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 4:1-11 “기념비를 세우라”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것이 능력이다. 하나님이 함께 하셔서 도울 수 있는 방법이 세례정신이다. 오늘 이스라엘 모든 백성이 요단을 건넜다.
1. 하나님의 언약이 성취되었다. 1절
모든 백성이 요단을 건너가기를 마쳤다는 것은 하나님의 언약이 성취된 것이다. 하나님은 아브라함 한 사람에게 언약했지만 아브라함만 가나안에 들어가게 한 것이 아니라 아브라함을 통해서 이루어질 이스라엘 민족공동체, 온 백성을 가나안땅에 들어가게 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구속사이다. (창 12:1-3, 갈 3:29)
기념하라고 지금 우리도 12돌을 갖다가 기념해야 하나요? 이제 요단강을 건넌 기념은 세례정신으로 늘 기념 되는 것이다. 하나님은 반드시 나와 함께 언약된 모든 백성이 요단강 건너기를 마치게 하실 것이다.
2. 요단강 건넌 것을 기념하라. 2-3, 19-20절
*기념비를 길갈에 세우라. 너의 삶의 자리에 기념하라(2-3).
*12돌을 강 밑에 기념하라. 물이 흐르면 덮어지는 현장, 수장 되어지는 현장에 기념하라(9).
언약궤가 있는 곳에 12돌로 기념하라. 언약궤는 이스라엘 백성의 모든 죄의 문제가 다 들어있다. 만나, 십계명, 아론의 싹난 지팡이 결국 이 세 가지는 인간의 연약함과 죄악의 문제를 고발하는 내용이다. 주권의 문제, 불순종의 문제, 인간의 죄로 왜 죽어 마땅한 존재인지 보여준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죄를 용서 받은 때 언약궤 위의 시은좌에 대제사장이 피를 뿌린다. 언약궤는 하나님의 임재를 드러내는 상징의 의미도 있지만 더 본질적인 의미는 어린양의 죽음을 이야기 한다. 내가 수장 되어야 할 자리, 내가 죽을 자리에 그분이 죽은 것이고 우리도 함께 죽었다는 것이다. (롬 6:3-4)
롬 6:4 그러므로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음으로 그와 함께 장사되었나니 이는 아버지의 영광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심과 같이 우리로 또한 새 생명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함이라
십자가는 아무리 강조해도 부족함이 없다. 그런데 십자가의 죽음이 목적지가 되어서는 안 된다. 십자가가 덜 중요하다는 것이 아니라 십자가는 내 전부를 걸어도 아깝지 않다. 하나님께서 아들 예수그리스도를 대속의 제물로 십자가에 매달아서 대속하신 것은 십자가가 목적지가 아니라 우리로 또한 새 생명 가운데서 살게 하려 하심이다. 구원은 목적이 아니라 또 다른 출발이다. 구원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다. (고후 5:17)요단강 밑에 왜 12돌이 묻어져야 되는가? 우리의 구원은 그 분의 죽음에서 시작이다. 십자가는 우리를 구원의 길로 들어서게 해서 완성의 길로 가게 하는 출발지다. 어린양의 죽음이 전제되어 있지 않은 사람에게는 요구하지도 않고, 할 수도 없다.
우리의 유숙지에도 12돌 기념비를 세우라. 우리를 위해 죽으신 어린양 사건은 우리의 완성까지도 내포하고 있다는 것으로 우리의 구원은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함께 하겠다는 하나님의 기념비이다. 우리의 삶이 홀로 가는 삶이 아니라 예수님의 죽음의 전제로 계속해서 그 분이 함께 이루어가고 있다.
*하나님과 아브라함과의 언약이 그 모든 백성들을 요단강 건너기를 마침으로 언약을 성취하신 것처럼, 오늘 우리와 맺은 언약이 어린양 예수의 죽음으로 나와 언약하실 때 요단강을 건너야 할 나에게 허락한 백성들도 다 건너는 역사가 성취될 것을 믿고 주님의 죽으신 사건과 동행하는 사건을 기념하는 즉, 수장석과 부활석을 기념하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