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이 아브라함을 부르실 때 고향땅과 친척 아비집을 떠나라고 하셨다. 애급에서 종살이하던 이스라엘을 구원하실 때 애급에서 떠나라고 하셨다. 자신이 지금까지 익숙해 있던 공간과 삶에서 떠나도록 하신 것이다. 내가 의존해왔던 것과 지금까지의 삶의 방식을 포기하고 하나님께 집중하는 삶으로의 전환이다. 성장은 변화에 있다. 변하지 않는 것은 죽은 것이다. 그러므로 성장하려면 익숙한 것들과의 결별을 계속해서 선언해야 한다. 변해야 존재하고 성장할 수 있기 때문이다. 타락한 죄인이 거룩한 하나님의 대행자로 쓰임받기 위해서는 변해야 한다. 고향을 떠난 아브라함에게 약속의 땅이 보였다. 롯에게 좋은 것을 양보하고 재산에 집착하지 않았던 아브라함에게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눈에 보이는 대로 땅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셨다.(창13:14-15) 이와 같이 세상에서의 집착을 버리면 하나님과 하나님이 주신 세계가 보인다. 이스라엘을 광야로 보내신 이유도 여기에 있다. 광야를 잘 통과해야 가나안이 보인다. 본문을 통하여 광야를 통과하는 원리를 찾아보자.
Ⅰ. 하나님의 약속에 대한 거룩한 부담을 일깨우신다. “그것을 얻으리라”
[신8:1] “내가 오늘날 명하는 모든 명령을 너희는 지켜 행하라. 그리하면 너희가 살고 번성하여 여호와께서 너희의 열조에게 맹세하신 땅에 들어가서 그것을 얻으리라.”
1)잃어버릴 것을 바라보지 말고 새롭게 주어질 것에 대한 약속을 기대하라.
2)떠난 사람을 바라보지 말고 새로운 만남을 기대하라. -사람에 대한 상처로 살지 말라. 새로운 곳에서 하나님이 어떤 역사를 이루실지에 대해 기대하라. 30년 전의 상처를 지금도 가지고 사는 것은 미래를 잃는 일이다. 과거를 거울로 삼아야지 미래를 사는 일에 장애가 되도록 해서는 안된다. 과거로 자기를 주장하고 과거를 핑계삼는 사람은 변화될 수 없다.
3)지나간 과거를 바라보지 말고 새로운 미래를 설계하라.
[사43:18-19]“너희는 이전 일을 기억하지 말며 옛적 일을 생각하지 말라. 보라 내가 새 일을 행하리니 이제 나타낼 것이라. 너희가 그것을 알지 못하겠느냐 정녕히 내가 광야에 길과 사막에 강을 내리니”
위의 말씀은 생명샘교회의 비전이다. 생명을 분출하는 새역사를 이룰 것이라는 감동으로 받은 말씀이었다.
4)세상을 보지 말고 하나님을 바라보라.
[창13:10-11]“이에 롯이 눈을 들어 요단 들을 바라본즉 소알까지 온 땅에 물이넉넉하니 여호와께서 소돔과 고모라를 멸하시기 전이었는고로 여호와의 동산 같고 애급 땅과 같았더라 그러므로 롯이 요단 온 들을 택하고 동으로 옮기니 그들이 서로 떠난지라”
롯은 아브라함을 떠날 때에 욕망을 따라 삼촌을 버렸다. 우리가 무엇을 보느냐가 중요하다. 롯의 눈에 요단들이 들어왔다. 세상에 취해있는 동안은 말씀도, 약속도, 신령한 세계도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광야는 오직 하나님만 바라보도록 설정된 장소이다. 광야는 지금까지 내가 소유했던 것들을 가지지 못하는 곳이다. 새로운 방식의 삶이 펼쳐지는 곳이다. 광야에 들어가 잃어버리고, 당하고, 상실과 패배를 경험했을 때 하늘의 음성이 들리고 주님의 뜻이 보이기 시작한다. 광야는 하나님을 찾게 하고 하나님의 목적을 찾게 하는 곳이다. 내 목적이 아닌 하나님의 목적이 내 인생의 목표가 될 때까지 광야는 필요하다.
91년 걸프 전과 2003년의 이라크 전쟁에서 미국을 승리로 이끌게 했던 무기는 토마호크 크루즈미사일이다. 이 무기의 특징은 발사하면 결국 명중시킨다는 것에 있다. 유도장치에 목표물에 대한 정보를 입력해 놓으면 목표물이 움직여도 끝까지 따라가서 명중을 시키도록 설계되어 있다고 한다.
영적생활이 중요한 것은 우리의 인생을 유도하는 목표에 사명을 입력시켜 놓으면 살다가 좌절이 오고 상처를 받고 어려움을 당해도 목표를 향해 갈 수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우리의 삶에 하나님의 부르심의 목표가 있느냐 하는 것이다. 우리가 붙잡고 있는 돈, 건강, 사람, 가족, 이것들은 영원한 것이 아니다. 진짜 목표를 붙잡게 하는 것이 광야이다.
Ⅱ. 광야훈련을 통하여 가치의 우선순위를 바꾸신다.
[신8:2-3]“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 사십년 동안에 너로 광야의 길을 걷게 하신 것을 기억하라 이는 너를 낮추시며 너를 시험하사 네 마음이 어떠한지 그 명령을 지키는지 아니 지키는지 알려하심이라./너를 낮추시며 너로 주리게 하시며 또 너도 알지 못하며 네 열조도 알지 못하던 만나를 네게 먹이신 것은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요 여호와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사는 줄을 너로 알게 하려 하심이니라”
이스라엘에게 광야가 필요했던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었다. 하나님이 일부러 광야를 걷게 하셨다고 하신다. 이유는 사람이 사는 것이 물질에 있지 않고 하나님과 하나님의 말씀에 있다는 것을 가르치기 위함이었다. 돈이 인생의 전부가 아니라고 하는 것을 가르치는데 40년이 걸렸다. 돈을 잃게 하면서 돈보다 소중한 것이 있다는 것을 가르치신다. 그런데 지금도 하나님을 이용해서 자기 야망을 이루려고 하는 사람이 있다. 광야의 이유를 아직 깨닫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신학자 폴 틸리히는 “연인의 첫 번째 의무는 상대방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이다.” 라고 했다. 태어나서 말하는 것은 2살이면 한다. 말하도록 훈련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듣는 훈련을 해본 적이 없다. 그래서 듣는 것을 소홀히 하는 경향이 있다. 기도도 자기말만 한다. 성경은 곳곳에서 쉐마 이스라엘. 즉 이스라엘아 들으라고 하신다. 인생의 최고의 가치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이다. 부모와 자녀의 갈등의 원인도 듣지 않는 데 있다.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면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야 한다.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때에 하나님의 철학, 가치관. 하나님의 목표를 알게 된다.
제자는 스승을, 양은 목자를, 성도는 하나님을 따라 가도록 되어 있다. 평생을 신앙생활을 했다면 우리의 모습 속에 하나님의 모습이 절절히 배어 나와야 한다. 우리로 하나님을 닮은 삶이 되도록 하기 위해서 광야가 있다. 광야는 고난의 길이지만, 하나님만을 바라보게 되는 곳이다. [시119:17]“고난 당한 것이 내게 유익이라. 이로 인하여 내가 주의 율례를 배우게 되었나이다.”
Ⅲ. 광야는 은혜가 무엇인지를 알게 하신다.
[신8:4]“이 사십년 동안에 네 의복이 해어지지 아니하였고 네 발이 부릍지 아니하였느니라”
[시31:7]“내가 주의 인자하심을 기뻐하며 즐거워할 것은 주께서 나의 곤란을 감찰하사 환난 중에 있는 내 영혼을 아셨고”
[시27:5]“여호와께서 환난 날에 나를 그 초막 속에 비밀히 지키시고 그 장막 은밀한 곳에 나를 숨기시며 바위 위에 높이 두시리로다‘
광야는 우리의 욕망과 기대치를 끊어버린다. 작은 것에도 감사하도록 한다. 의복이 헤어지지 아니하고 발이 부릍지 않음을 감사하게 된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광야에서 만나로 먹이시고 동행하셨다. 그리고 고난 중에도 격려와 지지로 우리를 세우시는 하나님이시다. 우리가 환난 당할 때 지키시는 분이시다. 환난을 당할 때 매달리는 기도를 통해서 하늘로부터 내려오는 하나님의 은혜가 무엇인지 깨닫게 된다. 우리가 여러 어려움을 당할 때 어려움이 우리를 망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에 집중하지 못하기 때문에 망하게 된다.
446장은 그 은혜를 노래한 찬송이다.
오 놀라운 구세주 내주 예수 참 능력의 주시로다.
큰 바위 밑 샘솟는 그 곳으로 내 영혼을 숨기시네.
메마른 땅을 종일 걸어가도 나 피곤치 아니하며
저 위험한 곳 내가 이를 때면 큰 바위에 숨기시고
주 손으로 덮으시네.
척박한 광야를 지날 때 뜨거운 낮의 열과 밤의 추위가 이스라엘을 상하지 못하도록 지키셨음을 보면서 그 놀라운 하나님의 은혜를 고백하며 하나님의 약속으로 산다고 하는 것을 깨닫게 된다.
Ⅳ. 광야 연단을 통하여 우리를 정결케 하신다.
[신8:5-6]“너는 사람이 그 아들을 징계함 같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를 징계하시는줄 마음에 생각하고/네 하나님 여호와의 명령을 지켜 그 도를 행하며 그를 경외할찌니라.”
광야는 우리의 쓸데없는 힘을 탈진시켜 버리는 곳이다. 우리는 하나님이 쓰시기에 너무 연약한 것이 아니라 너무 강하다. 그래서 우리의 힘을 축소시키신다. 자기 자신으로 가득차서 하나님이 거할 공간이 없다. 너무 가진 게 많아서 하나님께 쓰임을 받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하나님은 우리를 세우실 때 고난을 통해서 계속 연단시키신다. 연단이 우리를 견고케 하고 정결케 하기 때문이다. 우리 인격에서 허탄한 세상의 것들이 다 빠져 버리고 진실한 인격으로 성숙되는 은혜가 바로 고난의 선물이다.
우리 속에 있는 불순물을 다 제거하고 하나님만이 나의 인생의 가치입니다. 라고 고백할 때 쓰임을 받게 된다. 하나님을 향한 아름다운 영성은 하나님과 동행하는 것이다.
하나님은 우리가 세상을 바꾸기를 원하신다. 우리가 하나님의 대행자가 되기를 원하신다. 지도자로써 역량을 키우는 길이 연단이다. 고난의 기간이 길다면 큰 그릇으로 쓰임을 받게 될 것이다. 그래서 야고보는 “여러가지 시험을 만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고 했다. 욥은 이렇게 고백하고 있다. “나의 가는 길을 오직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정금같이 나오리라.”
시련의 깊은 골짜기를 자나면서 우리는 인격의 불순한 요소들을 다 제거한 후에 신실하고 순수하고 참되고 하나님 앞에 온전한 인격자가 되어 나오는 것이다. 하나님이 주인으로 인정받은 통치구조, 그런 나라를 이루기를 원하신다. 이러한 주권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광야를 연장시키신다.
그러므로 우리의 죄와 죄된 습관들, 자기 중심적인 시간들, 악한 영의 소굴들을 떠나 오직 하나님께 집중하므로 하나님의 대행자로 세움을 받도록 광야의 훈련을 잘 통과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