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예배

가나안을 막는 공공의 적

박승호 목사 / 수 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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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철학적 용어가운데 ‘환원론’, ‘환원주의’가 있다. 이것은 개인의 협소한 관점으로 전체를 평가하고 판단하는 것이다. 다시말해 전체를 나의 조그만 관점으로 축소시켜버리는 해석의 틀을 말한다. 하나님을 만났어도 이러한 환원주의적 이해구조를 가지고 있는 사람은 하나님마저도 내가 설정하고 제한하고 결론을 내린다. 교회도 자신의 틀로 해석하여 자신의 마음에 들지 않으면 불평하게 된다. 해석의 기준을 자신한테 두면 안된다. 기준이 내게 있으면 내가 심판주가 되는 것이다. 객관화시킨 눈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성숙한 사람이다. 가데스 바네아에서의 이스라엘 백성들은 환원주의적 이해구조를 가지고 있었다. 그러므로 하나님도 조정하려했고 모세도 조정하려 하였다. 40년동안 하나님은 이들의 이러한 옛모습을 새사람으로 바꾸기 위한 작업을 하셨다. 그러나 그들은 자신의 틀을 바꾸지 않았다. 신앙의 성숙이라는 것은 내가 가진 틀을 버리고 새사람으로 점점 바뀌어가는 것이다. 성경은 성공한 사람과 실패한 사람의 이야기를 기록하고 있다. 이들을 타산지석(他山之石)으로 삼아 신앙의 원칙을 설정해야 한다. 여호수아가 가나안에 들어갈 수 있었던 원리가 무엇인가? 핵심을 잡아야 한다.

1. 눈- 초점 맞추기
하나님의 약속의 땅을 바라봐야 한다. 〔수 1:2〕“내 종 모세가 죽었으니 이제 너는 이 모든 백성과 더불어 일어나 이 요단을 건너 내가 그들 곧 이스라엘 자손에게 주는 그 땅으로 가라.” 다른 것에 마음을 빼앗기지 않고 약속을 바라봐야 한다. 마치 고 3학생에게 다른것에 신경 쓸 때가 아니라 지금은 공부에 집중할 때라고 말하는 것과 같다. 무엇이 중요한지 알아야 한다. 집중할 때 기업을 얻을 수 있다. 그러나 사단은 자꾸 우리가 집중하지 못하고 다른 것을 붙잡도록 유혹한다. 모세도 예수님도 방해자들이 있었다. 그러나 거기에 마음을 빼앗기지 않고 정말 중요한 인류 구원에 집중했다. 지금 우리가 집중해야 할 것은 예수님이다. 구약에서의 땅은 신약에서 그리스도이다. 그리스도가 나의 기업이 되어야 한다. 사람, 사건, 환경, 광야를 통해 그리스도께로 집중시키시는 하나님의 구속과정을 보라.〔골 1:12-14〕 “ 우리로 하여금 빛 가운데서 성도의 기업의 부분을 얻기에 합당하게 하신 아버지께 감사하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그가 우리를 흑암의 권세에서 건져내사 그의 사랑의 아들의 나라로 옮기셨으니 그 아들안에서 우리가 속량 곧 죄 사함을 얻었도다.” 나로 예수님께 집중하지 못하도록 하는 것이 무엇인가? 그것들로부터 눈을 돌려 예수님께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

2. 안에 있는 적을 잡으라.
대부분의 사람들은 적이 바깥에 있다고 생각한다. 이스라엘 백성들도 계속 바깥쪽을 바라보며 불평했다. 그러나 적은 밖에 있지 않다. 내 안에 있는 적이 무엇인가? 마음에 집중하는 것이 가나안을 여는 열쇠이다. 〔수 1:6〕“마음을 강하게 하라 담대히 하라 너는 이 백성으로 내가 그 조상에게 맹세하여 주리라 한 땅을 얻게 하리라” 칭기스칸은 대제국의 칸이 된 비결을 이렇게 말한다. “나는 내 이름도 쓸 줄 몰랐으나 남의 말에 귀를 기울이면서 현명해지는 법을 배웠다. 적은 밖에 있는 것이 아니라 내 안에 있었다. 나는 내게 거추장스러운 것은 모조리 쓸어버렸다. 나를 극복하는 순간 나는 칭기스칸이 되었다.” 내 안에 있는 나는 어떤 나인가? 일관성이 없는 나, 남의 말에 중심이 흔들리는 나, 약속을 지키지 않는 나, 불성실한 나, 의심하는 나는 아닌가? 이런 것을 잡아야 한다. 〔수 1:7〕 “오직 너는 마음을 강하게 하고 극히 담대히 하여 나의 종 모세가 네게 명한 율법을 다 지켜 행하고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말라” 하나님을 신뢰하고 기대하고 기다리는 마음이 있어야 한다. 모든 싸움의 결정은 이미 마음에서 결정된다. 마음이 흐트러지면 판단도 이해도 다 헝클어진다. 감정적이 되고 객관성을 잃게된다. 관점과 가치의 기준이 무너지면 안된다. 목적이 분명하면 상황들에 대한 평가가 달라진다. “무슨뜻이 있겠지, 무엇을 돕기 위해 이 일을 배열하셨나?”말할 수 있어야 한다.

3. 언어생활을 조심하라.
〔수 1:8〕“이 율법책을 네 입에서 떠나지 말게 하며 주야로 그것을 묵상하여 그 가운데 기록한 대로 다 지켜 행하라 그리하면 네 길이 평탄하게 될 것이라 네가 형통하리라.” 성경적으로 성공한 사람은 살리는 사람이다. 나이가 들었어도 인격적으로 존경받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다. 사회적으로 돈을 벌고 성공했어도 내면세계는 정복하지 못한 사람이 있다. 존경받는 사람은 내면세계가 큰 사람이 존경을 받는다. 돈, 명예, 인기가 아니다. 여호수아서는 전쟁이야기 인데 마음, 영적인 문제만을 이야기 한다. 지나온 세월들을 정검해 볼 때 정말 내게 힘들었던 것은 돈, 사람, 환경이 아니다. 내 마음을 지키지 못한게 가장 큰 문제였다. 외부의 적은 져도 곧 극복할 수 있다. 그러나 내면의 적은 그렇게 쉽게 정복되는게 아니다. 가나안을 정복하기 위해 수 6:에서 말하지 말 것을 명령하셨다. 언어생활을 조심해야 가나안이 열린다. 복음의 사람들은 살리는 사람이다. 사람을 살리는 최고의 도구는 언어이다. 사람은 말로 세움을 입는다. 내면세계를 잘 다루어 언어를 조심하고 살리는 사람들이 되어야 한다.

4. 하나님이 보장하시는 결과
〔수 1:5〕“너희 평생에 너를 능히 당할 자 없으리니 내가 모세와 함께 있던 것같이 너와 함께 있을 것임이라 내가 너를 떠나지 아니하며 버리지 아니하리니.” 우리는 하나님의 목적대로 형상으로 대행자로 세움을 받았으나 공공의 적 때문에 모든 것을 상실하고 광야에서 생애를 보낸다. 무엇에 관심을 두고 살아야 하는가? 무엇을 대적해야하는가? 우리의 가나안을 막고 있는 공공의 적을 무찔러 승리하는 인생들이 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