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 21:15-19 ‘나를 사랑하느냐’
오늘 주신 이 본문 말씀은 그 동안 우리가 많이 읽고 익히 잘 아는 부활하신 주님과 베드로와의 대화입니다. 그런데 이 말씀을 원어로 읽고 분석해보면 깊이 숨어 있는 메시지를 만나게 됩니다. 헬라어서는 사랑의 표현이 일반적으로 다음의 네 단어를 각각 다르게 표현됩니다. 에로스(e[rw", 성적인 사랑), 스트로게(stroghv, 가족혈족에 대한 자연적인사랑), 필리아(fivlia, 친구에 대한 우정의 사랑), 아가페(ajgavph, 주님이 보여주신 사랑)등 입니다.
1. 우리 주님은 우리의 심장에 주님 향한 사랑, 곧 사랑이 있는지를 묻습니다.
부활 후에 제자들이 세 번째 주님을 뵙는 순간이었습니다. 식후에 예수님은 베드로와 특별한 대화를 나눕니다.
“여기에 있는 너의 동료들이 나를 사랑(아가페)하는 것보다 네가 나를 더 사랑(아가페)하느냐?” 이 때 베드로는 인간인 자신은 도저히 모방하거나 행사할 수 없는 아가페라는 단어를 사용하지 못함을 마음 아파하면서 대답합니다. “예, 선생님, 저는 주님을 (필리아)사랑으로 사랑할 뿐입니다. 나의 사랑이 아가페에 미치지 못하고 겨우 사제지간의 사랑 속에 머물고 있음을 주님은 잘 아시지 않습니까?” 우리 모두 나의 주, 그리스도이신 예수님을 향한 최선의 필리아 사랑이 내 심장에 자리 잡고 있음을 고백합시다. 부활의 신앙을 간직한 성도는 이제는 분명하고 선명한 주님 향한 사랑을 가슴에 품고 있어야 합니다.
2. 우리 주님은 내가 할 수 있는 을 요구하십니다.
4복음서에 예수님의 가르치신 말씀 중에 사랑에 대한 말씀이 수십 번 나오고 있습니다. 사용하시었던 사랑이라는 단어는 모두가 _________라는 단어였습니다. 그래서 _________라는 용어는 주님만이 쓰시는 용어처럼 이해되었습니다. 그런데 한 번, 두 번의 질문에 이서 예수님의 세 번 째 질문에서 주님은 좀처럼 쓰시지 않았던 _________의 용어를 사용하십니다.
“요한의 아들 시몬아, 내가 2번이나 아가페의 사랑을 언급하는데 너는 계속 필리아로 대답을 하는구나. 그렇다면 다시 묻는다. 너는 진정한 필리아 사랑, 완벽한 필리아의 사랑, 혼신을 다 쏟은 필리아의 사랑으로 나를 사랑하느냐?” 주님의 질문이 맞습니다. 베드로가 거듭해서 표현하는 필리아의 사랑이라도 온전했더라면 그렇게 쉽게 주님을 배신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사제지간에 오가는 필리아의 사랑이라도 튼튼했더라면 그렇게 쉽게 베드로가 무너지지 않았을 것입니다.
우리 모두 주님을 사랑하는 사랑을 필리아에서 아가페로 승화시켜 나가십시다. 유아기의 사랑에서 벗어나 성숙한 하나님의 자녀로서 남다른 사랑의 노래를 부릅시다.
3. 부활하신 우리 주님은 는 당부의 말씀을 하시었습니다.
우리 주님은 3번에 걸친 질문과 베드로의 대답이 끝날 때마다 내 양을 먹이고 잘 돌보라는 명령을 하시었습니다. 양을 보살피는데 가장 효율적인 무기는 생명도 아끼지 아니하는 아가페 사랑입니다. 단순한 강조가 아니라 주님의 계명으로 아가페 사랑의 실천을 명하시었습니다.
아가페의 사랑을 실천하는 데는 함께 기뻐하고 함께 슬퍼하는 관심이 이어져야 합니다. 상대를 위해 기도와 보살핌의 책임이 따라야 합니다. 상대를 언제나 존경하는 마음의 바탕이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무엇을 받으려는 마음은 삭제하고 주는 사랑에 깊은 주의를 기울여야 합니다. 그것이 __________ 보살피라는 주님의 명령을 따르는 길입니다. 이 위대한 진리를 깨달은 사도 요한을 통하여 우리에게 말씀 하십니다.
“그가 우리를 위하여 목숨을 버리셨으니 우리가 이로써 사랑을 알고
우리도 형제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는 것이 마땅하니라.” (요일 3: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