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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 4:1-3 “안식과 믿음”
1. 우리가 복음을 들었어도 (오늘 안식)에 들어가지 못하는 이유가 무엇인가요? 1-2절
하나님은 하나님의 백성들이 하나님의 안식에 들어오기를 바라는데, 그 안식에 이르지 못하는 자들이 있을까 염려가 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안식을 주시기 위해서 이미 창세 때부터 준비하셨고 또 주셨는데 이 안식에 들어오지 못하는 것이 안타깝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오늘 본문에서 안식에 들어오지 못하는 자가 있을까 염려가 된다고 하는 이 안식의 의미와 가치는 구약에서 창조하시고 하나님이 누리신 안식보다 더 큰 안식, 놀라운 안식이며, 그리스도를 통해서 이루신 영원한 구원을 완성하시고 누리시는 하나님의 안식입니다. 그런데 혹 믿음과 결부시키지 못해서 누리지 못할 자가 있을까 염려가 된다는 것입니다. 출애굽 1세대인 그들이 복음의 전함을 듣고 모세를 따라 바란 광야에서 안식의 땅 가나안 땅에 들어가라고 했는데 믿음과 결부시키지 못함으로 들어가지 못한 것처럼, 오늘도 복음 전함을 듣고도 믿음과 결부시키지 못해서 하나님이 완성하시고 온전히 기뻐하는 안식에 이르지 못할까 염려된다는 것입니다. 출애굽 1세대 이스라엘 백성들과 달리 우리들은 이미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구원을 얻었고 안식에 들어감이 확정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왜 오늘 내가 있는 곳에서부터 안식에 이르지 못하냐는 것입니다. 그것은 내가 믿음과 결부시키지 못해서 그런 것입니다. 하나님은 지금 믿음과 결부시켜서 누리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이 약속한 영원한 안식을 지금 복음을 받고, 살고 있는 곳부터 누리고 기뻐하고 흘려 보내기를 기대하십니다. 한 부자 이야기입니다(눅 12:16-21). 우리의 안식도 개념 속에 머물러 있어서는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날마다 지금 그 안식을 누리고 흘려 보내야 합니다. 우리가 날마다 살아가는 삶 가운데, 또 관계를 맺는 방식 가운데, 안식이라고 하는 이 소중함이 우리에게 주어진 선물이므로 실제가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이 예수를 통해서 완성한 안식은 실제적이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삶에 진정한 안식이 있는가는 중요한 가치입니다. 하나님 나라는 의와 평강과 희락입니다(롬 14:17, 살전 5:16-18). 오늘 안식을 누려야 기도하게 되고 감사의 고백이 나오는 것입니다. 안식이 없으면 우리가 진정한 자유인의 삶을 살 수가 없습니다.
2.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확정된 하나님이 누리는 (영원한 안식을 보장받은 자)로서 믿음과 결부시킨 이 땅에서의 삶은 어떤 모습입니까? 1-2절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누리는 안식을 보장받은 자로 믿음과 결부시켜 살아야 할 삶의 태도는 행동적 믿음이 수반되어야 합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안식에 들어갈 약속이 여전히 기회가 있을지라도 너희 중에 혹 이르지 못할 자가 있을까 한다는 것입니다. 이는 큰 은혜를 받은 자로서 믿음의 도리를 믿음으로 지금 행동적 믿음이 나타나야 한다는 것이며, 그것이 안식에 들어가기로 확정된 자의 삶이라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대속의 피를 통해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생명의 믿음은 아무것도 안하고, 변화도 없고, 성장도 없이 하늘의 안식에 쏙 들어가는 믿음이 아닙니다. 출애굽 2세대가 가나안에 들어가기로 확정되고, 여호수아를 따라서 그 땅에 갈 자로 행동적 믿음의 행위를 하면서 요단강을 건너간 것을 기억하라는 것입니다. 행동적 믿음이 수반되어야 갈 수 있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와 부르심으로 들어갈 자이기에 들어갈 자로서 말씀을 따라가는 삶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참 생명의 믿음은 행동하는 믿음이고, 행동하는 믿음은 참 생명의 믿음인 것입니다. 믿음은 생명과 결부시킨 삶의 태도입니다. 하나님의 믿음에 대한 요구는 행함입니다. 행함으로 구원이 완성된다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구원사역이 부족해서가 아닙니다. 오히려 예수님의 구원이 완벽하기 때문에 그 완벽의 은혜가 있는 사람은 행동하는 믿음이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예배하고, 기도하고, 구제하고, 섬기고, 나누고, 전하는 이 땅에서 참 안식을 누리고 이 땅에서부터 천국 백성으로서의 삶이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를 믿고 따라가면 현재 우리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영원한 안식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이것은 언약 안에서 확정된 것입니다. 살아 있는 믿음은 행동하는 믿음입니다(약 2:17). 믿음이 있는데 행함이 없는 것은 불가능한 것입니다. 예수님으로부터 온 생명의 믿음은 예수님을 따르는 행동을 하게 합니다. 하나님이 주신 믿음은 내가 믿고 싶은 것만 믿고, 내가 불편한 것을 믿지 않거나 내가 불편한 말씀은 안 받아드리고 내가 편한 말씀만 받아들이는 믿음이 아닌 것입니다.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입니다”라고 고백했다는 것은 예수님의 삶을 따라 사는 제자가 되겠다는 것입니다(마 16:16). 고백하는 삶에 멈추지 말고 예수님을 따라가는 삶을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