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예배

사랑, 그 마지막 남은 한 방울까지라도

박승호 목사 / 요1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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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이스라엘에서는 자기 집에 손님이 오면 대상에 따라 다르게 대접하였다. 그 중 가장 극진한 대접은 집 안에 향을 피우거나 향을 머리에 부어 발라주는 것이다. 예수님이 베다니 나사로의 집에서 받은 대접은 가장 극진한 대접이었다. 예수님은 마리아의 행위를 복음이 증거 되는 곳에 언제나 함께 증거 하라고 명하셨다. 어떠한 신앙의 자세가 이토록 예수님에게 극찬을 받을 수 있을까? 마리아의 믿음의 내용을 본받아 우리의 신앙도 예수님의 극찬을 받는 신앙이 되기를 바란다.

1. 말씀을 경청하는 신앙
눅10:38-42보면 마리아는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사흘 만에 살아나야 한다는 복음을 마리아는 마음에 두었더라고 증거 되고 있다. 마리아는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기억하고 자신의 삶에 실천한 사람이다. 신앙은 잘듣는 것에서 시작한다. 신6:4절에는 이스라엘아 들으라 고 하나님은 하신다. 듣는 것과 들은 것을 자신의 삶에 적용하고 실천하며 잊지 않는 경청하는 신앙이 필요하다. 마리아는 이제 십자가를 앞에 두신 예수님을 이미 예고하신 말씀을 기억하고 있다가 자신의 최선을 다해 이 땅에서 마지막 섬길 기회를 얻은 것이다. 신앙은 잘 듣는 것이다.

2. 지고지순의 사랑의 표현(옥합을 깨뜨린 사람)
나사로의 집에서의 잔치는 나사로의 부활에 대한 보답성의 예수를 위한 잔치이다. 우리는 은혜를 너무 당연하게 받는 경우가 많다. 병 고침이든 사업의 문제해결 이든지, 기도의 응답이든지 모든 응답에 대해서는 반드시 하나님에 대한 응답이 있어야 한다. 거기서 관계가 형성이 되는 것이다. 당시 결혼의 관습에는 신부가 준비할 것이 두 가지이다.하나는 순결한 몸이고 ,다른 하나는 첫날밤 신랑의 몸에 바를 향유 이다.마리아는 십자가의 죽음을 앞두고 계신 예수님을 위해 옥합을 깨뜨렸다. 아브라함이 모리아 산에서 이삭이라는 옥합을 깬 것처럼 지극한 사랑에든 거룩한 낭비가 있어야 한다. 예수를 사랑한 마리아의 이 옥합을 깬 행위는 최고의 사랑을 보여준다. 우리도 예수님에 대한 사랑의 표현이 있어야 한다.

3.마음에 황금을 묵상하고 있는 사람들(계산하는 사람)
사랑하면서도 헌신하지 않는 사람이 있을 수가 없다. 자신이 사랑하는 것에는 가장 비싼 댓 가를 지불하고 만족을 얻으려는 경향이 많다.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은 값비싼 스피커에 기꺼이 거액을 소비하며 이를 아까운줄 모른다. 많이 아까워한다는 것은 사랑하지 않는 다는 말이다. 당시에 옥합은 약 1,500만원 정도의 거액의 가치였다. 황금을 묵상하고 계산을 한다면 당연히 가룟유다 처럼 아까워한다. 일생동안 끊임없이 경제적으로 투자하고 항상 적자를 보면서도 그 적자를 즐거움으로 삼는 사업은 자식교육이다. 어떤 어머니가 자녀에게 투자하면서 뮤튜얼 펀등에 투자하듯이 이익을 계산하면서 투자하는 어머니가 어디 있는가? 있다면 그런 어머니를 진정한 어머니라고 할 수 없다. 어머니는 계산을 하지 않는다. 사랑이 있기 때문이다.

4. 기회를 놓치지 말라

기념비 적인 존재가 되라. 막 14:9에 보면 복음이 전해지는 곳에 마리아의 사건도 전하라고 명 하셨다.마26:13에도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과 마리아의 옥합을 깨뜨린 사건은 거의 같은 무게를 갖는다.우리는 나의 옥합이 무엇인가? 혹은 건강, 물질, 시간, 마음 등등 여러 가지일 수 있다. 옥합은 깨어질 때 향이 드러나는 것처럼 우리의 옥합도 깨어질 때 향이 나온다. 예수께서도 자신을 십자가에서 깨뜨리심으로 그 사랑의 향을 나타내셨다. 테레사 수녀는 “어머니”(마더) 라는 호칭을 앞에다 쓴다. 그는 모든 인류의 어머니였다. 가난한자 병든 자의 어머니였다. 어디서 무엇을 위해 땀을 흘린 것인가? 하나님 나라에 기념비 적인 존재가 되기 위해 땀과 피를 흘릴 수 있다면 가장 값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