받아주기를 마치며
주재규 목사(서울 목성연, 초양교회)
오래 전부터 기대했던 받아주기였다. 하지만 주일 오후 여전도회장과의 의견대립과 북경에서 공부하고 있는 아들의 기숙사비를 약속 날짜에 보내주지 못한 미안함과 자책감을 가지고 무거운 마음으로 참석을 했다.
하지만 싱거울 것 같고, 약간은 어눌해보이는 영락없는 이웃집 아저씨 박균철 집사님이 우릴 공산당원처럼 열렬히 반겨준다. 오래 숙성된 장맛을 풍기며 번뜩이는 재치를 겸비하고 자신의 약간 더듬는 단점을 최대의 장점으로 승화시킨 박 집사님의 환영사는 내 가슴 가득했던 모든 무거움을 털어버리고 받아주기에 몰입할 수 있기에 충분했고, 아직은 모든 것이 생소하기에 그저 먼발치에서 구경하려던 나를 받아주기의 놀이마당으로 끌고 들어가는 노련한 조련사였다.
단어와 말이 사람들에게 미치는 영향에 대한 동영상을 보면서 시작한 받아주기...
하나님께서는 말씀으로 세상을 창조하시고, 말씀이 곧 하나님이라는 성경의 선언에 비해 인간은 그 말을 잘못 사용하여 타락했고, 말로써 수많은 사람을 죽이는 우리의 현실을 보면서 말의 위력을 실감하며 인생을 불태워 버리는 무서운 말을 조심하며 이제 우리의 마음과 말을 훈련해야 할 것을 강조하신 박승호 목사님의 탁월한 강의를 듣는다.
오늘의 이 받아주기 훈련을 위해 한동안 꺼내보지 않았던 보화에 내려 앉은 먼지를 털고 세련되게 가공하여 영롱한 보물로 다시 태어난 교재를 보면서 얼마나 이번 받아주기를 위한 박승호 목사님의 기대와 열망을 찾아볼 수 있었다.
보면 볼수록 매력있고 푼수 같으면서도 세련된 나연하 집사님의 자뻑? 강의를 들으며 이제 내 안에 감추인 못된 자아가 조금씩 올라온다. 그러나 “나처럼 받아주기의 대가(大家)가 뭘 더 필요해!” 하며 결코 흔들리거나 내 원칙을 누구에게도 넘겨줄 수 없다며 똬리를 튼 자아는 미꾸라지에게 소금치듯 요동을 친다.
두 번에 걸친 받아주기의 시연에서는 왜 받아주기가 필요하고, 어떻게 받아주기를 하는지에 대해 백문이불여일견임을 깨닫게 해 주었고, 지지와 격려, 공감을 통해 눈물을 흘리며 감성의 비타민을 얻는 모습을 볼 수 있었던 것은 충격이었다.
그러나 이것은 서막에 불과할 뿐이다. 훈련된 조교들의 시연을 통해 볼 수 있었던 받아주기의 위대함과 섬세하다 못해 현미경 같은 박 목사님의 피드백은 지금까지 어느 목회자에게서도 발견하지 못한 아비의 마음과 열정을 볼 수 있었고 그 충격은 결코 지워지지 않으리라.
그러면서 또 다시 “꾸나.겠지.감사”의 나지사를 묵상하고, 공감 5단계를 배우면서 그동안 얼마나 많은 사람을 죽였는지 속으로 눈물을 삭혀야 했다.
이년 전 ‘난 당신을 볼 때마다 가슴이 미어져. 나는 벽창호와 사는 것 같아’눈물로 절규하던 아내의 통곡이 메아리쳐 온다.
언제나 나는 뒤끝 없는 사람이라고 자화자찬했고, 가만히만 있으면, 아무 말도 안하면 받아주기를 잘하고, 모든 것을 포용해주는 바다와 같은 존재라고 착각했던 나를 보면서 얼마나 가슴이 아팠을까?
아는 것으로 그치지 않고 처절한 자기관리가 없이는 어떤 결과도 얻을 수 없음을 다시 발견한다.
인지테라피를 통해 내 안에 있던 분노의 감정을 해결했듯 이제 받아주기에서 배운대로 감정이 나를 다스리지 못하도록 미세감정을 노트에 적고 감정 일기를 기록하고 셀프토크를 통한 건강한 자아로 거듭날 수 있으리라.
공장에서 찍어낸 상품이 아니라 모나고 스스로 열등생이라고 생각했던 성도들을 명품으로 세워 2박3일 동안 우리를 섬기는 스텝들을 보면서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받아주기요, 우리의 롤모델이 아닌가 싶다.
우리의 목회의 혼을 불어넣어주고 황홀한 인생을 만들어주기 위해 선구자의 길을 걷는 박승호 목사님께 주의 축복과 상급과 사랑이 가득하길 기도하며 그동안 극진히 섬겨주신 모든 스텝 분들께 감사의 고백을 전한다.
목사로써 그동안 많은 성도들을 보듬어 주고 위로해 주었다고 하지만 이렇게 받아주기를 공부하고 보니 진찰없이 치료한 돌팔이 의사처럼 목회한 것 같아 미안하기 그지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처음 받아주기를 시작할 때 가졌던 마음의 중압감은 비상을 위한 날개짓이 되었음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그리고 바쁘다는 핑계로 내려놓았던 감정노트를 양복 안주머니에 넣어본다.
이제 진짜 시작이다.
가만히 있어도 “꾸나, 겠지, 감사”가 떠오른다. 할렐루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