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예배

dot01.png

본문

작성일 : 2002/10/26 16:37

“한나의 기도”
2002-10-20// 삼상 1:1~11 // 박승호목사

기도는 과학이다. 명확한 근거를 갖고 확실한 결과를 보여준다.
성도의 고난시 주의 할 것: 하나님의 뜻을 찾고 기도하고, 순종하는 것
왕정시대를 맞이해야 할 전환기에 꼭 필요한 역할을 할 사무엘을 보내기 위해 기도가 필요하셨던 하나 님은 기도할 수 밖에 없도록 한나를 유도하심

1. 삼상1:7 브닌나를 통해 격동시킴-열받게. 뚜껑 열리게, 염장 지르게 함(광야 3요소)

2. 삼상1:10 마음이 괴로워서 기도, 통곡-마음, 감정이 전달되는 기도
헬)안트로포스(인간)-위를 보며 사는 존재
하늘을 바라는 성도의 삶=자기 최선+하나님의 은혜(내 힘이 미치지 않은 초월적 영역 인정)
위기에 반응하는 모습을 보면 그가 영적인 사람인지, 짐승처럼 땅만 보며 사는 자인지 알 수 있다.
①원인 제공자를 원망하지 않음
-일상의 삶속에서 배후에 역사하는 구속사의 손길을 볼 수 있는 사람
②상식과 경험에 의해 해결하려고 하는 모습
-하나님의 일을 이루려는 계획이 있는 사건에서 사람의 방법은 꼬여 간다.
-기도가 빠진 인간의 방법은 일을 악화시킴
-하나님의 살아계심과 섭리를 인정하고 기도하여야 한다.
③결과에 실망하지 않음
-무에서 유를 창조하신 하나님의 존재를 신뢰함
-해결된 후의 신앙고백-소감 발표
2:6 여호와는 빈(貧), 부(富), 고(高), 저한 상황으로 만드신다.
기도: 문제 앞에 엎드려 구속사의 밑거름이 되는 것
-기도없이는 위대한 일이 없다.
-하나님이 목적하신 바를 위해 나를 낮추기도 높이기도 하셨다.
-성도의 고난은 목적이 있다.
-고난, 사건, 현장을 통해 들려주신다. 기도하라! 엎드려라!

3. 한나의 기도의 자세
①삼상1:10 기도하며 통곡
-다른 것은 위로가 없다. 결론은 하나님이 이 일을 하신다. 여호와께 기도하고 통곡함
-나는 하나님의 자녀, 아버지가 아니면 다른 곳에서는 위로가 없습니다.
-사람을 대적하지 말고 기도하라

②삼상1:11 서원(맹세)
-아들 없는 아픔을 기도하는 중에 영적인 타락 시대에 하나님의 역사를 대행할 하나님의 아들이 없음을 안타까워 하시는 아버지의 마음을 알게 됨
-내 아픔→하나님의 아픔: 내 소원 들어주시면 하나님께 드리겠습니다.
-성태치 못하게 하심: 기도의 실타래 풀리도록 막고 계심
-이제 하나님의 아픔 알아요. 나에게 줘 보세요. 하나님의 마음을 만져드릴게요.
-하나님의 가슴을 만지는 고통으로 승화
-눈을 들어 하늘을 보는 기도-하나님의 뜻을 살필 수 있다.

③삼상1:13 오래 기도함
-하나님을 신뢰하는 자녀는 오래 기도할 수 있다. 운명이라고 하나님의 뜻이라고 포기하지 말라.
-사실을 전달하는 기도가 아니라 마음의 깊은 소원으로 오래하는 기도, 응답될 때까지

④삼상1:13-14 속으로 묵상, 가슴으로 드리는 기도
-심정 통하며 기도하는 자에게 방해꾼은 되지 말자.
15절-하나님 앞에 심정을 통한 것
-기도는 감정, 느낌이 전달 되어야 한다. 관계성립
-내 감성, 절망, 눈물의 표현, 마음을 통한 기도

⑤삼상1:17-18 엘리의 축복으로 얼굴에 수색의 빛이 사라짐
엘리는 존경받을만한 자가 아니다., 지도자의 자격 상실, 마음의 비둔, 아들 교육포기, 기도를 비아냥거린 눈이 닫힌 지도자였다.
-그러나 하나님의 종의 권위를 인정했다.
-기도응답에 장애(권위 인정 않을 때), 하나님의 통치는 사람을 통해서
※하나님의 종을 대하는 태도
일의 효율성으로 사람을 평가한다면 하나님의 통치를 거부하거나 반대하는 사람이다.
-엘리가 아닌 하나님과의 관계이다.
-하나님의 통치질서를 무시하면 기도응답에 방해가 된다. 일이나 인간적인 척도가 아니라 하나님이 그 를 사용하고 계시는가가 중요.

결론
1:19-20 사무엘: 하나님께 기도해서 얻은 아들, 기도해서 얻은 아들-구속사의 매듭이 풀림
성도의 고통→구속사에 쓰임받는 사람이 됨 이런 기도의 열매가 있어야 한다.
하늘과 연결된 끈이 기도이다-놓치면 언제 나락으로 떨어질지 모른다.
라마나욧의 성전을 위한 우리 교회의 기도-구속사에 쓰임받을 기도
마음이 지치고 힘들 때 기도의 길로 인도하시는 주님을 봅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