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예배

은혜의 울타리

김병진 목사 / 고후 1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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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고후 12:1-9 “은혜의 울타리

 

내가 약함을 감수하는 만큼 가정과 공동체는 살아납니다. 이것이 십자가의 역설입니다. 하나님의 강함으로 하나님의 능력이 역사되는 것입니다. 사실 가정에서도 교회 곳곳에서도 성도의 낮아지는 약함의 자랑이 필요합니다.

 

1. 바울에게도 놀라운 (환상과 계시)의 경험이 있다고 자랑합니다. 1-2

바울에게는 약함만 있는 것이 아니라 신비로운 경험, 주의 환상과 계시를 경험했다고 부득불 자랑합니다. 환상과 계시를 자랑하는 것은 거짓 교사들이 작은 환상과 계시의 경험을 자랑하면서 자기를 높이는 모습 때문입니다. 더구나 바울은 오직 예수의 복음을 전했는데 오히려 가짜 취급을 받고 심지어 바울이 전한 복음과 그리스도가 왜곡되고 고린도 교회 성도들이 주님으로부터 멀어져 가는 것을 보고 부득불 어떤 자랑이든 어리석은 것이라는 것을 알지만 경험한 환상과 계시를 말하는 것입니다. ‘환상’(/ 옵타시아)나타남입니다. 눈으로 보는 것, 초자연적이나 기적적으로 어떤 실체를 보는 것을 말합니다. ‘계시’(/ 아포칼륍시스)베일을 벗기다입니다. 환상이 직접 보는 것이라면 계시는 깨달아지는 것입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아는 한 사람은 바울 자신을 말합니다. 1인칭을 쓰지 않고 3인칭을 사용하는 것은 겸손의 표현입니다. 3인칭으로 객관화시켜서 경험한 자기를 우상화하지 않으려고 성도들을 배려한 것입니다. 이끌림을 당했다고 하며 불가항력적으로 하나님이 보게 하셨다는 것을 분명히 말하고 있습니다. 영적인 체험, 신비스런 체험은 인간의 언어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엄청난 경험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인간의 지각과 이성으로 표현할 수 없다고 합니다. 하나님 나라가 그 정도로 인간 세상과 다르고 온전히 다 표현하기 힘들다는 것입니다. 모든 것을 인간의 언어로 표현하지 않아도 모든 것이 납득되기에 하나님 나라에 소망을 두고 주님을 따르는 바울의 삶이 진정한 환상과 계시를 경험한 자의 삶인 것입니다. 우리가 진짜 성도인지 아닌지 무엇으로 기준 삼을 수 있을까요? 하나님 나라는 분명히 있는데 누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을까요? 하나님 아버지의 말씀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간다고 했습니다(7:21). 하나님을 믿으면서 자기의 행복은 추구하면서도 성화를 하지 않는 자는 가짜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믿으면서 자기의 명예는 높이고 싶어 하는데 그리스도인으로서 감당해야 할 십자가를 안 지는 사람은 참 성도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성경 말씀을 통해서 계시하시는 하나님을 알려고 하지 않으면 가짜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방언을 비롯해 다양한 영적인 경험이나 체험을 하게 하시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이 땅에 살면서 그리스도인으로서 두 발 딛고 주어진 소명을 더 잘 감당하게 하려고 하시는 것입니다. 바울에게도 복음을 전해야 하는 그의 사명에 어떤 핍박, 어떤 위험, 어떤 도전이 오더라도 꿋꿋하게 이방인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은혜를 주신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으로의 삶을 위하여 신비한 경험이 필요한 것이지, 신비한 경험 그 자체를 위하여 하나님이 신비한 경험을 주시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 나라 회복과 구속사를 위해서 주신 것입니다.

 

2. 바울은 (육체의 가시)를 자랑합니다. 7

바울은 갈라디아서에서도 그의 육체의 약함을 말했습니다(4:13-14). 이 육체의 가시를 고침받기 위해서 세 번이나 간절히 기도했지만 내 은혜가 네게 족하다는 응답을 받고 도리어 기뻐합니다. 자신의 연약함이 그리스도의 능력이 머물게 한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바울이 실족하기를 원치 않으셔서 하나님이 은혜의 장치를 달아 주셨다고 알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바울의 약함이 오히려 바울을 보호하시고자 하는 하나님의 배려였던 것을 계시로 깨닫게 된 것입니다. 사람으로는 볼 수 없는 하나님 나라를 보았기에, 하나님의 구원의 섭리를 깨닫도록 많은 계시를 보이셨기에, 혹 바울을 실족하게 될까 봐 육체의 가시도 하나님이 주신 은혜라는 것을 깨달은 것입니다. ‘머물다’(/ 에피스케노세)장막을 치고 거주하다입니다. 하나님이 장막 안에 확고히 머물도록 하는 것입니다. 바울의 약함이 사도로서 본분을 아름답게 지키도록 하는 은혜의 울타리였다는 것입니다. 죄를 짓지 않고 자고하지 않도록 보호 차원에서 육체의 가시를 주신 것입니다. 우리는 은혜 안에 있다고 할 때 모든 것이 풍족하고, 아무런 문제가 없고, 고난도 없는 상태라고 생각하는데, 짊어지고 있는 아픔 때문에 교만해지지 않고, 늘 주님을 의지하고 실족하지 않도록 지켜 주신다면 그 가시가 하나님의 은혜이고 우리를 위한 보호와 배려라는 것입니다. 가시가 아픔이지요. 부끄러울 수도 있구요. 그러나 은혜 안에 가시는 자고하지 않도록 하는 나로 하나님을 더욱 의지하게 만드는 사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