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하나님을 이해할 때 우리의 관점으로 고착화된 분으로 이해해서는 안 된다. 하나님은 인격적인 분이시다. 하나님은 사랑의 하나님이시지만 동시에 치는 사랑, 막는 사랑, 찢는 사랑도 하시는 분이시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을 고착화 시켜놓고 자신의 욕망을 따라 하나님을 버리고 세상이 주는 기쁨이 최고인 것처럼 따라가는 경우가 많다.
오늘 본문 말씀의 이스라엘 백성들도 마찬가지였다.
1. 이스라엘의 타락
호 2:2 “너희 어머니와 논쟁하고 논쟁하라 그는 내 아내가 아니요 나는 그의 남편이 아니라 그가 그의 얼굴에서 음란을 제하게 하고 그 유방 사이에서 음행을 제하게 하라”
이스라엘 백성들의 음란, 음행은 영적인 음란함을 말한다. 가나안땅에 정착한 이스라엘 백성들은 가나안땅의 풍요를 동경하면서 가나안의 부요함이 ‘바알신’ 때문이라고 생각하며 우상숭배를 하게 된 것이다. 이들을 향해 하나님은 “저는 내 아내가 아니요 나는 저의 남편이 아니”라고 말씀하셨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깨졌음을 말씀하신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남편 된 하나님을 따라가지 않고 엉뚱하게 연애하는 자를 따라갔다. 하나님은 이들을 창녀라고 표현한다.
호세아서는 호세아와 고멜의 관계를 통해 이스라엘과 하나님의 관계를 가르쳐 준다. 호 1:5 “저희의 어미는 행음하였고 저희를 배었던 자가 부끄러운 일을 행하였나니 대저 저가 이르기를 나는 나를 연애하는 자들을 따르리니 저희가 내 떡과 내 물과 내 양털과 내 삼과 내 기름과 내 술들을 내게 준다 하였느니라.” 고멜은 다른 남자가 복과 풍요를 준다고 기대했다. 그녀의 마음이 남편이 아닌 다른 데로 가있었다.
이것은 고멜의, 이스라엘의 문제가 아니다. 바로 오늘을 사는 우리들의 문제이다. 우리가 가난 할 때는 하나님을 철저히 의지 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시간과 돈이 많아지자 하나님을 찾지 않고 바깥세상을 그리워한다. 문화생활을 동경한다. 교회생활을 불평한다. 세속의 가치를 따라 사는 것이 행복한 삶인 것으로 생각한다. 바알을 따라갔던 이스라엘처럼 세속문화를 교회도 따라가고 있지 않은가? 우리가 흠모하고 사모하는 것이 무엇인가?
2. 하나님의 설득-광야로 데리고 가심
2:6-7a “그러므로 내가 가시로 그 길을 막으며 담을 쌓아 그로 그 길을 찾지 못하게 하리니 그가 그 사랑하는 자를 따라갈지라도 미치지 못하며 그들을 찾을지라도 만나지 못할 것이라.”
연애하는 자를 따르는 이스라엘을 설득하기 위해 하나님은 이들을 광야로 데려가신다. 가시로 그 길을 막으며 담을 쌓아 가는 길을 막아버리는 것이다. 고난을 통해 본남편을 찾도록 하는 것이다.
호 2:7b “그제야 그가 이르기를 내가 본 남편에게로 돌아가리니 그 때에 내 형편이 지금보다 나았음이라 하리라.”
그리스도인은 세상의 질서를 따르는 것이 아니라 다른 가치관으로 살아야 한다. 이것이 변화 받은 그리스도인의 삶이다.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야 한다. 축복의 근원을 혼동하면 안 된다. 세상이 아니라 하나님이다. 세상이 우리에게 행복을 주지 않는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많은 사람들이 세상이 행복을 줄 수 있다고 생각하며 그것을 동경한다. 하나님은 이런 사람들을 구하시기 위해 하나님께서 담을 치시고 광야로 내몰아 다시 하나님을 찾도록 하시겠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가장 무서운 징계는 내어버려두는 것이다. 롬 1:24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저희를 마음의 정욕대로 더러움에 내어버려 두사 저희 몸을 서로 욕되게 하셨으니” 하나님이 포기하면 가장 비참한 사람이 되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예배를 드려도 감격이 없고, 예배에 불참해도 느낌이 없다. 성경을 읽어도 감동이 없고, 성경을 읽지 않아도 별 느낌이 없다. 이런 것을 마치 당연한 것처럼 생각한다. 하나님의 내어버려두신 심판이 아닌가 생각해야 한다. 양심에 화인 맞으면 잘못을 해도 느끼지 못한다. 벌써 내어버려두신 단계까지 들어간 것이다.
감사한 것은 하나님은 우리를 끝까지 포기하지 않으시고 거친들을 배열하시고 돌아오라고 말씀하신다. 이스라엘 백성들 애굽 430년, 광야 40년, 바벨론 포로 70년의 거친들이 있었다. 우리가 살다보면 때로는 거친 광야를 만날 때가 있고, 거친 들판을 걸어갈 때가 분명히 있다. 내가 돌아올 수 있도록 설득시키기 위해서 광야를 배열하신 하나님의 초청이다.
3. 회복
호 2:14-15 “그러므로 보라 내가 그를 타일러 거친 들로 데리고 가서 말로 위로하고 거기서 비로소 그의 포도원을 그에게 주고 아골 골짜기로 소망의 문을 주리니 그가 거기서 응대하기를 어렸을 때와 애굽 땅에서 올라오던 날과 같이 하리라.”
회개하고 돌아오게 되면 하나님의 회복의 역사가 일어난다. 거친들, 아골 골짜기의 심판의 장소가 축복의 시작이 되는 곳으로 변한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복이 되시고 행복의 근원이 되신다. 세상이 아니다. 우리의 우상, 음행을 내려놓자.
4. 하나님의 갈망
호 2:19-20 “내가 네게 장가들어 영원히 살되 공의와 정의와 은총과 긍휼히 여김으로 네게 장가들며 진실함으로 네게 장가들리니 네가 여호와를 알리라.”
하나님의 소원은 우리와 결혼하겠다는 것이다. 남편의 수입으로 아내가 살고, 아내의 수고를 남편이 먹는다. 우리가 주의 은혜로 살고, 주님은 우리를 통하여 영광을 받으신다.
우리가 주님과 한 몸이 되면 주님의 십자가, 부활, 승천의 축복이 다 우리의 것이 된다.
음란하지 말자. 끝까지 찾아오시는 하나님. 가시로 그 길을 막으며 담을 쌓아 연애하는 자를 따르지 않도록 막으시는 주님의 그 배려 앞에 돌이키는 인생이 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