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삿 13:1-7 “먼저 거룩하라”
1. 이스라엘이 다시 하나님의 목전에 (악)을 행하므로 여호와께서 그들을 40년동안 블레셋 사람의 손에 넘겨주십니다. 1절
그럼 그동안 인간이 아무 죄도 짓지 않다가 갑자기 죄를 지었다는 것일까요? 아닙니다. 인간이 어떻게 죄를 짓지 않고 살 수 있겠습니까? 존재 자체가 죄인이라 사실 우리는 날마다 죄를 짓고 삽니다. 죄를 짓고 살 수밖에 없는 존재입니다. 하나님이 이것을 모르는 것이 아닙니다. 그렇다면 지금 여호와의 목전에 다시 악을 행했다는 의미는 우상숭배를 말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이 하나님을 섬기고 살아야 하는데 다른 것을 섬기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예배해야 하는 존재가 다른 것을 예배하고 섬기는 것, 즉 세상 사람처럼 예배하지 않고 마음대로 사는 것은 하나님이 우리를 향해 참을 수 없는 악입니다. 하나님께는 대적에게 넘겨주어서라도 멈추게 하고 싶은 악입니다. 하나님이 제일 싫어하는 악이고 견딜 수 없는 악이라서 하나님에게 돌아오도록 대적을 만들어서라도 멈추게 일하신다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사사기를 보면서 같은 대적이 없었습니다. 미디안, 암몬, 북쪽에 있는 야빈 왕, 메소보다미아 왕 등 여러 대적을 만들어서 사용하셨습니다. 다양하게, 생각지도 못한 대적의 손들을 만들어서 멈추게 하신 것입니다. 우리도 생각지도 못한 문제들이 있기도 하고 일어나기도 합니다. 우리 신앙의 여정에 아무런 문제가 될 수 없다고 생각한 것들이 크게 확대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블레셋도 원래 강한 자들이 아니었습니다. 이들은 땅도 없이 지중해에서 해적 생활을 했던 자들이었습니다. 그들이 남부 팔레스타인 해안 지대로 이주해서 살기 시작했고, 자리 잡으면서 가나안을 자기 땅으로 삼고 이스라엘을 호시탐탐 노렸던 것입니다. 우리는 문제를 만나면 그 문제가 어마어마하게 보여 그 문제 앞에 무너집니다. 그러나 우리를 악으로부터 하나님에게로 돌아서게 하기 위해서라면 다시 하나님을 향하여 예배자로 서게 할 수만 있다면 사실 그 문제들은 하나님 입장에서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이것이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의 집념입니다. 하나님은 어떠한 대가를 지불 하더라도 하나님의 백성이 하나님과 멀어지는 것을 보고 있을 수 없는 것입니다. 십자가 사건이 바로 그것입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백성들을 살리고 돌아오게 하기 위해서 독생자를 우리를 대신하여 저주받게 하기까지 사랑하고 포기하지 않은 것입니다.
2. 이스라엘 백성들을 블레셋으로부터 회복하기 위해서 수태고지하고 (구원의 시작)을 위한 삼손이 사사로 태어납니다. 2-5, 24-25절
이스라엘의 구원의 시작을 위해 여호와의 사자가 소라 땅의 단 지파의 가족 중에 마노아라는 사람과 그의 아내에게 수태고지, 즉 그들에게서 아들이 태어날 것이라고 했고 말한대로 태어난 것입니다. 그 시대는 여자가 결혼하고 자녀를 낳는 것은 큰 축복이었습니다. 남자도 장가들어서 아이를 낳아 자손을 번성하는 것은 힘이 되고 명예가 되고, 자랑이 되는 시대였습니다. 그런 시대에 아이가 없다는 것은 수치이고 아픔이기도 했을 것입니다. 그래서 그 당시는 남자들이 다른 여자를 들이는 것이 일반적이었습니다. 엘가나도 아내 한나가 아이 없어 브닌나를 들여서 아이를 갖습니다(삼상 1:1-2). 아브라함도 사라가 나이 먹도록 아이가 없을 때 하갈을 들여서 이스마엘을 낳았습니다. 그런데 마노아는 임신하지 못하는 아내를 아끼고 존중하며 아이 없이 계속 산 것입니다. 이런 그들에게 여호와의 사자가 수태고지를 한 것입니다. 성경에서 수태고지를 언제 들어 보셨나요? 예수님, 삼손, 사무엘, 세례요한입니다. 성경에서 수태고지는 구속사에 있어서 굉장히 중요한 사건들로 연결되는 것을 봅니다. 하나님이 수태고지를 하는 이유는 이 아이를 통해서 앞으로 하나님이 일하시겠다는 것입니다. 그럼 이 아이는 어떻게 커야 될까요? 앞으로 하나님의 일을 할 사람으로 커야 되는 것입니다. ‘나실인’(히/ 나지르)은 ‘바치다’, ‘거룩하다’, ‘구별하다’, 즉 ‘거룩하게 구별된 자’를 말합니다. 나실인의 규례는 세 가지입니다. 포도주와 독주를 멀리하고, 머리에 삭도를 대지 말고, 시체를 멀리하는 것입니다(민 6:1-3, 5, 6). 오늘 말씀은 아이가 나실인으로 하나님이 쓰실 아이로 자라야 하기 때문에 부모가 먼저 삼가 포도주와 독주를 마시지 말고 부정한 것도 먹지 말라고 하는 것입니다(삿 13:4, 7). 왜 아이가 나기 전부터 부모가 먼저 나실인의 규례를 따르고 행하라고 했을까요? 영향을 크게 미치기 때문에 부모부터 먼저 구별되라는 것입니다. 부모가 구별되지 않으면 아이가 나실인으로 살기 어렵고 나실인으로 쓰임 받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부모의 영향이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하나님나라의 일을 하기 위해서 우리도 구별된 삶이 있어야 하는데, 특히 하나님은 자녀들이 잘 쓰임 받고 나실인으로 살기 위해서 먼저 부모가 나실인 규례를 지키라고 하는 것입니다. 부모가 거룩해지고 구별되어야 자녀가 거룩하고 구별된 삶을 살 수 있다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