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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 1:1-4 “예수님의 가치 Ⅱ”
1. 예수님은 그 (본체의 형상)입니다. 3절
‘그 본체의 형상’이라는 것은 예수님이 하나님의 형상이라는 것입니다. ‘본체’(헬/ 히포스타 쉐오스)는 철학적 용어로 ‘존재하는 근본’이라는 의미입니다. 말하자면 본체는 존재하지만 본체를 볼 수 없는데 형상이 오셔서 본체의 실체를 보게 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본체는 우리가 볼 수 없습니다. 그러나 없는 것이 아니라 실체를 볼 수 없을 뿐입니다. 그런데 형상으로 나타나 본체의 보습을 우리에게 보게 해 주신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본체를 볼 수 있다는 것은 큰 영광입니다(골 1:15, 엡 2:8-9). 사도 바울은 이 만남의 감격을 ‘항상 복종하여, 두렵고 떨림으로 구원을 이루어 간다’고 표현합니다(빌 2:12). 그리고 예수님은 ‘나를 본 자는 하나님을 보았다’라고 하십니다(요 14:8-10).
2. 예수님은 그의 능력의 말씀으로 만물을 (붙드십니다). 3절
만물은 모든 피조물을 말합니다. 만물을 붙들었다는 것은 그리스도의 통치영역에서 벗어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는 것입니다. ‘붙들다’(헬/ 페론)는 ‘인도하다, 이끌어가다, 유지하다’ 입니다. 붙들었다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가 어떤 목적을 향해 만물을 이끌어 가심을 의미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만물의 창조자이고 주인으로서 목적을 향하여 즉 구속사의 길을 향하여 완전하고도 영원한 생명의 길로 만물을 이끌어 가신다는 것입니다. 즉, 우리를 위해 세상 죄를 지고 간 어린양 예수님이 지금도 자신의 능력 있는 말씀을 통해 모든 피조물을 통치하면서 구원의 길로 이끌어 가신다는 것입니다. 죄를 정결하게 하는 일을 통해서 말입니다. 이미 십자가에서 한번에, 영원히, 온전히 우리의 모든 죄악을 대속하셨지만, 지금도 그의 능력의 말씀으로 통치하며 최종 목적지로 당신의 백성을 안전하게 이끌어 가신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히브리서의 주제입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 우리 주님만이 하실 수 있는 것입니다.
3. 예수님은 지극히 높은 곳에 계신 하나님 우편에 (앉으셨습니다). 3절
예수님이 하나님 우편에 좌정하셨다는 것은 그가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하나님의 영광을 소유하셨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이 성육신하여 이 땅에 왔다가 승리의 귀환을 하셔서 하나님 우편에 좌정하심으로 그리스도, 구원자로서 온 우주, 온 세상을 지배하고 다스린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은 창조주로서 창조하시고 세상을 운행하시며 그리스도는 구속사를 성취하시고 구원의 길로 온 세상을 다스리고 통치하신다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은 지금도 일하시고 역사하셔서 반드시 하나님나라 회복과 완성을 이루어 가십니다. 이것이 복음입니다. 하나님이 찾아오셨고, 우리 죄를 없애 주셨고, 지금도 그의 능력의 말씀으로 만물을 붙드시고 구속사의 목적을 가지고 한 방향인 생명의 길로 이끌어 가십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우리를 기다리신다는 것입니다. 왜 앉으셔서 기다리시는 것일까요? 그 길이 너무 확실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이 마련해 놓으신 그 길을 따라 가면 확실히 예수님을 만나 같이 갈 수 있기 때문에 하나님 우편에 앉아서 기다리는 것입니다. 이 복음이 바로 나를 위한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제 우리에게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이 무엇일까요? 지금 순종하는 자를 기뻐하십니다. 지금 믿음의 행위를 하는 것입니다. 지금 예배하고, 지금 기도하고, 지금 회개하고, 지금 용서하고, 지금 사랑하고, 지금 절제하고, 지금 온유하고, 지금 겸손하고, 지금 인내하는 것입니다. 지금 성령의 열매를 맺어서 지금부터 하나님나라를 살기 시작하고, 지금 여기서부터 하나님나라를 사는 것입니다. 여기서부터 내 아버지 하나님나라를 맛보고 누리고 나누어야 되는 것이지, 다 빼앗기고 다 내어 주고 난 뒤 울며불며 살다가 거기 가서야 하나님나라를 맛보는 삶을 살지 말라는 것입니다(마 6:33-34, 눅 4:18-19).
4. 예수님은 아름다운 이름을 (기업)으로 얻었습니다. 4절
그가 천사보다 휠씬 뛰어남은 천사보다 더욱 아름다운 이름을 기업으로 얻었다는 것입니다. 구약시대의 영향을 받은 사람은 천사가 숭배의 대상이었습니다. 예수님보다 피조물인 천사를 더 숭배했습니다. 이는 예수님보다 더 가치를 두는 것이 있다는 것입니다. 돈, 명예, 자존심, 남편, 자식…. 예수를 하나님의 아들로 보이지 않으니까 또는 하나님의 아들로서 존귀하게 여기지 않으니까 내가 중요한 것에만 마음을 쏟는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가치보다 다른 것에 가치를 두는 것입니다. 오직 예수님만이 그리스도라는 이름을 가질 수 있는 것입니다(마 16:16). 이것이 예수님의 기업입니다. 아무도 ‘구원자’라는 이름의 기업을 얻을 수 없습니다. 오직 예수님 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