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예배

성 무너진 데를 막아서서

박승호 목사 / 겔22:29-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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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세계적인 가정사역자 짐 답슨의 이야기이다. 학창시절, 그의 꿈은 테니스챔피언이 되는 것이었다. 그의 목표대로 테니스챔피언이 되었다. 학교 진열장에 진열된 우승트로피는 그의 자랑이었고 학교의 자랑이었다. 세월이 흘러 성인이 되었을 때 자신의 집으로 깨어지고 더러워진 자신의 트로피가 배달되어 왔다. 학교가 재건축을 하면서 예전의 트로피를 버렸기 때문이다. 그것을 발견한 학교 관리인이 옛주인에게 부쳐주었다고 한다. 이처럼 우리 인생에서 이룬 명예나 부도 시간이 흐르고 나면 한 때의 영광으로 끝날 트로피들이다.
직업은 가치있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이 땅을 살면서 7-8십년간 필요한 것이다. 영원한 곳에 가서도 가치있는 것은 무엇일까? 하나님은 오늘 본문에서 “나는 한 사람을 찾고 있다. 심판과 진노로 이 땅을 멸하려고 할 때 막아서서 구원할 한 사람을 찾고 있다.”고 말씀하신다.
사랑하는 사람이 좋아하는 것을 우리는 한다. 사랑하는 사람이 싫어하는 것을 거절한다. 우리는 하나님을 사랑한다. 그리고 그 분을 사랑하며 그 분의관심을 끌고 싶다. 그렇다면 그분의 관심이 무엇인지를 알아봐야 한다.
그분은 모든 사람이 구원받는 것을 원하신다. 이 땅에는 늘 어려움이 있었다. 정치, 경제, 사회 도덕의 위기들은 항상 있어왔다. 중요한 것은 세상의 타락이 아니라 심판할 수밖에 없는 이 때 진노를 막아설 한 사람 그 사람 때문에 심판을 유보하시겠다고 하는 하나님의 소원을 알아야 한다. 바로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서 중보기도할 중보자를 찾고 계신다.

성경은 구약과 신약으로 나뉘는데 구약은 오실 메시아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이야기이고 신약은 오신 메시아 예수그리스도에 대한 증언이다. 역사는 예수님이 오시기 전을 B.C라고 하고 예수님이 오신 후를 A.D라고 한다. 역사가 B.C와 A.D는 전혀 다른 역사로 진행된다. 개인의 신앙생활에도 B.C와 A.D로 달라진 간증이 있어야 한다. 달라진 가치관이 있어야 한다. 하나님은 지금 중보자를 찾으신다. 얼마나 중요한지를 아는 것이 해결해야 될 관심사이다.

Ⅰ. 중보기도의 중요성
[렘1:10]“보라 내가 오늘날 너를 열방 만국 위에 세우고 너로 뽑으며 파괴하며 파멸하며 넘어뜨리며 건설하며 심게 하였느니라”
하나님은 하나님의 일을 하나님이 직접하시지 않고 사람을 통해서 하시되 그 일을 위해서 나를 필요로 하신다.

인도의 봄베이에서 사역하는 죠지프 목사님은 유난히도 선교가 안되는 지역인 인도 고아라는 도시에 가서 선교지원을 나섰다가 아무 성과가 없이 고생만 했다. 그런데 그곳에 브라질에서 선교지원팀이 왔는데 바로 선교를 하지 않고 집을 하나 빌려서 밖에도 안나가고 기도만 했다. 이유를 물었더니 “우리가 맡은 임무는 기도입니다.”라고만 대답했다. 1년이 차서 중보기도팀이 철수하고 현장팀이 오게 되었다. 놀라운 일은 오자마자 두달만에 18개의 교회를 세웠다. 그래서 연구하기 시작했는데 선교는 현상세계가 전부가 아니라 보이지 않는 세력과의 영적전쟁임을 알았다.
우리는 우리 자녀가 잘 되기를 원한다. 그래서 그만한 대가를 치르고 희생을 한다. 그러나 보이지 않는 영적세계에서 우리의 행복을 방해하고 있음을 알고 대처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바울은 이런 세계를 잘 알고 있었다. [고후4:3-4] 만일 우리 복음이 가리웠으면 망하는 자들에게 가리운 것이라 그 중에 이 세상 신이 믿지 아니하는 자들의 마음을 혼미케 하여 그리스도의 영광의 복음의 광채가 비취지 못하게 함이니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형상이니라
그 마음을 장악하고 있는 세력을 제어하지 않고는 복음의 영광을 깨닫지 못한다. 지금도 우리를 망하게 하고 잘되는 일에 방해하는 배후가 있다. 이것을 아는 자가 승리한다. 내 배후에서 나를 잘못되게 하려고 작정하는 자가 있다. 그러므로 강한 자를 먼저 결박하는 기도를 해야 한다. 이 일을 위해서 중보하는 자가 필요하다.

Ⅱ. 중보자는 하나님 앞에서 대표자이다.
이스라엘이 광야에서 우상숭배를 했다. 하나님의 진노로 인해 이스라엘이 멸망의 위기에 있을 때 모세는 하나님의 진노를 막아서서 중보자로 나섰다. 모세의 중보기도를 통해서 한 민족이 멸망할 위기 가운데서 건짐을 받았다. 바로 이 한 사람이 모든 사람이다. 이것을 대표성의 원리라고 한다. [시106:23]“그러므로 여호와께서 저희를 멸하리라 하셨으나 그 택하신 모세가 그 결렬된 중에서 그 앞에 서서 그 노를 돌이켜 멸하시지 않게 하였도다”
예루살렘이 망한 것은 의인 한 사람이 없어서 망했다.
[렘5:1]“너희는 예루살렘 거리로 빨리 왕래하며 그 넓은 거리에서 찾아보고 알라 너희가 만일 공의를 행하며 진리를 구하는 자를 한 사람이라도 찾으면 내가 이 성을 사하리라”
대표 중보자 한 사람이 누구냐고 묻고 계신다. 하나님은 나라와 민족, 도시를 책임지고 기도할 자를 찾으신다. 기도할 책임이 있는 자는 누구인가? 중보기도의 책임이 그리스도인에게 있다. 그렇다면 나라의 멸망에 대해서 책임져야할 사람도 그리스도인이다.
[눅12:48]“알지 못하고 맞을 일을 행한 종은 적게 맞으리라 무릇 많이 받은 자에게는 많이 찾을 것이요 많이 맡은 자에게는 많이 달라 할 것이니라”
진노하시는 하나님, 공의를 행하실 수밖에 없는 하나님과 심판받을 인간들 사이에서 중보할 자를 찾고 계신다. [대하7:14] “내 이름으로 일컫는 내 백성이 그 악한 길에서 떠나 스스로 겸비하고 기도하여 내 얼굴을 구하면 내가 하늘에서 듣고 그 죄를 사하고 그 땅을 고칠찌라.”

Ⅲ. 중보자는 파수꾼이다.
[사62:6-7]“예루살렘이여 내가 너의 성벽 위에 파숫군을 세우고 그들로 종일 종야에 잠잠치 않게 하였느니라 너희 여호와로 기억하시게 하는 자들아 너희는 쉬지 말며 또 여호와께서 예루살렘을 세워 세상에서 찬송을 받게 하시기까지 그로 쉬지 못하시게 하라”

비판하고 정죄하는 일은 누구나 할 수 있다. 그러나 제사장들은 그 아픈 사연을 비방하거나 비판하지 않고 대신 중보한다. 비판하는 것은 마귀가 하는 일이다. 하나님은 비판하고 판단하는 사람이 아니라 책임지는 사람을 찾으신다. 이 도시를 정죄하지 않고 가슴에 품고 기도하는 교회가 되기를 원하신다. 파수꾼은 밤을 지킴과 동시에 밤의 시간을 동시에 알려주는 의무가 있다. [고후6:2]“보라 지금은 은혜받을 만한 때요 보라 지금은 구원의 날이로다” 그런고로 우리는 나가서 이 세대를 깨우쳐야 한다. 억지로라도 강제라도 깨우쳐서 영원한 지옥의 형벌을 받지 않도록 전파해야 한다. 에스겔에게 이스라엘의 파수꾼을 삼으신 하나님은 우리를 한국과 이 세대 모든 사람들의 파수꾼으로 삼으셨다. 파수꾼의 사명은 해도 좋고 안해도 좋은 것이 아니다. 내 주위에 있는 사람들을 깨우쳐서 구원하지 않는다면 준엄한 심판을 받게 될 것이다.

Ⅳ. 무너진 곳의 수축자이다.
[겔13:3-5]“주 여호와의 말씀에 본 것이 없이 자기 심령을 따라 예언하는 우매한 선지자에게 화가 있을찐저 이스라엘아 너의 선지자들은 황무지에 있는 여우 같으니라 너희 선지자들이 성 무너진 곳에 올라 가지도 아니하였으며 이스라엘 족속을 위하여 여호와의 날에 전쟁을 방비하게 하려고 성벽을 수축하지도 아니하였느니라”
느헤미야는 왕궁의 술맡은 관원장으로 편히 지낼 수 있었다. 그러나 예루살렘성이 훼파되었다는 말을 전해 듣고 눈물로 금식하며 기도했다. 그의 기도는 왕의 인가를 얻게 하였고 성을 재건하도록 하였다.
이 나라 경제, 사회, 교육, 문화를 회복시키고 정결하고 순결하게 만들 수 있는 것은 믿는 자들의 기도이다. 기도만이 이 민족을 회복시킬 수 있는 끈이다.
삼손은 사사였지만, 자신의 욕망을 따라 끌려 다니느라 하나님의 마음을 아프게 하고 그 민족의 지도자로써 하지 말아야 할 일들을 했다. 그는 나실인으로 구별을 받았지만, 나실인이 지켜야 할 모든 것들을 어겼다. 그러나 그가 마지막 블레셋 사람들 앞에서 그 기둥을 붙잡고 하나님께 기도했을 때 하나님은 그 부족한 삼손의 기도도 들어주셔서 이스라엘 백성을 블레셋으로부터 구원해 주셨다.
우리의 살길은 기도이다. 하나님은 기도를 통해서 우리에게 역사하시고 이 민족을 구원할 길을 열어놓으셨다. 기도는 하나님의 놀라운 능력을 체험하는 지름길이다. 바로 갈멜산의 엘리야의 기도가 그랬다. 엘리야의 기도는 이스라엘에게 영적대각성을 일으켰다.
하나님은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말씀하신다. 무너진 성벽 틈사이로 뛰어들어 내가 그 나를 멸망시키지 않도록 멸망의 위기에 놓인 백성들을 구하기 위해서 몸부림치는 사람이 있을까 찾아보았다. 그러나 나는 한사람도 만나지 못했다(30절)고 탄식하시는 하나님의 탄식을 우리가 들어야 한다. 우리 모두 하나님의 갈망을 위해서 일어서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