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혜나눔

20120224정혜미집사간증

작성자 관리자 날짜2012.02.26 조회수1425


정혜미집사



장로님이신 할아버지와 권사님이신 할머니를 따라 어리럭부터 믿음 생활을 해왔습니다.


결혼하기전까지 전 신실하진 않았지만 하나님의 그늘아래 믿음생활을 했습니다. 결혼후 불교신자이신 시어머니와의 마찰을 피하기 위해 저는 잠시 믿음 생활을 접었습니다. 5년전 남편의 visiting scholar(교환 교수)로 미국에 가게 되었습니다. 미국가기전 시어머니께 미국에 가면 아이들을 위해 교회를 꼭 다녀야 할 것 같다고 시어머니를 설득시켜 전 다시 하나님을 믿기 시작했습니다. 미국에서 한국으로 오는날, 친하게 지내던 교수 부부가 공항에서 “한국가면 꼭 교회 다녀라.” 라는 말을 해주셨는데 그때 그말이 너무 가슴속에 진하게 박혔습니다. 한국에와 내게 맞는 교회를 찾기 위해 여러곳을 가게 되었습니다. 우연히 서점에서 책을 사다 한 집사님을 알게 되어 이곳 “생명샘 교회” 를 다니게 되었습니다. 교회에 온지 얼마되지 않아 같을 셀원중 한사람이 자기 언니가 미국에 산다며 언니가 사는 아파트이름을 말했습니다. 그말을 듣는 순간 저는 또한번 하나님이 이곳으로 나를 인도 하셨구나 하고 전율이 느껴졌습니다. 같은 셀원의 언니란 분이 바로 저와 친하게 지내는 교수부부였고 공하에서 저에게 한국가면 꼭 하나님을 믿으라고 다시금 하나님을 믿게 만든 그분이셨습니다. 그 넓은 세상에서 이렇게해서 저는 하나님이 보내셨다고 믿는 이곳에 오게 되었습니다. 교회 다닌지 얼마되지 않아 “ 어린이 영어 예배부 ” 교사로 봉사를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맣이 부족한 저였지만 열정적으로 저의 모든 시간을 할애해 가며 저는 봉사에 힘썼습니다. 저의 바램대로 남편은 직장에서 인정받고 아이들도 바른길로 건강히 잘 커주었고 저의 일도 잘 되었습니다. 2011년 작년에 저는 아이들 교육과 남편의 미래를 위해 남편이 국비 유학 시험에 붙길 바라며 3개월동안 금요 철야 기도회에 한번도 빠지지 않았습니다. 아이들이 어리고 늦게까지 공부하고 남편 때문에 저에게 금요철야 기도회에 나가기란 쉬운일이 아니였습니다. 너무나도 간절하고 큰바램이였기에 온힘을 다해 기도했습니다. 울며 불며 하나님께 메달렸습니다. 결과는 시험에는 합격했으나 경찰대학에서 지도교수로 근무하는 남편은 학교상황으로 결국 미국 유학을 포기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저는 그이후로 금요철야에 단 한번도 나오지 않았습니다. 저의 상황상 금요철야에 나오기 쉽지 않음에도 3개월동안 작정을 하고 하나님께 매달렸으나 하나님은 저의 바램은 저버렸다는 생각 때문에 저의 마음은 굳게 닫혔습니다. 그 누구와도 저의 바램을 얘기하고 싶지도 기도하고 싶지도 않았습니다. 그냥 의무감으로 교회에 오고 봉사하고..... 그게 전부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봉사를 하며 내가 이런맘으로 아이들에게 봉사하면 안되겠구나 너무 큰죄를 짓는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마음을 가다듬고 다시 기도하고 봉사에 힘썼습니다. 따로 시간을 내어 기도회에 참석하기가 어려웠던 저는 짬을 내가며 “숨기도 ” 라는 것을 했습니다. 숨기도란 순간 순간 생각나는데로 하나님과 대화하는 것이라고 몇해전 전 교사 부흥회에서 설교하셨던 한 초빙 목사님의 말씀에서 얻은것이였습니다. 순간 순간 저는 생각나는데로 저와 저의 가족, 친척, 주위 사람들을 위해 기도했습니다. 이렇게 기도를 하니 마음이 편해졌고 저의 닫혔던 마음도 풀리기 시작했습니다. 역시 하나님은 대단한 분이십니다. 저의 가족에게 또다시 기회를 주셨습니다. 외교부로 파견갈 수 있는 기회가 2011년 11월에 공고가 났습니다. 원래 외교부 주재관 공고는 2011년 말에는 계획에 없던 것입니다. 남편은 외교부 주재관 시험을 바로 준비했고 전 또다시 열심히 기도했습니다. 올해 1월초 3차 시험까지 합격하고 마지막 합격만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기도를 하는데 너무나도 가뿐하고 합격하리라는 확신을 주셨습니다. 1월 중순 저의 남편은 러시아 블라디보스톡 총영사관의 주재관(외교관)으로 최종 합격 되었습니다. 이제와서 생각해보니 아마도 하나님은 저의 집 사정을 꽤뚫어 보신것 같습니다. 아들 형제밖에 없는 시어머니는 대기업에 다니는 큰아들인 아주버니가 2년전 중국 공장으로 발령 나 지금 중국에 계시고 막내 아들인 저의 남편마저 멀리 미국에 가버렸으면 저의 시부모님은 아마도 너무 외롭고 슬프셨을 것입니다. 사실 저는 저의 가족 생각만 했지 나이든 시부모님의 생각을 전혀 하지 못했습니다. 러시아 블라디모스톡은 이곳에서 비행기로 2시간밖에 걸리지 않는 아주 가까운 거리입니다. 물론 외국이긴 하지만 무슨일이 있으면 바로 올 수 있는 거리이므로 마음으로는 그래도 안심이 됩니다. 사실 여름에 준비한 유학에 가지 못하게 되어 하나님과의 관계가 소원해졌던 저는 다시금 마음을 고쳐 먹고 나의 모든 것을 하나님께 맡기기로 마음 먹었습니다. 하나님은 모든 것을 알고 계십니다. 저의 모든 것을 책임져 주시는 큰빽이십니다. 그런 하나님께 잠시나마 반항하고 방황했던 저의 소심함을 회개하며 다음주면 한국이 아닌 러시아 땅에서 저의 기도는 계속 될것입니다. 4년동안 저를 이렇게까지 성장하게끔 만들어 주신 생명샘 교회의 목사님과 많은 집사님들께 감사드리며 셀장이신 서형숙 집사님, 어린이 영어 예배부 에드윈 전도사님, 오재열 집사님, 현성춘 부감 집사님, 김성렬,황진주,박순엽,정연이 집사니께 다시금 감사드립니다. 경청해 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