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경기에는 전반전과 후반전 사이에 하프타임이 있다. 축구선수들은 이 하프시간에 쉬면서 전반전의 결과를 평가하고 작전을 짜기도 하며 감독은 선수들을 격려하는 등 후반전을 준비한다. 그러므로 축구경기에서 이 하프타임은 매우 중요한 시간이다. 전반전에 잘 뛰었어도 하프타임을 어떻게 보내느냐에 따라 승패가 결정될 수 있기 때문이다.
창세기 35장의 주인공 야곱은 특이한 사람이었다. 대단한 야심가였고, 집념의 사나이였다. 자신의 목적을 위해서 잔꾀를 부리는가 하면, 장자의 축복을 얻기 위해서라면 아버지와 형을 속이는 등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다.
자신의 노력에 의해서 뭔가 얻은 것 같고 성공한 것 같았는데 야곱의 인생에 위기가 왔다. 이 아픔의 시간을 통해서 그는 인생의 궤도를 수정을 하게 된다.
야곱의 궤도수정으로 인해 그의 이름은 야곱(속이는 자)에서 이스라엘로 바뀌고 한 나라의 국부가 된다. 비록 출발선에서는 간사한 존재였지만, 그의 인생끝에는 바로를 축복하는 사람이 되었고, 이스라엘 12지파의 미래를 예언하며 축복하는 위대한 선지자로, 왕권을 가진 제사장으로 변했다. 무엇이 그를 이렇게 변화되게 하였는가?
Ⅰ. 일어나 벧엘로 올라가라.-초심의 마음-엘벧엘
[창28:14-15] “네 자손이 땅의 티끌 같이 되어서 동서 남북에 편만할찌며 땅의 모든 족속이 너와 네 자손을 인하여 복을 얻으리라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너를 지키며 너를 이끌어 이 땅으로 돌아오게 할찌라 내가 네게 허락한 것을 다 이루기까지 너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신지라”
신앙생활에서 기억해야 할 중요한 두 가지가 있다. 은혜라고 하는 개념이다. 일반적으로 하나님께서 일방적으로 주시는 것을 은혜라고 한다. 이 은혜는 하나님 편에서 시작하시고 일방적으로 우리에게 쏟으시는 사랑이다. 그러나 또 하나의 은혜는 믿음이다. 이것은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우리의 응답이다. 하나님의 사랑이 일방적인채로 머물러 있다면 온전한 사랑이 될 수 없다. 성숙한 사랑은 쌍방간에 이루어져야 한다. 믿음은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응답이고 이 응답은 언약관계가 되는 것이다. 언약은 쌍무언약이다. 하나님이 내게 약속하신 것을 내가 얻는 데는 내가 하나님의 요구에 응답해야 한다.
벧엘로 올라가라는 말은 처음에 야곱이 하나님 앞에 결심했던 그 때의 마음으로 돌아가라는 말이다. 그 때 야곱이 약속한 말은 무엇이었는가?
[창28:20-22] “야곱이 서원하여 가로되 하나님이 나와 함께 계시사 내가 가는 이 길에서 나를 지키시고 먹을 양식과 입을 옷을 주사 나로 평안히 아비 집으로 돌아가게 하시오면 여호와께서 나의 하나님이 되실 것이요 내가 기둥으로 세운 이 돌이 하나님의 전이 될 것이요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모든 것에서 십분 일을 내가 반드시 하나님께 드리겠나이다 하였더라”
하나님 앞에 야곱의 약속
1)여호와께서 나의 하나님이 되실 것이요.
2)성전(예배) 중심의 삶
3)십일조 생활
그러나 살다보니까 그 때의 초심의 마음을 잃어버렸다. 이것이 인간의 마음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것을 결코 잊지 않으시며, 그 때를 기억하도록 위기의 때를 통해서 깨닫게 하신다.
[창33:18-20]“야곱이 밧단아람에서부터 평안히 가나안 땅 세겜 성에 이르러 성 앞에 그 장막을 치고 그 장막 친 밭을 세겜의 아비 하몰의 아들들의 손에서 은 일백개로 사고 거기 단을 쌓고 그 이름을 엘엘로헤이스라엘이라 하였더라”
벧엘로 가야 할 사람이 세겜에서 장막을 치고 땅을 샀다. 땅을 산 이유가 무엇이었겠는가? 그곳에서 정착하려는 것이다. 하나님은 분명히 벧엘로 가라고 하셨는데 엉뚱한 곳에 머루르고자 하는 야곱이다. 초심을 잃어버린 야곱을 깨닫도록 바로 이 세겜땅에서 위기를 만나게 하신다. 디나의 강간사건과 그에 따른 아들들의 복수사건이다. 이 사건으로 말미암아 동맹관계를 가진 세겜부족들에 대한 추격의 위험을 느끼며 간담이 서늘해진 야곱은 드디어 가족을 이끌고 벧엘로 올라가게 된다. 이 위기가 하나님을 찾는 기회가 된 것이다. 그러므로 위기는 위험과 기회의 분기점이 된다.
[창35:7]“그가 거기서 단을 쌓고 그곳을 엘벧엘이라 불렀으니 이는 그 형의 낯을 피할 때에 하나님이 거기서 나타나셨음이더라”
벧엘로 올라가라는 명령에 순종하는 야곱은 먼저 그의 가정에 부정한 모든 것을 머저 제하게 한다. 그리고 환란 때에 건져주신 하나님께 단을 쌓았다.
야곱은 그 전에도 단을 쌓았던 사람이다. 그러나 그 전에도 하나님 앞에 단을 쌓았지만, 분명 달라진 제단이다. 다시 말해 엘엘로해이스라엘의 제단과 엘벧엘의 제단은 다르다. 엘엘로해 이스라엘의 제단에는 이방신상, 불결함, 세속주의, 탐욕, 단장품 등이 제단과 함께 있었다.
우리 역시도 자기 고집, 편견, 탐욕은 버리지 않은채 예배도 드리고 헌금도 한다. 자기 속에 있는 것은 하나도 버리지 않으면서 신앙생활을 한다. 이것을 가리켜 종교라고 한다. 자기식으로 믿는 것이다. 이런 야곱에게 닥친 위기는 신앙생활의 근본적인 변화를 가져오도록 했다. 무엇이 잘 못 된 것인가를 살피게 했다. 그리고 그는 궤도수정을 하게 된다. 이렇게 궤도수정을 한 야곱은 엘벧엘의 제단을 쌓았다. 야곱의 33장의 신앙과 35장의 신앙은 다른 것이다.
우리의 신앙은 내가 조각한 하나님이 아니라 계시의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 모두는 처음 출발할 때의 순수한 신앙을 회복해야 한다. 하나님의 약속을 상기해야 한다.
우리 교회에서도 세례 받을 때 수세자들의 다짐을 5가지로 받는다. 교인의 5대의무이다.
1)주일성수
2)십일조 생활
3)성경읽기와 기도하기
4)봉사하기
5)전도하기
여러분은 이 약속을 잘 지키고 있는가? 엘엘로해 이스라엘을 고백하는가? 엘벧엘로 고백하는가? 살다보니 초심을 잃었다면 이 약속을 기억해야 한다. 혹시 위기를 만났다면 초심으로 돌아오는 일을 먼저 해야 한다. 세례받을 때 한 약속은 그렇게 엄청난 순교자적인 삶이 아니다. 가장 기본적인 것이다. 우리의 신앙생활이 순교자적인 것이 아니더라도 기본만이라도 성실하면 문제가 풀린다.
Ⅱ. 정결케 하라(회개)
[창35:2] “야곱이 이에 자기 집 사람과 자기와 함께한 모든 자에게 이르되 너희 중의 이방 신상을 버리고 자신을 정결케 하고 의복을 바꾸라”
벧엘로 올라가기 전에 먼저 너희 중에 이방신상을 버리라고 명령한다. 라헬이 가지고 온 드라빔이 집에 있었다. 과연 남편이 이것을 몰랐겠는가? 알았기에 이런 명령을 한 것이다. 그 때까지 세속적인 것을 허용하고 있었던 야곱이었다.
사람은 보고 듣는 것이 마음의 상으로 남는다. 드라빔은 우상이며 이것은 하나님이 싫어하시는 물건이다. 그런데 이것이 야곱의 장막에 있다. 하나님이 싫어하시는 것을 알면서도 아까워서 버리지 못하고 있었다. 자신의 변화 뿐 아니라 가정적인 변화가 있어야 함을 깨달은 것이다.
[고후7:1]“그런즉 사랑하는 자들아 이 약속을 가진 우리가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가운데서 거룩함을 온전히 이루어 육과 영의 온갖 더러운 것에서 자신을 깨끗케 하자”
의복을 바꾸라. 의복은 신분을 나타내는 것이다. 제사장의 복장은 살이 드러나지 않도록 디자인되었다. 세상의 문화를 따르지 않는 것이다.
[창35:8]“리브가의 유모 드보라가 죽으매 그를 벧엘 아래 상수리나무 밑에 장사하고 그 나무 이름을 알론바굿이라 불렀더라”
그가 의지하던 유모가 죽었다. 많은 사람들이 성숙한 이후에도 동정하고 달래주고 위로해 주는 유모를 갈망한다. 어머니의 유모였으니 얼마나 야곱을 사랑했겠는가? 그러나 어느 날 홀연히 그와의 결별케 하시는 하나님의 다루심의 손길을 경험하고 있다. 이제 야곱은 야곱이 아니라 이스라엘이어야 한다. 자신의 욕망을 위해서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 서야 하는 자여야 한다.
이렇게 야곱은 모든 것을 하나님 앞에 묻고 나아갔다. 우리역시 나의 욕망, 세속적인 가치, 문화 등에서 벗어나서 오직 깨끗함으로 하나님께 나아가야 한다.
Ⅲ. 예배의 회복
거기서 단을 쌓으라. 타락이후에 인간이 하나님을 만나는 유일한 통로는 예배이다.
노아, 아브라함, 이삭, 야곱 다 새 일을 시작할 때 예배로 시작했다. 모든 일의 출발은 예배이다. 예배를 통해서 하나님이 주시는 영감을 얻고, 성령의 임재를 경험하게 된다.
오늘날도 우리가 이사를 한다든지 개업을 한다든지 할 때 예배를 드리는 것은 중요하다. 하나님 중심이라는 표식이기 때문이다. 예배가 무너지면 다 무너지게 되어 있다. 마찬가지로 회복 될 때 보면 예배가 먼저 회복되는 것을 볼 수 있다. 예배가 회복 되면 모든 것이 회복된다.
1)하나님을 만나게 된다. [행10:44]베드로가 고낼료의 집에 갔을 때, “베드로가 이 말 할 때에 성령이 말씀 듣는 모든 사람에게 내려오시니” 라고 했다. 고넬료의 집에서 가정예배를 드릴 때, 말씀을 증거하고 말씀을 들을 때 하나님의 성령의 임재가 있었다. 그만큼 예배가 중요하다. 예배에 목숨을 걸어야 한다.
2)예배는 환난을 이기게 만드는 힘이 있다.
위기를 당한 야곱이 벧엘로 올라가면서 한 고백이다. “우리가 일어나 벧엘로 올라가자 나의 환난날에 내게 응답하시며 나의 가는 길에서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께 내가 거기서 단을 쌓으려 하노라” 세겜사람들이 오히려 간담이 녹아서 추격하지 못한다. 이것은 예배의 사람 야곱에게 임하신 하나님의 은혜의 역사이다. 우리 또한 삶의 위기와 문제가 오면 예배로 문제를 풀어야 한다.
3)하나님을 보는 눈이 열린다.
엘벧엘의 하나님! 성도의 능력은 예배에 있다. 악한 마귀는 우리가 예배로부터 문제를 풀 때 가장 두려워 떤다.
Ⅳ. 하나님이 보호하심
[창35:5]“그들이 발행하였으나 하나님이 그 사면 고을들로 크게 두려워하게 하신고로 야곱의 아들들을 추격하는 자가 없었더라”
예배에 승부를 걸었던 야곱을 하나님은 보호하신다. 야곱을 추격하려던 그들의 간담을 서늘하게 하셔서 야곱을 추격하지 못하도록 하셨다. 모든 것은 내것이 아니다. 오직 하나님이 지켜 주셔야 내것이 된다.
복음송 ‘나의 등 뒤에서’
나의 등뒤에서 나를 도우시는 주 나의 인생길에서 지치고 곤할여 매일처럼 주저앉고 싶을 때 나를 밀어주시네.
나의 등 뒤에서 나를 도우시는 주-평안히 길을 갈 땐 보이지 않아도 넘어질 때에 다가와 손내미시네.“
살다보면 고난이 없을 때가 있겠는가? 남편을 먼저 보낸 아내, 부모를 잃은 자녀, 자녀를 먼저 보낸 부모, 직장을 잃고 좌절하는 사람, 삶의 방향을 잃고 헤매며 아픔을 겪는 많은 사람들이 우리 주위에 있다. 그러나 주님은 우리를 지키시겠다고 약속하셨다.
히10:5“내가 과연 너희를 버리지 아니하고 과연 너희를 떠나지 아니라히라”
하나님의 종들을 보면 인간적인 시각으로 볼 때 아픔과 쓰라림이 있었다. 그러나 그 사람들이 다시 일어서는 이유는 하나님의 위로가 더 크기 때문이다. 왜 우리에게 고난을 주시는가? 그것이 반드시 유익하기 때문이다.
스키장에서 스키를 탈 때 직선으로 내려오면 다친다. S자를 그리며 내려와야 안전하다. 속도를 느릴지 모르지만 그래야 안전하다. 또한 직선으로 내려오는 것 보다 재미도 있다. 강물 역시 S자의 강으로 되어 있다. 그것을 직선으로 하면 생물이 살지 못하게 된다고 한다. 굽고 부딪쳐서 자정력을 갖도록 하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하나님께서 우리 인생이 망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고난을 준비하신 것이다. 그래서 우리 인생에 고난의 굴곡은 힘들지만, 힘든 가운데 많은 의미를 발견하게 된다. 속도보다 중요한 것은 방향이다. 빨리 가기보다 바로 가는 것을 살펴야 한다.
하나님은 우리 인생에 방향이 잘 못되고 있을 때 궤도수정을 위해서 멈추게 하신다. 성공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가치있는 삶이 무엇인지 알게 하기 위해서이다.
고든 맥도날드의 “인생궤도를 수정할 때” 라는 책에서 두 가지를 충고하고 있다.
1)이제는 정말 하나님의 인도를 갈망해야 겠다는 것이다. 내 맘대로 살아봤는데 내 삶이 비틀거리게 되었다면 이제부터라도 나는 하나님의 인도를 받아야 겠다는 하나님의 인도하심에 대한 순종을 결단해야 한다.
2)상급주시는 저 영원한 곳에서 상급주시는 하나님을 바라보라고 요청한다.
인생 후반전이면 자꾸 급해진다. 그래서 인생의 만회하기 위해서 서두르다가 더 커다란 낭패를 경험할 수가 있다. 결과를 하나님께 맡기고 과정에 충실해야 한다. 당장의 승산보다 내가 진실하고 성실하게 삶의 장에서 계속 설 때 나머지 부분은 하나님이 책임지시고 상급을 주실 것이다. 우리 인생이 하나님의 상급을 바라볼 수 있다면 인생의 자리는 휠씬 더 여유롭게 될 것이다.
우리 인생의 하프타임을 주신 이유를 살피고 하나님 앞에서 궤도수정을 해서 하나님 앞에서 존귀한 자로 세워져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