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혜나눔

15년 7월 12일 - 창립 21주년 소감(윤은상집사)

작성자 관리자 날짜2015.07.24 조회수496

- 창립21주년 기념주일을 맞이하며 -


윤은상 안수집사

생명샘 교회와의 첫 만남이 지금도 생생히 기억난다.
당시 28세의 나의 직업은 안경사. 그것도 잘나가는 안경사. 남의 돈을 벌어주는것보다는 나의
사업을 해야겠다는 단순한 생각에 전 재산이던 집을 처분하여 신도시로 한창 주가를 올리던
분당에 상가를 분양받고 설래는 맘으로 개점을 기다리며 지내다 개점시기에 맞추어 분당
수내동의 투룸으로 이사를했다. 이것이 우리 가정을 향한 하나님의 부르심의 시작이었다.

꿈에 부풀어있던 중 청천벽력의 소식을 접하였다. “건물의 부도!”
돈은 이미 완불되었는데 등기권리가 넘어오질 않고 무기한 연기가 계속되었다.
성질이 나고 울화통이 터져서 잠을 못 이루고 술에 의지하여 지내던 중 어느날 주일 아침,
생생하게 들리는 음성 “너는 교회에 가야되!” 놀래서 아내에게 “여보 나 교회에 가야되겠는데”
했더니 본인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단다. 준비를 마치고 3살된 아들 희도를 안고 문 앞에
섯는데 막상 갈데가 없었다.

오른쪽을 바라보니 150미터 위쪽에 교회가보이고 왼쪽을 바라보니 바로 옆건물 5층이 교회,
아이를 안고 150미터 걸어가기 귀찮아서 바로 옆 건물 교회로 발걸음을 향하였다. 이렇게
만난곳이 생명샘 교회이다.
첫 인상은 정말 다니기 싫은 작고 답답함이 가득한 교회였다. 말씀은 귀에 안들어오고
목사님은 검은 뿔테에 답답해보이는 인상, 예배를 드리는 내내 “담주에는 다른곳을 알아봐야지”
그런데 하나님은 한 사람을 예비해 놓으셨다.
엘리베이터를 타려고 기다리는데 누가 뒤에서 툭 친다. 바로 중학교 때 같이 교회에 다녔던
친한 친구였다. 사실 이친구는 서로간에 불미스런일로 몇 년째 외면하는 관계였다.
집에 돌아와 아내에게 “어때”하고 물으니 “그래도 아는 사람이있어서 다행이다.”라고 말하였다.
이렇게 시작된 생명샘교회의 생활은 등록하자마자 하나님께서 작업을 시작하셨다..
당시 나는 술을마시고 자면 울화통에 새벽에 잠이 깨어 뒷산인 불곡산에 올라 세상을 향해 “
야 이새끼들아”하며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곤 했는데 문득 어차피 새벽이면 깨는데 새벽기도가
있다는데 하는 착한 생각이 떠올랐다.
그렇게 참석하게 된 새벽기도 시간, 여전히 목사님은 검은 뿔테에 답답해보이시는데 그
선포되는 말씀이 나에게 위로가 된다 (당시 교회의 형편이 나하고 비슷했다 하나님 돈좀
주세요! 돈 때문에 돌아버리겠어요 하는 형편이었다)
그 시절 들려주신 위로의 말씀에 참 많이도 울었다. 그 울음이 좋아 새벽을 깨웠다.
그러던 어느 날 성령께서 나를 만지셨다. 감당할 수 없는 그 무언가의 큰 힘으로 나를
제압하셨다. 이게 뭐지하는 동안에 영의 세계를 열어 주셨던 것이다.
이렇게 나는 교회에 빠져들었다. 집보다 교회가 좋아 출근 전 교회, 출근해서도 말씀들으며
지냈고, 퇴근할때는 교회로, 잠자리에 들면서도 말씀으로, 온 정신을 교회 중심으로 살았다.
그러던 중 하나님의 은혜로 안경점을 열게 되었다. 때마침 교회도 부흥을 하여 새로운 장소를
물색하였다. 그런데 “이게 웬 하나님의 은혜인가“ 같은 건물 5층으로 이전을 한 것이다.
바야흐로 정자동 성전이 시작되었다. 한 건물에 있다보니 너무 너무 행복했다. 시간만 나면
5층으로 발걸음이 향했고 이렇게 교회의 흐름에 동참하게 되었다.

그리고 어느 시점에 하나님께선 생명샘 교회에 성전 건축의 꿈을 꾸게 하시고 전 교인의
기도와 하나 된 마음으로 준비하게 하셨다.
많은 분들이 본인의 달란트대로 최선을 다해서 하나가 되었다. 그리고 참 많은 땅을 찾아다녔다.
이런 저런 시행착오를 거쳐 지금 이곳 땅을 계약하였다. 그런데 맹지란다! 건축을 할 수 없는
( 하나님 빽 믿고 다들 무대뽀였다)...

전 교인의 합심된 기도 응답으로 하나님께서 진출입로의 계약을 허락하셨다.
(특히 당시 우리의 행동대장이신 최덕수 안수집사님은 아침마다 지금의 진출입로 주인의
집으로 출근, 눈도장을 찍었다.) 진출입로 계약하는 날 이진수목사님, 최덕수집사님과
삼겹살에 사이다로 건배했던 그 맛을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공사가 시작되었을 때 어떻게 도움이 되어야 할까 고민하였다.
이때 최덕수집사님 왈 “윤집사 우린 돈 없으니까 몸으로 때우자!”는 한마디에 출근 전 벽돌
나르고 철근 나르고 청소하고 퇴근하면 콘테이너박스에서 불침번으로 밤을 지새우며,
또 기도로..., 건물 올라갈 때 마다 비닐 뒤집어 쓰시고 기도하던 권사님, 집사님들.
아직 완성되지 않은 소예배실에서의 예배. 그리고 입당예배 드릴 때 허전하다 하여
고향의 산에서 캐어 온 나무들 (이젠 잘자라 교회를 둘러싸고 있다.)

생명샘교회
때때로 생명샘 교회와 박승호 목사님을 만나지 않았다면 지금의 모습은 어떤 모습일까?를
돌이켜 생각해보면 끔찍하다는 마음이 든다.
가장 큰 변화는 역시 우리 가정이다. 말씀이 살아서 운동력 있음을 몸소 체험하였고 또한
여러 치유 프로그램을 통해 내면의 본질을 알게 되었다.
말씀과 치유를 바탕으로 아이들을 키우고 부부 관계가 회복되었다. 그럼에도 많은 시행착오,
아픔의 시간을 겪었다. 하지만 교회에 붙어 있으니 자연히 내면이 성장하고 자연스럽게
신앙인으로 변화되어 온 것을 보게 된다. 사고를 바꾼다는 것은 어려운 일임에도 생명샘교회와
박승호 목사님을 만나 이같은 변화를 경험하고 회복의 은혜를 누리고 있다는 것은 나와 우리
가정에 엄청난 하나님의 축복이고 가문의 영광임을 고백하게 된다.
이 자리를 빌어 교회와 목사님에게 큰 감사를 표합니다.
긴 시간의 흐름속에서 함께 공부하고 함께 기도하고, 함께 헌신하고, 함께 희노애락을
나누면서 어찌 좌절과 낙망이 없었겠습니까? 그런 생활중에 나의 인생과 나의 가정의 터닝
포인트인 생명샘 교회였기에 더 더욱 사랑할 수 밖에 없는 교회가 되었습니다.
또한 하나님께서 생명샘을 통해 계획하신 일들이 아직 시작에 불과한 것을 알고 있습니다.
언젠가 수내동 시절 하나님께서 종합병원같은 큰 교회를 보여주셨다.

이제 성년의 나이21년. 앞으로 30년 50년 100년 한 시대를 향한 하나님의 원대한 계획을 알고,
붙어있음의 축복을 알기에, 영혼을 사랑하는 목자의 마음을 알고, 이 일을 위해 함께하며
바라봐 주는 분들이 있기에, 생명샘교회를 향한 나의 꿈은 현재 진행형이다.

나를 꿈꾸게하는 생명샘교회를 진심으로 사랑합니다......^^
나와, 우리가정을 인도하시는 주님을 사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