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시간에는 다른 사람의 삶 속에 예수님이 왕으로 오시도록 하기 위해서 왕의 대로를 만들기 위해서 무엇을 해야 하는가를 말씀드렸다.
오늘은 나의 맘속에 왕이 오시도록 하기 위해서 무엇을 예비해야 하는가를 보도록 한다. 우리가 선호하는 음식이 있다. 사람도 내가 좋아하는 스타일의 사람이 있다. 사장이 직원을 뽑을 때 아무나 쓰지 않는다. 그것도 중역을 뽑는 일이라면 더 신중할 것이다. 마찬가지로 하나님도 좋아 하시는 사람이 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권세를 주시고 후사로 세우시는 데 들어올 때야 자격을 논하지 않고 불렀으나 훈련하시고 후사로 키우실 때는 기준이 있다. 내 속에 주님이 들어오셔서 나를 다스리시고 내 삶이 찬국이 되게 하려면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하는가? 내 안에 주님의 대로가 만들어지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Ⅰ. 변화된 사람을 찾으신다.
요즘 아이들은 유명연예인을 가리켜 카리스마가 있는 사람이라고 한다. 요즘 사람들이 찾는 사람은 얼굴도 잘 생기고, 몸도 훌륭하고, 말도 잘하는 사람이어야 인기를 얻는다. 하나님이 찾으시는 사람은 사람들이 원하는 기준하고는 다르다. 하나님은 소위 카리스마가 있는 사람을 좋아하시는가? 하나님이 모세를 이스라엘의 지도자로 세우시고자 하실 때 모세의 변명은 자신이 말을 잘못한다는 것이었다. 지도자가 말을 못하면 안된다는 것이 모세의 생각이었다. 그 때 하나님은 말 잘하는 아론을 옆에 세워서 모세를 지도자로 세우셨다.
사도행전 7장에서 스데반의 설교에서 보면 모세는 원래 학문이 능하고 말을 잘 하는 사람이었음을 알 수 있다. [행7:22-23]“모세가 애굽 사람의 학술을 다 배워 그 말과 행사가 능하더라 나이 사십이 되매 그 형제 이스라엘 자손을 돌아볼 생각이 나더니”
그러나 그가 스스로 자기 민족을 위해 일하려고 할 때는 쓰시지 않으셨다. 광야의 40년이 지난 후 아무 자신이 없어졌을 때의 그를 오히려 부르고 계신다. 40세의 모세를 쓰시지 않으시고, 80세의 노인을 쓰시는 이유는 무엇인가? 모세의 중심이 바뀌어 있었기 때문이다. 광야에서 보낸 40년간의 세월을 통해 깍여지고 다듬어져서 자신이 아닌 하나님을 의지하는 법을 배웠다. 겸손을 배우고, 타인의 허물까지 품는 온유를 배웠다.
많은 사람들이 환경이 바뀌고 외적인 조건이 변해야 성공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은 외적인 변화가 아니라 내적인 변화이다. 애굽에서 종살이하던 이스라엘백성이 외적으로는 그 종살이에서 해방되었지만, 그들의 중심은 전혀 달라지지 않았다. 그런 그들을 하나님만을 의지하고 섬기는 예배공동체로 세우고, 하나님을 경배하는 법과 봉사하는 법을 아는 백성으로 키우기 원하셨다. 그러므로 먼저 기도해야 할 것은 우리의 속사람을 변화시켜달라는 기도여야 한다.
믿음은 하나님을 의지하는 마음의 태도이다. 배추벌레는 열심히 먹어 살이 오르면 어느 날 고치가 된다. 고치는 배추벌레의 죽음이다. 또 어느날 고치는 한 마리의 나비로 변한다. 나비는 고치의 부활이다. 배추벌레는 자기 안에서 나비가 될 수 있는 가능성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우리 속에는 하나님의 형상이 있다. 하나님을 대신할 수 있는 가능성이 내재 해 있다.
[골3:1-4]“그러므로 너희가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리심을 받았으면 위엣 것을 찾으라 거기는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느니라 위엣 것을 생각하고 땅엣 것을 생각지 말라. 이는 너희가 죽었고 너희 생명이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 안에 감취었음이니라. 우리 생명이신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그 때에 너희도 그와 함께 영광 중에 나타나리라”
나는 할 수 없다는 생각, 우리가 갖고 있는 현재의 가치관, 선호사상, 기호들이 진리에 의해 주어진 것이 아니라 다 사연, 삶의 경험을 통해 얻어진 것들이다. 그리고 사연, 즉 자기 기준에 의해 사는 사람은 자기 의를 위해 사는 사람이다. 나의 기준, 나의 의는 하나님의 의를 도전하는 것이 된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기준, 진리의 원칙에 의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
[마7:21-24]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다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그 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 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치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 /그때에 내가 저희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 그러므로 누구든지 나의 이 말을 듣고 행하는 자는 그 집을 반석 위에 지은 지혜로운 사람 같으리니
집을 짓는다고 했을 때 설계도대로 짓지 않으면 준공허가가 나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진리 안에서 검정된 것이 아니라 살아온 사연 속에서 산다면 불법을 행하는 것이다. 잘못된 가치관이 진리에 의해서 다시 정립되어야 한다.
[고전5:17]“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
구원받았다는 것은 새로운 존재로 태어났다는 말이다.
[고후13:9-11]“우리가 부분적으로 알고 부분적으로 예언하니 온전한 것이 올 때에는 부분적으로 하던 것이 폐하리라 내가 어렸을 때에는 말하는 것이 어린 아이와 같고 깨닫는 것이 어린 아이와 같고 생각하는 것이 어린 아이와 같다가 장성한 사람이 되어서는 어린 아이의 일을 버렸노라”
불행한 것은 나이가 들어서도 여전히 어린아이의 모습을 그대로 가지고 있는 사람이 있다. 우리 생의 최후의 날에 진리에 의해 살지 않았다면 심판은 피할 수 없다. 물과 성령으로 변화되지 않으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 변화되지 않으면 쓰임을 받을 수 없다.
Ⅱ. 하나님만을 절대적으로 의지하는 사람을 찾으신다.
믿음을 갖는다는 말은 하나님을 신뢰한다는 말이다. 모세는 어려운 시절을 산 사람이다. 고난을 통과한 후 그는 이제 제가 아니고 하나님이십니다. 라고 고백할 수밖에 없었다. 바로 그런 그를 하나님이 들어 쓰셨고 D.L 무디 목사님은 그런 모세의 생애를 이렇게 표현했다. “모세는 처음 40년동안에 자신이 대단한 인물(something)이라고 생각하며 살았다. 그리고 그 다음 40년동안에는 자신이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nothing)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마지막 40년동안에는 아무것도 아닌 자를 하나님이 쓰시면 권능자(everything)가 될 수 있음을 아는 삶을 살았다.”
[고후4:7]“우리가 이 보배를 질그룻에 가졌으니 이는 능력의 심히 큰 것이 하나님께 있고 우리에게 있지 아니함을 알게 하려 함이라”
우리는 쉽게 깨어지는 질그릇이다. 그러나 보배를 담은 질그릇이다. 내 존재 가치는 내 안에 무엇을 담았느냐에 있다. 내 존재 자체가 귀해서가 아니라 내 안에 계신 예수님 때문에 내가 귀한 존재이다. 실로 나는 아무 것도 아니다. 그러나 나는 아무 것도 아니라고 말하면 모든 것(everything)이 될 수 있다. 결국 능력의 원천은 우리가 얼마나 하나님을 의지하느냐에 달려 있다.
모세는 지극히 평범한 사람이며 성격에 결함이 있는 사람이었다. 그러나 하나님만 의지하는 사람이 되었을 때 그를 통해 출애굽의 역사를 이루었다. 다윗역시 평범한 사람이었다. 아버지도 형들도 그를 인정하지 않은 작은 사람이었다. 그러나 그가 광야를 지난 이후에는 그는 이스라엘의 성군이 되었다.
야곱은 자식을 편애하는 부모밑에서 자랐다. 요셉은 엄마가 넷씩이나 되었고, 배다른 형제끼리 서로 시기하고 질투하고 음해하는 그런 가정에서 성장했다. 그런데 이 모두는 하나님이 사용하신 사람들이다. 이런 면을 보면 꼭 가정이 훌륭해야만 훌륭한 사람이 되는 것은 아니다. 상처가 있었기 때문에 신앙을 찾았고, 기도할 수 있었고, 하나님을 의지하게 되었다. 신앙은 결코 저절로 자라는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나의 불행이 누구 때문이라고 다른 사람을 비난해서는 안된다. 상처가 오히려 하나님을 얻게 하고 그 하나님을 신뢰할 때 전혀 새로운 인생을 살게 된다.
[시55:22]“네 짐을 여호와께 맡겨 버리라 너를 붙드시고 의인의 요동함을 영영히 허락지 아니시리라”
그래서 하나님은 우리를 때로 광야로 보내시며 절망하게 하신다.
70년대의 스타 가수 윤형주장로의 간증이다. 독실한 기독교 집안에서 성장하였으나 의과대학시절 가수로 대뷔하여 당시 최고의 인기를 누리는 가수가 된 이후에 교회와 멀어졌다. 그런데 70년대 대마초사건으로 걸려 감옥에 갇히게 되었다. 아무도 찾아주는 이 없고 더 높던 인기도 하루아침에 물거품이 되었다. 절망의 시간을 죽음을 생각하며 보내는데 어머니가 넣어준 성경책을 읽다가 하나님을 만나게 되었다. 그렇게 많은 사람들의 인기를 누리던 때에 없던 평안을 그 때 누렸다고 한다. 그의 입에서 흘러나온 찬송은 찬송가 208장이었다.
1. 주 예수 내 맘에 들어와 계신 후 변하여 새사람 되고 내가 늘 바라던 참 빛을 찾음도 주 예수 내 맘에 오심 주 예수 내 맘에 오심 주 예수 내 맘에 오심 물밀듯 기쁨이 넘침은 주 예수 내 맘에 오심
2. 주 예수 내 맘에 들어와 계신 후 망령된 행실을 끊고 머리 털 보다도 더 많던 내 죄가 눈보다 더 희어 졌네.
3.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 가다가 밝은 빛 홀연히 보고 저 멀리 하늘 문 환하게 보임도 주 예수 내 맘에 오심
고독의 시간, 상실의 시간에 주님이 찾아오신 것이다.
왜 이렇게 일이 안풀리는가? 하나님을 바라보라고 그 분에게 집중하라는 메시지이다. 얼마나 더 방황을 해야 하나님을 만나게 될 것인가?
Ⅲ. 하나님은 기도의 사람을 찾으신다.
김재진의 시 ‘가슴 아픈 것들은 다 소리를 낸다’
별에서 소리가 난다.
산냄새 나는 숲 속에서
또는 마음 젖는 물가에서 까만 밤을 맞이할 때
하늘에 별이 있다는 걸 생각하면 위로가 된다.
자작나무의 하얀 키가 하늘 향해 자라는 밤
가슴 아픈 것들은 다 소리를 낸다.
겨울은 더 깊어 호수가 얼고
한숨 짓는 소리
가만히 누군가 달래는 소리
바람 소리
견디기 힘든 마음 세워 밤 하늘 보면
쨍그랑 소리 내며 세월이 간다.
한국의 여인들에게는 한이 있었다.
내 어머니는 41세에 과부가 되어 8남매를 어깨에 메야 했었다. 그러나 심장병이 있어서 힘도 쓰지 못하는 처지라 너무나 절망적인 고통을 하루에 5시간씩 기도로 승화시킨 분이시다. 그 덕에 요즘 아들인 내가 은혜를 입고 있다.
한나가 위대할 수 있었던 것은 그에게 아들이 없는 한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가 아들이 있었다면 절규하며 기도했겠는가? 아픔을 기도로 승화시킬 줄 아는 사람이 하나님을 얻는다. 왜 아픔이 우리에게 있는가? 그것은 기도하라고 부르시는 하나님의 음성이다. 하나님은 우리가 성숙하기를 원하실 때 갈등과 고통이라는 도구를 사용하신다.
어떤 개구리가 우유통에 빠졌다. 이제 우유통에 빠졌으니 아무리 허우적대도 나갈 수 없을 거야 하고 두 다리를 쭉뻗고 포기하고 죽었다. 다른 개구리 한 마리도 우유통에 빠졌다. 그는 열정적인 개구리였다. 이 개구리는 안되는 일이 어디있느냐 생각하고 밤새 허우적 댔다. 그러자 우유가 굳어져서 치즈가 되고 아침에 치즈를 밟고 우유통에서 펄쩍 뛰어 나올 수 있었다고 한다.
[신34:10]“그 후에는 이스라엘에 모세와 같은 선지자가 일어나지 못하였나니 모세는 여호와께서 대면하여 아시던 자요”
원래 모세가 이런 사람이 아니었다. 하나님을 아는 게 중요하다. 바른 지식이 없이 일하면 바울이 되기 전 사울처럼 하나님을 오히려 대적하게 된다.
블레인 리의 ‘지도력의 원칙’ 이라는 책에서 나온 이야기이다.
돈은 별로 없었지만, 늘 카브리해 여행을 꿈꾸던 한 여성이 돈을 한푼 두푼 모아 드디어 어느 날 유람선을 타고 여행을 하게 되었다. 돈을 아끼지 위해 카브리해를 순회하기만 하는 코스를 택했다. 다른 사람들이 호화롭게 입고 먹고 즐길 때 가난한 지갑을 생각하며 가지고 온 비스켓과 통조림으로 식사를 대신했다. 마지막 날, 성대한 고별파티가 있음을 알고 마지막 만찬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자신이 가진 것 중 가장 멋진 드레스를 갈아입고 식당을 향했다. 파티는 굉장히 즐거웠다. 가장 맛있어 보이는 음식도 주문했고, 많은 승객들이 댄스를 즐기는 것을 감상했다. “그래 이 사람들은 일주일 내내 이렇게 즐거운 시간을 가졌을 거야 그런데 나는 그러지도 못했으니... ” 그녀는 못내 아쉬운 생각이 들었다.
마침내 선실로 돌아갈 시간이 되어 저녁식사 값을 지불하려고 웨이터를 불렀다. 계산서를 갖다달라는 말에 웨이터가 이렇게 말했다. “식사비는 이미 여행비용에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이 이야기는 무지로 인해 무력하게 되는 상황을 잘 보여 주고 있다. 이 여인의 모습은 하나님에 대한 무지로 인해 우리에게 이미 주신 축복도 다 누리지 못하고 있는 우리의 모습이다. 이 땅에서 우리가 진리가 무엇인지 알지 못하면 하나님 앞에 가서 통곡을 할 것이다. 우리가 왜 기도하고 성경을 공부해야 하는가? 하나님을 알아야 하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음성을 들으라 하나님의 부유하심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Ⅳ. 헌신의 사람을 찾으신다.
맹도견이야기
시각장애인의 안내견을 만드는데 1년 6개월에서 약 3년이 걸린다고 한다. 그 훈련 비용만도 약 삼천만원쯤 든다고 한다. 음식은 맛있는 것을 먹지 못하고 평생토록 사료만 먹는다고 한다. 어디를 가든 음식 때문에 영향을 받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이다. 거기다 복종훈련을 시키는데 이 복종훈련은 매우 중요하다. 식당에 가서도 주인이 말하기 전에 결코 움직이지 않는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불복종훈련이다. 주인에게 해가될 상황에서는 절대로 불복종하면서 까지 주인을 이롭게 하는 훈련이다. 심지어 수컷은 5개월 때, 암컷은 8개월 때 불임수술을 시킨다고 한다. 혹여 자기 새끼에 대한 보호본능으로 인해 주인을 섬기는 일에 집중력이 떨어질까 해서이다.
한 사람의 소경을 돕기 위해서 이렇게 순교자처럼 온전히 바쳐진 맹도견의 삶이 헌신자의 삶이다. 허신자의 삶이란 하나님이 내 인생의 중심이요 목적이기 때문에 모든 삶을 그 분께 집중되어 있는 삶을 말한다.
바울이 그런 사람이었다. 복음을 위해서 그는 결혼도 하지 않고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내어놓은 사람이다. [행 20:24]“나의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 증거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을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
오늘도 하나님은 헌신의 사람을 찾는다.
모세에게 지팡이가 있었다. 그가 신앙의 사람이 되고, 헌신의 사람이 되자 이 지팡이는 능력의 지팡이가 된다. 어린아이에게 오명이어가 있었다. 그것을 주님께 드리자 오천명이 먹고도 남았다. 과부 두 렙돈, 막달라 마리아의 향유의 헌신, 그들의 헌신은 최선의 것을 드리는 것이었다.
우리는 내 것은 쓰지 않고 주님이 무엇을 하실 것을 기대한다. 작더라도 내 것을 드려야 역사(役事)하신다. 헌신하지 않으면 우리는 쓰임받을 수 없다. 하나님은 우리가 헌신하기를 원하신다. 만약 하나님이 사람을 사용하지 않으려 하셨다면 십자가 위에서 다 해결하였을 것이다. 하나님은 오늘도 우리를 쓰시기 원하셔서 사람의 헌신을 기다리신다.
지난 십여년간 하나님은 우리 교회에 여러 주제를 말씀하셨다. 처음에는 말씀으로 사람들을 양육하시키고 세우는 것을 중요한 과제로 주셨고, 한 때는 사람들의 마음을 치유하여 세우는 일을 주셨다. 근래에 들어 우리교회에 전도가 중요하다고 말씀하신다. 그러므로 이제 우리는 전도에 헌신하고 전도에 몰두해야 한다. 전도를 위해서 시간과 물질을 드리는 헌신이 필요하다. 우리의 구호는 년말 까지 나도 한사람! 이다.
전도하는 일은 때를 얻든지 못얻든지 해야할 일이라고 말씀하셨다. 이 기도는 반드시 반대를 받을 것이다. 사탄이 가장 싫어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전투적인 기도를 통해서 우리의 친구, 가족, 친척들이 구원얻는 역사를 일으키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