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년 2월 4일 주일 낮 예배 설교
성경본문:요한복음 7장 37-39절
37절: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1. 목마름
삶의 갈증, 어린 시절의 결핍, 상처, 생의 고단함, 그리고 수고로움등 생의 목마름으로 우리를 지으신 하나 님은 우리를 예수 그리스도의 영생에의, 생수로의 초대를 하신다. 삶의 갈증들이 우리로 하여금 현재의 우리가 아닌 하나님의 형상에의 갈증을 느끼게 하고, 우리 삶의 결핍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풍성함에 대 한 풍요를 소망하게 하는 것이다. 예수님은 구약에서의 왕이나 제사장들의 구별된 신분의 누구를 부르 시는 것과는 달리 신약에서는 예수님을 필요로 하는 사람은 누구나 초청하고 계신다.
사44:3절 : 대저 내가 갈한 자에게 물을 주며 마른 땅에 시내가 흐르게 하며 나의 신을 네 자손에게 나의 복을 네 후손에게 내리리니
사55:1-2, 58:11
복음과 율법은 다르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기쁜 소식, 즉 복음이시다. 그러나 우리는 간혹 복음을 받은 자 로 복음을 누리지 못하고, 율법에 속하기가 쉽다. 복음은 하나님이 하신 일을 선포하심이다. 예를 들면 하 나님과 네 이웃을 사랑하라라는 말씀이 있을 때에 말씀에 있기 때문에 사랑을 해야함은 계명이다. 그러 나 사랑을 해야하는 계명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사랑할 수 없는 무능력한 나에게 먼저 사랑으로 찾아 오신 예수님은 복음이다. 그리하여 하나님이 주신 공급이 나에게 능력으로 부어질 때 나는 사랑을 할 수 있는 자가 된다. 그것은 나의 능력으로 인함이 아니라 하나님의 능력이 예수님으로 인하여 나를 통해 선 포되어지는 것이다. 우리의 목마름과 갈증, 그리고 우리의 약함과 무능력은 예수님을 만날 수 있는 기회 가 되고, 하나님의 사랑을 경험하는 계기가 된다. 이렇게 예수님은 우리의 목마름을 통해 당신께로 오기 를 초대하고 계신다.
2. 예수님께 오라는 초청
우리 삶의 고단함이나 환경은 예수님을 통해서 그 자체가 변화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변화할 수 있는 것은 결핍이나 갈함이 있는 환경에 대한 우리의 태도다. 즉 그 고단함이나 환경에 대한 우리의 시선이 예 수님을 만남으로 바뀔 수 있다. 예수님과의 만남은 우리의 환경에 대한 고정된 시선을 변화시켜, 그 환경 을 우리에게 허락하신 하나님의 섭리와 그 과정속에서 내가 이룰 연단과 성장으로 바라볼 수 있도록 해 준다. 열쇠는 고단한 환경이 아닌 그 환경을 바라보는 나의 시선에 달려있다. 이스라엘 백성의 40년의 광야 생활은 분명 삶의 고단함이며 고통이다. 환경적 어려움이나 고통만을 바라본다면 그것은 절망적 상황 인 것이다. 그러나 하루의 해가 뜨고, 눈을 들면 바라보는 성막에는 하나님의 임재가 계셨고, 앞길을 인도 하시는 구름기둥과 불기둥이 인생의 발걸음을 지키셨으며, 매일 매일 굶주림을 면케하신 만나가 있었 고, 타는 듯한 갈증을 해갈하는 반석아래 생수의 공급이 있었다. 광야는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이었다. 에 덴동산을 거니시는 하나님처럼, 광야에도 그분은 그의 백성과 함께 계셨다. 그러나 어려움과 결핍을 바 라본 자는 끊임없이 불평하고 육신적이고 정욕적인 것들의 부족함으로 인해 하나님을 경험할 수 없었 다.
우리가 서있는 환경은 변화가 없을지도 모른다. 어제의 광야가 오늘의 광야이고 내일도 광야일지 모른 다. 예수님을 만남이 나에게 힘든 환경이 수월하도록 해결되는 것을 의미하는 것만은 아니므로....하지만 나의 눈이 어디, 무엇, 누구를 바라보느냐에 하나님 나라를 사는 비결이 있다. 아프고 갈한 현실 속에서 하 나님의 뜻을 구하는 것이다. 환경이나 사람을 바라보면 낙심하고 절망적일 수 있으나 그 속에서 역사하 시는, 거기 계시는 하나님의 뜻과 임재를 바라본다면 예수님의 초대는 나에게 삶의 풍성함으로 이끄시 는 복음이 된다.
3. 생수의 강
38절;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리라 하시니
첫째로 예수님의 말씀은 성경에 이미 약속되어 있었다. 우리의 목마름을 해결해 주심은 세 상만물을 지 으시고 나를 창조하신 하나님의 약속이며, 예수님을 통해서 성취된 것이 나에 게 경험되는 것이다.
두 번째로 그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리라
하나님은 사람을 통해서 역사하신다. 나를 채우시고 나의 갈함을 채우신 주님은 나를 통하여 새로운 영 혼이 하나님의 사랑과 예수님의 채우심을 경험하여 하나님의 백성으로 세워지기를 원하신다. 나를 초 청하고 만나주신 예수님, 그 분을 만남으로 인한 삶의 풍요를 나의 손을 통해 나의 섬김을 통해 나의 가정 과 친지, 이웃과 나라, 열방으로 퍼져나가기를 원하신다. 생수의 강이 온 땅을 넘쳐 흐르게 될 때를 예수님 은 기다리고 계신다.
하나님은 사람을 지으실 때 공동체를 살아야하는 존재로 지으셨다. 그래서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를 경 험할 때도 대부분 사람을 통해서 역사하심을 성경은 보여주고 있다. 다메섹 도상에서 주님을 만난 바울 도 아나니아를 통해 안수하셨고, 경건한 삶을 살았던 고넬료도 베드로와의 만남을 통해 세례를 주셨고 에베소 교회의 성도들은 사도 바울의 손을 통해 안수 받을 때 성령의 기름부음을 경험했다. 그러므로 우 리는 우리에게 주신 하나님의 사람을 통해 성령의 역사하심을 보는 연습을 해야한다.
하나님은 나를 통해 그리스도의 생명이 누군가에게 전달되기를 원하신다.
하나님은 나를 통해 확산되어갈 예수님의 이야기를 기대하고 계신다.
하나님은 내게서 흘러갈 생수가 수 많은 논과 밭들을 섬길 강으로 넘치기를 원하신다.
묵상과 결단
하나님을 사랑하라와 이웃을 사랑하라의 두 계명은 항상 유효하다. 내가 발 붙이고 있는 현실, 그 땅에서 위로는 하나님의 뜻과 임재를 구하고, 현실에서는 주어진 조건 안에 내 가정과 지체와 더불어 함께 살아 가는 것, 이 긴장과 조화가 균형을 잃지 않을 때가 영적인 삶을 살아가고 있음을 보여준다. 중요한 것은 상 황이나 결핍 굶주린 환경이 아니라. 그것들을 바라보는 시각, 관점이다. 나의 눈과 마음과 사고 틀이 예수 그리스도에게 있고, 나의 발은 어려움을 극복하기 위한 열심을 가지고 현장에 있는 삶을 기대한다. 나무 의 삶에는 항상 그 부조화가 조화 가운데 서있다. 나무의 뿌리는 땅 속 깊숙히 박혀 있으며, 나뭇잎은 하늘 의 양분을 공급받으며 그 초록의 무성함을 더해가는 지혜가 있다. 이렇듯 자연 가운데도 하나님의 섭리 는 계시되어 있다.
그리스도 인의 삶은 역설과 긴장의 삶이다. 하나님의 무한성과 인간의 유한성, 우리가 살고있는 물리적 인 세계와 하나님의 초월적 세계, 인간적인 합리와 신적인 신비, 시간의 크로노스와 카이로스, 우리가 직 면할 죽음과 주님이 주신 영생, 이러한 부조화들을 이분법적인 대립이 아니라 조화로 수용할 때 내 안의 분열은 사라지고 새로운 조화가 시작된다.
내 안에서 역사 하시는 성령의 작업은 이렇듯 화해이며, 내 안에서 바깥으로 흐르는 생수의 풍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