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혜나눔

15년 7월 12월 - 창립 21주년 소감(정정애권사)

작성자 관리자 날짜2015.07.24 조회수457


- 창립 21주년 소감 -


5진, 정정애지파, 정정애권사

생명샘교회에 등록한지 올해 20년 되는 해이다. 소감을 나누려고 하니 떨리기도 하고 부담도
된다. 지나온 시간을 되돌아보니 가슴이 뭉클하고 잠이 오지 않았다.
‘10년이면 강산이 변한다’는데 교회를 통하여 내가 성장해온 모습들을 어떤 내용으로 나누어야
할지? 내 삶 속에서 주님이 드러나고, 교회를 통하여 일하신 하나님을 어떻게 전해야 할까?
생각이 많았다. 주님께만 영광 돌리는 간증이길 바라는 마음이다.

1. 생명샘교회로 등록하다.
신앙 안에서 중매로 만나 결혼하여 별 문제 없이 살았다. 남편은 기독지혜사를 다녔다.
어느날 남편은 직장생활로 평생을 보낼 수 없다며 기독교 백화점을 하겠다고 회사를 그만두고
가게를 계약하고 이사까지 했다. 하지만 2년쯤 남편은 정말 예수 믿는 사람들 상대로 장사
못하겠다며 가게 일에 소홀하고 다른 일들을 찾기 시작했다. 의존적인 저의 성향은 그저
남편의 결정을 따를 수밖에 없었다. 김포 방화동에서 성남으로 이사를 왔다.
세상적인 원칙으로 살아가다 보니 하는 일들이 잘 되지 않았다. 허탈하고 목마른 가슴을
채우기 위해 교회를 찾아다니며, 교회를 정하기 위해 이곳저곳을 돌아다녔다. 두 시간이나
걸리는 광명시까지도 다녀보았지만 우리의 마음을 채울 수가 없었다. 1995년 10월 첫 주일
아는 집사의 소개로 분당 수내동에 있는 생명샘교회에 첫 걸음을 내 딛었다. 11시 주일 예배를
드린 남편은 “바로 여기다 우리 등록하자!” 말하는데 “아니야, 4주 예배드리고 나서도 변함이
없다면 그때 해도 늦지 않아”라고 말했다. 저는 말씀을 모르니까 쉽게 결정하는 것이
못마땅하여 한 말이다. 4주 동안 예배를 드리고 등록했다. 남편은 “내가 찾는 말씀이며,
혼자 듣기에 너무 아깝다고 했다. 저 목사님은 책을 쓰셔야 한다”고 했다. 지금 많은 책을
저술하시는 목사님을 바라보면 이십여전 이때를 미리 예견한 남편이 요즘은 달리 보여지는
것이 사실이다.

2. 나의 훈련 (다루심과 연단을 통해 세워 가심)
교회는 로마서를 시작하여 공부하는 코스가 정해져 있었다. 예배 후 점심을 먹고 나면
목사님의 직강 성경 공부를 하였다. 내적치유 공부도 했다. 기질과 양육패턴을 공부하면서
‘내가 정말 잘못 살아왔구나. 내가 아이를 다시 낳는다면 이렇게 키우질 않을텐데,’ 두 아들을
강압과 완벽주의, 응징과 과보호로 키우면서 판단하고 충고하고 비판했던 나 자신을 발견했다.
‘이제라도 아이를 낳는다면 이전보다는 더 잘 키울 수 있을텐데’라는 막연한 기대를 가졌었다.
그런 나의 마음을 하나님께서 아셨는지 현재 고3인 딸이 태어났다. 남편은 주님을 기대하면서
딸아이의 이름을 ‘소망’이라고 지었다.
이때 목사님께서는 평신도 말씀사역자들을 세워 주일 예배 후 점심을 먹고 각 사역자의
집으로 흩어져 말씀공부를 하도록 했다. 어린 딸과 위로 큰 두 아들을 데리고 룻기와 창세기를
공부했다. 말씀공부나 세미나가 끝나면 내용정리 및 소감과 결단 나눔이 자연스럽게 이어지고
금요철야에는 간증과 치유의 역사가 일어나는 축제의 밤을 보냈다.
‘빛이 있으라!’ 선포하면 어둠은 물러가고 빛이 드러나는 역사의 간증들이 수없이 많았다.
여드름 때문에 고민하던 학생이 빛을 선포하니 여드름이 들어가고, 보일러가 고장 나서
돌아가지 않던 것이 돌아가고, 갑자기 고장 났던 차가 시동이 걸리고, 집안에 있던 바퀴벌래가
사라지고, 전원이 나갔던 냉장고가 다시 작동이 되고,...
살아 움직이는 교회의 모습이었다.
교회 안에 존재하는 역사성의 말들이 있다.
‘빛이 있으라!, 산다는 것이 황홀하다, 우리의 만남은 열권 때문이야, 틀림없이 무슨 뜻이
있을 거야!, 붙어 생존, 적자생존, 배워서 남 주자, 구속사의 두 기둥 썬쉽, 킹쉽, 1313운동’
지금 사용하는 단어들이 그 당시에 우리의 마음을 가득채워가고 있었던 것이다.
1998년 12월20일 교회가 정자동으로 이전하였다. 아이를 업고 낮에도 공부하러 다녔다.
건강상태가 좋지 않아 아이와 함께 다치는 일이 많았다. 우여곡절을 겪으면서도 딸을 데리고
치유공부도 하고 말씀공부도 하면서 조금씩 나를 알아가고 몸과 마음도 회복되기 시작했다.
딸 소망이가 유치원 들어가면서, 2001년 내적치유 지도자반에 들어가 공부하였고 사역에 대한
권유를 받아 엄청난 부담을 안고 치유사역자로서의 삶을 시작했다.
2002년도부터 사역을 시작하여 내적치유로, 2005년부터 인지치유로, 많은 지체들과 만나
삶의 경험들을 나누며 서로에게 영향력을 흘러 보냈다.
목사님께서는 수없이 교인들에게 “우리교회가 평신도사역에 본이 될 것이다. 생명샘 교회는
목회자들을 섬기는 교회가 될 것이다. 때가 되면 우리는 세계를 다닐 것이다. 미리 준비해야
한다. 때가 얼마 남지 않았다.”고 말씀하셨다.
하나님께서 아브람함에게 준 약속이 성취된 것처럼 하나님께서 목사님에게 준 약속이
생명샘교회와 저 개인의 삶에 성취되어 가고 있음을 본다.

저의 삶을 출애굽기로 푼다면 출애굽하여 하나님이 준비하신 목자(모세)를 만나 광야로
들어갔다. 목사님을 통하여 홍해를 건넜다. 기적과 이적도 경험했다. 그런데 이 광야 생활이
만만치가 않았다. 출애굽 후 이스라엘 백성들이 수없이 하던 원망이 내 안에서 마구 올라오기
시작했다.
‘차라리 박 목사님을 만나기 전이 더 편했어’
‘저 분을 만나고 나면서부터 왜 이렇게 꼬이고 복잡한 거야’
하나님도 원망하고 사람도 원망하면서 문제의 핵심을 자꾸만 밖에서 찾으려는 어리석은
모습이었다. 이런 갈등과 번민 속에서 그렇다고 다시 돌아갈 수도 없는 상황이니 날마다
하늘만 보고 살았다.
성전 건축 부지를 찾기 위해 땅 밟는 기도, 성전부지 당첨 뽑기를 하는 목사님의 손을 위한 기도,
성전부지 구입 후 진입로를 위한 기도, 건축을 위해 24시간 릴레이기도, ...
광야는 고난만 있는 것이 아니라 고난을 통한 훈련과 은혜가 함께한 시간들이었다.
2003년 5월 용인으로 이전해 오면서 교회를 찾아오는 사람들과 새 신자들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치유사역부에서 여러 해를 거듭해 오는 중 치유사역, 치유사역부서 총무, 인지치유 사역,
목성연 사역으로 하나님께서 연결하셨다. 교회 안의 훈련과 목사님의 허락 하에 외부훈련까지
받으면서 점점 다듬어 가시는 그분의 손길을 느꼈다. 그렇게 많은 시간 준비시키시더니,
목성연 목사님들을 모시고 내인치유세미나를 감당하게 하셨고, 해외로 까지 사역의 여정을
넓혀가게 하셨다.
붙어있고 따라가다 보니 생각지도 못한 사역의 현장들을 경험하게 하시고 영역을 확장시켜
가시는 하나님의 일하심을 본다.
저의 에베소서는 그리스도의 충만함이 목사님에게, 목사님의 충만함이 저에게, 저의
충만함이 저를 만나는 사람들에게 흘러가고 있음을 보고 있다.
에베소서에서 말하는 교회의 비밀이 교회만이 아니라 개인과 가정, 소그룹에서 대그룹까지
속해 있음을 발견한다. 이 비밀이 나의 안과 밖을 변화시켜 영역이 확장되어가기를 소망한다.

3. 가나안의 삶 (회복 되어가고 있는 나의 모습)-
뒤돌아 보면 남편의 갑작스런 이직과 개업과 폐점을 겪으며 따라왔던 이곳, 이리저리 재며
시작했던 생명샘교회에서의 시간들은 나를 가나안에서의 삶을 위한 과정이었음을 고백하게
된다. 동시에 어린시절부터 나의 내면 안에 쌓여진 아픔을 극복해 가는 과정들을 통해 내 안에
‘용기’라는 힘이 올라오고 있음을 발견한다.
이처럼 다양한 삶의 과정을 통해 허락해 주신 가나안은 하나님께서 나에게 주신 기업이다.
나는 이 기업을 감당하기 위해 무장된 군인으로 살아가고자한다.
하나님 나라의 군사 된 내가 내 앞에 도사린 사단의 권세와 싸워나가기 위해 받은 약속의
말씀이 있다.
마태복음 16장 15절에서 19절, 구원 받은 자의 신앙고백, 몸 된 교회를 세워가는 삶(양육),
기도와 언어(천국열쇠)로 마음, 생각, 환경을 열어가는 삶(통치권)과 로마서 12장 1절에서
2절, 예배의 삶을 통하여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는
삶을 살아가는 것, 이것이 나의 구속사의 기둥이다.

여기까지 인도해주신 목자와 교회에 감사하며, 함께 하신 주님을 찬양하며 모든 영광 하나님께
돌립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