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혜나눔

17년5월19일요한1,2,3서 말씀세미나 (노대빈 집사)

작성자 관리자 날짜2017.05.21 조회수592
2진 임기환지파 반현석셀 노대빈집사 입니다.
저는 감히 영생을 산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아내”라는 이름의 훌륭한 훈련대장을 잘 섬기며 살고 있기 때문입니다. 처음에 
아내는 예수님도 몰랐고요. 저는 세상에서 이런 성격을 가진 사람은 처음 겪었습니다. 왜냐면 그런 사람은 피해서 다녔으니까요.
 물론 결혼 전에는 몰랐죠. 저는 자기부인이 뭔지도 모르는 상태였지만 지금 생각해도 그때는 예수님 발톱 때 정도에 준하는 
자기부인으로 아내를 섬겼습니다. 신혼이라 그랬나 봅니다. 어떻게든 교회라도 나가면 좀 괜찮아지겠지 라는 마음으로 상당히 
머리를 많이 굴렸습니다. 살살 잘 꼬신 결과 아내가 교회에 나가기 시작했습니다. 당시에는 구미에 있었는데 여차 저차 해서 
( 길어서 생략 다음기회에 ) 생명샘에 오면서 아내가 변하기 시작했습니다. 특히 아내가 셀모임에서 많은 은혜를 받으며 상태가 
엄청나게 호전되는 양상을 띄었습니다. “아! 됐다! 이제 아내는 교회 안에서 잘 적응하고 잘 지내는 것 같으니, 난 내 할 일이나 하자.”
 라며 예배도 아내를 대표로 보내고 육아도 아내에게 맡기고, 비비부불을 즐기며 또 중심을 잡지 못하는, 세상과 타협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어느 날, 아내는 그런 저에게 사탄이라며 저를 차단하는 기도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또, 세미나
 때 발표했던 것처럼, 만약 로또가 되면 빚 갚고 차 사고 그럴 생각만 했지, 십일조는 생각도 못해봤는데, 십일조부터 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아내의 핀잔은 아내를 새로운 존재로 느껴지게 했습니다. 변화를 넘어서 점점 성장해 나가고 있는 아내의 모습은 제 등에
 자주 식은땀을 흘러내리게 했습니다. 장자권은 엿바꿔먹고 들로 산으로 사냥다니는 에서처럼, 가정의 제사장 자리를 아내한테
 떠맡기고 회사 일을 핑계로 세상에 빠져있던 제 모습을 깨닫고는 회개했고, 가정의 리더로서 다시 서야겠다는 다짐을 했습니다. 
아내의 변화가 제게도 흘러 들어와 제 안에 있던 하나님의 생명을 움직이고 있었던 것입니다. 세상에 있으면 너무도 달콤하지만 
이상하게 마음이 불편했고, 하나님과 교제하고 싶은 마음도 점점 커졌습니다. 셀모임 개근 결단을 하고, 목사님 설교말씀 RTC하고, 
1:1을 하기 위해 시간을 비우고, 십일조를 결단하였습니다. 아내의 차단기도가 통했는지, 제 안에 어둠이 조금씩 물러가고 그리스도께서
 제 삶을 빛 가운데 나아오도록 도와주고 계셨던 것입니다. 그런데 희한하게 십일조를 실행에 옮긴 그 주에 회사에서 뜬금없이 권고사직을 
당하였습니다. 마음의 변화가 있고 난 후부터 하나님과 더욱 친밀히 교제할 수 있는 환경, 혹은 다른 직장을 허락해달라고 기도했었는데, 
제가 준비가 됐는지, 그 부르짖음에 하나님께서 응답하시고 출애굽 시켜주신 것입니다. 마치 준비된 것처럼 바로 아버지학교가 있어서 
권고사직의 상처를 안고 지푸라기라도 붙잡는 심정으로 등록했는데 거기서 저는 다시 새로 태어났습니다. 드디어 옛사람을 벗어 던지고 
자기부인에 대해 마음속 깊이 깨달으며 거듭난 것입니다. 아내가 아니라 내가 문제였던 것입니다. 예수님의 사람을 향한 희생의 사랑, 
그 사랑을 진심으로 묵상했고, 저도 가정의 작은 예수처럼 사랑으로 아내와 아이들을 섬겼습니다. 가정이 살아나기 시작했습니다. 그랬더니 
홍해를 겪은 출애굽 백성들이 광야로 가듯, 저도 광야로 들어갔습니다. 직장은 구해지지 않고, 돈은 떨어지고, 부모님은 걱정하시고 
주변시선이 불편했으나, 그럴수록 배운대로 더욱 하나님께 집중했습니다.(포커싱) “하나님께서 왜 이런 일을 배열하셨을까?”를 생각하며,
 더욱 금요철야에서 부르짖고, 말씀을 공부하고, 치유를 공부하고, 아내는 새벽기도로 섬기고, 또 아내와 서로 깨닫거나 은혜 받은 말씀에 
대해 나누는 것을 즐거워하였습니다. 나는 주님 안에 있고 주님은 내 안에 있듯이, 내가 주님의 일을 책임지면 주님은 내 일을 책임져 주실 
것을 믿고 모든 일상이 하나님께로 향했으며, 내 욕심과 생각이 아닌 불기둥과 구름기둥을 따라가는, 하나님의 기준에서 바라보고 생각하고 
생활하는 삶을 살려고 노력했습니다. 그러던 중 하나님의 인도하심으로 사업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우리 교회가 새 성전을 건축하듯 저희 
사업장도 아내와 저는 한마음 한 뜻으로 셀모임/1:1을 하고 말씀을 나누는 작은 성전이 되길 소망하며 가게를 열었습니다.
가게를 오픈 한 지난 주, 금요철야에 참석하였는데, 담임목사님께서 영원한 생명과 부요한 생명을 누리며 살아가기를 원하시는 마음에 세미나
 참석을 권면하고 계셨습니다. 직장인이라도 가능하면 일을 얼른 마치고 저녁 4번이라도 참석하길 바라며 결단하자는 말씀 중, 우연히 옆에 
앉으신 김 모 안수집사님께서 손가락을 펴 보이시며, 7번? 4번? 몇 번이나 참석할 거냐고 저에게 물어보셨습니다. 머리 속으로 순간 계산을 
했습니다. 주일에만 올까? 낮에는 아내를 보내고 밤에는 내가 올까? 집사님께서 손가락 4개를 보여주실 때 얼떨결에 고개를 끄덕이긴 했지만,
 마음이 편치 않았습니다. 하~ 이제 간신히 가게 오픈해서 자리잡아야 하는데, 한번이나 제대로 참석할 수 있을까? 그런데 세미나를 위해 
통성으로 함께 기도하던 중 마음에 큰 감동이 왔습니다. 목사님과 집사님의 얼굴이 예수님의 얼굴로 보이며, 예수님께서 제게 직접 “생명의
 비밀을 알려 줄 건데, 너는 몇 번 올 거니?” 라고 말씀하시는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아, 내가 지금 무슨 생각을 하는 거지? 하나님의 나라와
 구속사에 사용되는 기업이 되기를 원하면서, 그의 나라와 의를 먼저 구한다고 입으로는 결단하면서 막상 현실에 닥치니 물질적인 욕심을
 먼저 채우기 위해 갈등하고 세상과 타협하려 하는, 제 자아가 드러나는 모습을 보며, 0.1초만에 회개하고 자기부인하며 결단하였습니다. 
세미나에 개근하기로 말입니다. 아내에게 이 뜻을 전했는데, 집에서 혼자 애들 보기 싫었는지 잘 모르겠지만, 아내도 흔쾌히 개근을 결단하였습니다.
 부부가 한 마음 한 뜻으로 그리스도 안에서 연합하여 재물의 유혹과 걱정을, 세상을 이긴 것입니다. 게다가 아내는 뭔지도 모르고 패널로 
섬겨달라는 셀장님의 권유에도 순종했습니다. 사실, 아내가 저에게 패널이 뭐 하는 거냐고 묻긴 했는데 “그냥 세미나 출석하는 거 아니야?”라며
 우리는 개근할거니까 알겠다고 말씀 드리라고 해서 그렇게 된 건데요, 그래서 살짝 미안한 마음에 저도 패널을 하기로 했습니다. 본문의 질문에
 대해, 우리 부부의 삶 가운데 경험했던 이야기를 조금 재미있게 들어주시길 하는 마음에 진솔하게 발표했는데, 저와 아내 발표 모두 많은 분들이
 정말 유쾌하게 들어주시고 박수도 많이 쳐주시고 만나는 분들 마다 은혜가 되었다며 저희 부부를 칭찬해주셨습니다. 그러한 많은 분들의 격려와
 칭찬에 거꾸로 저희 부부가 큰 은혜를 받았습니다. 식사를 하며 아내와 이 사건에 대해 나누던 중, 하나님과 함께 했던 저희의 작은 이야기가 많은
 분들의 마음에 작은 빛으로 전해졌을 수도 있겠다는 형언하기 힘든 감격에 저도 모르게 고백하는 말씀이 있었습니다. “아, 정말 부요하다.” 무릎을
 탁 쳤습니다. 바로 이거였습니다. 내 욕심과 물질적인, 세상적인 유혹을 거절하며 하나님의 생명에 참여하고 순종하였더니, 하나님께서 마음
 가운데에 이런 큰 풍요로움을 부어주시는구나. 측량할 수 없는 그리스도의 풍성함이란 것이 바로 이런 것이구나. 부요한 생명이란 개념이 잘 와
 닿지 않았는데, 순간적으로 요한이 예수님을 경험한 것처럼, 눈으로 보고 손으로 만진 것 같이 짜릿한 무엇이 마음 안에 느껴졌습니다.
아직 저는 광야에 있고, 물질과 같은 세상적인 어려움에 처해있습니다. 하지만, 세미나를 통하여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자 그리스도이신
 예수님을 믿고 고백함으로 하나님과 함께 세상을 이길 수 있다는 것을 깨닫고 경험했습니다. 매일을 피로서 회개하고 은혜를 공급받으며, 물로서
 자기부인하고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살 것을 다시 한번 결단하게 되었습니다.
“부요하다”라는 말을 사전에서 찾아보니 한문으로는 다르지만, “힘차게 움직여 일어나다” 라는 뜻의 “부요(扶搖)하다”가 있습니다. 생명샘 교인분들 
모두 주님의 생명을 받아 영원한 생명과 부요(富饒)한 생명을 누리며, 부요(扶搖)하시기를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