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삿 20:1-8 “우리들의 이야기”
1. 미스바에 모인 이스라엘 백성들이 한 사람도 자기 장막으로 돌아가지 말자 하고 (합심하여) 기브아 성읍을 치려고 합니다. 7-11절
이스라엘 전체가 일어나서 베냐민 지파의 범죄를 징벌하자는 것에 다 동의했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땅에 들어와 정착한 후에 이렇게 일체감을 보여 준 일이 없었습니다. 이스라엘의 어떤 지파들이 고난을 당하면 하나님이 사사를 일으키시고 적대국을 징계하려 할 때 그 지파 주변 몇몇 지파들이 가서 싸운 적은 있어도 온 지파가 돕기 위해 모여서 싸운 적이 없었습니다. 형제를 도우러 갈 때 조차도 하나가 된 적이 없었습니다. 우리는 이 이야기를 통해서 혹시 우리는 어려운 형제를 도와야 할 때 함께 모여서 하나가 된 적이 있었는지, 혹 내가 손해를 보거나 피해 입을까 봐 머뭇거리거나 동참하지 않았던 적은 없었는지 되돌아보게 합니다. 형제를 도울 때는 마음을 쉽게 움직이지 않는데, 혹시 형제를 판단하고 비판하는 데는 더 마음이 빨리 움직였던 것은 아닌지 우리는 생각해 보아야 할 것입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인으로서 정작 도와야 할 때는 모르는 척하고 혹 형제를 비난할 때는 휩싸여서 같이 아픔의 말을 해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도와줄 권리는 무시하고 비판할 권리만 주장해서는 안됩니다. 우리 그리스도인은 반드시 형제를 도와줄 권리가 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롬 16:19, 딤전 6:18). 형제를 도와야 할 때는 모르는 척하고선 다른 사람을 쉽게 비판한다면 슬픈 일인 것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은 형제 자매와의 관계도 중요시 여겨야 하며, 이것이 진정한 깨어있는 영성입니다.
2. 이스라엘이 베냐민 지파에게 말하기를 기브아 사람들 곧 불량배들을 우리에게 넘겨주어서 악을 제거하자고 하는데 베냐민 자손들이 말을 듣지 않고 기브아에 (모여 싸우고자) 합니다. 12-14절
미스바에 모인 이스라엘 사람들이 말하기를 베냐민 지파여 기브아 성읍의 악함을 안다면 그들이 징계받도록 내어 주라고 합니다. 그들의 죄가 너무 악하기에 징계함으로 이스라엘 전체를 지키자고 한 것입니다. 그런데 베냐민 지파에서 칼을 빼든 자가 26,000명, 기브아 성읍에서의 700명까지 합쳐 총 26,700명이 이스라엘 연합군 40만명과 싸우자고 합니다. 기브아 성읍은 간음하고, 살인하고, 이웃의 여종이나 남종을 탐내어 십계명 중에 3개의 계명을 어긴 것입니다. 이스라엘은 소돔과 고모라 성의 죄악을 재현한 기브아 성읍만 징벌하자는 것입니다. 이들의 전쟁을 통해서 베냐민 사람들 25,000명이 죽었습니다. 40만명대 26,700명의 싸움은 무모합니다. 그런데 베냐민 사람들은 왜 싸웠을까요? 자기들이 더 강하다는 교만함이 있었던 것입니다. 죄로 인해 완악해지면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행동하게 되고 무모해 지는 것을 보여 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회개를 요구하실 때가 있습니다. 그러면 회개하면 되는데 죄를 끌어안고 ‘나는 괜찮다’고 하다가 큰 어려움을 겪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언약 안에서 도우시기도 하지만, 언약 안에 있기에 징계를 통해서라도 하나님의 구속사를 살게 하더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영적 은혜의 비밀입니다(삼하 7:14-16). 하나님이 맺은 언약은 우리를 끌고 가십니다(엡 2:19).
3. 베냐민 지파만의 이야기가 아니라 (이스라엘 모두)의 이야기입니다.
이스라엘은 자기들의 뜻대로 싸우다가 40만명의 군사를 가졌음에도 총 4만명이 죽습니다(삿 20:22, 25). 40만명의 군사가 있었음에도 베냐민에게 2번이나 크게 패했으며, 3번째 싸움에서는 베냐민 지파의 25,000명이 더 죽었습니다. 그러니까 형제끼리 싸워 서로 죽이고 죽은 자가 65,000명입니다. 결국 이스라엘이 회개하지 않고 자기들의 소견의 옳은 대로 행하다가 엄청난 슬픔을 당한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의 백성으로 살지 않으니까 하나님은 아픔을 통해서라도 멈추고 돌이키게 하는 것입니다. 결국 이스라엘은 슬프고 아픈 고난을 겪고 나서야 비로소 벧엘로 올라가 울며 저물도록 금식하고 번제와 화목제를 하나님 앞에 드렸습니다. 이스라엘은 많은 군사들이 죽고 나서야 비로소 잘못되었다는 것을 안 것입니다. 이전에는 묻긴 물었는데 형식적으로 묻기만 하고 자기들 뜻대로 싸운 것입니다. 우리는 고난이 없으면 자기가 잘하는 줄 아는 경우가 있습니다. 일이 잘되면 내가 죄를 지었어도 괜찮다고 생각하고 하는 경우가 있다는 것입니다. 고난이 없다면 죄를 인정하지 않고 살아 버렸을 것입니다(시 119:71-72). 하나님은 하나님의 백성이 된 우리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의 법을 지키어 하나님을 나타내라고 말씀하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