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혜나눔

20111125소감문-김종일성도

작성자 관리자 날짜2011.11.26 조회수1607

샘파 46기를 마치며


 


 


안녕하십니까. 저는 샘파 46기를 수료한 김종일 입니다. 반갑습니다.


지난 화요일 오전에 샘파 리더 박균철 집사로부터 한 통의 전화를 받았습니다. 금요철야 예배시간에 샘파를 마친 사람 중에서 발표를 해야 하는데 저를 추천한다는 말씀이셨습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잠시 시간이 멈춘 듯 머리가 하얘졌습니다. 자연스레 머리가 숙여지고 한숨부터 나왔고 이 난관을 어찌해야 좋을지, 주여! 제게 왜 또 이런 시련을 주시나이까? 저를 시험에 들지 말게 하옵소서. 사실 저는 숫기도 없고 내성적인데다 여러 사람 앞에서 이런 발표 라던지 나서서 진행한다던지 하는 것을 못해 왔기에 이런 자리에 서면 두렵기도 하고 떨리기도 하고 식은땀이 나고 제대로 끝까지 읽을 수 있을지 걱정부터 했었습니다. 앞서 샘파 소감문을 발표할 때도 어떻게 그 시간이 지났는지 기억도 못했었는데 또 같은 것을 해야 된다는 것이 저에겐 부담 백배였지만 용기를 내기로 했습니다.


 


저를 아시는 분들은 제게 강한 성격이다. 자기 주관이 뚜렷하고 소신 있다는 말씀들을 하십니다. 제 기분 상하지 않게 좋게 말씀들을 하시지만 쉽게 말해 피곤한 스타일이고 고집불통이라는 거죠. 아내도 마찬가지였지만 벌써 몇 년 전부터 몇 분이 제게 전도를 해왔었습니다. 만나면 하나님 이야기, 만나면 교회 이야기, 또 만나서 믿음을 알면 삶이 행복해지고 마음이 풍요로와 진다는 등 많은 말들을 들었지만 귓등으로도 안 들었고 귀에 딱지가 앉을 것 같으면 손가락으로 후벼서 시원하듯 잊어 먹고를 반복해 왔고 그 믿음 이라는건 나와는 맞지 않는 그들만의 것이라 치부하며 지내 왔었습니다.


 


그랬던 제가 9주나 되는 이 샘파 교육에 참여한 것은 저에게 보면 하나의 모험이고


도전이었으며 또한 저의 객관적인 판단이 절대적으로 필요했기 때문입니다. 샘파 수료 후의 제 판단이 그렇다아니다이 두가지로 봤을때 그렇다했을 경우 내가 다니지 않던 교회를 나가게 될 것이고 아니다했을 경우엔 아내와 아이들이 다니던 교회를 포기 한다는 조건이었고 불신자로서의 대충 시간 때움이 아닌 진심으로 열심히 했을때 어떤 결과물이 나오더라도 수용한다는 아내와의 약속이 있었고 나로서도 이번 기회에 내 기준이 아닌 아내가 말하는 그 무엇을 직접 알아보고 경험해야 정당성이 있겠다 싶어서 였습니다. 그리고 제가 지금껏 살아오면서 아이들에게 제대로된 아버지란 무엇이고 어떤 모습이었는지를 또 어떻게 보여 왔는지를 몰랐었다는 것입니다. 그냥 하루하루를 아무 일 없이 잘 지내면 자연히 알아서 크겠거니 했고 항상 아빠를 따르고 이해해 줄 것이라고만 생각했을 뿐이었습니다. 그래서 아이들에게 좋은 생각을 심어 주고 그럴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알려주지 못하는 저를 보았기에 그것도 알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도 있어서 참여해보고 알아 보자는 것이었습니다.


 


지난 46기 샘파에 참여 하면서 느낀 점이랄까 바뀌었으면 했던 것은 저와 같은 불신자에 대한 교육이 아니라 이미 믿음을 가진 초신자 들에게 다져진 기틀을 좀 더 튼튼하게 하기 위한 교육이고 진행도 그렇게 맞춰진 것 같았습니다. “,,도 모르는데 ,,부터 가르치는 것 같고 나룻배에 혼자 태워 놓고 알아서 강을 건너라며 노만 들려준 것 같았다는 것입니다. “부담감, 불신, 거부감이런 마음이 있는 사람에겐 진행 전 그 교육 중에서 반감이 갈만한 진행이 단 한가지였더라도 미리 미리 따로 사전교육이 있었으면 했다는 것입니다. 제 입장에서는 모든 사항이 처음 접하는 것이고 어색하니 머리 따로, 마음 따로, 몸 따로 적응하기 쉽지만은 않았습니다. 교회에서 식사하는 것이 싫어 밥을 사먹고 오기도 하고 좀 늦게 갈까 하면 아내가 성화고 처음엔 억지로 다녔지만 불편했던 것이 차츰 익숙해 진다고 해야 할지 그 분위기에 동화됬었던 것이 아닌지는 모르겠지만 한주 한주 갈수록 귀에 들어오는 말씀도 있었습니다.


 


3주차 찬양시간에 조성모의 가시나무새를 불렀습니다. 전에는 무의미하게 흘려 보냈던 노래였는데 그날따라 가사들이 가슴에 콕 박혔고 아 내가 이런 삶을 살아 왔었구나, 그동안엔 내가 나를 너무도 잘 안다고 느꼈었는데 아니었구나, 지금껏 내 마음속에는 허물지 못한 벽이 있어서 나도 다른 이에게 다가서질 못했고 다른 누구도 내게 다가오질 못했겠구나하며 나를 다시 돌아볼 수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이런 감정을 느낄 수 있게 해 주신 것에 감사드립니다.


 


6주차 성령체험 시간에 처음으로 닫혀 있던 마음의 문을 열었고 성령님을 영접했습니다. 아픈 곳이 몸이던 마음이던 치유될 수 있고 그것에 감사하는 기도 시간이었는데 저에게 있던 몸이 아픈 증상도 마음속에 갖고 있던 설마 그런일이 어떻게, 혹시 나에게도, 아닐꺼야했던 마음을 비우고 열심히 따라했고 기도도하고 울며 사정도 해 보았지만 제겐 아무런 은사를 내려 주지 않으셨습니다. 무엇이 문제일까 고민해 보지만 마음의 벽이 아직 완전히 허물어 지지 않은 것이 이유이겠다 십습니다.


 


7주가 지나도록 그 어떤 느낌도 받지 못한 저로서는 12일의 인카운터가 저에겐 마지막중 마지막이었기에 불안감과 기대감 또한 아주 크게 자리잡고 있었고 그만큼 무엇이 됐던 꼭 느낄 수 있도록 거짓 없이 정말 더 열심히 임했습니다. 토요일 진행이 끝나도록 아무런 느낌 역시 없었습니다. 마음은 조급해지고 잠도 안들것 같아 운동도 하고 산책도 하며 다시금 마음을 추스렸습니다. 다음날 오전 내 내 하나님께 주! 예수께 성령의 은사를 보여달라 빌고 또 기도도 해봤지만 결국 아무것도 내려 주지 않으셨습니다. 당시 상황에서의 그 허탈감은 뭐라 표현을 못하겠네요. 그러면서 반감이 다시 들었고 포기하고 싶은 마음과 모든 것이 귀찮아 졌고 잠시 멍 하니 앉아 있는데 충성조 리더 박균철 집사님이 밖에 바람이나 쐐고 오자시기에 밖에 나와 생각합니다. “이대로 집에 갈까, 내가 여기에 더 있을 필요가 있나, 이런걸 바랄려고 여기까지 온 것이 아니었는데 지금까지 보낸 이 시간들이 헛된 시간 이었나생각 할수록 마음이 답답해지기만 했습니다. 바로 점심시간이 됐고 밥 생각이 없어 기도원 뒤 동산에나 오르면서 좀 더 생각해 보기로 하고 산으로 향했습니다. 제가 샘파 기간 중 마음이 꿀꿀해 지면 듣는 노래가 있는데 3주차 때 악보도 받고 불러도 봤던 그 노랩니다. 바로 그날 저녁 아들 녀석에게 부탁해서 휴대폰에 저장해 놓고 생각날 때마다 즐겨 듣는 노래가 됐습니다. 동산에 오르면서 듣고 들으면서 생각하고 내려 오면서 듣고 생각하다 보니 마음이 한결 가벼워지고 편해졌습니다. 동산 안에 회개하는 계단이 있는데 그 곳에 잠시 앉아 생각해 봅니다. (처음 아내와 샘파 때문에 옥신각신 했던 것, 아이들, 지난 몇 주의 시간들, 내가 이 자리에 왜 앉아 있는지 등등) 그러면서 느낀 점은 비록 나는 성령의 은사를 직접 받지도 느끼지도 못했지만 그렇다고 내가 하나님에 반하거나 미워할 필요가 없겠구나. 그냥 마음가는대로 해보자. 불신자였던 내가 아니었던가 그것이 무엇인지는 몰라도 조금은 부족했을 것이고 마음 한 구석에선 드러나지 않은 거부감이 있었을 거다며 다시금 나를 다잡게 되고 긍정적으로 바라보자. 성급해 했던 마음 조급해 했던 마음을 버리고 천천히 내안에 하나님을 하나님 앞에 내가 있다는 것만으로 위안받자.


 


처음 아내와 약속했던 대로 9주의 샘파를 무사히 마치게 돼서 기뻤고 제 아내를 비롯해 그동안 수고 많이 하신 여러 섬김이 여러분들과 충성조 리더, 부리더, 형제분들게 감사하고 고맙고 사랑합니다.


 


이젠 내 마음이 가는대로 행동하는 일만 남은 것 같습니다. 지난주 금요 철야 예배를 시작으로 주일날 등록도 했고 지금 생명샘교회의 교인으로 이 자리에 섰지만 저는 이제 갓 태어난 어린 아기이고 이 아이가 다른 길로 빠지지 않고 멋지게 자랄 수 있도록 목사님들과 많은 성도 여러분들의 지지와 관심과 도움이 필요하고 부탁드립니다. 고맙습니다. 도움을 주신 모든 분들께 다시 한번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 항상 함께 하실 주께 영광을 드리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