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예배

성도의 표

김병진 목사 / 고후 12:12, 20,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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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고후 12:12,20-21 “성도의 표

 

1. (하나님 나라를 소망)하는 사도의 자세에 대해서 말씀하십니다. 12

바울은 참된 사도의 표로 모든 참음과 표적과 기사와 능력을 행하였다고 하면서, 하나님이 부르신 성도가 되어야 할 사람에게 모든 참음과 표적과 기사와 능력을 행했다는 것입니다. ‘사도’(/아포스톨레스)보내심을 받은 자라는 뜻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으로부터 부르심을 받은 자들입니다. 보내시기 위해서 부르셨다는 것입니다. ‘교회’(/에클라시아)도 하나님이 우리를 교회로 세우시고 보내시기 위해서 부르신 것입니다. 오늘날의 사도는 보내기 위해서 부름 받은 우리 모두가 사도입니다(벧전 2:9-10). 부르시고 보내셔서 아름다운 하나님의 은혜의 덕을 선전하게 하려고 우리를 제사장으로 부르셨다는 것입니다. , 오늘날의 사도의 역할은 부르심을 받은 우리의 몫인 것입니다. 우리는 그리스도로부터 보내심을 받아 일주일간 세상 속에 살다가, 주일이 되면 또 주님의 부르심을 받고 교회로, 다시 세상으로, 다시 교회로 부르심과 보내심을 통하여 사도(아포스톨레스)의 역할을 감당하고 사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 나라에 소망을 둔 사도의 첫 번째 증거는 오래 참음이라고 합니다. 참음이라는 것은 육체적인 피곤함과 외부로부터 오는 극심한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일이기 때문에 인내할 수 있는 힘이 주어져서 참을 수 있기도 한다는 것입니다. ‘참음’(/휘포메논)누구 아래 혹은 밑에 거함’, ‘견고한 섬의 뜻이 있습니다. 예수님 아래 혹은 밑에 거하고 견고히 서는 것입니다. 사도의 표 혹은 성도의 표는 예수님 안에, 예수님 밑에 있기 위하여 적극적으로 자기를 부인하는 것입니다. 거짓 사도들은 자기 부인하지 않습니다. 고난도 어려움도 거절하고 도망갑니다. 살고 싶은 대로 살고, 하고 싶은 대로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사도, 하나님의 성도는 하기 싫은 것도 하라 하시니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 밑에 있기 때문에, 예수님 안에 있기 때문에 자기를 부인하며 하라고 하는 일들을 하나님 나라와 복음을 위하여 참으며 한다는 것입니다. 성도는 참음을 통해서 하나님의 사람으로 계속 빚어져 가는 것입니다.

 

2. (사도의 표)는 표적과 기사와 능력도 행한 것입니다. 12b

*‘표적’(/세메이온)확신시키다’, ‘확증하다’, ‘복음을 확증하고 복음을 확신시키는 능력입니다. 말씀을 믿게 하는 역사라는 것입니다. *‘기사’(/테라스)놀라운 일이라는 뜻으로 하나님을 경외하게 하는 힘입니다. 놀라운 일들을 통하여 하나님을 나타내고 하나님이 영광 받으시게 사용되는 역사입니다. *‘능력’(/두나미스)’, ‘세력’, ‘성취할 만한 능력’, 즉 하나님의 권능을 나타내는 초자연적인 힘입니다. 성경에서 표적, 기사, 능력은 따로 따로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항상 같이 나타납니다. 예수님에게도 표적과 기사와 능력이 늘 있었고 12사도에게도 있었습니다. 역시 바울에게도 이와 같은 사도의 증거가 있었습니다. 하나님 나라와 복음을 위하여 루스드라에서 앉은뱅이를 일으켰습니다(14:8,10). 죽은 유두고도 살렸습니다(20:9-12). 빌립보 감옥에서 찬양할 때는 감옥 문이 열리고 착고가 풀어지기도 했습니다. 여러분 우리에게 참된 표적과 기사와 능력은 죄 많은 우리 인생 가운데 찾아오셔서 독생자로 말미암아 구원하시고 그 예수를 전하는 구속사를 위한 삶을 살게 하시는 것입니다(벧전 2:9-10, 3:6, 8:17). 죄만 가득한 존재가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하나님의 영광과 이름과 명예를 위하여 그리스도와 함께 고난도 받는 존재가 된 것입니다(2:20).

 

3. 바울이 고린도교회의 (성도)들에게 갈 때 두려워하는 마음이 있었습니다. 20-21

바울이 두려워하는 마음은 교회의 성도들이 예전 모습 그대로 있을까 봐 두려워합니다. 복음을 받았지만 거짓 선지자들로 인해 예수님으로부터 멀어지고 교회 안에서 다툼, 시기, 분냄, 당 짓는 것, 비방, 수군거림, 거만함, 혼란, 더러움, 음란함, 호색함을 회개하지 않고 여전히 그 모습 그대로 있으면 어떻게 하지... 하는 두려운 마음이 있다는 것입니다. 어리석음을 알지만 부득불 자랑하면서까지 하나님의 마음을 전달했는데 다시 갈 때에 여전히 달라지지 않은 모습을 보게 될까 봐 두려운 것입니다. 교회가 계속 불의와 함께 있으려고 한다면 곤란하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복음을 받은 증거는 새 생명을 얻었다는 것이고 이전의 것이 떠나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거룩 안에서 행복을 누리는 것입니다. 분별과 구별을 통해 기쁨을 누려야 합니다. 우리 삶 속에서 잘라내지 못한 것이 무엇입니까? 취하지 못하고 있는 것은 무엇입니까? 말씀을 따라 취하기도 하고 잘라내는 것이 우리가 이 시대를 하나님의 사도의 표로 살아가는 길입니다. 교회와 가정과 사회 속에 하나님의 나라가 세워지는 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