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예배

「가나안으로 가는 길-④여호와의 군대장관」

박승호목사 / 수5:1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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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성경은 한 하나님을 묘사하지만, 여러 가지 모습으로 묘사하고 있다. 토라는 창세기에서 신명기까지 5권을 말하는데 일명 모세오경이라고 한다. 여호수아서는 모세 오경의 결론부분이라고 해서 6경이라고 하기도 한다. 그리고 여호수아서는 총24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전체를 살펴보면
1-5장: 준비과정 -가나안 땅을 정복하려면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가? 하는 것을 보여준다.
6-12장:정복과정-아간의 처리, 기브온의 족속과의 약속 등
13-21장:분배과정 -기업을 분배 받고 지키는 사람, 빼앗기는 사람이 있었다.
22-24장:다음세대에 대한 유언의 내용을 싣고 있다.

여호수아서는 우리에게 하나님의 약속이 무엇인지, 그리고 그 약속인 사명을 이루어가는 방법들과 축복의 개념을 정리하게 해준다. 다시 말해, 요단강을 어떻게 건넜고, 여리고 성을 어떻게 정복했으며 가나안땅을 정복하는 일에 대한 믿음의 열쇠들을 가르쳐 주고 있다. 가나안을 누리는 것은 신약에서 천국을 누리는 것으로 비유할 수 있다. 가나안 정복사는 위기의 때에 위기를 어떻게 극복해 가야하는지, 그 지혜가 무엇인지를 보여준다.
우리가 사는 세상에는 여러 위기들이 있다. 장애요인들 앞에서 우리가 잡은 약속으로 어떻게 신앙을 구현해 가는가가 중요하다. 신앙을 끝까지 견고하게 붙잡는 것은 영원불변의 약속을 붙잡는 것이다. 이것이 성공의 중요한 원리이다.
오늘은 가나안으로 가는길 마지막 결론 편이다. 어떤 사람에게 가나안이 열리고 어떤 사람은 안열렸는데 하나님의 관점에서 살펴보자.

Ⅰ. 격려와 지지 용기를 북돋아 줌(1-9)
여호수아에게 하나님은 염려하지 말라 . 내가 너와 함께 하겠다. 계속 용기를 북돋아 주는 말씀이다.
[수1:2]내 종 모세가 죽었으니 이제 너는 이 모든 백성으로 더불어 일어나 이 요단을 건너 내가 그들 곧 이스라엘 자손에게 주는 땅으로 가라
일어나 주는 땅으로 가라. 이제 때가 되었다는 말이다. 이때가 언제인가? 모세가 죽은 때이다. “내 종 모세가 죽었으니” 이 말씀의 뉘앙스는 마치 죽기를 기다렸던 것처럼 말씀하신다. 모세가 죽었다는 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는 위기이다. 지도자를 잃고 의기소침에 해 있을 때, 하나님은 아니다. 이제는 들어가야 한다고 말씀하신다. 사람은 끝났다고 할 때 하나님은 그 때가 시작이라고 하신다. 사람은 문제점 때문에 안된다고 할 때, 하나님은 그 문제점 때문에 할 수 있다고 말씀하신다. 곧 인간의 절망이 하나님의 희망이다. 인간의 절망이 하나님을 붙잡는 요인이 된다. 사람은 적당히 의지할 것이 있으면 하나님을 찾지 않고 자기의 가능성을 의지한다. 하나님은 우리가 붙들고 있는 것이 있으면 못주신다. 그래서 죽을 때까지 기다리신다.
아브라함에게 이삭은 아브라함의 절망의 때에 주신 희망이다. 일어나라 이제 주는 땅으로 가라고 명령하신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힘을 북돋아 주신다. 상황과 하나님의 약속 사이에서 하나님을 보는 것이 중요하다.
여리고의 실상, 사실은 이러하다.
[수5:1]요단 서편의 아모리 사람의 모든 왕과 해변의 가나안 사람의 모든 왕이 여호와께서 요단 물을 이스라엘 자손들 앞에서 말리시고 우리를 건네셨음을 듣고 마음이 녹았고 이스라엘 자손들의 연고로 정신을 잃었더라
이스라엘의 소식을 듣고 적군의 왕이 정신을 잃고 간담이 녹았는데 이스라엘은 이것을 모르고 지도자도 떠났으니 누굴 믿고 사느냐고 희망이 없다고 절망하고 있다. 두려움을 이길 수 있는 비결은 하나님의 약속을 붙잡는 것이다. 환경이 어려운 것이 아니라 하나님에 대한 신뢰가 어렵다. 이 신뢰를 쌓기 위해서 40년이 걸렸다.
전쟁을 준비하는 것은 신뢰를 쌓는 것이다 선포하는 메시지를 얼마나 신뢰할 수 있느냐? 광야에서 그렇게 기적을 보았지만, 그들은 하나님을 믿지 못한다. 그래서 믿음은 축복이며 선물이다.
우리는 이길 수 있다. 그 작은 자가 천을 이루고 약한 자가 강국을 이룰 것이다. 우리의 가능성 때문에 이기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약속 때문에 이길 수 있다. 중요한 것은 환경을 볼 것이냐 하나님의 약속을 볼 것이냐 하는 것이다. 아이도 없는 아브라함에게 네 자손이 바다 모래알 같을 것이라고 하신다. 아브라함이 그 말씀을 신뢰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믿음을 원하신다. 네가 가나안을 얻을 것이라고 할 때, 이 말씀을 믿으면 갈 것이고 못 믿으면 못간다.
엘리사의 종 게하시가 아람군대를 보고 놀랐을 때, 엘리사가 그 눈을 열어보여 달라고 기도했다. 엘리사는 이미 영안으로 천군천사를 보았지만, 게하시는 보지 못했다. 눈에 보여서 보는 게 아니다. 신뢰가 보게 하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 눈에는 자꾸 환경이 보인다. 우리의 연약함이 보인다. 사람의 소리가 들리고, 나의 환경을 보며 절망하게 된다. 그럴 때 하나님의 소리를 들어야 한다.
[딤후1:7]“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것은 두려워하는 마음이 아니요 오직 능력과 사랑과 근신하는 마음이니"
두려움은 하나님이 기뻐하지 않으신다. 우리는 우리 자신을 기뻐해야 한다. 연약하지만, 중요한 것은 지금도 구속사를 이루시는데 나를 사용하신다는 사실이다. 자기를 존대할 줄 모르는 사람은 하나님의 눈으로 자기를 보지 않는 사람이다. 나는 존귀한 사람이다. 이것이 하나님이 나에게 기대하는 사람이다. 누가 나를 뭐라 하든지 하나님의 시각으로 나를 봐야 한다 자기를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다른 사람을 사랑할 수 없다. 자기를 용납할 줄 모르는 사람은 남을 용납할 수 없다. 하나님을 제대로 만나서 자기를 용서한 사람은 다른 사람을 용서하게 된다.
우리의 환경이 나빳더라도 좋은 이웃을 만나면 치유가 되지만, 주위에 그런 사람이 적다. 어떻게 하면되나? 내가 나를 칭찬하고 존대할 때 치유가 된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두려워말라고 말씀하신다. 너는 내 것이라고 말씀하신다. 아무리 하나님께서 내게 말씀하셔도 믿지 않으면 소용이 없다. 그러므로 자신이 치유되기 원한다면 매일 아침 거울을 보면서 외쳐 보아라. 나는 존귀한 자야. 나는 큰 일을 행할 사람이야. 나는 수많은 사람에게 하나님의 얼굴로 나아갈 거야. 자기를 긍정하는 이런 말에 자존감이 회복되고 자신감을 얻게 되고 용기를 갖게 된다.
하나님은 나를 격려하는데 내가 나를 짓밟는다. 그러면 희망은 사라진다.
♬눈을 들어 산을 보아라. 너의 도움 어디서 오나. 천지 지으신 나를 만드신 여호께로다. ♬내 안의 가능성 때문이 아니라 위에서 오는 능력 때문에 찬양하라.
신명기 20장에서는 제사장이 할 일을 설명하고 있다.
[신20:1 -3]“네가 나가 대적과 싸우려할 때에 말과 병거와 민중이 너보다 많음을 볼찌라도 그들을 두려워 말라 애굽 땅에서 너를 인도하여 내신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와 함께 하시느니라 너희가 싸울 곳에 가까이 가거든 제사장은 백성에게 나아가서 고하여 그들에게 이르기를 이스라엘아 들으라. 너희가 오늘날 너희의 대적과 싸우려고 나아왔으니 마음에 겁내지 말며 두려워 말며 떨지 말며 그들로 인하여 놀라지 말라 ”
제사장은 환경을 일깨워 겁주는 사람이 아니다. 하나님의 위로의 메시지를 전달하는 사람이다. 나는 제사장이다. 하나님의 메시지를 전달해야 한다. 거짓선지자란 자기 평가로 사람을 진단해서 말하는 사람이다. 부모가 자녀를 평가해서 환경을 말하고 연약함을 말하면 그것은 거짓 선지자이다. 심지어 목사가 거짓 선지가 있다. 언제까지 희망을 말해야 하는가? 죽을 때까지이다.
예)영국의 외과의사 모이한은 다른 사람이 들여다 볼 수 있게 수술실을 만들어 놓고 수술실을 공개를 했다. 얼마나 수술하는 것에 대해서 공포가 많은가? 사람들이 보는 가운데 수술을 하면 얼마나 떨리겠는가? 그는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하나님이 계셨기 때문에 나는 누구에게도 방해받지 않고 수술을 합니다.” 이것이 집중의 원리이다. 수많은 사람이 나를 지적해도 오직 주님을 바라보면서 가면 된다. 주님은 나를 도우시는 분이시다.
♬나의 등 뒤에서 나를 도우시는 주 ♬
수 많은 사람의 비아냥거리는 소리는 듣지 말고 오직 하나님의 음성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하나님은 어떤 분이신가? 격려하고 지지 하고 용기를 복돋아 주시는 분이시다. 영어의 임파워링이라는 말은 힘을 북돋아 주는 것을 말한다. 하나님이 바로 나에게 그런 분이시다.
설교를 듣고 용기가 나고 해봐야 겠다고 생각하게 만들어야 한다. 담대하라. 용기를 잃지 말아라.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말아라. 신앙의 싸움이다. 일어나라!

Ⅱ. 기생라함을 준비시켜 놓으심
여리고는 철옹성이다. 그런데 라합을 준비시켜 놓으셨다. 누군가 정탐군이 들어왔음을 가서 고자질 하는 사람이 있었다. 때로 우리를 고발하는 사람이 있다. 때로는 우리를 죽이려는 사람이 있다. 그러나 그런 사람만 있는 것은 아니다. 우리를 도와줄 사람이 있다. 바로 라합이다. 애급에서 이스라엘민족의 씨를 말리려고 했을 때, 산파가 도와주었다. 모세가 물속에 흘러갈 때 바로의 공주가 모세를 살려주었다. 하나님만 나를 도우시는 것이 아니라 내 곁에 나를 돕는 사람들이 있다. 그 도움을 인정해야 한다. 죽이려는 사람만 보고 위축될 필요가 없다. 하나님은 광야의 상황을 직명하게 하되, 위기의 때 그것을 피할 수 있도록 하셨다.
하나님의 은혜를 감사할 수 있는 사람을 붙여주신다. 끝장났구나. 했을 때 전혀 생각지 않던 사람이 나타나서 도와주고 떠난다. 이것이 광야의 생활이다. 뜻밖의 장소에서 뜻밖의 사람을 만난다. 이런 훈련들을 통해서 하나님과의 신뢰관계를 형성한다. 내가 하나님을 믿을 뿐 아니라 하나님이 나를 믿으셔서 맡기신다. 그렇다면 나는 고발하고 헤치려는 사람이 될 것이냐? 기생 라합처럼 하나님의 사람을 도와주는 사람이 될 것이냐 하는 선택을 해야 한다.
신앙생활에 고독이 있다. 나만 버림받은 것 같아 외로울 때가 있다. 엘리야가 오직 나만 남았다고 탄식했을 때 하나님은 오히려 숨은 칠 천 명이 있다고 말씀하신다. 고달픈 나의 현실 속에 나를 파송대장으로 보내셔서 다른 사람을 변화시키라고 하신 것이다. 나는 믿지 않는 우리 가정 속에 세상 속에 요셉처럼 미리 보냄을 받은 것이다.
라합 한 사람이 변화되니까 그 가족, 친족이 다 살았다. 우리 울타리 안에 몇 사람이 있는지 보라. 울타리를 넓게 하라. 그 큰 날개로 껴안으라. 기본역량이 천이다. 스스로를 약화시키지 마라. 스스로를 과소평가하지 마라.
내가 밝은 미소를 지으므로 다른 사람들이 살게 될 것이다. 우리는 기생 라합의 삶을 살아야 한다. 기생 라합이 하나님의 사람을 살리려다 일족이 멸할 위기를 넘어야 했다. 하나님의 일을 하려는 사람을 돕는 일에 자기 생명을 걸었던 것이다. 붉은 줄은 자기 생명을 건 희생의 피가 거기에 있다. 나는 그리스도를 위해서 어떤 대가를 치렀는가?
살리는 일은 붉은 줄이 있는 사람, 십자가를 가슴으로 껴안고 살아가는 사람만이 한다. 살리는 일은 성령 받은 사람의 일이다. 다른 사람을 살리는 사람은 결국 살게 된다. 이스라엘의 승리 때, 라합은 살았다. 누가 마지막 때 끝까지 살아남는가? 사람을 살리는 일을 한 사람이다.

Ⅲ. 언약궤를 따르라(3)
이스라엘은 일 년에 비가 두 번 온다. 이른 비와 늦은 비라고 하는데 이른 비는 10월과 11월에 오는 비이다. 늦은 비는 4월과 5월에 오는 비이다. 하필이면 우기 때 요단강이 넘칠 때 요단을 건너가라고 하시는가? 요단의 경험을 하게 하여 말씀대로 하면 된다고 하는 믿음을 키우시려는 하나님의 의도였다. 요단강은 순종의 훈련이다. 작은 위기를 만나서 연단을 받게 하여 큰 위기를 대비하게 하신다. 하나님은 처음부터 큰 싸움을 싸우게 하시지 않으신다. 다윗이 처음부터 골리앗과 싸운 것이 아니다. 사자와 싸우고, 곰과 싸우게 하셨다가 어느 날 골리앗과 싸우게 하셨다.
야곱은 하나님의 하시는 말씀을 못알아 들었다. 그래서 그를 변화시키기 위해 더 잘 속이는 고수인 외삼촌를 만나도록 하셨다. 속이는 일을 당하면서 자신을 돌아보도록 하신 것이다. 잘못된 자아를 깨어지게 하고 연단 받게 하셔서 사람을 만드신다. 이런 것을 보면 우리가 좋은 일을 통해서도 도움을 받지만, 궂은일을 통해서도 도움을 얻게 됨을 알게 된다.
요단강이 있었기에 여리고도 이길 수 있었다. 그러므로 우리는 작은 일에 소홀히 할 수 없다. 작은 일에 충성하는 사람이 나중에 큰일을 하게 된다. 마태복음 달란트비유에서 “네가 작은 일에 충성하였으니 내가 큰 것으로 네게 맡기리라”고 말씀하셨다.
광야에서는 모세 한 사람의 카리스마로 움직였다. 그러나 여호수아 때는 이름 없는 제사장의 뒤를 따르게 하신다. 가나안은 이름 모를 제사장에 의해 인도된다. 교회에서도 담임 목사님 뿐 아니라 각 셀에서 셀장이 나의 리더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셀장에게 순종하는 훈련을 잘 해야 하나님께 순종하게 된다.

Ⅳ. 기념비를 세우라
길갈에다 열두 돌을 기념비로 세우라고 하신다. 기념비란 그 뜻을 두고 두고 새기기 위해서 세우는 것이다. 성찬식을 하는 것은 주님의 살과 피를 기념하는 것이다. 성찬식을 하면서 우리는 주님이 우리를 위해 죽으신 죽음을 다시 새기는 것이다. 기념비를 세워 하나님이 우리를 도우셨다는 것을 기념하고 그 하나님을 섬기며 하나님 중심의 원칙으로 살라는 뜻이다.
그렇다면 나는 절대로 잊어서는 안 되는 일, 반드시 기억해야할 원칙이 있는가? 천국의 삶, 가나안의 정복은 중심이 있는 인생임을 말한다. 기준점이 중요하다. 검증하는 잣대가 필요하다. 자기 판단, 자기 느낌, 그런 것은 중요하지 않다. 객관적인 기준점이 더 중요하다. 하나님 중심으로 사는 사람은 스스로 자신을 지키기 위해 무너지지 않는 원칙이 있어야 한다.
레위기 중심의 신앙생활은
1-7장까지는 하나님 중심의 제사가 있는가? 하나님을 만지는 제사
8-10장, 21-22장: 나를 이끌어 주는 제사장이 있는가?
11-15장, 18-20장: 구별된 삶이 있는가? 부정한 것을 피하려는 결단
16-17장: 피흘리는 제사
23-25장: 안식일, 안식년, 희년, 7대절기, 3대절기가 있는가?
26-27장: 축복과 저주, 서원한 것을 지키라

다시 말해 내가 붙잡아야 할 기념비가 있어야 한다. 내가 어떻게 살 것인가하는 문제에 있어서 하나님을 만난 기념비가 있어야 제대로 살게 된다.

Ⅴ. 여호와의 군대장관
우리가 어떤 일을 해나갈 때, 계획을 하고 가는데도 자칫 엉뚱한 방향으로 흐르기 쉽다. 그래서 반드시 중간에 계획대로 잘 가고 있는지에 대한 점검이 필요하다. 이스라엘은 가나안 정복을 앞두고 하나님으로부터 몇 가지 점검을 거처야 했다.
할례와 유월절, 그 땅의 소산물이다. 할례는 내 중심인가 하나님 중심인가를 보여주는 것이다. 유월절은 늘 자신을 정결케 하는 회개기도, 죽음의 사자를 피하는 십자가 공로를 의지하는 것이 있는가하는 점검이다. 그리고 그 땅의 소산물을 먹을 준비가 되어 있는가? 이제 기적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 위에 내가 가꾸는 결실이 있어야 함을 말한다. 이렇게 준비된 들에게 여리고가 열리기 직전에 하나님은 여호와의 군대장관을 보내주신다. 네 신발을 벗으라. 신발은 주권을 상징한다. 자기 주권을 내려놓고 완전히 복종해야함을 말씀하시고 계신 것이다.
하나님은 우리가 승리하도록 하나님의 사자를 먼저 보내어 가나안 족속을 쫒아내시며 도우신다.
[출23:20]“내가 사자를 네 앞서 보내어 길에서 너를 보호하여 너로 내가 예비한 곳에 이르게 하리니”
그런데도 사람들이 왜 못들어 갔는가? 순종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엘리야에게 까마귀를 통해서 도우셨고, 기생 라합을 통해서 도우셨고, 여호와의 군대장관을 보내어 도우신다.

월터 미셀박사가 어떤 사람이 성공할 가능성이 있는가에 대한 실험을 했다. 만족유예실험(4세 아동 대상) 이다. 마시멜로라는 캔디를 주면서 15분간 먹지 않으면 돌아와서 상으로 하나를 더 준다고 했는데 약 절반이 캔디를 먹지 않고 기다렸다고 한다. 그리고 이 실험을 한 사람들을 15년 후에 추적해 봤더니 캔디를 먹지 않고 기다렸던 아이들이 15년 후에 훨씬 학업성적도 우수하고 성공하더라는 결과를 확보했다고 한다. 성공은 누가 하는가? 눈앞에 보이는 대로 행동하는 사람이 아니라 인내하는 사람이 성공한다는 결론이다.

결국 이 책은 다섯 가지 마지막 결론을 이야기 한다.
성공을 위해 수립해야할 5가지이다.
①변화를 위해 필요한 것은 무엇인가?
②나의 장단점은 무엇인가
③궁극적인 목표는 무엇인가?
④목표달성을 위한 계획은 있는가?
⑤계획실천을 위한 행동지침은 무엇인가?
원대한 꿈을 꾸되, 그 꿈을 실현할 수 있는 계획을 세우자. 그리고 그 계획을 점검하자. 여호와의 군대장관이 있으니 해보자고 외치라. 끝까지 실천과 인내를 통해서 가나안을 이루는 우리 모두가 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