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삿11:1-10 “사사 입다”
1. 입다가 (이스라엘의 사사)로, 머리로 세워지는 과정입니다. 1-6절
지금까지 사사는 하나님이 직접 지명하여 불렀는데 입다는 상황 속에서 세워진 사사입니다. 길르앗 사람 입다는 기생이 낳은 아들입니다. 입다의 출신이 비천하다는 것을 말해줍니다. 길르앗의 아내(정실부인)도 아들들을 낳았는데 그 아들들이 자라서 입다에게 너는 다른 여인의 자식이라서 우리 아버지의 집에서 기업을 잇지 못한다고 쫓아냈습니다. 돕 땅은 이스라엘과 암몬의 경계지역입니다. 입다는 자기가 잘못해서 쫓겨난 것이 아닙니다. 기생에게서 태어났다는 이유로 상속권을 주지 않으려고 형들이 이스라엘 바깥 땅으로 쫓아낸 것은 생존권도 박탈하고 가서 죽으라는 뜻으로 쫓아낸 것입니다. 그런 입다에게 잡류들이 모여들었습니다. 잡류는 힘은 있지만 일정한 직업이 없이 떠도는 사람들, 지금으로 말하면 건달입니다. 입다는 그들과 대적들이 돕 땅에 쳐들어오지 못하도록 돕 땅을 지켜 주었습니다. 입다가 돕 땅을 지켜내는 이야기가 이스라엘 길르앗에 소문이 났습니다. 이스라엘은 암몬과 미스바에서 전쟁하기 위해 대치된 상황에서 입다 같은 사람이 절실했습니다. 그래서 장로들이 입다를 찾아왔습니다. 입다는 만일 여호와께서 그들을 내게 넘겨주시면 내가 과연 너희의 머리가 되겠느냐고 묻습니다. 입다는 하나님이 이기게 하셔야 전쟁에 이길 수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이 말로 입다가 돕 땅에서도 하나님을 붙잡고 살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돕 땅에서 하나님이 늘 이기도록 지혜 주시고 도와주시는 것을 경험으로 알게 되었습니다. 입다는 돕 땅에서도 그 나라의 바알이나 이방신을 붙잡은 것이 아니라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붙잡고 살았습니다. 비천한 출신이라고 버림받았어도 하나님을 붙잡았더니 하나님이 세우시고 사용해 주셨습니다(시23:1-3). 우리도 예수 그리스도를 붙잡으면 삽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모든 것이 되십니다(고전1:30-31).
2. 이스라엘 장로들이 하나님의 허용 아래 입다에게 지휘권을 줌으로 입다는 (이스라엘의 머리)가 되어 전쟁을 수행하게 됩니다. 12-15절
암몬의 왕은 입다에게 길르앗은 원래 자기들의 땅이니까 평화롭게 돌려 달라고 합니다. 그러자 입다는 이 땅은 우리 하나님이 이스라엘에게 주신 땅이고 이미 우리가 이 땅에서 살고 있는지 300년(출애굽부터 지금까지)이나 되었다고 말합니다. 입다가 이렇게 말할 수 있는 것은 말씀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며 하나님이 인도하신 이스라엘의 역사를 말하는 것입니다(신2:17-19). 입다는 하나님이 우리에게 준 기업이 있고 너희에게는 너희에게 준 기업이 있다는 신앙관을 보입니다. 그래서 입다는 돕 땅에서도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 되어 주시면 그 하나님이 나를 지켜 주실 것이라는 소망을 가지고 살았습니다. 입다는 신앙 교육을 받고 자라기 쉽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말씀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의 출생은 비천하고 가족들에게 쫓겨 났지만 하나님을 붙들고 자기 백성을 책임지시는 하나님 중심주의로 산 것입니다(호6: 3, 6).
3. 암몬이 입다의 말을 거절하고 전쟁을 하고자 하자 입다는 큰 전쟁을 앞두고 (서원)을 합니다. 28-31절
입다는 너무도 승리가 중요한 전쟁이라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하며 서원을 합니다. 전쟁에 승리하고 돌아올 때 가장 먼저 반기는 그를 번제물로 드리겠다고 합니다. 야곱의 서원(창28:20-22), 한나의 서원(삼상1:11) 등, 성경 여러 곳에 서원이 있습니다. 서원 기도는 하나님의 도우심을 간절히 사모하기에 작정하고 기도하는 것이라서 하나님도 그 서원을 지키시고 서원 기도한 사람도 지켜야 합니다. 간절함으로 서원을 하는데 입다는 왜 가장 먼저 나온 그를 번제로 드린다고 했을까요? 당시 이방 문화 속에서 보고 배운 것입니다. 당시 고대 근동에서는 사람을 가장 큰 제물로 여겨서 사람을 그들의 신에게 바치는 일을 행했습니다(왕하3:26-27). 그러나 하나님은 인신제사를 받는 분이 아닌데, 잘못된 헌신에서 비롯된 비극이 벌어진 것입니다. 결국 입다의 서원을 지키려면 외동딸이 죽어야 하는데 입다는 순종을 선택합니다. 우리가 정말 이 말씀을 통해서 잘 알아야 하는 것은 우리가 예수님을 믿고 하나님의 자녀로 살지만 중요한 것은 하나님은 하나님이 원하시는 방법으로 섬겨야 한다는 것입니다. 자기 방법으로 섬기려고 하니까 잘못된 헌신에서 비롯된 슬픈 일이 생길 수 있다는 것을 오늘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베뢰아 사람들은 날마다 성경을 상고했다는 칭찬 받습니다(행17:11). 우리가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섬겨야지 우상처럼 섬기면 안되는 것입니다. 왜 요단강 건너 동편 땅에서 이런 일이 생겼을까요? 이 동편 사람들은 강 건너에 살면서 이방 문화에 젖어 이방문화 속에서 하나님을 섬겼습니다. 우리 삶에는 요단강이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사람으로 살도록 지켜주는 선이 있어야 합니다. 그것이 오늘 나에게 허락된 교회입니다. 하나님이 나를 보호하려고 이곳에 있게 하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