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애굽기 세미나 소감문
이승호 목사
다른 때와는 다르게 이번 세미나는 저에게 약간은 긴장감이 있었습니다. 그 이유는 3월말부터 하나님의 구원경영을 강의해야하기 때문에 최대한 많이 이해하고 내 것으로 만들어야 했기 때문입니다. 강의 내용의 대부분은 이미 암기하고 있었던 것도 있었기 때문에 그다지 낯설지는 않았습니다. 그러나 바로 딜리버리를 해야 한다는 긴장감과 부담감 때문이었는지 느슨하게 강의를 들을 수는 없었습니다. 그래서 평소 저와는 다르게 강의 시간에 맨 앞자리에 앉아 목사님의 강의를 집중하면서 경청하였습니다. 강의는 역시 은혜스러웠습니다. 히브리서4장에 있는 말씀처럼 강의 내용 하나 하나 마다 저의 심령 골수가 찔려 쪼개져 나가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저는 ‘불타는 논리’라는 말을 대단히 좋아합니다. 대부분의 강의는 논리는 있지만 불이 없습니다. 그래서 메마르고 사변적으로 흐르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반대로 열정은 있으나 논리가 없는 경우도 있는데 이런 경우는 뜨겁긴 하지만 내용이 없어 나중에 보면 남는 것이 없습니다. 그런데 목사님의 강의는 논리와 더불어 불이 있습니다. 그래서 그 논리가 불탑니다. 듣는 이로 하여금 단지 어떤 정보만을 얻게 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의 피를 보게 하고, 알게 합니다. 한 마디로 불타는 논리입니다. 이러한 이유로 인해 사람들이 목사님의 강의를 들으면 다시 듣고 싶어 하는 것 같습니다. 이번 세미나 역시 목사님의 논리는 불이 탔고 그 강의를 듣는 모든 사람은 그 불길에 휩싸였습니다.
은혜스러운 강의 가운데 제가 가장 은혜 받은 부분은 광야와 성막부분이었습니다. 사실 저는 성격자체가 느긋한 부분이 많고 환경에 대해 별반 관심이 없습니다. 무슨 사건이나 사고가 터져도 무덤덤합니다. 물론 당시에는 ‘아..어떻하지. 큰일 났는데’ 라는 생각을 하긴 하지만 ‘뭐 어떻게 되겠지, 모르겠다.’ 식으로 환경에 대해 별 의식이 없습니다. 예를 들어 저는 고등학교 2학년 때부터 집이 없었습니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집이 없어진 것입니다. 그 때부터 친척 집, 교회, 친구 집을 전전하며 생활을 했었는데 그 때도 이런 환경에 대해 낙담하거나 불평을 하지는 않았습니다. 물론 그렇다고 감사하게 생각하거나 수준 높게 이 환경의 깊은 의미가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했던 것은 아닙니다. 말 그래도 그냥 넘어 갔던 것입니다.
그런데 저의 이런 태도가 하나님께서 배열하신 광야라는 훈련측면에서 얼마나 미련하고, 불성실한 모습이었는지 확실히 알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제게 그런 환경 곧, 광야를 허락하신 것은 그 광야를 통해 내게 배우게 하실 그 무엇이 있었던 것인데 저는 그런 것을 무시하고 시간이 지나면 해결 되겠지, 어떻게든 해결 되겠지라는 태도로 일관했던 것입니다. 물론 이런 태도를 보이면서 아무것도 안 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기도도 하고, 말씀도 읽고, 봉사도 쉬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남들한테는 꽤나 믿음이 좋게 보였습니다. 집도 없이 떠돌아 다니는 애가 교회도 빠지지 않고 해 맑게 웃고 다니니 그렇게 보였던 것입니다. 하지만 이것은 앞에서 말 한 것처럼 믿음의 성숙한 모습이 아니라 느긋한 성격 탓이었습니다. 어쨌든 어떻게든 버티니 문제는 해결이 되었습니다. 환경도 해결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광야가 오면 그저 침묵하고 가만히 버티면 해결이 되는 것으로 인식하며 살아왔고, 광야를 만난 형제나 자매에게 조언을 해줄 때도 그저 버티면 되고, 인내하면 되고, 하나님을 바라보면 된다는 식으로 해주었고, 또 이것이 옳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이번 강의를 통해 이런 생각이 틀렸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광야를 만난 저에게 그저 버티고, 인내하는 것을 원하셨던 것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은 그 광야의 원인과 그 광야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인지를 알기를 원하셨던 것입니다. 당시 집을 잃어 삶의 기반이 붕괴되었던 저는 유일한 공급자이신 예수님을 인정하고, 생명의 떡이신 예수님을 먹는 일에 더욱 집중했어야 했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사실을 몰랐던 저는 그저 인내하고, 참고, 하나님을 바라보면 되겠거니 했던 것입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소 뒷걸음질 치다 쥐 잡는 식으로 배열하신 광야에 대한 이해와 광야를 벗어날 수 있는 방법으로 넘어가는 것이 아니라 인내하고 기도하고 버팀으로 제가 채워야했던 부분이 채워져서 문제와 환경이 해결되었던 것입니다. 마치 목적지가 부산인데 남쪽으로 가는 차를 탔더니 운 좋게 부산에 도착한 격이었습니다. 이와 같이 왜 광야가 왔는지 그것을 통해 하나님의 해결 방법이 무엇인지를 모르면서 광야를 넘어갔기 때문에 다음에 광야가 오면 당황하고 또 예전 같이 그저 버티고, 인내하고, 참으면 되겠거니 하면서 미련스럽게 광야에 들어갔습니다.
하지만 강의를 통해 하나님은 광야를 주실 때 그것의 이유와 그 해결의 방법이 무엇인지를 같이 주셨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문제지를 주시면서 해답지도 같이 주셨던 것입니다. 평소 암기만 하고 있었던 그 내용이 이런 깊은 영적의미가 있었다는 것이 신기하고 놀랍고 약간은 억울한 마음까지 들었습니다. 좀 더 일찍 알았다면 제가 만났던 그 숱한 광야를 좀 더 빨리 벗어날 수 있었을 텐데 말입니다. 하지만 지금 알게 하신 것도 하나님의 분명한 뜻이 있기에 그저 감사할 뿐입니다. 이제는 광야에 대해 해답을 알게 되었으니 광야를 만나 어려움을 겪는 지체들에게 분명하고, 명확하게 길을 제시해 주고 내게도 그것을 적용하여 광야를 주신 하나님의 뜻을 깨달아 똑 같은 종류의 광야를 거듭 되풀이하는 우를 범하지 말아야겠습니다.
두 번째로 제가 은혜를 받은 부분은 성소입니다. 사람들은 자신의 믿음에 따라 뜰에 거하기도 하고, 성소에 거하기도 하고, 지성소에 거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그 거하는 곳에 따라 그 만큼만 믿음을 발휘한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예를 들자면 번제단과 물두멍이 있는 뜰에만 거하는 사람의 성품과 태도, 믿음은 딱 뜰에 해당되는 만큼만 발휘됩니다. 그래서 가끔은 헷갈리는 소리도 하고, 성숙하지 못한 행동도 합니다. 이 때 성소에 있는 사람이나 지성소에 있는 사람은 그런 사람들에 대해 참아주고, 기다려주고, 인내해 주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만약 똑 같이 반응하고, 똑 같이 화를 내고, 똑 같은 태도를 보인다면 나 역시 뜰에 거하고 있는 사람일 뿐입니다. 내가 지성소에 사는 사람이라면 나는 성소에 사는 사람과 뜰에 사는 사람의 성숙하지 못한 태도를 받아 주어야 옳은 것이었습니다.
또한 내가 지금 지성소에 거하는 삶을 살고 있는지, 성소에 거하고 있는지, 뜰에 거하고 있는지를 알 수 있는 시금석은 사람들이 내게 보이는 성숙하지 못한 태도에 대한 나의 대처와 태도로 알 수 있다는 사실도 깨달았습니다.
지성소에 산다는 것은 쉬운 것이 아닌 것 같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모든 제자들에게 단지 성소에서만, 뜰에서만 살기를 원하시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은 모든 제자들에게 지성소에서 사는 삶을 요구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이 이 땅에서 사셨던 지성소의 삶을 나도 따라 살아갈 것을 결단했습니다.
그런데 이런 깨달음과 결단이 저에게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라 세미나에 참석했던 대다수의 목사님들도 저와 같은 감동과 깨달음을 받으신 것 같았습니다. 더욱이 감동을 받고 깨달음을 받으신 목사님들 가운데는 60세가 넘은 어르신들도 계셨다는 사실입니다. 적어도 단독목회를 20년 넘게 해 오신 분들이 어떤 감동이나 깨달음을 얻고 또 그것에 벅찬 감격을 나타낸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닌데 담임 목사님의 불타는 논리의 강의가 그 분들로 하여금 그런 벅찬 감격과 감동, 깨달음을 주신 것 같습니다. 새로운 성경의 진리를 알게 되고, 또 그것을 감사함으로 표현하시는 목사님들의 모습을 보며 담임 목사님의 사역이 얼마나 귀하고 또 kingship을 이루어 나가는데 커다란 견인차의 역할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다시 한 번 느끼게 되었고, 담임 목사님의 이 귀한 사역에 동참하고 있는 생명샘교회 성도들의 수고가 결코 헛되지 않다는 것을 또한 느끼게 되었습니다. 소망하기는 하나님께서 담임 목사님께 지금보다 더 좋은 건강과 함께 학자의 혀와 귀를 허락하여 주셔서 목성연 사역에 더욱 매진할 수 있도록 해주시는 것입니다.
기도
신실하신 하나님. 오늘 깨달은 것과 결단한 것이 예수님 앞에 갈 때까지 계속되어지기를 소망하며, 이러한 놀라운 은혜를 주신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깨닫게 하신 것을 통해 나도 살고, 남도 살릴 수 있는 도구가 될 수 있도록 은총을 더하여 주시옵소서. 그리고 담임 목사님께 건강과 지혜를 더하여 주셔서 하나님께서 맡기신 사역을 모두 이루어 나갈 수 있도록 해주십시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