가 (보배인 복음)을 가졌습니다. 7

우리가 왜 낙심하지 말아야 된다고요? 질그릇인 우리가 보배이신 예수를 가졌기 때문입니다(고후6:9-10). 주님이 다시 오시는 날에는 보배이신 예수님 때문에 신령한 몸으로 다시 사는 것입니다(고전15:43-44, 15:55-58). 이것이 교회의 특권입니다. 그 어떤 고통도 성도들을 패배 시키지 못합니다. 오히려 고난이나 고통이 하나님을 찾고 만나게 합니다. 우리 안에 보배를 가졌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낙심하지 말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한다는 것입니다(고전6:20, 14:7-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