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혜나눔

「순종」을 읽고서

작성자 설진용 날짜2004.10.16 조회수5386

안녕하세요
설진용 입니다.


가을입니다.
엊그제 학교에서 에버랜드에 소풍을 다녀왔습니다.


며칠간 추운 날씨 탓에 낙엽이 많이 떨어졌습니다.
에버랜드 입구 광장에 떨어진 낙엽이 바람에 굴러갑니다.
높은 산으로부터 붉은 물이 들기 시작합니다.
푸른 하늘이 가슴을 시원하게 합니다.
손가락으로 튕기면 쨍하고 금이 갈 듯...


셀리더 훈련 중
「순종」이라는 John Bevere의 책을 읽고
독후감을 쓰는 과제가 있습니다.
잘 쓴 것은 아니지만, 여기에 올려봅니다.


잘못된 부분이 있거든 지적해주시면 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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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새롭게 깨달은 점


하나님은 질서의 하나님이시다. 교회 안에서 하나님께서는 지도자를 통해 질서를 유지하기 원하신다. 하나님께서 세우신 권위에 순종해야 한다. 교회 지도자들에게는 하나님께서 권위를 맡기셨다. 우리는 그 권위에 순종해야 한다. 외면적 순종만이 아니다. 진정으로 공경하고 복종하며 순종하기를 원하신다.



교회 밖에서도 하나님께서는 권위에 순종하기를 원하신다. 모든 권위의 기원은 하나님이신 것이다. 바로를 세우셨던 것처럼 악한 권위도 하나님께서 세우신 것이다. 겸손과 순종과 기도로 지도자들에게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다. 핍박하고 심지어 죽이려한 왕까지도 공경해야 한다고 말한다.



보통 복종은 내적 자세야 어떻든 행동으로 따르는 것을 말한다. 순종은 순수하게 수용하며 따르는 복종을 의미한다. 순종과 복종이라는 낱말은 대체로 이렇다. 그러나 비비어의「순종」에서는 순종과 복종이라는 말의 뜻을 달리 사용하고 있다. 순종은 권위에 반응하는 '행동'이다. 복종은 권위를 대하는 '태도'라고 하고 있다. 이것을 통해 하나님의 말씀과 충돌하는 명령을 설명한다. 주님 뜻에 반하는 명령에는 순종하지 않되, 복종하는 태도는 갖추어야 한다고 말한다.



순종과 복종의 낱말 뜻을 이렇게 사용하는 것은 잠시 혼선이 왔다. 저자 비비어는 영어를 사용하여 책을 지었다. 원문에 두 낱말을 어떻게 사용했는지가 궁금했다. 한편 곰곰이 생각해보니 비비어가 두 낱말을 사용하는 의미상으로는 문제가 없어 보였다. 어떤 낱말을 사용하든지 간에 잘못된 명령을 받았을 때도 공손한 태도를 잃지 않아야 한다는 것으로 생각할 수 있다.



비비어는 지도자의 마음은 하나님의 손에 있다고 한다. "왕의 마음이 여호와의 손에 있음이 마치 보의 물과 같아서 그가 임의로 인도하시느니라"(잠21:1)고 하셨다. 왕이 경건한  사람이든 잔인한 사람이든 왕의 마음은 하나님의 손에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교회 지도자든 세상 지도자든 권위에 순종해야 한다는 것이다.


 



2. 나의 느낌



세상의 지도자들도 공경해야 한다는 것은 예전부터 들어왔다. 책을 읽으면서 그러한 내용들을 확인할 수 있었다. 교회와 가정이 분열되는 이유는 비전이 나뉘고 하나님이 정하신 권위에 순종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하고 있다. 맞는 말이다. 교회들이 나뉘고 혼란에 빠지는 것을 자주 보아왔다. 사랑을 말하면서도 서로 철저히 용서하지 못하고 사는 경우를 많이 본다.



민주주의를 절대적인 원칙으로 신봉하고 있는 사람들을 많이 본다. 기독교인들에도 예외는 아니다. 어쩌면 더 강하게 주장하는 사람도 있다. 요즈음 나라를 위해 기도할 때면 그저 안타까울 뿐이다. 많은 기독교인들이 믿지 않는 자들과 멍에를 함께 매면서 나라가 위태로운 길로 가는데 앞장서고 있음을 본다. 비비어는 하나님의 나라는 왕국이라고 말한다. 하나님께서는 민주주의가 그분이 이 땅에서 이루려는 최종적이고 최선의 제도라고 말씀하고 계시지 않는다.



책을 읽으면서 처음에는 믿음보다는 행위에 초점을 두고 있는 것으로 느꼈다. 뒷부분에서 비비어는 믿음은 순종을 통해 나타나야 함을 말하고 있다. 믿음과 행함 그리고 순종의 관계를 도식화하여 설명하고 있다. 순종을 통해 믿음의 우물이 깊어진다고 말하고 있다. 모든 영역에서 권위를 인정해야 한다.



며칠 전 학교에서의 일이 생각난다. 교실에 있다가 교무실에 들어왔다. 다른 선생님들이 접의자를 찾는다고 한다. 의자에 글자를 쓰기 위해 의자를 찾는다고 한다. 몇 개를 아직 찾지 못했는가 보았다. 조금 전 교장 선생님이 교무실에 와서 큰소리를 치고 야단이 났었다고 한다. '그게 어디 화낼 일인가? 화 낸 사람에게 문제가 있는 것이지' 하고 나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바로 다른 선생님들에게서 동조하는 소리가 나왔다. 차마 하지 못하는 말을 내가 해준데서 시원함을 느꼈던 모양이다.



그후 「순종」을 읽으면서 그렇게 말한 것을 후회했고, 또 회개했다. 지도자를 공경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지만 우리는 너무 쉽게 이를 어긴다. 예수님을 믿는 신앙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예수님의 말씀대로 살지 못하고 있음을 다시금 발견한다. 예전에 학교의 지도자인 교장이나 교감에게 대항한 적도 있었다. 내 신앙에 잘못된 부분이 많음을 느낀다. 내 부모를 정성 다해 공경하며 살아오지 못한 것도 느낀다. 정말 많은 부분에서 내 자아가 더 깨져야 할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3. 적용


10월 7일 셀리더 훈련 모임은 2주만에 열렸다. 추석 연휴에 걸려 한 주간 모임을 건너뛰었기 때문이다. 셀 훈련장에 오랜만에 오신 목사님의 표정은 매우 밝았다. 하지만 무게가 있어 보였다. 9월 23일 셀리더 모임 때는 피아노를 치면서 찬양을 인도하셨다. 그때의 부드러운 모습과는 좀 대조적이다. 조크를 섞어 말씀하신다. 그러나 뭔가 결연한 표정이 얼굴빛에 나타나 보인다. 내가 받아들이기에 충격적인 말씀을 하신다.



30년 전에 예루살렘에서 사역할 것을 기도했다고 하셨다. 지금 중국과 중앙아시아 지역의 교회들이 Back to Jerusalem 운동을 하고 있다는 말씀을 하셨다. 김삼성 목사님이 다녀가신 것이 하나님의 큰 뜻 안에서 이루어진 일이라고 말씀하셨다. 며칠간 하나님의 뜻을 발견하면서 큰 감동과 격정의 시간을 보냈다고 하셨다. 그 감동으로 인하여 잠을 1시간밖에 못 잔 날도 있다고 했다. 목사님과 우리 교회가 Back to Jerusalem 운동의 큰 일에 동참하게 될 것이라고 하셨다.



김삼성 선교사님은 10월 2일 주일에 다녀가셨다. 그분 부부가 다녀가신 뒤 불과 며칠만이다. 얼핏 듣기로는 화요일 셀리더 모임에서부터 이 말씀을 하셨다고 한다. 단 며칠만에 결정을 내려 말씀하시는 그것을 하나님의 음성으로 받아들이기는 무척 어려웠다. 며칠만에 그런 큰 비전에 관한 결정이 이루어질 수 있다는 말인가? 이런 의아심이 머리 속에 차 올랐다.



목사님의 그 말씀에 아멘이 나오지 않는다. 몇몇 사람들이 목사님의 그 말씀에 아멘으로 답한다. 그러나 그 목소리에는 힘이 없다. 확신에 찬 화답이 아닌 것으로 느껴진다. 그 소리는 막연하게 잘 되겠지 하는 정도의 아멘으로 들렸다. 목사님의 말씀이 계속되면서 아멘 소리도 더 커졌다. 하지만 확신에 찬 소리로 들리지 않는 것은 여전했다.



하나님께서는 큰 일을 하실 것이다. 그런 일은 역사적으로 많이 있어왔으니까. 예루살렘까지 복음도 전해져야 한다. 성경에 보면 주님이 다시 오시기 전에 이스라엘 민족이 주께로 돌아와야 한다. 나도 아멘을 외쳤다. 하나님께서 큰 일을 하실 것이라는 점에 아멘이라고 했다. 예루살렘까지 복음이 전해져야 한다는 말씀에는 아멘이라고 외쳤다. 그러나 목사님께서 그 일을 해야하는 사명자라는 말씀에 대한 아멘은 아니었다. 우리 교회가 그 일을 추진해나가야 한다는 말에 대한 아멘은 아니었던 것이다.



박승호 목사, 이분과 나는 어떠한 관계인가? 그리고 앞으로 어떤 관계 속에 놓여질까?



목사님은 큰 뜻을 가지고 계신 분이다. 가슴이 넓은 사람이다. 성령의 감동을 받으며 살고 있음을 느낀다. 하나님께서 크게 쓰시는 귀한 종이다. 목사님을 뵈면 기분이 좋다. 하나님과 함께 하시니 좋다. 성령 충만한 생활이 좋다. 그런 분이 나의 지도자여서 좋다. 생활에 모범을 보여주는 점이 좋다. 훌륭한 지도자를 만나서 하나님께 감사한다.



목사님은 나와 여러 가지 면에서 비슷한 점이 많다. 옷을 입는 취향이 비슷하다. 나는 바지를 입을 때 벨트보다는 멜빵을 즐겨 사용한다. 흘러내리는 바지를 끌어올리는 것이 귀찮다. 배를 쫄라 매지 않아도 되니 좋다. 나는 발가락 양말을 즐겨 신는다. 발가락 사이에 생기는 무좀은 지겹다. 발가락 양말을 신으면 발가락 사이의 무좀이 없어진다. 그래서 시원하고 좋다.



겨울에 목사님을 만났다. 봄에 옷이 얇아지면서 목사님의 벨트를 보았다. 여름에 신발을 가볍게 신으면서 목사님의 양말을 보았다. 나와 취향이 비슷함을 알았다. 기분이 좋다. 훌륭한 분이 나와 비슷한 취향을 가졌다는 것이 좋다. 집사람 말로는 성격도 비슷할 거라고 한다. 아니 상당 부분이 비슷함을 느낀다.



10대 청소년들은 동일시를 통해 만족감을 느낀다. 그들의 동일시 대상은 주로 유명 연예인이나 학교 선생님들이다.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유명한 연예인도 좋아한다는 말을 들을 때 그들은 흥분한다. 나와 취향이 비슷한 목사님의 모습을 보면서 10대 청소년들이 동일시의 대상인 연예인을 직접 만났을 때와 같은 감흥을 느끼곤 한다.



아주 비슷한 목사님이 계셨다. 우리 교회와 아주 비슷한 교회에서 신앙생활을 했다. 광주 00교회와 조00 목사...



00교회는 내 신앙의 출발점이었다. 그는 내게 큰 스승이었다. 단점도 보였다. 사소한 것들이다. 그는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려고 노력하는 분이었다. 사랑을 실천하려고 애쓰는 모습이 특별하신 분이었다. 고학으로 신학교를 다녔던 분이다. 매 학기 등록금을 마련하기 위해 갖은 일을 다 했다고 한다. 그러면서도 매일 몇 시간씩 기도 생활을 했다고 한다. 성경책이 너덜너덜 해지기까지 읽고 또 읽었다고 한다.



어렵게 마련한 등록금도 어려운 사람에게 통 채로 주는 일도 있었다고 한다. 그리고 나서 등록금을 다시 마련하기 위해 얼마나 또 고생을 했을까? 재주가 많은 분이었다. 음악과 미술, 체육, 문학, 성품 등 어느 하나 부족한 것이 없어 보일 정도였다. 정말 좋은 분이셨다.



지금 우리 교회와 많은 점에서 비슷하다. 주일 낮 예배에는 마치 불을 토하는 사자처럼 느껴진다. 온 성도들이 눈물을 흘리며 은혜를 받곤 했다. 설교 시간만 1시간이 넘어간다. 그러니 예배 시간은 1시간 30분에서 2시간 가량 걸린다. 지루한 줄을 모른다. 뜨겁게 기도하곤 했다. 금요일 철야기도는 말 그대로 철야기도이다. 밤 10시부터 기도하기 시작하여 새벽 5시까지 꼬박 기도를 했다.



신앙생활이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면 안 된다고 가르쳤다. 그것을 스스로 실천하려고 했다. 교회 이름에 그 뜻이 담겨있다. 정말 말씀과 기도 등에서 골고루 갖추려고 노력했던 교회였다. 교인 아무에게나 집사 임명을 쉽게 하지 않는다. 깊은 관찰력을 가지고 지켜보았다. 다방면에 충분한 역량을 갖춘 사람을 지도자로 임명하려 했다. 교인 숫자가 300명이 넘었을 때까지 임명된 장로도 없었다.



이사를 해도 성도들이 멀리서 교회에 출석한다. 다들 교회에 가까운 곳으로 이사를 해서 모이곤 했다. 나 역시 결혼 후 처음 집에서 교회에 가까운 곳으로 이사를 했다. 좋은 교회와 훌륭한 목사님 곁을 떠나기가 싫다. 교직을 시작하면서 섬으로 발령이 났다. 섬도 아주 먼 섬이었다. 섬으로 이사를 들어가지 않았다. 매주일에는 어김없이 교회에 출석했다. 폭풍 주의보가 내리면 사선(私船)을 빌려 타고 사선(死線)을 넘나들며 교회에 출석했다.



대학 졸업을 하고 교직 발령을 받기 전에 나는 여러 가지 일을 했다. 정수기와 이온수기를 판매하던 일도 했다. 1989년 가을에 새로운 정수기가 나왔다. 그때까지의 정수기는 단순한 정수 기능만 있었다. 스테론이라는 새 정수기는 자외선으로 살균 처리를 하는 방식이었다. 그 시절 물에 관한 사람들의 관심이 무척 커져가던 시절이었다.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아파트에 새로 나온 그 정수기를 설치하는 것이다.



그때까지 어느 아파트 건설회사도 그런 방법을 사용한 적이 없었다. 아파트에 설치할 수 있는 정수기도 없었다. 너무 좋은 아이디어였다. 대주건설은 본사가 광주에 있다. 대주건설을 찾아갔다. 담당자가 출장을 나갔기에 만나지 못했다. 지방에서 시작할 일이 아니었다. 서울로 가자. 200만원 정도면 일을 시작할 수 있을 것이다. 아파트 집집마다 정수기를 설치한다는 것을 가지고 계산해보았다. 내 수입이 거의 천문학적이었다.



그러나 교회를 생각하면서 브레이크가 걸렸다. 서울로 올라가면 교회를 떠나야 한다. 교회를 떠나는 건 정말 싫었다. 결정을 내리지 못한 채 3개월 이상을 주저하며 지냈다. 그러다 광주에서 멀리 떨어진 강진에 있는 학원으로 가게 되었다. 그곳에서 살면서 광주에 있는 교회에 출석할 수 있었다. 이어서 교직으로 자리를 옮겼고, 다음해인 1990년 3월에는 정식으로 발령을 받게 되었다. 그렇게 해서 나는 너무도 좋은 아이디어를 접어두고 교사로서의 삶을 시작했다.



정식 발령을 처음으로 받은 곳은 진도의 조도였다. 전라남도 진도는 광주에서 매우 멀리 떨어져 있다. 내가 근무하는 섬 조도는 거기에서도 배를 타고 한참을 들어가야 했다. 차와 배를 몇 번씩 갈아타고 다녀야 했다. 그래도 교회를 떠나기는 싫었다. 하나님께서 곧 교회에 가까운 곳으로 발령 나도록 해주실 것을 기도했고 믿었다. 그래서 이사하지 않고 광주에 살았다. 섬에 혼자 방을 얻어 하숙을 했다. 주말에는 어김없이 광주로 올라와 교회에 출석했다. 시간과 여비로 계산하면 거제도에 근무하는 사람이 서울에 있는 교회에 출석하는 정도이다.



아파트에 정수기를 단다는 아이디어를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았다. 그 뒤 1-2년 뒤 아파트에 집집마다 정수기를 달아서 시공한다는 광고가 나왔다. 당시 아파트의 물탱크가 너무 더러워 수돗물을 불안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당연히 큰 호응이 있었다. 요즘은 아파트의 탱크 수돗물 처리 방식이 바뀌었다. 그래서 집집마다 정수기를 달 필요도 없어졌다. 아니 집집마다 개별 정수기를 설치하여 사용한다. 그때 그것을 놓친 것은 너무도 크게 느껴졌다.



교인들 대부분이 교회를 좋아했다. 여러 가지 면에서 애착이 가는 교회였다. 다들 아무리 좋은 일이 있어도 교회를 떠나는 일이라면 달가워하지 않았다. 그렇게 좋았던 교회였다. 그런 교회가 이상해지기 시작했다. 느낌이 이상해졌다. 교회가 위험한 길로 가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또 '음란'이라는 낱말이 느껴졌다. 그렇게 느낀 사람들이 또 있었다. 몇몇 사람들은 교회를 떠났다. 점점 이상해졌다. 목사님 말씀에, 교회가 큰 일을 하게 될 것이라고 했다. 불안한 생각이 들었다.



그때까지 목사님의 말씀을 거의 그대로 따랐다. 교회의 질서에 대하여 체질화될 정도로 교육을 받았다. 정말 존경스러운 신앙의 선배들이 많이 있었다. 사랑이 넘치는 교회였다. 결혼하기 전부터 결혼해서까지 교회의 많은 분들과 목사님 부부로부터 많은 사랑을 받아왔다. 결혼할 때 사모님으로부터 받았던 냄비는 지금까지도 사용하고 있을 정도로 튼튼하고 좋은 제품이다.



불안했던 것이 현실로 나타났다. 목사님이 중대한 내용을 발표했다. 1992년 10월 28일에 예수님이 재림하신다고 했다. 그것을 믿어야 한다고 했다. 믿기지 않겠지만 하나님으로부터 그런 응답을 받았다고 했다. 큰 갈등을 겪었다. 어떻게 받아들여야 한단 말인가? 주님이 날짜를 정해서 오는 것이 아니라는 것은 분명 알고 있었다.



 그러면서 쌍둥이 아이들이 아팠다. 큰 병명이 있는 것이 아니다. 하지만 목숨이 왔다갔다하는 정도였다. 숨이 넘어가는 아이들을 들춰 안고 병원을 향해 내달리곤 했다. 딸아이들이 병원에서 숨이 꼴깍 넘어가곤 했다. 얼굴이 시퍼렇게 변한 일도 있었다. 응급처치를 하여 숨이 돌아오기도 했다. 두 아이가 번갈아 병원에 입원과 퇴원을 반복했다. 집에 있는 아이를 보러 갔을 때의 일이다. 숨을 쉬지 못하고 방바닥 모퉁이를 북북 기어다니는 아이의 모습을 보았다. 그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또 들춰 안고 병원을 향해 내달린다.



병원을 가도 다른 병원에는 가지 않고 기독교 병원을 찾았다. 기독교 병원의 의사들은 그래도 좀 양심적일 것으로 생각했다. 그러나 아이들 병원비를 내면서 그들이 정직하게 하지 않는 것을 알았다. 어쩌면 다른 병원의 의사들보다 더 심해 보였다. 그 때부터 나는 예수님을 믿지만 기독교인들을 믿지는 않는 신앙을 갖게 되었다. 단지 사랑을 해야 할 대상이라는 생각을 할뿐이었다.



토요일이 되면 어김없이 광주에 올라왔다. 그때는 계속 병원에서 생활했다. 올라올 때마다 교회의 많은 사람들로부터 반복되는 이야기를 들었다. 10월 28일 재림을 믿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들은 나를 믿음이 적은 사람으로 보았는지 모른다. 아마 그랬을 것이다. 나는 그때까지 신앙생활을 하면서 재림 날짜를 정하는 것은 분명 잘못된 것으로 알아왔다. 그 날과 그 시는 아무도 모른다는 성경 말씀을 잘 알고 있었다.



딸 쌍둥이들이 점점 심하게 아팠다. 부모 형제 누구 하나 도와주는 사람은 없었다. 오로지 교회 사람들만 와서 도와주었다. 아내가 교제하는 유일한 사람들은 교회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내가 하나님의 뜻대로 하지 않기 때문에 아이들이 아픈 것이라고 했다. 내게 교직을 그만두어야 한다고 했다. 휴거 후 이 땅에 남아 복음을 전할 사명자라고 했다. 그러다 순교할 것이라고 했다. 내가 소련에 가서 사역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했다.



여전히 교회 사람들로부터 많은 도움을 받았다. 아내는 10월 28일을 믿는 그들의 말을 들을 수밖에 없었다. 어느 날 병원에서 성경을 읽다가 교회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확인했다. 말씀을 통해 확신했다. 아내를 교회 사람들과 단절시켜야겠다고 생각했다. 곧바로 섬으로 이사를 했다. 집에 열쇠를 잠궈 놓고 보따리를 싸서 섬으로 내려갔던 것이다.



그때까지 나는 목사님의 말씀을 어겨본 적이 거의 없었다. 목사님의 말씀을 처음으로 거절한 것이다. 충격은 너무도 컸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차츰 잊혀졌다. 1992년 3월에 경기도 이천으로 발령을 받았다. 비비어는 하나님의 말씀에 대치되는 지시에는 순종치 말라고 했다. 단, 그때에도 복종하는 태도를 갖추라고 했다. 하나님의 말씀과 충돌하는 명령에는 순종하지 않되 복종하는 태도를 갖추어야 한다는 것이다.


지도자가 잘못된 결정을 내린 것이 확실할 때는 에스더처럼 복종하는 마음을 잃지 않고 공경하는 태도로 임하라고 한다. 자기 뿐 아니라 지도자를 위해서도 겸손한 자세를 갖추라고 했다. 이에 비추어 내 행동을 살펴본다. 나는 그 목사님을 비방하지 않았다. 구역장 등 리더들에게도 아무런 말을 하지 않았다. 조용히 이사를 했다.



비비어는 교회 내 거짓 선지자와 거짓 지도자들에게 복종하지 말아야 한다고 했다. 바울은 "우리가 일시라도 복종치 아니하였으니 이는 복음의 진리로 너희 가운데 항상 있게 하려 함이라"(갈2:5)고 했다. 거짓 지도자의 큰 특징은 성경에 어긋난 교리를 가르치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나 혹 하늘로부터 온 천사라도 우리가 너희에게 전한 복음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지어다"(갈1:8)라고 했다. 하나님께서는 성경을 통해 구체적으로 그들이 잘못되어 있음을 알려주셨다. 그들은 불법을 행하고 있었던 것이다.



92년 10월 29일 아침 국민일보에는 00교회의 28일밤 자정의 모습을 스케치해놓고 있다. 모든 사람들이 흰옷을 입고 집결했다. 1시간전, 10분전, 1분전, '마지막으로 모든 죄를 회개하세요'. 드디어 자정, 고동치는 악기와 드럼 소리도 멈추었다. 적막이 흐른 뒤, '주여 저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라고 외치며 흐느끼던 조00 목사의 모습이 생생하게 그려져 있다.



아침에 신문을 보고 울었다. 생각나는 전화번호를 눌렀다. 신앙의 선배였고, 존경하던 분이 계셨다. 그날에 관해 믿지 않는 나를 보고 무척이나 안타까워하던 분이었다. '회개하세요. 주님께서는 더 큰 죄도 용서해주셨습니다'라는 말을 해주고 싶어서였다. 통화할 수 없었다. 지금은 어떻게 사는지 궁금하다. 그 상황에서 빠져 나오도록 해주신 주님께 감사할 뿐이다. 우리 가족을 향하신 주님의 사랑이 한없이 크게만 느껴진다.



2001년에 신갈에 이사를 오면서 정착할 교회를 찾았다. 장로교 통합 측에서 신앙생활을 출발했기에 통합 측 교회를 찾았다. 하지만 정착하기에는 너무도 힘든 교회였다. 등록한지 만 2달 정도 되었을 때의 일이다. 목사님으로부터 만나서 얘기를 하자는 연락을 받았다. 여러 가지로 하시는 말씀을 들으면서 많이 놀랐다. 내 행동 하나하나를 다 지적하다 시피 했다.



내가 영적으로 거슬린다고 했다. 예배 중 왜 눈을 감느냐고 한다. 말씀을 들으면서 생각할 일이 있을 때 감는다고 했다. 찬양을 왜 부르지 않았느냐고 한다. OHP로 가사만 보여주면서 찬양을 부르도록 한 적이 있었다. 전혀 모르는 찬양이었다. 가사만 보고 모르는 노래를 부를 수 있는 사람이 있는가?



그런 식의 지적을 아주 많이 했다. 나의 잘못된 부분을 말씀하시는 것도 있었다. 하지만 대부분은 황당하기 그지없는 말들이었다. 처음 몇 번 묻는 말에 답변을 했으나 얼굴이 불그락푸르락 하면서 소리를 질러댈 듯이 말하는 그 앞에서 입을 다물고 말았다.



왜 말을 하지 않느냐고 한다. 말하고 싶지 않아서라고 했다. 말을 하라고 한다. 아무 말 안하고 듣고만 있는데도 그렇게까지 흥분을 하시는데 대답을 하는 것은 효과가 없을 것 같아서 말하지 않는다고 했다. 대학 다니면서 토론하다가 충격을 받은 적이 있느냐고 묻는다.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 말에까지 답을 하다가는 싸움을 하게 될 것 같았다. 그분이 어떤 상태에 있든 그는 주님께서 기름 부어 세우신 종이다. 그런 분과 싸웠다가는 나만 손해이다. 그래서 말을 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평정심을 잃지 않기 위해 애를 썼다. 비비어는 다윗이 까닭 없이 자신을 죽이려한 사울에게 어떤 태도를 취했는지에 관해 길게 쓰고 있다. 골리앗을 죽이고 사위가 된 다윗에게 창을 던져 죽이려 했던 사울이다. 3,000 명이나 되는 군사를 이끌고 광야와 동굴까지 추적을 했다. 동굴 속에서 다윗은 손아귀에 들어온 사울을 살려준다.



사울을 죽일 이유는 확실했다. 사울은 미쳐 있었다. 제사장 85명과 그 가족들을 죽이는 등 나라를 위태롭게 하고 있었다. 하나님은 사무엘을 통해 사울을 폐하셨다. 다윗에게 기름을 부어 왕으로 삼으셨던 것이다. 상대를 죽이지 않으면 내가 죽을 상황이다. 3,000 명이나 되는 군인들이 모두 잠들었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주신 절대절명의 기회로 볼 수 있다.



다윗은 사울을 죽이지 않았다. 겉옷 자락을 조금 베는 것만으로 양심을 가책을 느꼈다. 내 경우 그 목사님에게 대항하지 않았다. 조용히 교회에서 나왔다. 곧 많은 집사들이 우리 집으로 찾아왔다. 그들 모두 그 목사님의 문제점을 잘 알고 있었다. 떠나는 내가 나쁜 사람이어서였다고 알리라는 말을 했다. 떠나는 사람보다 남은 사람들에게 유리하게 말하는 것이 좋을 것이었기에 그랬다.



그러나 문제는 그 뒤로 내가 그 목사님에 대하여 좋지 않게 말하는 일이 생긴다는 것이다. 대개 교회를 옮기기 된 배경을 말하면서 그랬다. 다윗은 사울에게서 나와서도 사울을 비방하지 않았다. 내 경우는 이점이 부족했다. 이 역시 회개했다.



우리 가족은 결국 그 교회에서 나오게 되었다. 그 교회에 젊은 집사들 중 좋은 분들이 참 많았다. 우리 가정을 그 교회로 인도한 부부도 그렇고 또 많은 분들 대부분이 그 교회에서 나왔다. 지금 그 목사님은 시골 교회로 가셨다고 한다. 그 시골 교회 성도들이 걱정스럽다.



그러고 나서 다른 합동 측 교회에 출석하였다. 문제점이 보이긴 했어도 좋은 교회였다. 우리 가족은 등록한지 2년 가량을 열심히 신앙생활을 하며 봉사도 했다. 그러던 중 교회가 분쟁의 소용돌이에 들어가게 되었다. 우리가 등록하기 전부터 내재해 있던 알력이 표출되기에 이르렀다. 몇몇 집사들과 함께 중재하기 위해 노력을 했다. 하지만 결국 교회가 분열되기에 이르렀다.



장로님들이 주축이 되어 목사님을 축출했다. 목사님이 영적이지 못하고 육적이라는 이유였다. 양측 모두 주님께서 기름 부어 세우신 종들이었다. 하지만 교회의 최고 지도자는 목사님이다. 목사님을 옹호하기 위해 노력을 했다. 중재하기 위해 할 수 있는 여러 가지 일을 시도했다. 집사들의 그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목사님이 쫓겨났다.


싸우는 교회에서 신앙생활하기 싫었다. 목사님이 새 교회를 개척하지만, 그쪽으로 가고 싶지 않았다. 그 목사님은 인격적으로 좋은 분이셨다. 그러나 목회 스타일을 좋아하는 편은 아니었다. 다시 새로운 교회를 찾아야 할 형편이었다.



이렇게 해서 우리 교회에 오게 되었다. 좋은 교회이다. 좋은 목사님을 만나게 되어 정말 좋다. 성도들의 신앙과 생활 모습이 좋다. 많은 좋은 분들과 함께 신앙생활을 하게 된 것을 하나님께 감사한다. 다양한 프로그램이 운영되고 있어서 좋다. 처음 느낌에 좀 어지럽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말이다. 포근함을 느낀다. 영적인 지도자를 만나 영적인 분위기 속에서 신앙생활을 할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큰 축복인지 모른다.



2004년 1월 첫 주부터 출석하여 2월말에 등록을 했다. 출석한지 얼마 되지 않아서부터 교회가 셀 중심으로 나아갈 것이라는 말씀을 들었다. 나아가 G12 체제로 나가게 될 것이라고 목사님께서 말씀하셨다. 대학 시절 신앙생활을 시작하면서부터 제자화 운동을 해왔었기에 낯설지 않았다. 하나님께서 셀 활동과 G12 체제를 통해 우리 교회를 크게 부흥케 하시며 이끌어 가실 것으로 기대한다.



Back to Jerusalem 운동은 꼭 필요하다. 많은 교회들이 이를 위해 기도하고 노력해야 할 것이다. 땅 끝까지 복음이 전파되어야 한다. 그때에야 예수님이 오실 것이라고 했다. 땅 끝은 어디인가? 초대교회 성도들은 땅 끝을 사각 평평한 세상에서 육지 끝으로 보았을 것이다. 극동아시아인 한반도의 땅 끝까지 복음이 전해졌다.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케이프타운까지 복음이 전해진지는 오래 되었다. 북유럽 스칸디나비아 반도 끝에도 복음이 전해졌다. 신대륙 끝까지도 복음은 이미 전해져 있다.



지구는 둥글다. 원에서 한 지점에서 출발하여 그 끝은 어디인가? 출발한 곳이 곧 끝이다. 그렇다면 땅 끝은 바로 예루살렘이 아닌가? 그렇다.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행1:8)라는 말은 '예루살렘에서 시작하여 지구를 다 돌아 다시 예루살렘으로'라는 뜻을 갖게 된다. 이스라엘과 예루살렘으로 복음이 다시 전해져야 한다는 것이다. 유태인들이 주께로 돌아오는 날이 종말인 것이다. 예수님이 그때 오시는 것이다. 그렇다. 할 수만 있다면 많은 교회들이 이에 관심을 가지고 지원해야 할 것이다.



하지만 30년 전에 기도하셨던 그 기도의 응답이라는 목사님의 말씀에는 곧바로 아멘이 되지 않았다. 목사님께서 많은 큰 일을 하실 분이라는 믿음을 가진다. 그렇지만 목사님께서 그 운동의 한 부분을 맡아 이스라엘을 위해 일을 하실 분이라는 것에는 쉽게 느낌으로 실감이 되지 않았다. 그리고 우리 교회가 그 일을 위해 노력해야 할 것이라는 말씀에도 곧바로 동감이 되지 않았다. 단 며칠만에 내려진 목사님의 결정을 곧 나와 우리 교회의 꿈으로 받아들이기엔 시간이 필요했다.



지금까지 여러 목사님들을 통해 신앙생활을 배워왔다. 우리 목사님은 다른 어떤 분들보다 열심이 특심하시고 성도들을 세심하게 살피신다. 그런 목사님이 존경스럽다. 하지만 나는 많은 목사님들을 겪어왔다. 목사님은 큰 비전을 말씀하고 계신다. 그러나 그 모습 위로 다른 이미지가 오버랩되고 있다. 내가 겪어왔던 여러 목사님들의 모습들이다. 여러 목사님 중 조00 목사님의 이미지는 내게 특히 강렬하다. 무척이나 존경했던 분이었다. 그분에 대한 나의 실망감 역시 무척 크다. 이로 인해 우리 목사님의 비전에 찬 말씀이 바로 아멘으로 느껴지지 않는다.



비비어는 중고등부 사역자로서 8개월간 기도하며 프로그램을 준비했다. 예상된 성과는 눈에 확실하게 보였다. 그런데 불과 3주전에 담임목사로부터 중단하라는 명령을 받았다. 바로 받아들일 수 없는 일이었다. 분명 담임목사가 잘못하고 있는 것이었다. 그때 주님의 뜻은 어디에 있었는가? 그는 담임목사에게 어떤 태도를 취했나? 그가 보기엔 얼토당토않은 명령에 그는 순종했다. 너무도 어처구니없는 명령에도 말이다.



반항은 노골적이지 않고 미묘하며 미미하게 시작된다고 했다. 은근히 곁길을 가는 것이라고 했다. 내가 목사님의 비전의 말씀에 반항하는 것은 분명 아니다. 그러나 내가 목사님의 말씀을 전적으로 믿고 순종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곧 반항으로 이어질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하나님께서는 위에 있는 권세들에게 굴복하라(롬13:1)로 하셨다. 온전히 순종할 마음으로 자발적으로 권위에 순종하라는 것이다.



사실 내 경우는 비비어의 경우와는 다르다. 목사님이 엉터리 같은 말씀을 하시는 것이 아니다. 당연히 그렇게 되어야 할 일을 말씀하시는 것이다. 관건은 너무도 큰 일이기에 단 시간에 그렇게 결정이 내려질 수 있는가 하는 것이었다. 내가 바로 아멘으로 응답하지 못한 것은 이 때문인 것이다. 내가 수용하기에는 너무 충격적인 선포였다. 단 시간에 응답 받은 것으로는 너무 큰 결정인 것이다.



이전에 광주에서의 교회는 분명 잘못된 길로 가고 있었다. 지금 목사님의 말씀은 잘못된 것이 아니다. 단지 내가 수용하기에 너무 강펀치인 것이다. 지도자의 선택이 바람직하지 않다고 느껴지는 경우에도, 비비어는 시간이 지나면 대개 지도자의 결정이 옳은 것으로 드러나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지도자의 지시가 내 맘에 들 때만 복종하는 것이 아니고 그저 순종해야 한다는 것이다.



비비어는 지도자가 하나님께서 내게 보여주신 것과 어긋나는 명령을 내리는 경우에도 하나님께서 내가 권위에 순종하는가를 보려는 시험으로 제시한 것이라고 말한다. 그러면서 일꾼들이 순종하는지 불순종하는지를 알아보기 위해서는 말도 안 되는 지시를 내리는 것이 하나의 방법이 된다고 했다. 목사님께서 말씀하신 것은 내게 보여주신 어떤 것과 배치되는 것도 아니다.



사실 목사님께서 말씀하신 비전을 내가 믿지 않는다 하더라도 내가 교회에서 특별히 달리 행동하게 되는 것은 없을 것이다. 그저 묵묵히 신앙생활을 해나가게 될 것이다. 비비어는 사역자의 영적 권위를 인정할수록 더 많은 것을 얻게 된다고 했다. 김삼성 목사님 및 Back to Jerusalem에 관련한 목사님의 비전이 불과 며칠만의 결정된 것이다. 이를 믿고 받아들이지 않는다고 해도 교회에서의 신앙생활과 셀 운동을 통한 활동에 그런 대로 참여하여 따라갈 수는 있을 것이다. 하지만 목자의 비전을 함께 확신하는 마음이 없이 목자를 따라 가기는 쉽지 않다. 지도자의 비전에 대한 확신과 동참이 없이 지도자에 대한 전적인 순종은 어려울 것이기 때문이다.



목사님의 비전에 대하여 그저 그러려니 하고 따르는 것은 내게 별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다. 그 비전을 우리 교회의 비전이요 나의 비전으로 생각하고 따를 때 내게 더 많은 축복과 영적 충만함이 따를 것이다. 같은 사역자를 통해서도 미국에서는 두통이 치료된다거나 하는 정도에 그치지만 아프리카에서는 소경까지도 낫는 역사가 일어나듯이 말이다.



비비어는 선지자를 공경하는 사람에게 더 풍성한 은혜가 임한다고 말한다. 그를 단순히 말씀만을 전하는 사람으로 보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사역자로 맞이할수록 더 큰 은혜를 받게 된다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위해 수고하는 지도자들에 대하여 공경하는 마음을 갖기를 원하신다. 그는 시간이 지나면 지도자의 결정이 옳은 것이 드러나게 된다고 했다. 순종의 원리보다 내 논리의 자가당착에 빠질 때 교회와 가정이 분열된다고까지 했다.



비비어는 하나님을 향해 경건한 복종의 원리가 불타오르기를 기도하라고 한다. 판단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시고 우리는 그저 순종하기만 하면 된다는 것이다. 그는 순종함으로 인해 믿음이 자란다고 말하고 있다. 참된 겸손의 태도를 가져야 한다고 말한다. 일부만이 아니라 모든 것을 끝까지 실행하는 순종이 필요하다고 말하고 있다. 목사님의 비전이 짧은 시간에 결정된 것이긴 하지만 내가 믿지 못할 이유가 없다. 내가 그 말씀을 따르지 못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단지 내 경험과 내 생각에 문제가 있을 수 있다. 중대한 결정은 많은 기도를 통해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은 내 생각일 뿐이다. 바로 나의 이러한 선입관적 판단이 걸림돌이 되었던 것이다.



비비어는 큰 믿음을 원하거든 끝까지 하나님께서 위임하신 권위에 순종하라고 하고 있다. 믿음은 순종에 비례한다는 것이다. 주 앞에서 낮추고 권위에 순종할 때 하나님께서 당신의 모습을 나타내신다고 한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참 겸손을 낳는다고 하면서 겸손하게 순종할 것을 강조하고 있다. 겸손하게 순종해야 한다. 목사님께 향한 하나님의 큰 뜻을 내가 다 헤아리기는 어려울 것이다.



나는 목사님의 권위를 인정한다. 그렇다면 목사님을 통해 주신 하나님의 비전도 믿고 따라야 한다. 이것은 큰 보상을 가져다 줄 것이다. 내가 바라는 보상은 목사님과 교회가 잘 되고 그 속에서 나도 잘 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이삭에게 주셨던 축복을 나와 내 아들 이삭, 그리고 우리 가족에게 주실 것을 믿는다.



목사님께서 말씀하신 비전이 우리가 하기에 어려운 것은 아니다. 단지 며칠만에 내려진 결정이라는 점에서 바로 수용하기가 쉽지 않다. 하지만 이러한 결정을 내려야 하기 때문에 「순종」을 읽게 되었지 않았을까? 목사님이 비전을 말씀하셨을 때 바로 아멘을 외치지 못했던 내 모습을 다시 생각해본다. 그러면서 순종에는 큰 보상이 따른다는 비비어의 마지막 말이 교차된다. 이제는 목사님의 비전에 따라 나아갈 마음의 준비가 되어간다. 하나님께서 그것을 요구하신다. 나는 하나님의 요구를 따르고 수용해야 한다.


 


4. 결단


모든 권위는 하나님께로부터 나온다. 이런 원칙은 알고 있었다. 하지만 구체적으로 내 생활에서 이것을 지켜오지 못했다. 신앙생활을 시작하면서부터 교회 지도자들과 하나님께서 기름 부은 종들에게 함부로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교육받아왔다. 지금껏 대체로 교회 지도자들에게 불손한 행동을 하거나 잘못된 태도를 가져오지는 않았던 것으로 기억된다. 하지만 교회 밖 세상의 권위들에는 그렇게 해오지 못했다.



쌍둥이 딸들을 아프게 하신 하나님의 뜻은 여러 가지로 해석이 된다. 지금까지 생각해오지 못했던 것이 하나 있다. 조도에 근무할 때의 일이다. 그 학교 교장선생님은 온유하고 존경할만한 분이었다. 그러나 교감선생님은 그렇지를 못했다. 많은 사람들에게 좋지 않은 평을 듣던 사람이었다. 그분에게 대한 나의 태도는 나름대로 예의를 갖추려고 한 점이 있기도 하지만, 그를 편하게 하지 못했던 점이 많이 있었다. 그렇게 순종, 아니 복종하는 태도를 갖지 못함으로 인하여 딸들이 더 아팠던가 보다 하는 생각이 든다.



좀더 내 자아를 다스리는 노력을 해야겠다. 좀더 교회 목사님과 여러 지도자들을 섬기며 사랑하는 자세를 갖도록 해야겠다. 교회 밖에서도 하나님의 질서와 뜻을 충실하게 따르며 살아야겠다는 다짐을 해본다. 직장인 학교에서 좀더 지도자에게 순종과 복종을 하는 자세를 갖추어야겠다. 당장 실천하자. 바로 변화된 모습이 나타나도록 하자.



오늘 소풍을 다녀왔다. 에버랜드 뒷산 위로 푸르게 펼쳐진 가을 하늘이 새롭게 느껴진다. 이제 곧 단풍이 산꼭대기로부터 울긋불긋 곱게 펼쳐질 것이다. 세상을 요모조모로 질서 있게 이끌어 가시는 하나님의 손길을 느낄 수 있다. 많은 사람들이 왔다갔다한다. 그 많은 사람들이 모두 질서와 하나님의 권위의 체계 안에 놓여 있다. 본인들이 그것을 느끼며 살든 그렇지 않든 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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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까지 입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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