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진용
6단계 변화테라피는 지난 겨울에 다녀왔다. 환경과 힘들게 하는 사람을 보는 것이 아니라 비전을 보고 생각을 전환하는 훈련이었다.
많은 도움을 받았고, 내 삶은 주님께 초점을 명확히 맞추고 나아가는 기회가 되었다.
그러나 현재 내가 처한 감정을 정리하고 나서 비전을 보는 것이 쉽지는 않았다.
그동안 교회에서 신앙생활을 하며 일을 하고 교제하면서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마음속에 맺혀있는 것들이 있었다.
같은 사람이나 비슷한 상황에 대하여 감정을 정리하지 못하고 힘들어 한 것이 있었던 것이다.
나는 힘들게 하는 사람에 대하여 의지와 신앙으로 용서하였지만 나의 감정이 정리 되지 않은 것이다.
사람들을 바라보지않고, 하나님만을 바라보며 신앙생활을 하려해왔다.
하나님을 사랑하기에 사람을 사랑하리라 생각했지 사람으로 인하여 하나님을 바라보는 신앙과 사람 사랑을 사랑하지 않으며 살아왔다.
그런데 최근 몇 개월동안 사람들이 의식되는 신앙 생활을 해왔다. 나의 신앙과 봉사와 일 등에 관하여 들리는 말에 신경이 쓰여왔다.
그런 모습은 나의 신앙을 위축시키는 결과를 낳고 있었다.
테라피 출발일에 큰 사고가 날뻔 했다.
신호를 위반하고 달리던 차가 우리가 탄 교회버스를 들이 받을 뻔 하였다.
매우 위험했지만 깻잎 한 장차이로 사고를 면했다.
그 순간 내속에서는 ‘하나님 감사합니다. 하나님께 감사의 박수를 드립니다.’라는 말이 올라왔다. 그러나 그 말은 목구멍에 걸려 나오지 않았다.
그동안 사람들이 의식되어 내 신앙생활이 위축되었던 것이다.
원인을 제공한 것은 다른 사람들이었다고 해도 그로 인해 내 신앙생활이 뒤틀리는 일은 내 마음에서 일어난 일이었던 것이다.
왜 내가 그부분에서 힘들어 한것일까?
나의 성장과정에서 그답을 찾을수 있었다.
나의 할머니는 두분이었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배다른 형제들에게 괄시를 받았고, 그들에 대한 미움도 컸을 것이다.
내 형제들은 나이가 비슷한 조카들과의 다툼속에서 성장하였다.
우리집이나 그쪽집이나 형제들이 무척 많았고, 더구나 그쪽은 한동네에서 결혼을 하며 외적, 인척이 온동네를 장악하는 실세들이다 시피 하였다.
그런 가운데 시기하며 수군대는 모습을 보며 분노를 하곤 했던 나의 어린시절이었다.
그러다보니 정면이 아닌 뒤에서 수군거리고 모함하는 사람들을 사람으로 제대로 취급하지 않는 경향이 내게 있었다.
그 사연 보따리를 풀어내자 나를 힘들게 한 사람들에 대한 나의 시각에 변화가 왔다. 감정적으로 정리하지 못한 부분이 풀리는 것을 느꼈다.
분노의 방망이를 휘두를 땐 하마터면 유리창을 깨고 밖으로까지 튀어나갈 뻔했다. 원인을 찾아 해결하고 나의 내면에 있는 어린아이를 만나 위로하고 나자, 나의 응어러진 감정들이 풀리기 시작하였다.
하며는 일을 잘하지 않고는 직성이 풀리지 않는 핵심신념을 가진터라 어릴적 나의 모습에 늘 만족스럽지 못하였다.
그런 나의 생각은 나의 내면 아이를 힘들게 하고 있었다.
그 아이는 나에게 “나도 너에게 내가 만족할 만큼 네게 바라지 않을 테니 너도 내가 잘하지 못한 것을 수치스럽게 생각하지 말아줘”라고 하였다.
나는 나의 내면아이에게 “최선의 선택ㅇ르 해온 너를 자랑스럽게 여길께. 우리 서로 힘들때 서로를 위호하며 용기를 북돋우며 주님을 바라보고 힘내어 살자. 사이좋게 행복한 삶을 살자”고 하였다.
나는 이번 테라피를 통하여 나의 과거의 상처들을 보았고, 치유하였으며 나의 과거와 화해하였습니다.
그것을 통하여 나의 앞날은 과거의 안정된 경험과 정서를 토대로 어떤일이든 자신있게 할 수 있으며 주님을 위하여 1001의 모습으로 달려갈 수 있으리라 생각됩니다.
실수하고 약할 때까지도 사랑하고, 위로하시는 하나님께 감사드리며 사역자분들께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