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애 간증문
권 순 화 장로
사람은 만남이 참으로 중요한 것 같습니다. 초등학교 5학년 때 부모님께서 다니시던 천주교회에서 영세를 받고 중학교 2학년 어느 날 우리 집에 심방 오신 신부님이 아버지와 함께 담배 피우고 술 마시고 고스톱 치는 것을 보고 어린 마음에 저런 분이 어떻게 주일 강단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증거할 수 있나 생각하니 회의감이 들어 교회를 멀리 하게 되었습니다.
1983년 아내를 만나 여러 교회를 다녔지만 96년 분당으로 이사하여 6월 5일 박승호 목사님을 만나 저의 지나온 인생에 종지부를 찍었습니다. 사랑에 목말라 있던 제게 생명샘 교회에서 ‘사랑의 하나님’을 만났습니다.
제가 왜 ‘사랑의 하나님’을 만났다고 표현하는지를 이해케 하기 위해 저의 과거를 조금은 밝혀야 될 것 같습니다.
저는 아주 어린 시절부터 경북 문경 소백산 골짜기에서 할머니, 할아버지와 살고 있었습니다. 1965년 겨울에 낯선 어머니가 오셔서 부모님이 계신 곳(아버지가 군인이셨기에) 강원도 춘천으로 따라갔습니다. 그때까지 할아버지께서는 저에게 초등학교 마치면 한 뼘 되는 땅 너 다 가지라고 하시면서 지게까지 만들어주셨습니다.
부모님과 함께 살게 되었지만 저는 남의 집에 살고 있는 것 같았고 모든 것이 낯설었으며 아버지가 무서워 시골로 돌아가고 싶었습니다. 중․고등학교 6년을 학생 전원이 부모를 떠나 군대식 기숙학교에 입교하여 공부하게 되었는데 정을 붙이지 못한 집을 떠난다는 것이 내심 홀가분했습니다. 『정직과 진실』을 교훈으로 하는 학교에서 사관학교처럼 훈련을 했고 6년을 무감독 시험을 치루는 분위기에서 공부하다가 졸업했습니다. 어른이 되어 생각하니 정직, 성실, 예의, 규칙, 자율 등에 대하여 많은 교육과 훈련을 받은 것이 평생에 자산이 된 것 같습니다. 반면에 ‘나는 왜 부모에게 다가가기가 이렇게 힘들까?’, ‘나는 외롭다’라는 생각을 참 많이 하며 자랐습니다.
1996년 이전과 그 이후
1996년 겨울 봄방학을 맞아 생명샘 교회에서 1주일 간 기질테스트 등 치유 프로그램을 통하여 제가 ‘우울질’이라는 것과 그 장․단점을 구체적으로 이해할 수 있게 되었음은 물론 사람의 내면세계를 공부하면서 현재의 내가 이렇게 만들어졌구나하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지금까지 나 자신만을 위해 살았고 외로움을 해결하려 친구들에게 매달리기도 했지만 그들도 다 결혼 이후 가정생활을 하는 지라 그 친구들이 제 외로움을 해결해 줄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은 이후로는 주로 술로 이 외로움을 해결하려고 했지만 건강이 뒤 따라 주지 못하니 그도 역시 해결방안이 되지를 못했습니다.
이런 절망의 때에 저는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게 되었고, 그 사랑에 제 자신의 마음이 점점 빠져 들므로 나의 정서적 갈증들이 해갈되고 충족되기 시작했습니다. 비로소 나의 방황의 종착지는 교회임을 인정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이 배열하신 외로움의 환경은 사랑을 찾아 헤매게 하셨고, 긴 방황 끝에 사랑의 주님을 만남으로 결말이 지어졌습니다.
신앙생활을 제대로 시작한 이후 내가 깨달은 진리는 2000년의 기독교 역사는 헌신과 희생과 사랑의 역사라는 것을, 나만을 위해 살지 않고 남을 위해 나를 희생하는 삶이 진정 가치 있는 삶이라는 것을 절절이 깨닫게 되었습니다. 저는 이 길을 가야되겠다고 결심했습니다. 이 길만이 생명의 길이라는 것을 알고 말씀 공부와 치유 프로그램을 성실하게 따라갔습니다. 한편 방학이면 두 차례씩 열렸던 한국 교육자선교회에 가서 3박4일씩 참여하면서 믿음을 키워갔습니다. 은혜를 체험하면서 바른생활을 하다 보니 하나님께서 곧바로 저에게 선물을 주셨습니다. 10년 앓던 간염이 깨끗하게 치료되었습니다.
술을 끊기까지 많은 갈등이 있었습니다. 술에 인박혀서 산 세월이 십 수 년이었기에 끊으려고 해도 쉽지 않았습니다. 이로 인하여 셀 수도 없이 넘어졌지만 제가 갈 길이 너무나 명확했기에, 내가 가는 길 끝에는 틀림없이 주님이 두 팔 벌려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절망하지는 않았습니다. 한 쪽 발은 교회에, 그리고 나머지 한쪽 발은 세상에 두고 있지만 과거의 잘못 길들여진 습관과 싸우면서 나는 묵묵히 순종하며 이 길을 간다고 다짐하고 또 다짐했습니다. 그러나 이 싸움 7년으로 지쳐갈 즈음, 주님께서 또 한 번 음성으로 한 순간에 술을 끊게 해 주셨습니다. 그것은 부산에서 배를 타고 5박6일 일본 여행이 있었는데 이번에 우리나라에서는 남의 이목도 있어서 가슴 졸이며 지냈는데 일본에 가면 아무도 안볼 것이니 실컷 먹고 오자하고 출발했습니다. 대마도쯤 지나는데 멀미가 심하여 의자를 들고 바깥으로 나와 앉았는데 갑자기 하나님의 음성이 생생하게 들려오는 것입니다.
두 가지를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는 너 그동안 네 힘으로 끊으려고 해도 못 끊었는데 고생이 많았다. 내가 끊게 해 주겠다.하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다른 한 가지는 여행 좀 그만 다니고 네 자녀인 준학이, 준영이게 기회를 주어야 하지 않겠느냐고 말씀하시는 것이었습니다.
그 다음은 집안의 우상숭배 곧 제사 문제가 제 발목을 잡았습니다. 이 문제로 참으로 많은 씨름을 했습니다. 너무나 괴로웠습니다. 기도하고 또 기도했습니다. 어느 늦가을에 하나님께서 적막이 감도는 밤늦은 시간에 조용히 아버지와 만나 얘기할 수 있게 해주셨습니다. 하나님의 역사로 그 다음해 설날부터 저희 집 제사가 없어졌습니다. 그리고 부모님도 천주교에서 기독교로 오셨습니다.
안수집사가 되기에 부족하다고 느끼고 있었습니다. 임직 후 안수집사로서 너무나 부족했기에 더 고개를 숙이려 노력했고, 더 말씀에 진력했습니다. 얼마의 시간이 흐른 후 나의 연약했던 신앙이 부쩍 성장했다는 느낌을 갖게 되었습니다.
장로가 되기에 턱없이 부족하여 늘 죄송한 마음이었습니다. 장로 임직 후 더 더욱 고개 숙이려 노력했습니다. 더 순종하려고 애를 썼습니다. 그럴수록 위로부터 주시는 은혜가 나를 감싸고 제 믿음은 더욱 주님께로 가까이 가는 것을 느끼게 됩니다.
하나님은 저를 현재 서울의 금천구 소재 미션스쿨인 문일고등학교로 보내시어 지금까지 31년 째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20년 교사 생활을 하고, 하나님을 제대로 만나고 보니 하나님으로 부터 오는 하늘의 가치관이 제 가슴을 채우고 보니 하나님께서 주신 사역의 주 무대가 학교라는 것을 인식하게 되었습니다. 학생들이 새롭게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비로소 성적순으로 보이지 않고 한 인격체로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실력보다 인격, 도덕적 인간이냐 아니냐, 영적 인간이냐 아니냐에서 인생의 승부가 난다는 것을 깨닫고 가르치기 시작했습니다. 어린 학생들의 인격을 만지고 훈련하는 살리는 교사가 되어야 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큰 꿈을 꾸게 하는, 비전을 가르쳐 주는 교사가 되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지금은 비록 공부를 잘하지 못해도 꿈이 있으면 언젠가는 반드시 성공적인 인생을 살 수 있다는 것을 강조했습니다. 졸업생들이 10년, 20년 뒤에 스승이라고 찾아와 그들의 삶을 고백할 때 그동안의 수고가 헛되지 않고 열매로 맺혀지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너무나 감사했습니다.
제 전공인 지리를 더욱 잘 가르치려 준비했습니다. 그 이유는 학생들에게 저를 통해 하나님을 알기를 원했기 때문입니다. 제가 하나님을 얘기하는데 제 과목인 지리를 못 가르치면 그들에게 하나님에 관한 말씀을 해도 그들의 귀에 들리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실력도 없는 주제에 왠 하나님 얘기’냐고 숙떡거리지 않겠습니까? 그들에게 하나님을 소개하기 위한 방법으로 제 과목을 더 잘 가르치려 노력하고 있습니다. 앞으로 4년여 기간을 이렇게 마지막을 잘 마무리 하고 은퇴할 것입니다.
하나님은 모세를 통하여 이스라엘을 구원하실 계획을 가지셨습니다. 모세를 이끄시고 연단하셨던 훈련의 과정들을 보면 그 때는 다 이해할 수 없었지만 후일에 결국 모든 고난과 훈련들이 다 사역과 연결되어 있음을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 뜻 아닌 것이 없었습니다.
저의 삶을 뒤돌아 볼 때에도 동일하다는 것을 고백합니다. 옛 말에 진인사대천명(盡人事待天命)이라는 금언이 있습니다. 제가 살아왔던 삶의 원칙이었습니다.
저의 신앙생활은 제가 하나님께 다가가려고 노력하고 최선을 다하다가 지쳐 쓰러지려고 할 때 주님은 저의 문제를 해결해 주시고, 신앙의 걸림돌을 제거해주시면서 저를 다음 단계로 넘어갈 수 있도록 도우셨습니다. 저의 결단과 은혜가 항상 같이 갔습니다.
이제 2012년 새해를 맞아 여호수아 프로젝트(Joshua Project) 2기의 진장으로 저를 세워 주셨습니다. 생명샘 교회의 세 번째 부흥을 위해 저와 저희 당회의 장로님들을 세우셨음을 감사합니다. 주께서 저에게 주신 은혜와 믿음의 견고한 바탕 위에 동역자로 세워주신 설진용, 안응희, 김성빈 총무님, 그리고 새로이 임명될 가족들의 족장님들과 연합하여 멋지게 승리를 올려드릴 것입니다.
은혜로 여기까지 오게 하신 하나님께서 여호수아 프로젝트 2기의 사명도 성공케 하셔서 하나님과 교회 앞에 큰 영광을 올려 드리게 될 것을 기대합니다. “여호와 닛시, 승리케 하신 우리 주님을 찬양합니다. 아멘”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