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혜나눔

2005년5월22일주일간증-이지환

작성자 관리자 날짜2005.05.25 조회수3249
 

저는 자상하고 이해심 깊은 남편과 건강하게 잘 자라준 두 아들과 함께 그런대로 행복한 삶을 살던 평범한 주부였습니다. 그런데도 뭔가 허전하고 의지할 대상이 있어야 한다는 생각을 하고 있던 터라 5년 전부터 성당을 나가게 되었습니다. 성당을 선택한 이유는 잠시 카톨릭신자였던 부모님이 제가 어릴 때 유아영세를 받았다고 했기 때문입니다. 신앙생활을 시작하면서부터 하나님의 존재하심에 대한 믿음으로 마음이 평안하고 뭔가 충만해지는 것을 느꼈습니다. 그런데 이 평안도 잠시뿐, 아들의 뜻하지 않은 병마로 인해 온 집안은 평안을 잃고 식구 모두는 혼란과 두려움 속에 빠지고 말았습니다. 참으로 고통스런 지난 1년이었습니다.


아들 효준이의 증세는 이렇게 시작되었습니다. 어느 날 아이는 배가 빨래를 짜듯이 꼬이며 아프다고 했습니다. 처음에는 소화기계통의 질병이라고 생각해서 검사를 받았지만, 이상이 없다고 했습니다. 그런데도 증세는 점점 심해져만 갔습니다. 갑자기 배가 딴딴하게 굳어지는 듯한 이상한 증세가 오면  아이의 온 몸에 힘이 저절로 주어지면서 얼굴은 일그러지고 눈은 붉게 충혈되어 경련을 일으켰습니다. 그리고 경련을 일으킬 때마다 극심한 고통을 참느라 아이의 온몸은 비를 맞은듯 젖어 있었습니다.


이런 증세를 경련성으로 보고 서울대학병원으로 옮겨 경련과 관련된 검사를 받을 때의 일입니다. 당시의 아이의 증세가 어찌나 심하던지 한 가지 검사를 받기 위해서 진정주사를 최대량으로 맞고도 세 번씩이나 다시 검사를 해야 할 정도로 소아병동 입원실을 소란케 했습니다. 


서울대병원에서도 여전히 신체상의 아무런 원인을 찾지 못한 채 병원에서 하루하루를 버티고 있는데 이런 저의 처지를 염려하는 친정 식구들이 무당을 불러 굿을 해보라고 권유했습니다. 다급하다 보니 굿이라도 하고 싶었습니다. 굿을 하기로 결정한 직후에 성당에서도 많은 사람들이 기도해 주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오히려 그것이 어느 것 하나도 전념할 수 없도록 하여 혼란스럽기만 했습니다. 어쩔 수 없이 굿도 하고 닥치는대로 한의원, 기치료, 등을 찾아다녔지만, 모두 아무소용이 없었습니다. 그리고 이제 마지막이라고 생각하며 찾아간 서울대학병원 통증클리닉 역시 아무 도움이 되지 않았습니다.


현대의학의 한계를 느끼며 절망 가운데 있는 제게 어느 날 시누이가 찾아와서 한 말은 저희 가정의 구원의 시작이었습니다. 시누이의 말은 “지금까지 올케의 마음이 돌아서기를 기다렸는데 이제라도 교회에 나가보지 않겠느냐” 는 것입니다. 저야 아이가 나을 수만 있다면 어디든 갈 수밖에 없는 처지였으므로 아들 효준이한테 교회에 가보겠느냐고 물었더니 선뜻 그렇게 하겠다고 대답했습니다.


시누이가 말한 교회는 바로 ‘생명샘교회’였습니다. 시누이로부터 생명샘교회 강지은집사님을 소개받고 금요철야집회에 오던 날 전철 안에서 아이는 또다시 발작을 일으켰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사탄의 방해였는데 효준이의 증세를 본 어떤 사람이 제게 아이를 병원에 안데려 간다면서 욕설을 했습니다. 괴로운 심정으로 교회에 왔는데 그날따라 목사님께서 어디 가시고 안계신 상태였습니다. 처음 온 교회에서 어찌할 바를 몰라 다시 되돌아가고 싶은 심정인데 저희들을 위해서 목사님의 소재를 파악하며 분주하게 다녔던 연세 높으신 권사님의 노력으로 남아 있을 용기를 얻게 되었습니다. 


첫날 힐링룸에서 기도 후에 아이의 증세가 많이 없어지고 나니까 절박감이 덜해진 상태에서 참석한 금요철야기도회는 제게 참 낮 설게 느껴졌습니다. 요란한 밴드소리에 맞추어 부르는 찬송소리도, 성도들의 통성기도소리도, 방언기도도 제겐 다 낯선 것들이었습니다. 특히 안수기도의 장면은 몹시 충격이었습니다. 그리고 힐링룸에서 기도 받을 때 목사님이 말씀하신 십자가, 순복, 힘써 대장부가 되라는 말씀은 아직 다 이해할 수 없는 버거운 말씀들이었습니다.


그러나 계속 교회에 올 수밖에 없었던 것은 교회 외에 다른 대안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전혀 상관도 없는 사람을 위해서 기도해 주시는 분들의 마음이 귀하게 느껴지면서 교회는 점차 친근하고 자꾸 오고 싶은 곳이 되었습니다. 기도는 계속되었고 말씀도 계속 주어졌습니다. 어느 날 다시 목사님은 다른 사람을 용서함으로써 치유를 얻게 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보니 고의는 아니었지만, 결과적으로 저희 가정에 경제적으로 타격을 입힌 한 이웃을 예수님의 이름으로 용서해야만 했습니다. 이 일은 제게 용서의 복음을 깨닫고 기도의 의미를 알게 한 사건이었습니다. 목사님의 인도를 따라 한 사람을 용서한 사건이 있은 후에 계속해서 기도를 받았습니다. 아이는 점차 깨끗해지고 정상이 되었습니다. 건강을 되찾은 아이는 지금 학교에 잘 다니고 있습니다. 다시 찾은 평안입니다. 참으로 오랜만에 얻은 가정의 평화입니다.


평화를 얻은 지금 그동안 제가 겪었던 사건으로 인해 몇 가지를 정리해 보았습니다. 그동안 저의 눈에는 세상이 부조리하게만 보였습니다. 착하게 사는 사람들이 고통을 받고 불의가 판을 치는 세상인 것 같아 공의의 하나님에 대한 성경말씀이 때로 마음에 와닿지 않을 뿐 아니라 우리 가정에 닥친 이 고난이 참으로 이해되지 않고 원망스러웠습니다..


그렇게 세상을 판단하고 정죄하며 원망했던 것은 내 속에 ‘나는 착한 사람이다’라는 전제가 있었던 것입니다. 차차 말씀을 접하던 저는 제가 교만했다는 것과 감사해야할 일이 많았음에도 감사하지 못하고 산 죄인이라는 것이 깨달아지기 사작했습니다. 깨달음이 오니까 처음 교회에 와서 아이를 생각하며 원망과 서러움으로 흘리던 저의 눈물은 이제 오직 하나님께만 맡기고 주님의 은혜를 바라는 겸손의 눈물로 바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우리 가정의 고난도 “왜 하필 내게”가 아니라 “오 주님 저를 지목하여 보셨군요” 하는 사랑으로 받아들이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저에게 찾아온 가장 놀라운 변화라고 생각됩니다.


비록 아들이 고통을 당하긴 했지만, 그 일을 통해서 저멀리 피상적으로 느껴지던 하나님이 저의 기도를 들으시는 너무도 가까운 하나님으로 느껴지고 오늘도 병든 자를 치유하시는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는 놀라운 계기가 되었습니다. 이제 소원이 있다면 사랑하는 남편과 우리 가족 모두가 하나님의 이 사랑을 받아들이고 함께 신앙생활을 하는 것입니다. 


저는 이 시간 진심을 다하여서 저와 아들을 구원하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립니다. 그리고 그동안 저희 가정과 아들을 위해서 기도해 주신 목사님과 힐링룸 봉사자들 그리고 중보 기도팀, 온 교회 성도들에게도 감사를 드립니다.


 2005년 5월 8일 이효준 엄마  이지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