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T 소감문
2024.02.14
4진 유창혁 집사
1) 본문 : 호세아서 11장
2) 말씀요약 :
호세아 라는 이름은 “하나님은 구원이시다”, “오, 하나님 구원하소서” 의 뜻이라고 합니다.
성경 본문에서는 이스라엘 백성에 대한 하나님의 실망과 분노가 임계점을 넘어 잔인한 형벌이 기다리고 있음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호세아가 활동하던 시기는 북이스라엘이 돌이킬수 없을 만큼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지고, 산당을 만들어 바알브올을 숭배하며, 그들의 풍요와 번영만을 위하여 우상에 빠져 있던 시기였습니다. 따라서 시대적 배경을 반영할 때 “호세아” 라는 이름이 주는 의미가 더욱 크게 느껴집니다.
(11:1~4)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을 마치 젖먹이 시절 걸음마부터 가르치고, 애굽의 절망가운데에서 그 멍에를 벗기시고 때에 따라 먹을 것을 제공할정도로 처음부터 끝까지 사랑으로 이끌었습니다.
(11:5~7) 그러나, 에브라임(북이스라엘 지파)은 주와의 언약을 잊고, 풍요와 탐욕에 빠져, 이를 건져내기 위하여 다시 주께 돌아오라 할지라도 돌이키는 자가 없으므로 앗수르인이 그 임금이 되고, 칼이 그들의 성읍을 허물고 빗장이 깨부수어지는 결과를 맞게 됩니다. 결국 아침안개 같이, 바람에 흩날리는 겨와 같이 사라지며, 민족들 가운에 유랑하는 자가 됩니다.
(11:8~12) 그러나,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심판하시지만, 포기하지는 않으십니다.
“에브라임이여, 내가 어찌 너를 놓겠느냐, 이스라엘이여 내가 어찌 너를 버리겠느냐.” 심지어 소돔처럼 죄악이 난무하고 성적으로 타락한 민족이 되었더라도 하나님 마음속에서는 긍휼이 온전히 불붙듯 하였습니다. 만약 주께서 사람이었다면 모두 멸하였겠지만, 사람이 아니라 창조주였기에 마지막까지 돌이킬 기회를 주셨습니다.
3) 소감 : 호세아서를 통하여 이스라엘은 하나님에 대한 배반과 성적타락으로 나라가 없어지는 잔혹한 형벌을 받게되고, 시대와 상황이 바뀌면서 다시금 관계를 회복하기를 바라는 하나님의 마음을 확인하였습니다.
하나님은 그의 사랑하는 자에게 이유 없는 고통을 허락하지 않으심을 알고 있습니다. 설사 이유가 없이 고통이 주어지더라도, 피조세계에서 피조물이 창조주에게 따질 권한은 없습니다.
주께서 그의 백성에게 원하는 것은 서로 사랑을 주고 받는 것이라고 믿습니다. 하나님은 사랑 그 자체이시고 인격적이시기 때문에 피조물과도 친구처럼 대화하시기를 원하십니다.(출33:11)
사랑을 주고 받기 위해서는 두 상대가 대등해야 하는 데 그러기 위해서 피조물이 죄가 없어야 하고,경건해져야 합니다. 하지만, 우리 힘으로 경건해질 수 없으므로 기도와 예배를 통해서 경건해 지기 힘써야 합니다. 사실 그 동안 예배에 임함에 있어 하나님은 서비스를 받으셔야 하는 분이고, 나는 드리는 입장이므로 준비된 마음과 찬양을 올려드리는 것이 맞았는데, 그러지 못하고 수동적이거나 그저 예배를 ‘보러’ 오는 관중의 하나가 아니었는지 돌이켜 봅니다.
아니면, 누군가가 이렇게 묻는다면 – 당신은 미가 처럼 자신의 중요한 목적을 위하여 마음속에 적당한 신상을 만들고 기복하러 교회를 찾는 것인지 – 나의 마음이 어지러울 듯 합니다.
문제가 해결되고 나서, 하나님을 찾던 열정이 그 전과 차이가 있다면 그 질문에 자유롭지 못하다는 것이지요.
4) 결단 :
1.예배의 자리를 기쁨과 감사로 준비하겠습니다.
2.아침마다 성경 묵상과 기도로 하루를 시작하겠습니다.
3.그 가운데에서 주님께 기도제목과 해야할 바를 묻겠습니다.
5) 기도
사랑의 하나님,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손수 빚으신 피조물이지만, 생김새만 주를 닮았을 뿐, 욕심과 세상적인 성과에 취하여 날마다 죄를 쌓고 살아갑니다. 하지만, 주께서는 벌하시기 보다는 한번 더 기회를 주시기를 원하고, 재촉하시기 보다는 기다림을 선택하셨습니다. 선물로 받은 자율성을 남용하지 않겠습니다.
더 이상 주님을 기다리는 자로 만들지 않도록 노력하겠습니다. 행여나 사탄의 유혹으로 바른길을 보는 눈이 가려지거나 마음의 문이 닫힐지라도 어둠가운데 애써 길을 찾으려는 자를 불쌍히 여기셔서 그 기로에서 조금 더 기다려 주세요.
꺼져가는 등불을 살리시고, 상한갈대 꺾지 않으시는 주님의 자비를 기대하며, 저도 이세상을 살아갈때 그 넉넉한 사랑과 용서를 아낌없이 베풀게 하시고,
가까운 사람일수록 막대하지 않게 하시고, 조금 손해가 있더라도 마땅히 해야 할 바를 깨닫게 하셔서, 거기에 순종하게 하여주세요. 새벽마다 어떤 메시지를 지푸라기처럼 보여주시지만, 저의 믿음이 약해서인지 받을 그릇이 작아서인지 제대로 담아내지 못합니다.
근심과 번민에 끌려다니지 않고, 성령님 동행함에 주도성을 담아 이세상 살아가는 동안 즐겁고, 선으로 또다른 선을 만들어내는 역사를 보여주십시요. 그래서 하나님의 능력이 세상에 아름답게 드러나는 증거가 되게 하여 주세요.
상 아래에서 아이들이 흘린 떡고물을 기다리는 모습으로 주님의 자비를 기대하게 하시고, 넘쳐남으로 인하여 나태해짐을 경계하게 해주세요. 마음속에 주님보다 우선하는 것들과 교만의 싹을 뿌리뽑게 하셔서 순전한 눈으로 주님을 대하게 하여주세요. 경건의 최종 목적지에 다다를 때까지 보는 눈과 듣는 귀를 허락해 주세요.
자비와 공의를 지키시는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