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예배

금식하며 울며 애통하고...

박승호 목사 / 욜2:1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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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나라가 해방 된지 60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우리를 슬프게 하는 일들이 나타나고 있다. 일본 교과서 왜곡사건, 중국의 고구려 역사 왜곡 등이다. 그리고 외국에서 어글리 코리안이라는 오명이 붙여진 우리이다.
선진국과 후진국의 차이는 경제적인 것도 있지만, 그 국민들의 도덕성에 있다고 한다. 신앙생활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지만,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자신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게 된다. 그러므로 기독교인은 본질적으로 내가 속해 있는 공동체, 즉 나라를 사랑하는 애국을 하게 되어 있다.
오늘 본문은 울라고 한다. 나를 위해 울고 바른 삶을 위해 울어야 한다. 바르게 사는 삶으로 돌아서는 것이 신앙의 목적이다. 중요한 것은 진리의 삶이다. 도산 안창호는 이렇게 울었다. “나는 우리 민족의 죄인올시다. 이 민족이 절르 이렇게 위해 주는데 저는 민족을 위하여 아무 것도 한 일이 없습니다. 저는 죄인올시다. ... 우리 나라가 독립 못하는 것이 나 때문이로구나 하고 가슴을 두드리며 아프게 뉘우칠 생각은 왜 못하고 어찌하여 그 놈이 죽일 놈이라고 하며 자신들을 깨닫지 못하는가 우리나라를 망하게 한 책임이 누구에게 있습니까? 그것은 나 자신입니다“
신앙의 사람은 다 나라를 생각하였다. [시33:12] “여호와로 자기 하나님을 삼은 나라 곧 하나님의 기업으로 빼신바 된 백성은 복이 있도다”
하나님을 이 나라의 주인으로 모시고 해결되지 않는 악습 병폐를 없애기 위해서 금식하며 애달파 해야 한다.
신앙은 사람답게 살고 이웃과 공존하며 사는 것을 뜻한다. 그러나 성숙하지 못한 신앙인은 나만 알고 이웃을 인식하지 못한다. 우리가 우리 후손에게 가르쳐야 할 것은 나라사랑인데 그것은 정직한 삶을 가르치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 우리가 바꿔어야 할 것이 있다.

Ⅰ. 진실되고 거짓이 없는 삶
거짓이 일상이 되어 버린 우리 문화이다.
[레19:11]“너희는 도적질하지 말며 속이지 말며 서로 거짓말 하지 말며”
[엡4:25]“그런즉 거짓을 버리고 각각 그 이웃으로 더불어 참된 것을 말하라 이는 우리가 서로 지체가 됨이니라”
성경은 거짓말 하는 것을 금한다. 농담으로라도 거짓말하는 것을 하지 말아야 하다. 성 어그스틴의 어머니 모니카는 기도의 어머니로 유명하다. 그러나 그의 아버지 패트리커스의 이야기는 더 감동을 준다. 어느 날 길을 가던 패트리커스에게 산적이 나타났다. 가진 모든 것을 다 놓으라는 말에 가진 것을 다 내어놓고 갔다. 가다가 패트리커스는 모니카가 주었던 금이 옷 깊숙이 있음을 깨닫고 금을 가지고 산적에게로 다시 갔다. 내가 아까 가진 것이 모두라고 했는데 가다가 보니 금이 있었다. 그래서 가져왔노라고 했다고 한다. 이 말을 들은 강도가 감동이 되어 이 사람의 것은 우리가 뺏을 수 없다면서 다 되돌려 주었다고 한다.
어그스틴이 성자가 될 수 있었던 것은 어머니의 기도도 있었지만, 정직한 아버지가 있었음을 알 수 있다. 기도의 어머니와 정직한 아버지 이것이 훌륭한 성자의 출발지이다. 거짓말을 안하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더구나 그리스도인은 십일조와 헌금생활에도 정직해야 한다. 우리 사회는 여러모로 부패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뇌물이 없이 일이 안되는 사회라는 오명이 붙은지 오래이다. 드러난 전직 대통령들의 비리는 우리 사회의 단면을 그대로 보여주는 것이다.
그러나 청렴결백한 선조도 있었다. 1946년 백범 김구선생은 전국 기업인으로부터 모금한 정치자금을 그의 제자로부터 권유받았을 때 끝까지 받지 않았다고 한다. 그는 제자에게 거절하여 말하기를 현실적이냐 비현실적이냐 하는 문제보다 정도냐 사도냐 하는 문제가 더 중요하다고 했다. 결국 그 돈은 정치적 라이벌이라고 할 수 있던 이승만에게 주어져서 결국 그는 비극의 말로를 맞게 되었다. 정직한 사람이 대접받는 사회를 위해서 우리는 울어야 한다.

Ⅱ. 섬기는 정신, 윈윈게임을 하자.
성경의 원칙은 나도 살고, 타인도 사는 원리이다. 창12장의 아브라함의 축복은 내가 잘되는 것으로 그치지 않고 나로 인해 다른 사람이 잘되는 복이다. 나만 잘 사는 사람은 신앙의 사람이 아니다. 나 때문에 다른 사람의 인생이 축복된 삶으로 바뀌는 사람이 많아야 한다.
일본의 어느 산간농촌에서 야채 농사를 지어서 도시에 내다파는 아버지와 아들이 있었다. 시장은 하룻길을 가야 도착할 수 있는 거리에 있었다. 그런데 시장을 가는 도중에 아버지는 아들에게 너희 큰 아버지집에 가보고 가야겠다고 했다. 아들의 마음은 급해서 다음에 가자고 했다. 그러나 아버지는 돈도 중요하지만 우애도 중요함을 말하며 기어이 형님댁을 들러서 갔다. 또 길을 가다가 수렁에 빠진 소를 보고 남의 소를 끌어내는 일로 시간을 보내고 밤을 세우게 되었다. 아침 일찍 도착해야 할 장소에 정오를 훨씬 넘기고 그 도시의 산등성이에 이르게 되었을 때 내려다 본 그 도시는 이미 잿더미가 되어 있었다. 그 도시의 이름은 히로시마이다. 남을 돕는 일 때문에 산 것이다 무엇이 잘 사는 것이고 무엇이 못사는 것인가? 남을 헤치면 그것은 부메랑이 되어서 나를 헤치게 된다.
[출23:11] “제 칠년에는 갈지 말고 묵여 두어서 네 백성의 가난한 자로 먹게 하라 그 남은 것은 들짐승이 먹으리라 너의 포도원과 감람원도 그리할찌니라”
[레23:22] “너희 땅의 곡물을 벨 때에 밭 모퉁이까지 다 베지 말며 떨어진 것을 줍지 말고 너는 그것을 가난한 자와 객을 위하여 버려 두라 나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니라”
남을 배려하라는 것이다. 돈을 벌어도 나도 살고 너도 사는 상생의 원리로 돈을 벌어야 한다. 우리 교회가 잘 되면 주변에 있는 교회도 잘 되어야 한다.

Ⅲ. 하나님의 인도를 기다리는 삶
[시23:1-2]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가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그가 나를 푸른 초장에 누이시며 쉴만한 물 가으로 인도하시는도다”
미국 동부에 콘 웰이라는 명문가가 있었다. 이 가정의 아들이 대학생이 되었을 때 불행히도 무신론에 빠졌다. 그러나 어머니는 계속 기도했다. 드디어 전쟁이 터지고 사람들이 군인에 나가기 시작했다. 이 명문가는 권세를 사용해서 명역면제를 할 수 있었지만, 기도 가운데 하나님의 인도를 믿으며 군대를 보냈다. 군 생활 중에 아들이 부상을 당했고 생명의 위기를 맞을지 모른다고 했을 때도 그 부모는 아들을 위해 특혜를 누리지 않기로 작정하였다. 아무도 돌아보지 않는 병영에서 군목이 전해준 복음을 듣고 아들은 죽음의 위기 가운데 회개하며 자신의 삶을 하나님을 위해 바치겠다고 결심하였다. 그의 회개를 받으시고 하나님은 그를 살리셨다. 그는 결심대로 대로 탬플대학과 탬플침례교회를 설립하고 세 개의 종합병원까지 설립한 러셀 콘 웰이라는 사람이다.
[잠3:5-6]“너는 마음을 다해 여호와를 의로하고 네 명철을 의지하지 말라 너는 범사에 그를 인정하라 그리하면 네 길을 지도하시리라”
만약 그 부모가 서두르고 인간적인 방법을 동원했더라면 그 아들을 통해서 이루실 하나님의 놀라운 기회와 방법을 스스로 박탈하지 않았겠는가? 때로는 기다리는 것이 최선일 수 있다. 하나님의 방법이 최선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을 의뢰하는 넉넉한 마음이 필요하다.
어떻게 하는 것이 잘하는 것인가? 하나님은 가장 좋은 목자가 되신다. 그러므로 제일 좋은 곳으로 인도하실 것이다. 아브라함은 자기의 방법으로 아이를 낳았다. 졸속한 마음 때문에 세계를 불안하게 하는 일이 생겼다. 하나님의 인도가 최상이라고 생각하고 주님의 인도에 내 삶을 맡기는 자세가 필요하다.

Ⅳ. 경제적 부요, 자립하는 삶
[고후8:9]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너희가 알거니와 부요하신 자로서 너희를 위하여 가난하게 되심은 그의 가난함을 인하여 너희로 부요케 하려 하심이니라”
간혹 기독교인조차도 가난해야 잘 믿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 그러나 이것은 우리를 부요케 하기 위해서 스스로 가난하게 되신 예수님의 뜻을 모르고 하는 말이다. 역사적으로 하나님을 받아들인 국민은 경제적으로 부유하다. 우리나라도 기독교가 들어온 이래 기독교의 성장과 함께 경제적인 부요를 누리고 있다. 이것은 우리가 부요한 것이 하나님의 뜻이기 때문이다. 청빈(淸貧)만 있는 것이 아니다. 청부(淸富)도 있다. 깨끗한 부자는 하나님이 좋아하신다.
[빌4:19] “나의 하나님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영광 가운데 그 풍성한대로 너희 모든 쓸 것을 채우시리라” 하나님은 세상에서 가장 부요한 아버지이시다. 자녀로서 그 분의 부를 나눠주고 베풀며 살아야 한다. 용인지역의 지역사회를 도우며 사는 교회, 가정들이 되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