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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 11:11-19 “믿음으로 III”
1. 아브라함의 아내 (사라의 믿음)의 이야기입니다. 11절
사라는 약속하신 하나님이 믿을 만한 분이라는 것을 알았다는 것입니다. 사라는 하나님이 믿을 만한 분이라는 것을 확신했기에 잉태 할 수 있는 힘을 얻은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믿음으로 순종해서 믿음의 조상으로서 열국의 아비가 되었고, 사라도 믿음의 조상으로서 열국의 어미라 칭함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부부가 믿음 안에서 하나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남편은 믿음대로 살고자 하는데 아내가 믿음으로 살지 않는다면 그 가정이 한 방향으로 갈 수 있겠어요? 사라도 아브라함을 따라 본토 하란에서 떠나 가나안으로 가는 여정과 가나안에서 사는 동안 무엇을 보고 배웠어요? 하나님이 믿을 만한 신이라는 것을 배운 것입니다. 사라도 경수가 끊겨서 아기를 낳을 수 없다는 것을 알지요. 그래서 아브라함의 후사를 얻으려고 자기 몸종 하갈을 아브라함에게 들여보냈던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너를 통해서 낳은 아이가 아브라함의 후사가 될 것이라고 한 것입니다. 이것은 믿음의 문제가 아니라 자체가 바랄 수 없는 이야기입니다. 그러나 사라는 하나님이라면 정말 그렇게 하실 수 있을 거라는 믿음으로 합방을 한 것입니다. 이것이 믿음이고 믿음의 증거로 아들을 얻은 것입니다. 믿음의 어미가 된 것입니다(롬4:19). 아브라함도 사라도 몸이 죽은 것 같고 태가 죽은 것 같음을 알고도 믿음이 약해지지 않은 것입니다. 하나님은 믿음에 응답하셨습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약속을 성취하신다는 믿음입니다(롬4:17-25). 아브라함과 사라는 하나님이 살아 계신 것과 말씀하시면 모든 것이 가능하다는 것을 믿은 것입니다. 사라와 아브라함은 바랄 수 없는 중에 믿었고 그들이 비록 지시한 땅에서 살지만 하나님이 계획하시고 지으실 하늘의 성을 바란 것입니다(히11:6). 아브라함과 사라는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믿음의 삶을 산 것입니다.
2. 믿음의 사람들은 이 땅에서 (외국인과 나그네)라고 증거 하였습니다. 13-14절
믿음의 사람들은 아벨, 에녹, 노아 아브라함, 사라, 이삭, 야곱을 말하는 것입니다. 믿음의 조상들은 약속을 받고 현실로는 다 보지는 못했지만 믿음 안에서 멀리 있을 일을 그때부터 보고 환영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약속을 마음으로 깨닫고, 사모하며 기다렸다는 것입니다. 앞으로 일어날 약속의 일을 믿었기 때문에 지금 사는 이 땅에서는 외국인과 나그네처럼 살았다는 것입니다. 이 땅에 살지만 내 땅이 아닌 것처럼 살았다는 것입니다. 내 땅은 하늘나라, 하나님이 계신 곳이 본향이라고 믿었기 때문에 이 땅에 살면서도 외국인처럼 나그네처럼 내 땅이 아닌 것처럼 살았다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헷 족속에게 “나는 나그네요, 거류자다”말했습니다(창23:3-4). 아브라함은 그 땅을 바라보고 왔고 그 땅에서 부유한 족장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나그네요 거류자 라고 말합니다. 그의 본향이 하나님이 계신 곳이기 때문입니다. 야곱이 애굽왕 바로 앞에서 그의 인생을 나그네 길이라고 했습니다(창47:9). 야곱이 많은 것을 가지려고 몸부림치고 살았지만 그가 늙어 바로 앞에서 고백하는 것입니다. 아브라함과 야곱의 고백을 볼 때 그들은 자신들의 참된 소망을 하나님이 계신 곳에 두고 살았다는 것입니다. 우리도 그곳을 가기 위해서 살아야 하는데 어쩌면 우리는 이 땅에 눌러앉으려고 사는 것이 아닌지요, 더 많이 가지려고, 더 많이 높아지려고만 하는 것은 아닌지요(히11:16). 하나님이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이라고 불리워도 부끄러워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하나님 자체가 영광스러운 이름인데 그 존귀한 이름 앞에 그들의 이름으로 불리우기를 기뻐하신 것은 그들이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에게로 올 것을 바라고 살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그들을 위하여 성을 예비한 것입니다(요8:56).
3. (믿음으로) 이삭을 드린 아브라함의 이야기입니다. 17절
이삭은 약속의 아들일 뿐만 아니라 아브라함의 후사를 이를 유일한 통로입니다. 소중합니다. 약속의 증거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삭을 바치라고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언약과 하나님의 명령이 충돌됩니다. 하나님이 언약으로 이삭을 주셨는데 하나님의 명령은 이삭을 죽이라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모든 통치와 권위가 하나님에게 있다는 것을 받아들이고 순종합니다. 이것이 쉽지 않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이름을 걸고 한 일에 대해서 내 힘과 노력이 더해지면 그것을 붙잡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내려놓으라고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약속의 증거로 주신 것이라 하더라도 그것이 내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내놓으라고 하면 하나님께 드려야 하는 것입니다. 내가 할 수 있었던 것이 은혜이고 감사인 것입니다. 하나님이 이삭을 바치라고 할 때 아브라함은 틀린 것이 아닌가? 잘못된 거 아닌가? 라는 생각을 멈추고 하나님의 방법으로 하나님이 약속을 성취해 가신다는 것을 믿은 것입니다. 믿음을 붙잡고, 하나님을 신뢰하고, 하나님 말씀에 순종을 한 것입니다. 우리도 우리를 부르신 하나님을 의지하고 믿음 안에서 본향을 바라보고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믿음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