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혜나눔

2012년4월20일이정열집사테라피간증

작성자 관리자 날짜2012.04.24 조회수1316




58차 인지테라피 소감문(2012. 4. 20)



2진 남성1군 설진용지파 이정열 집사



차창 밖으로 펼쳐지는 수목의 짙푸름과 오색찬란한 꽃들의 합창은 마음의 숲 어딘가에서 살고 있는 또 다른 나와의 만남을 축복해 주는 것만 같았습니다.


다섯 시간을 달려 도착한 고흥 마음치유센터는 작년 개원예배 때 가본 후 10개월 만에 다시 찾은 것인데 호수라고 착각할 정도로 잔잔한 푸른 바다와 주변의 나무며 잔디와 꽃들이 주는 풍성함에 피곤함도 잊어버렸습니다.


그렇게 기대감과 설렘 그리고 알 수 없는 어떤 서글픔 속에 58차 인지테라피는 시작되었죠.


처음으로 주어진 것은 침묵의 시간이었습니다. 각자 한적한 장소를 찾아 조용히 묵상하며 자신의 내면을 바라보는 것이었죠. 나를 포함한 25명의 게스트들은 각자 밭길을 따라 혹은 바닷가로 걸었습니다. 나 역시 평소 해보지 않은 일이기에 어색함을 안고 밭길을 따라 천천히 걸었습니다. 길가에 피어난 붉은 꽃, 파릇하게 돋은 풀잎, 잔잔한 바다위에 둥둥 떠 있는 부표들. . . 그리고 마늘밭이 보였습니다. 많은 농가들이 고흥의 주요산물인 마늘을 재배하고 있었기에 무심히 보았죠. 그런데 그 밭사이로 솟은 작은 봉우리가 내 눈 속으로 들어왔습니다. 무덤.. 두개의 무덤이었습니다.



해풍(海風)맞으며 흔들리는 푸른 줄기


푸른 줄기 가득한 밭 사이로 솟은 작은 봉우리


밭일하다 허리 한번 펴고 하는 말


아부지! 올 해 마늘농사는 우짤능교?


잘 되것지예...


먼저 가신 부모님을 가까이 모시고 싶어 마늘밭 사이에 무덤 쓴 아들의 마음에...


가슴이 메어왔습니다.


그리곤 알 수 없는 눈물이 하염없이 하염없이 뺨을 타고 흘러내렸습니다.


울고 싶었지만 울 수 없었던 어린 시절의 감정이 떠오르며 속으로부터 솟구쳐 오르는 설움에 목이 메어왔습니다


그 때는 왜 울지 못했을까? 떼쓰며 울 법도 했을 텐데...


이혼한 아버지를 따라 내려간 10살의 소년은 모든 것이 낯선 그 속에서 차마 울지 못했습니다. 편지 한 장 써 놓고 사라진 아버지를 생각하며 15살 소년은 울지 못했습니다.“생존은 정서보다 앞선다! 는 사실을 그 순간 터득했기 때문이었나?


슬픔과 배신감, 억울함, 화남, 절망감의 문제는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생각되었기 때문이었나? 그 날 이후 생존은 했지만 감정과 정서라는 나만의 보물들은 상자에 담겨진 채 마음 깊은 골방으로 넣어졌습니다. 그리고 진정한 나의 감정은 “생존정서” 라는 커튼 뒤로 숨겨졌습니다.



억울한가? 억울하다. 내가 의도한 것이 아니기에...


10살 소년이 감당하기에는 너무 힘들었어요. 난 10살 밖에 되지 않았다고요. 15살 소년이 받아들이기에는 너무도 어려운 삶의 모습이었습니다. 어떻게 사람들을 신뢰하며 살아갈 수 있겠어요. 어떻게 다른 사람을 깊이 사랑하며 살 수 있겠어요.



사흘간의 시간을 보내며 때론 침묵하고, 어느 때는 한없이 울고, 소리치고, 두드리며 웃었습니다.


창피함도 부끄러움도 유치함도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하는 사이에 숨겨졌던 감정들, 삶의 무게에 억눌렸었던 감정들이 터져 나오며 빠르게 회복됨을 느꼈습니다.


생각해보니 청소년기 나는 사람의 기본적인 5대감정(슬픔, 화남, 부러움, 두려움, 사랑)의 정상적인 작동이 이루어지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나의 감정을 받아줄 누군가도 없었고 그런 시간이 길어지다 보니 자신의 감정표현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훈련되지 못했던 것이지요. 아내를 만나 결혼하고 가정을 꾸려오며 나름 행복하게 살고 있다고 자신에 차 있던 나에게 인정이 많은 것 같으면서도 한편으로 냉정하고, 사랑이 깊은 것 같으면서도 왠지 깊숙이 다가갈 수 없는 차가움의 양면성이 느껴진다는 아내의 고백은 충격이었습니다. 인정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문제가 무엇인지 해답을 찾을 수가 없었죠. 그런데, 이번 테라피를 통해 원인을 발견했습니다. 숨겨졌던 내면의 아이. 그 아이의 왜곡된 감정으로 인해 사람들을 신뢰하지 못하고 하나님의 인도하심, 축복하심에 내 마음을 던지지 못했던 것입니다.



억눌렸던 감정들, 숨겨졌던 감정들을 남김없이 토설하고 처리하고 맞는 사흘째 아침!


눈부신 햇살아래 모든 것들이 각각 제 빛깔을 드러내고 있었습니다.


짙푸른 호수 같은 바닷물은 쉴 새 없이 빛을 반사하며 억만 보석들의 합창같이 반짝거렸습니다. “눈이 부시게 푸르른 날은 그리운 사람을 그리워하자...”


그 순간 잠시 잊고 있었던 손길들이 기억 속에서 떠올랐습니다. 내가 가장 힘들어 하던 그 때 나에게는 아무도 없었다고 소리쳤는데 깊이 생각해보니 그렇지 않았습니다. 그 시간 내 곁에서 조용히 나를 응원해 주시고 격려해 주셨던 주님의 손길들이 있었습니다. 그 분들을 생각하며 기도드렸습니다.



주님! 죄송합니다. 미안합니다. 용서해주세요!


나는 내 곁에 아무도 없었다고 생각했는데 내 이름 아시는 주님께서는 10살 때나 15살 때나 지금이나 동일하게 여전히 곁에 계셔서 나를 먼저 안아주시고 내 흐르는 눈물을 닦아 주셨음을 고백합니다. 감사합니다. 사랑합니다.


이제 나도 가까이에 있는 누군가에게 그리운 한 사람이 되겠습니다.


내 안에 비추인 주님의 빛을 비추며 살아가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