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음성은 세미한 음성이다. 그 세미한 음성은 심령을 파고든다. 큰 소리는 한 순간에 감동에 그치지만 작은 소리는 오랜시간 마음에 여운을 남긴다.
한국사회의 문제는 목소리가 너무 크다. 큰 소리 뒤에 싸움이 있다. 작은 소리 뒤에 사랑, 용서, 감동이 있다.
간음한 여인을 놓고 한쪽은 큰 소리가 있다. 이미 결론을 내놓고 돌을 들고 있다.
다른 한편 주님은 조용한 침묵과 함께 작은 소리의 한 말씀이 있었다.
“죄 없는 자가 쳐라.”
그러나 놀라운 사실은 그 작은 주님의 말씀이 양심에 파고들고 마음에 파고들어 사람들이 돌을 놓고 갔다.
인생이란 문제의 연속이다.
문제를 놓고 바리새인처럼 살 것이냐, 예수님처럼 살 것이냐?
바리새인처럼 살려면 매일 큰 소리치고 돌 들고 네 탓이라 그러며 살라.
우리는 예수님처럼 살아야 한다.
첫째, 자신을 돌아보라.
네 자신의 문제를 돌아보고 돌의 문제를 해결하라고 한다.
우리는 내 자신에 대해서 아는 것이 별로 없다. 다른 사람, 연예인, 정치 다른 것은 많이 안다. 그러나 자신은 잘 모른다. 자신이 누구인지 알면 돌을 내려놓을 수 있다.
둘째, 하나님앞에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하나님이 우리를 다 아신다. 우리의 마음속의 생각 깊은 것을 다 알고 계신다.
하나님앞에서 칠 수 있느냐는 것입니다. 형제를 향해 돌을 들고 잇을 때 하나님의 손에 심판의 돌이 들려져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하나님을 모르기에 원수가 너무 많다. 십자가에서 하나님은 우리를 향한 돌을 내려놓으신 것이다.
누군가를 향한 이 돌들을 어떻게 하면 좋겠는가? 하나님을 의식하면서 이 돌의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셋째, 내 생각만을 고집하지 말라.
바리새인 입장에서 보면 이 여인은 죽어 마땅하다. 그러나 예수님의 손에는 돌이 없다. 한번 더 용서할 수 있고 기회를 줄 수 있다는 것이다.
같이 살 수 있는 다른 생각은 없는 것인가? 세상은 다 돌던진다 해도 교회는 그러면 안된다.
예수님은 윈윈 전략을 쓰셨다. 여자도 살고 바리새인도 살았다.
나는 화해의 사람인가? 나는 하나님의 뜻을 이루고 있는 사람인가?
나는 예수님 편에 선 사람인가? 아니면 바리새인 같은 사람인가?
주님처럼 영적 능력의 사람이 될 수 있는 비결이 무엇인가?
예수는 감람산으로 가셨다. 주님의 영적 능력의 비결은 기도에 있었다. 기도함으로 사람을 감동시키고 영적 실력자들이 된다. 태산 같은 문제가 변화되고 해결된다.
사람은 논리로 살지 않는다. 내가 억울하면 상대도 억울하다. 내가 할 말이 많으면 상대도 할 말이 많다. 내가 참으면 상대도 많이 참았다.
큰소리쳐서 해결될 일 없다. 내가 영적인 실력자만 되면 해결될 수 있다.
교회의 문제가 있으면 기도할 때 그 문제가 해결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